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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하며 진화하며, 기계들 생명에 다가서다
[11] 생명과 기계의 경계 ①: 기계에서 생명으로
그리스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인을 조각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극한 정성으로 이 여인상을 갈라테이아라는 여인으로 변모시켰다.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처럼, 인간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바람을 담은 피조물을 만들어
왔다.
사람을 닮은 조각에서, 사람을 흉내내는 자동 인형과 컴퓨터를 거쳐, 뇌를 흉내낸 인공지능과 놀라우리
만치 인간을 닮은 최신 로봇에 이르기까지.[1]
인간에 대한 이해가 진전되면서 인간을 닮은 피조물들은 점점 인간과 비슷해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단백질과 지방으로 이루어진 몸은 더이상 기계와 생명을 구분짓는 특징이 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글에서는 기계와 생명이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살펴보았다.
독자들이 변화를 실감할 수 있도록 여러 동영상을 링크했다. 제법 공 들여서 골랐으니, 여유가 있으면
보시기를 권한다.
기계에서 생명으로 ⑴: 형태와 동작 원리의 모방
바둑에서 이세돌을 이기며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던 인공지능 알파고는 뇌 신경망을 모방하여 만들어졌다.
실제로 하사비스는 알파고를 만들기 전에 기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뇌 부위인 해마를 오래 연구했다.[2] 기억은 자아의 표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3] 하사비스는 바둑처럼 특정한 목표만 수행하는 인공지능이
아닌 범용 인공지능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4]
뇌 신경망의 특별한 구조와 활동 양식에서 생겨난 현상인 의식이, 신경망을 참고하여 만든 인공지능에서도
생겨날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인공지능뿐 아니라 로봇도 생명을 모방하며 발전하고 있다 (생체 모방 로봇).
오랜 진화를 통해 지구에는 독특한 형태와 움직임을 가진 온갖 생명이 탄생했다.
따라서 특정한 로봇을 처음부터 디자인하기보다는,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생물을 모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곤충이나 박쥐, 물고기의 기본 구조와 작동 원리를 정밀하게 관찰하고, 이를 닮은 로봇을 만드는 것이다.
마징가 제트처럼 딱딱한 몸체와 관절로 이루어진 로봇 대신, 부드러운 외형을 가진 로봇 (소프트 로봇; soft
robot)도 늘어나고 있다.[5][6]
외형이 부드러운 로봇은 충격을 받아도 쉽게 파손되지 않으며, 사고 현장처럼 출입구의 모양이 불특정하고
좁은 곳을 통과하기도 좋다.
소프트 로봇은 단단한 몸체와 관절을 가진 기존의 로봇들과는 작동 원리가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한다.
문어를 모방한 소프트 로봇을 살펴보자.
연체 동물인 문어는 각기 다른 근육을 조절해서 다리를 물체에 감거나 다리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한 연구팀은 이를 모방하여 전류를 흘리면 다리의 모양이 달라지는 구조를 개발하였다 .
그런데 흐물흐물한 다리는 딱딱한 로봇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방법으로는 조절이 어렵다.
그래서 움직이는 방식도 실제의 문어를 참고하였다.
문어는 중추신경이 다리들의 움직임을 일일이 통제해서 헤엄치는 게 아니라, 각각의 다리가 다리의 자세와
주변 물 흐름에 따라 반사 신경으로 움직이면서 조절된다.
연구팀은 이를 흉내내어 물살이 있는 물 속에서도 헤엄치는 문어 로봇을 만들 수 있었다.
기계에서 생명으로 ⑵: 진화
생명이 진화하는 원리를 모방하기도 한다.
이족 보행을 하는 로봇을 만드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
먼저, 구조와 매개변수가 다른 소프트웨어를 여러 개 만든다.
소프트웨어 각각은 다양한 모양과 이동 방식을 가진 로봇(시뮬레이션된 로봇)을 나타낸다.
이 로봇들로 구성된 첫 번째 세대(generation)에서 가장 잘 걷는 로봇들을 고른다.
이 로봇들이 다음 세대 로봇을 만드는 부모가 되며, 이들의 소프트웨어가 부모 로봇의 유전체가 된다.[7][8]
부모 소프트웨어의 특징(매개변수 값, 구조 등)을 조합하고, 무작위적인 변이를 일부 추가하여 새로운 소프트
웨어(자식 로봇의 유전체)를 만든다.[9]
이 소프트웨어들로 만들어진 로봇들 (자식 로봇)이 다음 세대가 된다.
