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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강 EBS 최진석 교수의 현대 철학자 노자
내가 요즘 노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그런데 주의에 공자를 좋아하거나 유가(儒家)의 사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노자는 좋게 말하고 공자는 나쁘게만 이야기 하냐고” 우스개 소리를 자주 듣고 있다. 그러나 나는 현대가 흘러가는 방향을 볼때 공자의 사상보다 노자의 사상이 좀 더 효과적이고 긍정적인 역활을 하지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어떤 철학도 이 세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철학은 없다. 이 세계의 주도권은 이론에 있지 않고 세계 자체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계가 어떤 형태로 움직이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가를 감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어떤 이론과 믿음체계을 같고 있는가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 보고, 내가 어떤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가 가 더 중요하다.
보여지는 대로 볼 수 있는 단계 무위(無爲)
공자와 노자의 사상을 비교 하는 이유는 세계의 움직이는 모습이 노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좀 더 효과가 있을거 같아서 하는것 이다. 공자와 노자는 같은 시대를 마주했다. 그래서 사유(思惟)대상과 역사의 흐름, 시대의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했다. 다만 해법을 달리 했을 뿐이다.
공자는 세계를 관리하는 방식을 인간의 근본적인 정서인 내면성과 인간성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공통 이념으로 이 세계를 운영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만들어 놓은 보편적 이념이라는 것이 인간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선(善)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가 인간성에 바탕을 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것이 선(善)하다는 것도 좋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선(善)이든 악(惡)이든 관계없이 그것이 보편적 이념으로 요구되는 한 그것은 기준이 될 수 밖에 없고, 그 기준은 권력으로 행사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기준이 권력으로 행사되서 사회가 권력에 의해서 구분되고, 배제되고, 억압되는 불편한 운영이 있을수 밖에 없다. 라고 한다.
노자가 볼 때 유학(儒學)의 방식은 필연적으로 가치론에 빠질수 밖에 없었다. 이런 가치의 실연자로 남으면 세계와 어깃장이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세계와 관계할 때 자기 내면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가치론을 할 수 있는한 최대한 약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자의 전략은 인간의 내면성을 지배하고 있는 어떤 가치론의 체계를 최대한 무력화 시키려고 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이것을 노자는 무위(無爲)라고 했다. 무위(無爲)와 반대되는 말은 유위(有爲)다. 유위(有爲)어떤 근거를 가지고 세계와 관계하는 것이다.
노자가 생각할 때 이 세계를 보고싶은 대로 보거나 봐야 하는 대로 보는 사람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노자는 이것을 무위(無爲)의 힘으로 정의했다. 그래서 이 무위(無爲)의 능력을 지키면 당신은 되지 않는 일이 없고, 당신이 제후(帝侯)라면 천하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은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는 과정이다.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업(業)’이 쌓이는 과정이다. 인간이 지식과 경험으로 축적되어 만들어진 기억들을 지울수 있을까?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지식과 경험이 기억에 지배되지 않을 뿐이다.
우리가 지식 같은 태도을 극단적으로 두 개로 나눌수 있다. 하나는 지식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과 하나는 지식을 다루고 이용하는 것이다. 노자 식으로 하면은 지식을 이용하는 것이다. 지식을 지배 한다는 것은 이론을 밞고 서는 것이다. 지식보다 자기의 자발성을 들어내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세계를 봐야 하는대로 보거나 보고 싶은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보여지는 대로 볼 수 있는 범위가 다만 넓어진 것 뿐이다. 보여지는 대로 볼 수 있는 단계를 노자는 무위(無爲)라고 했다.
신뢰와 믿음의 정치
공자와 노자는 정치 철학자의 냄새가 강하다. 중국의 철학은 장자(莊子)를 제외 하고는 대개 정치 철학자의 냄새가 배여있다. 중국의 사유(思惟)가 항상 현실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정치철학의 냄새가 있다. 무위(無爲)의 실천이란? 것은 도덕경 안에서 통치 방식과 관련이 있고, 무위(無爲)의 방식을 통치에 적용될때 그것이 어떻게 운영되고, 보였는지 볼 수 있다. 무위(無爲) 전개되는 단계에 따라서 도덕경 17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도덕경 17장]
太上 下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 信不足焉 有不信焉 悠兮其貴言
태상 하지유지 기차 친이예지 기차외지 기차모지 신부족언 유불신언 유혜기귀언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공성사수 백성개위아자연
太上 下知有之 태상 하지유지
太클태, 上윗상 下아래하, 知알지, 有있을유, 之갈지
통치자 중에서 최고 수준의 통치자, 가장 훌룡한 통치자의 레벨은 ‘하지유지(下知有之)’ 아래에서 볼 때 있다는 것 만 아는 단계이다. 제일 높은단계에는 있는 줄만 알지 통치자가 백성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느낌이 없는 상태.
