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kg당 1만 8천 원대에서 6천 원대로 급락… 수입산 공세·사육 두수 급증 '이중고’
전국 교통 요충지 의성, 축협의 투명한 경매 시스템이 그나마 '버팀목'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월 8일 오전, 영하 10도의 매서운 강추위가 몰아친 경북 의성군 의성축협 염소 가축시장.
2026년 새해 들어 처음 열린 염소 경매 현장은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 농민들과 중매인들의 열기로 가득 찼지만, 분위기는 바깥 날씨만큼이나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3차까지 의무 진행이며 아무 말이 없으시면 5차까지 진행되며 유찰 시 그냥 다음 레벨 번호로 넘어갑니다."
경매 진행자의 안내 방송과 함께 시작된 경매는 날씨보다 더 차가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유찰이 거듭될 때마다 예정가는 2만 원씩 뚝뚝 떨어졌다.
한때 '부르는 게 값'이라던 염소의 위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 "사료값이라도 건지려면…" 곤두박질친 시세에 농심 '시들’
이날 현장에서 체감한 시세 하락의 골은 깊었다.
지난해 kg당 1만 8천 원을 호가하던 평균 낙찰 가격은 해가 바뀌자마자 kg당 6천 원대로 주저앉았다. 불과 1년 만에 가격이 3분의 1토막이 난 셈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농가는 "지금 시세가 얼마인지 뻔히 알지만, 농가 입장에선 다만 얼마라도 건져서 빨리 처분해야 한다"며 "계속 데리고 있으면 사료값만 더 들어가 손해만 커진다"고 씁쓸해했다.
이 같은 가격 하락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 위축과 수입육의 대거 유입이 직격탄이 됐다. 지난해 8월까지 수입된 염소 고기만 6,790톤에 달하며, 이 추세라면 2025년 연간 수입량은 1만 톤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내로 수입되는 염소 고기의 99.8%는 호주산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번 가격 하락세는 '보어종'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보어종은 고기 양이 많고 육질이 부드러워 염소 전문 식당에서 인기가 좋았으나, 최근 수입 고기 물량이 대거 유입되고 경기가 위축되면서 가격 방어에 실패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최근 2~3년 사이 한우 가격 폭락도 염소 시장에 불똥을 튀겼다. 소값 하락을 견디지 못한 한우 농가들이 대체 작목으로 염소를 선택하면서 사육 두수가 급증, 공급 과잉으로 이어진 것이다.
◇ 10년 차 베테랑도 "이런 하락장은 처음"
경북 영천에서 10년째 염소를 키우고 있다는 김병대 씨는 이날 어두운 표정으로 경매 과정을 지켜봤다.
그는 "재작년 이맘때만 해도 kg당 2만 원씩 했는데, 지금은 사료값도 건지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150마리 정도를 사육한다는 김 씨는 "옛날에는 마당에 풀 뜯어 먹으라고 몇 마리 갖다 놓은 것이 불어나서 시작하게 됐다"며 "한우 가격이 떨어지니 사람들이 염소 쪽으로 많이 넘어왔지만, 지금은 염소 시세마저 떨어져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시세라는 게 내려가면 다시 올라갈 때도 있지 않겠나"라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 "그래도 믿을 건 시장뿐"… 전국서 몰리는 의성 가축시장
가격 폭락의 파고 속에서도 농민들에게 의성축협 염소 가축시장은 마지막 보루와 같다.
현재 전국 22개소의 염소 가축시장 중 의성축협은 세 번째로 개장한 곳으로, 충북·전북·전남·경북 등 전국 각지의 농가들이 찾는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의성에서 염소 사육을 하며 종자용 염소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강용구 씨는 이곳의 지리적 이점을 강조했다.
강 씨는 "상주 등 타지역에도 시장이 있지만, 의성은 교통이 좋아 전라도나 안동 등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린다"며 "물량이 많고 거래가 활발해 이곳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강 씨는 단순 비육보다는 '종자 개량'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그는 "좋은 종자를 써야 새끼 성장 속도가 빠르다"며 "경매 시세가 30만 원이라도 좋은 종자는 50만 원을 줘도 안 팔 만큼 품질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시세가 바닥을 쳐도, 우수한 품질의 염소는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버티고 있는 셈이다.
◇ 투명한 거래 시스템 정착, 시장 활성화 기대
과거 염소 거래는 대부분 '문전거래'로 이루어져 농가들이 제값을 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의성축협 가축시장처럼 축협을 중심으로 한 가축 경매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투명한 가격 결정이 가능해졌다.
현장에서 만난 농가들은 입을 모아 "가격이 떨어져 힘들긴 해도, 이렇게 믿고 팔 수 있는 시장이 있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홍길 의성축협 조합장은 "염소 사육 농가 역시 우리 조합의 중요한 구성원인 만큼, 이들을 위한 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조합의 당연한 책무"라며 "가축시장을 통해 농가에는 투명하고 적정한 가격을 보장하고, 조합 차원에서는 경제사업 활성화를 도모하며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유례없는 가격 폭락과 수입산의 공습 속에서도 의성 염소 가축시장은 아침을 여는 농민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자, 다시 올 봄을 기다리는 농심이 모이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출처 : 팜인사이트(http://www.farminsight.net)
(사)한국수입육협회 www.korm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