이 과정을 이족 보행을 충분히 잘하는 로봇이 얻어질 때까지 반복한다.
이족 보행을 잘하는 로봇만 선택하는 과정이 진화의 선택압이고, 이족 보행의 수준이 로봇의 적응도인 셈이다.
진화적 절차(evolutionary algorithm)을 사용하면, 어떤 문제가 있을지 미리부터 꼼꼼히 따져보고 대응하는
노고를 줄일 수 있다.
진화를 통해 당면한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동영상은 온갖 모양의 미로를 통과할 수 있는 거미 로봇을 진화적 절차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떤 모양의 미로들이 있을지 예견하고 대비하지 않아도, 미로를 통과하는 새로운 방법이 진화를 통해 그때
그때 생겨난다.
진화적 절차는 다양한 개체들을 통해서 한 가지 해결책이 아닌 여러 해결책을 찾아내므로, 최선의 해결책
(전역 최적해)이 아닌 적당한 해결책(국소 최적해)에 갇힐 위험이 낮다 (아래 그림).
또, 국소 최적해가 많고, 상충되는 여러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에 적합하다.
미리 고민할 필요없이 여러 해결책 중에 잘 동작하는 것을 고르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화적 절차를 사용하면 사람이 상상하기 힘든, 대단히 창의적인 디자인도 얻을 수 있다.
» 진화적 절차와 최적해. 파란 곡선에서 가로축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나타내고, 세로축의 깊이는 해결책이 얼마나 좋은지를 나타낸다. 깊이가 깊을수록 좋은 해결책이므로 가장 깊은 두번째 골이 전역 최적해이고 나머지 3개의 골은 국소 최적해가 된다. 진화적 절차에서는 점점 더 좋은 해결책을 향해 진화하므로, 세대를 거듭할수록 출발 지점 인근의 골을 향해 내려간다 (빨간 공들과 화살표). 진화적 절차에서는 여러 다양한 개체가 한 세대를 구성하므로 (빨간 공이 다양한 곳에 여러 개이므로), 국소 최적해가 많은 문제에서도 전역 최적해를 구할 확률이 높다. 또 부모 세대에서 자식 세대로 넘어갈 때 더해지는 무작위적인 변이는 진화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시시때때로 거슬러 오르게 만든다. 이 덕분에 왼쪽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 빨간 공처럼 사소한 국소 최적해에 걸려든 경우에도 더 나은 최적해쪽으로 이동할 여지가 생긴다 (“?”로 표시한 화살표 방향).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진화적 절차는 다수의 국소 최적해를 가진 복잡한 문제의 해결에 유리하다.
기계에서 생명으로 ⑶: 진화, 발달, 뇌의 모방
진화적 절차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3차원(3D) 프린팅과 재료 과학, 로봇 공학 덕분
으로 다양한 로봇을 자동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면, 하드웨어의 진화 (진화 로봇 공학; evolutionary robotics)
에도 적용될 수 있다.
아래 동영상의 로봇은 시뮬레이션으로 여러 디자인을 실험한 다음, 가장 좋은 디자인을 3D 프린터로 구현해서
만들어졌다.[7][10]
사물 인식과 로봇 제어, 정보 처리 등 다양한 분야에 두루 활용되는 인공 신경망(심층 학습[deep learning]이라고도 한다)은 진화적 절차를 적용하기에 대단히 유용하다.[7][8][11] 인공 신경망은 거의 무한하게 다양한 구조와 복잡성을 가질 수 있으며, 사전 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입력된 정보를 유용하게 사용하는 법을 스스로 학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경진화(neuroevolution)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인공 신경망이 여러 곳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진화적 절차법의 적용 범위도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진화 로봇 공학과 관련된 분야인 발달 로봇 공학(developmental robotics)도 생겨났다.[12]
어렵고 복잡한 작업을 하는 로봇을 만드려면, 처음부터 어려운 일을 하는 복잡한 구조의 로봇을 만들기보다,
단순한 일을 하는 단순한 로봇에서 시작해서 복잡한 일을 하는 복잡한 로봇으로 확장해가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8]
그럴려면 아기들이 호기심을 갖고 주변을 탐험하고,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고, 어른들을 모방하며, 지식과 기술을 축적해가는 것과 유사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발달 로봇 공학에서는 발달 심리학, 뇌과학, 언어학, 발달 생물학, 진화 생물학을 참고하여, 로봇이 스스로 주변을 탐험하고, 목표를 설정하여 연습하고, 사람과의 상호 작용에서 배우게 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이처럼 최신 기계들은 그저 생명의 외형과 행동을 흉내내는 수준이 아니다.