其次 親而譽之 기차 친이예지
其그기, 次차례차 親친할친, 而어조사어, 譽기릴예, 之갈지
그다음 단계에는 통치자를 굉장히 좋게 생각하고 떠받드는 단계.
其次畏之 기차외지
其그기, 次차례차, 畏겁낼외, 之갈지
그다음 단계로는 통치자를 무서워 한다.
其次侮之 기차모지
其그기, 次차례차, 侮없신여길모, 之갈지
그 다음으로 아래에 백성들이 통치자를 놀려 먹는다. 이제 아래에서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단계를 넘어 조롱하는 단계가 되는 것이다.
信不足焉 有不信焉 신부족언 유불신언
信믿을신, 不아닐부, 足다리족, 焉어찌언 有있을유, 不아니부, 信믿을신, 焉어찌언
통치자가 백성들을 믿지 않으면, 배성들에게 신뢰가 부족하면, 유불신언(有不信焉)배성들은 통치자를 믿지 않는다.
국가 주도권을 민간의 자률성으로
통치자가 백성들을 어떻게 지배하고, 어떤 방식의 이념으로 다스리겠다는 기준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기준에서 백성을 바라보게 되어 백성들을 신뢰하지 못한다. 그래서 불신이 있을수 밖에 없다. 백성들을 믿지 않으면, 믿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이 만들어 지고, 백성들을 믿지 않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정책은 백성의 꿈과 관계없는 정책이 나오게 된다. 그러면 백성들은 통치자를 떠나게 된다. 그래서 위에서 백성들을 믿지 않으면 백성들이 통치자를 믿지 않게 된다.
悠兮 其貴言 유혜 기귀언
悠멀유, 兮어조혜 其그기, 貴귀할귀, 言말씀언
말을 아끼면 말이 귀하게 여긴다. 도가(道家) 사상가들에게 말(言)이란? 가치를 담애내는 개념들이다. 귀언(貴言)은 이념체계를 약화 시킨다.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공성사수 백성개위아자연
功공로공, 成이룰성, 事일사, 遂이룰수 百일백백, 成이룰성, 皆모두개, 謂이를위, 我나아, 自스스로자, 然그럴연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마무리가 되어도 백성들은 모두 “나는 원래부터 이랬어” 라고 하는구나.
공성사수, 백성개위아자연(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완수가 되었어도 백성들은 ‘통치자가 이렇게 잘살게 해주었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잘해서 잘 됐어’ 라고 생각한다. 라는 말이다. 속좁은 통치자는 아마 ‘내가 잘살게 해주었는데 저것들이 은공도 모르고 ’ 라고 하겠지만 이런 속좁은 통치자는 그런 백성들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도가(道家)의 핵심은 주도권을 정부가 같지 말고 민간의 자율성에 맡겨라. 집단이 주도권을 잡지 말고 개별자가 주도권을 잡게 해라, 그런 개발자가 주도권을 같고 만든 집단이 강하다는 것이다. 민간의 자율적인 힘으로 만들어진 국가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 강한 힘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위(無爲)가 어떻게 작동되는가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된다.
세계를 바라보는 통찰력
무위(無爲)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다양한 반응들이 있고, 이런 반응을 크게 세가지로 나눌수 있다. 하나는 ‘헛소리 하고 있네’ 라는 냉소적인 반응이고, 두번째 반응은 ‘맞는거 같기도 하고, 맞지않 은거 같기도 고’ 조금 긍정적인 반응이다. 마지막 세번째 반응은 믿고 묵묵히 따르는 완전 긍정적인 반응이다.
