보견회 89차 반가사유의 공간을 찾아 2022.7.7
보견회 7월모임은 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장에서 있었다. 금년도에 신설된 "사유의 방"에 존치된 국보 반가사유상 두점을 감상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아울러 문화재 해설의 도선트와 몇 점의 문화재 해설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11시부터 한시간 해설을 예약하고 모임공지를 통해 15명이 참가하였다. 해설은 1층 중.근세관의 조선3실에서 시작되었다.
(1) 조선왕조의궤 프랑스로 부터 반환된 외규장각의궤 중 전시중인 종묘개수도감의궤와 종묘수리도감의궤를 보면서 ---
기록문화의 꽃이라 불리는 조선시대 의궤儀軌는 ‘의식의 본보기가 되는 책’이라는 뜻으로, 왕실의 혼례와 장례, 국왕의 즉위식 등 중요한 의식과 행사를 개최한 뒤 준비, 실행, 및 마무리까지의 전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것이다. 의궤를 비롯해 왕실의 중요한 자료들은 정조正祖가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인 외규장각外奎章閣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대부분 불에 타 없어졌다. 그 가운데 의궤 297책은 프랑스군이 약탈해 가져갔다가 145년 만인 2011년에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외규장각 의궤는 고급 종이에 정성껏 글을 쓰고 천연 안료로 곱게 그림을 그린 뒤 고급 비단으로 표지를 싸서 놋쇠 물림으로 묶었다. 우리나라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는 대부분 왕이 보기 위한 것(어람용)으로 당대 최고의 도서 수준과 예술적 품격을 보여 주며, 특히 국내외에 한 점밖에 없는 유일본이 상당수 포함되어 더욱 중요하다. 의궤는 같은 유교 문화권을 형성했던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기록 유산이다.
(2)금관,금허리띠 신라 왕과 왕비의 무덤에서 출토된 화려한 금관과 금허리띠 전시품은 선사고대관 신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국보 제 191호(금관)와 국보 제192호(금허리띠)인 금관 금허리띠는 1973년 경주 황남대총에서 발굴되었다. 삼국시대(신라)5C에 제작한 금공예품으로 신라의 예술적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걸작으로 5C 신라 마립간이 사용하였다. 금관은 높이가 27.3cm 금허리띠는 길이가 120cm이다. 금 재질은 순금은 아니나 21k의 합금이다.
(3)경천사 십층석탑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강융(姜融)이 주관하여 경천사에 세운 석탑.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회색의 대리석으로 제작되었다. 1909년 무렵에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반환되어 1960년에 서울 경복궁 안에 재건되었으며, 1962년에 국보 제86호로 지정되었고 1995년에 다시 해체 10여년에 걸쳐 보존처리 되었다. 이후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재개관시 현재 전시실에 복원건립되었다. 우리나라 국보로, 국보 정식 명칭은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이다. 석탑은 기단 3층, 탑신 10층이다.
(4)예산 수덕사 괘불(보물) 괘불(掛佛)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큰 법회나 야외에서 불교의식을 거행할 때 걸어두는 대형 불화이다. 1673년(현종14)에 화승(畵僧) 응열(烈)을 비롯한 승려 4명이 함께 조성한 괘불로 예산 수덕사 소장이다. 매년 부처님오신날 전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교채전시되고 있다. 수덕사괘불은 삼베에 색을 그렸고 크기가 1,071x744cm이다. 수덕사 괘불은 중앙에 오랜 수행으로 공덕을 쌓아 부처가 된 보신불인 노사나불이 차지하고 있다. 가르침을 전하는 관음보살,지장보살 뿐만 아니라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여러 보살들,불교의 수호신 금강역사 그리고 여러 제자들이 그려져 있다.
(5)반가사유상 두개의 국보 반가사유상(국보 78호,국보 83호)이 예전에는 교대로 전시되던 것을 "사유의방"을 별도 설치하여 함께 전시하는 공간으로 전시실은 건축가 최욱씨가 설계하였다. 전시실 내에서는 해설이 불가하여 밖에서 해설을 듣고 실내 입장하여 감상하였다. 두 반가사유상에 관한 해설자료를 아래에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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