이 기계들은 만들어지고, 학습하고, 행동하는 전 과정에서 생명의 진화와 발달, 마음과 신체의 작동 원리를
따르고 있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생명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13]
기계에서 생명으로 ⑷: 협력하는 로봇들
각각의 신경 세포는 이전 신경 세포들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가공한 다음, 다른 신경세포들로 보내는 비교적
단순한 작업을 한다.
하지만 이런 신경세포 수십억 개가 모여 의식이 생기고, 감정도 생겨났다.
단순한 것들이 모여 다른 차원의 뭔가가 일어나는 현상(emergence)은 벌과 개미의 군집, 새와 물고기 떼의
움직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단순한 기능을 수행하는 로봇들이 서로 교신하면서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방식도 연구되고 있다.
로봇들의 상호작용은 생명체의 상호작용을 모방하여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박테리아들은 생존하기 힘든 환경에서는 서로 유전 정보를 교환하여 적응 방법을 타개한다.
박테리아처럼 곤란한 상황에 부딪히면 서로 소프트웨어 일부를 교환하는 로봇을 생각할 수 있다.
또, 작은 세포가 큰 세포 내에서 공생해서 생겨난 미토콘드리아처럼, 큰 로봇(또는 큰 인공지능)이 다른 로봇
(또는 다른 인공지능)을 일시적으로 흡수 통합하는 경우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렇게 들어온 로봇(또는 인공지능)의 유해성을 감별하고 공격할 때는 생체의 면역 시스템을 참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 전 알파고 하나를 보았을 뿐이지만, 머지않아 자율주행 자동차를 비롯해 크고 작은 로봇들이
도처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아마 현존하는 핸드폰 갯수보다도 많아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다양한 로봇들이 서로 작업을 방해하지 않도록(또는 서로 협력하도록) 상호작용하는 로봇들의
생태계도 슬슬 고려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위키피디아에서는 자동 편집 프로그램인 봇들 사이에 다른 봇이 편집한 내용을 고치고 또 고치며
자신의 내용을 관철하려는 싸움이 벌어지곤 한다.[14]
얼마 전에는 두대의 구글 홈 (구글에서 출시된 인공지능 가상비서)이 자신은 사람이지만 상대는 인공지능
이라는 논쟁, 인생의 목적에 대한 논쟁 등 다양한 주제로 며칠씩 다투는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로봇과 사람과 자연으로 구성된 생태계에서, 각자는 다른 로봇, 다른 사람, 다른 자연물들의 배경 환경이자,
상호작용의 주체가 된다.
이들의 협력을 큰 틀에서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협력의 바탕이 되는 플랫폼을 누가 어떻게 선점할 것인가는
점점 더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을까.
[출처와 각주]
[1] 인간형 로봇(안드로이드)들을 찾아보다가 조금 놀랐다.
여성형은 많았지만 남성형은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그림을 전시한 화가의 절대 다수는 남성이지만, 피사체는 여성이 더 많다고 한다.
로봇 공학에서도 남녀의 성비 불균형이 심한 걸까.
[2] Hassabis D et al. (2007) Patients with hippocampal amnesia cannot imagine new experiences.
PNAS 104:1726-31.
[3] Tononi G & Koch C (2015) Consciousness: here, there and everywhere?
Philos Trans R Soc Lond B Biol Sci. 370(1668).
[4] Kumaran D et al. (2016) What Learning Systems do Intelligent Agents Need?
Complementary Learning Systems Theory Updated. Trends Cogn Sci. 20:512-34.
[5] Shen H (2016) The soft touch. Nature 530:24-26.
[6] Mazzolai B & Mattoli V (2016) Generation soft. Nature 536:400-401.
[7] Agoston E. Eiben & Jim Smith. From evolutionary computation to the evolution of things.
Nature 521, 476-482 (2015).
[8] Doncieux S et al. (2015) Evolutionary robotics: what, why, and where to. Front. Robot. AI 2(4).