[도덕경 41장]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不笑 不足以爲道,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상사문도 근이행지, 중사문도 약존약망, 하사문도 대소지, 불소 부족이위도, 고건언유지 명도약매
進道若退 夷道若纇, 上德若谷 大白若辱, 廣德若不足 建德若偸, 質眞若渝, 大方無隅, 大器免成
진도약퇴 이도약뢰, 상덕약곡 대백약욕, 광덕약부족 건덕약투, 질진약투, 대방무우, 대기면성
大音希聲, 大象無形, 道隱無名, 夫唯道 善始且善成
대음희성, 대상무형, 도은무명 부유도 선시차선성
上士聞道 勤而行之 상사문도 근이행지
上윗상, 士선비사, 聞들을문, 道길도 勤부지런할근, 而어조사이, 行나닐행, 之갈지
가장 높은 수준의 지식인(上士)은 노자의 무의의 도(道)를 들으면 근이행지(勤而行之) 근면하게 그것을 실천한다.
中士聞道 若存若亡 중사문도 약존약망
上윗상, 士선비사, 聞들을문, 道길도 若같을약, 存있을존, 若같을약, 亡망할망
중간 수준의 학자가 도(道)를 들으면 ‘약존약망(若存若亡)’ 반신반의 한다.
下士聞道 大笑之 하사문도 대소지
上윗상, 士선비사, 聞들을문, 道길도 大큰대, 笑웃을소, 之갈지
가장 낮은 수준의 선비는 도(道)를 들으면 크게 비웃어 버린다.
不笑 不足以爲道 불소 부족이위도
不아니불, 笑웃을소 不아니부, 足다리족, 爲할위, 道길도
하사(下士)가 도(道)를 듣고 비웃지 않으면 그것은 도(道)가 아니다.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고건언유지 명도약매
故고향고, 建세울건, 言말씀언, 有있을유, 之갈지 明밝을명, 道길도,若같을약, 昧어둘매
그래서 건언유지(建言有之)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명도약매(明道若昧) 밝은 길은 어둑한 듯하다.
進道若退 夷道若纇 진도약퇴 이도약뢰
進나갈진, 道길도, 若같을약, 退퇴근퇴 夷오랑캐이道길도, 若같을약, 纇한쪽에치우치다 뢰
전전하는 길은 몰러서는것 같으며, 평평한 길은 울퉁불퉁한 듯하다.
上德若谷 大白若辱 상덕약곡 대백약욕
上윗상, 德큰덕, 若같을약, 谷계곡곡 大큰대, 白흰백, 若같을약, 辱욕되게할 욕
아주높은 수준의 덕(德)은 계곡과 같고, 진짜 결백한 상태는 약간 치욕스럽게 보이는 듯하다.
廣德若不足 建德若偸 광덕약부족 건덕약투
廣넓을광, 德큰덕, 若같을약, 不아니부, 足다리족 建세울건, 德큰덕, 若같을약, 偸훔칠투
정말 넓은 덕은 부족한 듯 하며, 건실한 덕은 게으른 듯하다.
質眞若渝 질진약투
質바탕질. 眞참진, 若같을약, 渝달라질투
정말 참된 것은 변질된 듯하다.
여기까지 노자 사상이 실천속에서 잘 나타난 모습이다. 자기입으로 착하다고 하고, 참함을 계속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 착함이 자기의 기준이 되고, 권력이 되서 그 착함으로 많은 폭력으로 행사 되거나 많은 판단에서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명도(明道), 밝은 길은 항상 어두운것 같을때 진정한 밝은 길이다. 나아가는 길이 나아가기만 한다면 계속 나갈수가 없다. 진정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약간 물러서는 것이다. 진정으로 건실한 사람은 게으른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건덕약투(建德若偸) 진실한 덕은 약간 게으른듯 하다.’ 노자는 여기서 반대되는 것을 공존시키고 있다. 어떤 한가지 아름다운 덕목도 그 배후에 어두운 면과 함께 공존해 가는것을 보여주고 있다. 왜! 노자는 대립면의 공존을 계속 강조하는가? 대립면의 공존을 강조해야 어떤 하나의 보편적 이념이 차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립면의 공존 속에서는 특정한 하나의 가치가 우월적 지위를 가질수 없다. 그래서 노자는 대립면의 공존을 무위(無爲)을 실천하는 존재론적 기반으로 항상 강조하고 있다. 그것을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고 한다.