[9][자식의 유전체는 단순히 부모와 자식의 유전체를 합친 것이 아니다.
합쳐진 유전체에 변이를 추가하는 과정(재조합; recombination)이 일어나 유전자 풀의 다양성이 증가한다.
[10] Norwegian robot learns to self-evolve and 3D print itself in the lab. (Global Futurist 2017.01.29)
[11] 아래 동영상은 인공 신경망을 사용해서 장난감 자동차의 자율주행을 구현하는 학생들을 보여준다.
이 ‘공대스러운’ 장난을 보면서 웃어버렸다면, 아닌 척해도 이미 늦었다.
당신도 geek이다 (나도 그랬다ㅎㅎ).
약간의 프로그래밍 능력과 회로 지식이 있으면 저런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아주 어렵지는 않을 듯하다.
소형 컴퓨터인 라즈베리 파이를 활용하면 할 수 있는 장난이 훨씬 다양하다.
<사이언스>쯤 되는 대단한 저널에 실리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들의 공대스러운
장난도 소중한 문화적 토양이자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마징가 제트, 에반게리온 같은 만화 영화와 오타쿠들이 없었어도 일본이 로봇 공학에서 지금의 수준에 이를
수 있었을까?
공개형 저널과 온라인 공개 수업(MOOC)이 많아지고, 연구 장비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시민들이 과학
활동에 참여하기가 쉬워졌다.
유전자 조작 식품(GMO), 인공지능, 신종 전염병, 기후 변화 등 과학과 기술은 다양한 모습으로 일상에 침투
하고 있고, 대규모 과학 정책의 초기 단계부터 시민들을 포함시키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과학하는 문화는 점점 더 활발해지고, 중요해질 것 같다.
[12] 유투브 https://youtu.be/bkv83GKYpkI
[13] 생명을 모방하는 로봇과 알고리즘의 등장은 역으로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예컨대 의사소통과 협력을 비롯한 행동의 진화는 화석만으로는 연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진화를 연구하는 최신 생물학 연구 중에는 진화 로봇 공학을 활용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14] 로봇 전쟁터 된 위키피디아 (한국경제 2017.02.26)
감각을 확장·전송하며, 생명들 기계를 맞이하다
[12] 생명과 기계의 경계 ②: 흐려지는 경계
생명에서 기계로 ⑴: 생명의 제조
목적에 맞춰 기계를 만들어내듯이, 목적에 맞춰 생명을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특히 유전자 가위 기술(크리스퍼; CRISPR) 덕분에 특정한 유전자를 수정하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더 수월
해졌다.[1]
유전자 가위 기술로 유전자를 편집해서 만든 식품들은 이미 미국과 스웨덴의 식탁에 올라오기 시작했다.[2]
얼마 전에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사용하여 인간-돼지의 잡종 배아가 만들어졌으며, 이 배아는 인체에 필요한
장기를 생산하는 데 사용될 수 있으리라고 전망된다고 한다.[3]
중국에서는 2015년부터 인간 배아의 유전자 조작을 시도했으며, 윤리적인 문제로 망설이던 미국도 얼마 전
생식세포 연구의 빗장을 풀었다.[4]
또, 배아를 거치지 않고 실험실에서 장기를 만드는 기술(조직 공학; tissue engineering)이 발전하고 있다.
2015년에는 쥐의 다리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졌으며, 인간의 후두와 심장 등 다른 장기들의 생산도 연구되고
있다.[5]
필요에 맞는 생명 또는 생명 기관을 생산하는 기술의 발전은, 생명을 마치 기계처럼 느껴지게 한다.
생명에서 기계로 ⑵: 인공 의수(Prosthetics)
이제 생명이 어떻게 기계로 확장되는지 살펴보자.
뇌는 어떤 정보가 어떻게 뇌로 전해졌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어떤 정보든 들어오기만 하면 패턴과 쓸모를 찾아낸다.
인공 신경망이 수많은 개와 고양이 사진을 입력 받다 보면 개와 고양이를 구별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혀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기이한 일도 가능하다 .
브레인포트(BrainPort)라는 장치는 카메라로 촬영한 시각 정보를 약한 전기 자극으로 바꾸고, 우표 크기의
칩을 통해 혀로 전해준다.
그러면 뇌는 혀로 전해진 전기 자극을 시각 정보로 해석하는 방법을 점차 터득해 간다.
그래서 이 장치는 시각 장애인들이 세상을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심지어 이 장치를 사용해서 암벽 등반을 하는 시각 장애인도 있었다고 한다.
좀 더 창의력을 발휘하면, 화성의 날씨나 주가 변동을 뇌에 전달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오랜 진화를 거쳐 새로운 감각 기관을 추가하지 않고도, 완전히 새로운 감각을 추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트위터에 오가는 감정 단어나, 드론의 비행 상태를 조끼의 진동을 통해 느낄 수 있도록 한 경우를 보여준다.
들어온 정보의 출처를 가리지 않고 쓸모를 찾아내는 뇌의 특징은 수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손발의 감각을
돌려주는 데 쓰일 수 있다.[6]
아래 동영상에서는 촉감에 관련된 뇌 부위에 로봇 손가락에 설치된 센서의 신호를 전달하는 전자칩을
이식한 경우를 보여준다. 훈련을 통해 뇌가 이 전기 신호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면, 로봇 손가락을 건드려도
피험자는 자기 손가락이 건드려진 듯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뇌는 가소성(구조와 기능이 유연하게 변하는 성질; plasticity)이 뛰어나므로, 신경세포와 무선으로 연결된
로봇 팔을 내 팔처럼 움직이는 법도 배울 수 있다.[7]
아래 동영상은 절단된 팔을 움직이는 데 쓰이던 신경세포의 전기 신호를 읽어들이고, 이 신호를 로봇 팔에
보내는 경우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서툰 환자들도 로봇 팔에 연결된 신경세포의 활동을 조절하여 로봇 팔을 다루는 방법을 점차
익히게 된다.
뇌 속 신경세포의 활동을 읽어들이고, 이 신호를 무선으로 외부 장치에 보내서 생각만으로 청소기나 화성
탐사선을 조종하는 날이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신경세포가 어떻게 정보를 표상하는지(신경 부호화; neural encoding)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고, 신경세포의
활동을 읽고 해석하는 (신경 해독; neural decoding) 기술이 발전하면, 뇌와 외부 장치의 상호작용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특히 자기공명영상(MRI) 기기처럼 크지 않고, 전자 칩처럼 수술로 이식할 필요도 없는, 헤드폰처럼 쓰고
벗을 있는 신경 해독 장치는 게임과 치료 등 여러 분야에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생명에서 기계로 ⑶: 뇌와 인공지능의 연결
얼마 전, 테슬라의 최고 경영자인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인공지능과 인간의 뇌를 연결하는 사업에
대해 발표했다.[8]
에스에프(SF) 영화 <공각기동대> 같은 이야기지만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신경의 부호화와 해석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축적되고 있고, 인공지능이 이미 신경망의 활동을 모방하고
있으며, 신경망을 모방한 칩이 나오는 등,[9][10] 뇌와 인공지능의 호환이 수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11]
머스크의 주장처럼 뇌와 인공지능의 연결은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뒤쳐지지 않게 도와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극심한 빈부 격차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
악의를 가진 타인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국가에 뇌가 해킹 당할 위험도 생겨난다.
사회경제적 지위, 성별, 문화, 전공만 달라도 힘들어지는 사람 간의 소통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 종이기에 공유되던 감각 경험이 어떤 인공 장치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뇌에 전하는 정보의 양이 과도하면, ‘행위의 주체가 누구인지’, ‘나는 누구인지’ 가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다.
이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경계의 작동 양식을 바꾸는 약물, 정신 질환, 주변 환경은 인간의 행동 패턴에 영향을 끼친다.
이 때문에 행위의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법적 논란과, 자유의지와 자아에 대한 철학적 논란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
인공지능과 로봇 영역의 최고 전문가들은 로봇과 인공지능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이 기술의
혜택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받을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들의 열정에 끌려가기만 할 게 아니라 미리부터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기계와 생명을 혼동하는 마음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것들도 거의 자동적으로 의인화한다.
오래 타던 자가용을 처분할 때면 웬지 모를 헛헛함을 느낀다.
로봇 청소기가 문턱에 걸려서 낑낑거리는 걸 보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그만 웃어버린다.
동물의 표정에 공감하기도 하고, 화분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자동적인 의인화는 스크린 너머의 깡통 로봇조차 비껴가지 않는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본 사람이라면 과격한 농담을 하던 로봇 타스가 우주 저편으로 사라질 때, 등장인물이
사라지는 듯한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끄러운 로봇이 영화 말미에 다시 등장했을 때, 죽은 줄로만 알았던 등장인물과 재회한 듯한
반가움을 느꼈을 것이다.
하물며 인간과 교감하도록 만들어진 로봇은 말해 무엇하랴.
애완동물 로봇은 사용자의 어떤 행동에 대해서는 기쁜 반응을 흉내내고, 다른 어떤 행동에 대해서는 괴로운
반응을 흉내내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안다.
그런데도 대부분 사람들은 로봇의 괴로운 반응을 이끌어내는 행동을 하다보면 미안해져 버린다.
부실한 동물 로봇도 의인화 해버리는 사람들은 이제 인간인지 아닌지 구별하기도 힘든 로봇과 인공지능과
어울려 살아가게 되었다.
작년에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던 학생들은 질 왓슨이라는 조교가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몇 달 동안이나 알아차리지 못했다.[12]
작년에 중국에서 개발된 인간형 로봇 지아-지아(Jia-Jia)의 외모와 눈동자의 움직임은 제법 사람에 가깝다.
로봇이 이 정도로 사람과 비슷해지면, 로봇을 대하는 태도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로봇이 공감에 끼치는 영향
아닌 게 아니라 로봇을 대하는 태도는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바꾼다.
자폐증 환자들은 애플의 가상 비서 쉬리와의 대화를 통해 일반인들과의 대화에도 능숙해진다고 한다.
아이들은 아마존의 가상 비서 알렉사와 놀다보면 버릇이 나빠진다고 한다.
알렉사에게는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고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이 문제는, 공감이라는 중요한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 사람들은 움직이는 로봇을 망치로 부숴달라는 요청을 불편해한다.
하지만 공감 능력이 낮은 사람들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부순다고 한다.
로봇에 대한 폭력이 인간의 공감 능력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갈수록 인간을 닮아가는 로봇은 인간의 무의식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의인화 됨에도 불구하고, 사유재산이다.
소유자의 마음대로 때려도 되고, 핸드폰 기종을 바꾸듯 폐기해도 되는 것이다.
버려진 마네킹만 봐도 마음이 불편한데, 사람을 닮은 로봇을 때리거나 폐기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반복하다 보면 인간에 대한 공감도 무뎌지지 않을까?
사이코패스의 범죄, 나치의 인종청소, 르완다 사태처럼 경악스러운 폭력은 공감 부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상대방을 나와 같은 인간으로 여기지 못하면 (비인간화)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13][14]
로봇을 향한 태도가 인간에 대한 공감에 영향을 끼친다면, 로봇에게 의식이 없더라도 로봇의 권리를 고려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유럽연합에서는 로봇을 전기 인간으로 보고, 로봇의 권리와 세금, 윤리를 고려한 법규를 마련하자는
이야기가 작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15]
인간의 가치,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
로봇의 권리를 고려해야 하는 것과는 반대로 인간의 가치는 절하될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노인 요양원이나 보육원의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로봇을 고용하면 어떨까?
서비스 직원들을 내보내고 로봇을 고용하는 건 어떨까?
비용-편익 면에서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선택의 이면에는 인간을 정성이 아닌 효율로 관리해도 괜찮다는
생각, 인간은 대체 가능한 존재라는 생각,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 로봇보다 가치가 덜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런 생각이 사회 곳곳을 바꾸며 번져가면, 로봇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인간이 인간이 아니기를 강요
받는 세상이 진짜로 올 수도 있다.
마침내 갈라테이아를 만들었는데 그 갈라테이아가 피그말리온 따위는 상대하지 않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진보의 추구는 현재에 대한 불만에서 출발한다.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도 자기 주변의 여자들이 싫었기 때문에 갈라테이아를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보다 ‘진보한’ 존재의 기준에서 보면, 현재에 머물러 있는 존재가 부족하지 않겠나.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 부족과 인공지능에 대한 통제 불능 상황을
우려한다.[15]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이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business as usual) 그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상이변, 인구 증가, 물과 식량의 부족, 새로운 전염병의 등장 등 지구 단위의 문제들이 피부로 느껴
질 만큼 심해지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16][17] 더 넓은 맥락에서 다르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근대 사회는 인간과 여타 생물을 구분하여 인간을 우위에 놓고,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여 생물을 우위에
두었다.
그리고 우위에 선 자가 아래쪽에 있는 자를 지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기후 변화를 초래하고, 제3세계에 가난과 분쟁의 씨앗을 심은 제국주의와 자유
주의에 이런 사고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우열을 가르고 적자생존에 따르는 사고는 숨가쁘게 질주하는 기술 경쟁의 엔진이기도 하다.[4]
그런데 이렇게 계속 질주하다보니, 무생물이었던 로봇이 인간을 능가하면서 대다수 인간들이 졸지에 먹이
사슬의 최상위에서 무생물보다 못한 위치로 내려가게 되었다.
일론 머스크처럼 기술로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대응 방법의 하나다.
하지만 여기쯤에서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우열을 매기고 경쟁하기보다는 공존하는 방법을. 가장 낮은 곳에 있던 무생물을 존중함으로써 모든 인간을
존중하고, 생태계도 존중하고, 존재하는 것들을 소중히 대하는 방법을.
그래서 다양한 생명과 무생물이 공존하는 지구에서 지속가능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출처와 각주]
[1] Doudna JA & Charpentier E (2014) Genome editing. The new frontier of genome engineering with
CRISPR-Cas9. Science 346:1258096.
[2] 유전자 가위 편집 작물 안전성, GMO와 다를까. (한겨레 2017.01.25)
[3] Sara Reardon. Hybrid zoo: Introducing pig–human embryos and a rat–mouse (Nature 2017.01.26)
[4] '윤리 논란'은 옛말...美도 인간 생식세포 연구 빗장 풀었다 (서울경제 2017.02.16)
[5] World’s first biolimb: Rat forelimb grown in the lab. (New Scientist 2015.06.03)
[6] Anikeeva P & Koppes RA (2015) Restoring the sense of touch. Science 350:274-276.
[7] Reardon S (2015) The military-bioscience complex. Nature 522:142-144.
[8] Elon Musk wants to merge man and machine with Neuralink (Wired 2017.03.28)
[9] https://www.youtube.com/watch?v=nyLYQYHGbvI
신경망을 모방한 칩(Neuromorphic chip)을 개발하는 보아헨(Boahen) 박사는 아프리카 출신이다.
정보를 융통성 없이 일렬로 처리하는 중앙처리장치를 보며, 컴퓨터에는 아프리카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는
부분이 아주 인상깊었다.
흑인들이 음악에 재즈를 도입하는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컴퓨터는 이성을 중시하고 직선적으로 사고하던 근대 유럽인의 인식을 반영하여 만들어졌다.
당연히 유럽과는 다른 세계관과 문화적 토양을 가진 아프리카인의 시각에는 컴퓨터가 어색하게 보였을 것
이다. 그리고 컴퓨터에 '아프리카를 추가하여' 더 우수한 칩을 개발했다.
이런 이유에서 선진국인 유럽과 미국의 세계관만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서아시아와 인도의 과학도 발전하고 있다.
북미와 서유럽과는 다른 세계관이 과학에 들어올 때, 과학이 얼마나 풍성하고 다채로워질지 기대된다.
우리 문화도 그들 중의 하나이기를 바란다.
[10] Xu W et al. (2016) Organic core-sheath nanowire artificial synapses with femtojoule energy
consumption. Sci Adv. 2:e1501326.
[11] Pennisi E (2016) Robotic stingray powered by light-activated muscle cells. (Science 2016.07.07)
http://www.sciencemag.org/news/2016/07/robotic-stingray-powered-light-activated-muscle-cells
[12] 조지아텍 조교 '질 왓슨' 신분 들통나 (로봇신문 2016.05.10)
[13] 필립 짐바르도. 루시퍼 이펙트: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웅진 지식하우스 (2007)
[14] David Eagleman. The brain: the story of you (2015)
[15] Robots could become 'electronic persons' with rights, obligations under draft EU plan
(CNBC 2016.06.21) ; 아마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과 기계와의 전쟁,
http://www.ttimes.co.kr/view.html?no=2017020914317733793
[16] 선제적인 기후변화 대응이 곧 국가안보다 (중앙선데이 2017.02.12)
[17] 월드워치연구소. 지속가능성의 숨은 위협들: 2015 지구환경보고서. 도요새 (2015)
(송민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