大方無隅 大器免成 대방무우 대기면성
大큰대,方모방,無없을무,隅기슭우 大큰대, 器그릇기, 免면할면, 成이룰성
정말 큰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고, 정말 큰 그릇은 특정한 모습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기만성(大器晩成)’ 큰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 라고 알고 있는데, 이 문장의 출처는 도덕경이다. 그런데 이 ‘대기만성(大器晩成)’은 도덕경 전체 문장과 맥락이 맞지 않는다. 노자의 도덕경중 제일 오래된 문헌은 전국 중기에서 말기에 쓰여진 ‘죽간본(竹簡本)’이고, 그 다음은 전국 중기에서 한나라초기에 쓰여진 ’백서본(帛書本)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보는 도덕경은 중국 삼국시대에 쓰여진 왕필본(王弼本)이 있다.
죽간본(竹簡本)에는 대기만성(大器晩成)으로 쓰여있고, 백서본(帛書本)에는 대기면성(大器免成)으로 쓰여져 있다. 이것을 왕필이 만(晩)으로 잘못 쓴 것 같다. 왕필의 대기만성(大器晩成)은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 는 말로 조금 늦게 출세하는 사람들을 위로 하기 위해 쓰여진 말 같다. 대기(大器)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빨이 출세하는 사람도 있고, 늦게 출세하는 사람도 있다.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 진다.’ 가 아니라 큰 그릇은 특정한 모습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는 것이다.
大音希聲, 大象無形 대음희성, 대상무형
大큰대, 音소리음, 希바랄희, 聲소리성 大큰대,象코키리상, 無없을무, 形형상형
정말 위대한 소리는 특정한 음가(音價)로 제한되지 않고, 정말 큰 형상은 특정한 형태가 없다. 여기서 우(隅), 성(成), 성(聲), 형(形)은 모두 특정한 모양 같은 것을 표현할 때 쓰이는 글자다.
‘대방무우(大方無隅)’ 정말 큰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다.
‘대음희성(大音希聲)’ 정말 큰 소리는 어떤 특정한 소리로 정해지지 않는다.
‘대상무형(大象無形)’ 정말 큰 형상은 특정한 형태로 고정 되지 않는다.
일관되게 말해야 된다. 진짜 큰 그릇은 특정한 모습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 아니라 대기면성(大器免成)이 옳은 것이다.
道隱無名 도은무명
道길도, 隱숨길은, 無없을무, 名이름명
도(道)는 이름속에 이름이 없는 것에 숨어있다. 이름이 없는 곳에 숨어 있다는것은 개념화 되지 않는다. 정의 내려지지 않는다. 개념화 된다는 것은 특정한 의미로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道)라는 것은 이 세계가 흘러가는 모습이란 것은 특정한 개념으로 정의 되지 않는다.
夫唯道 善始且善成 부유도 선시차선성
夫사내부, 唯오직유, 道길도, 善착할선,始처음시, 且또차, 善착할선, 成이룰성
오직 도(道)를 근거로 해야만 잘 시작하고 잘 이룰수 있다. 도를 근거로 해야만 된다. 당신이 크게 이루고 싶으면 도를 근거로 해라. 도를 근거로 한다는 것은 이 세계가 대립면의 공존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철저히 인식하라.
대립면의 공존으로 되어 있다고 철저히 인식한 사람은 특정한 이념과 개념에 이론에 지식에 노예가 되지 않고 자기의 자발적 통찰력으로 세계와 관계할 수 있다.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볼수 있는 사람은 세계를 봐야 하는대로 보는 사람을 이길 수 있다. 이것이 무위(無爲)를 실천해서 얻는 효과라고 할 수 있다.
<EBS 최진석 교수의 현대 철학자 노자 11강>
12강 EBS 최진석 교수의 현대 철학자 노자
무의(無爲)란? 보편적 이념이나 가치를 벗어나서 그것을 밞고 일어서는 자아의 활동성을 말한다. 노자나 장자의 사상은 집단적인 규제나 보편적인 이념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있기 때문에 사회에 대해 무관심 하거나, 개인주의적이거나 좀 더 심한 표현으로 세상을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일반적인 경향이었던 적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성이 부족해 관심이 없고, 자기에게만 관심이있는 사람들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오해를 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적 책임자가 될 수 있었는가? 노자의 사상이 어떻게 사회에 적용 되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되어 있을수 있다.
양주의 위아주의(爲我主義)
양주(楊朱 BC395?~BC335) 라는 철학자는 ‘위아주의(爲我主義)’ 철학자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위아주의(爲我主義)란? 고대 중국식 표현으로 ‘이기주의,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이란 표현과 비슷하다. 이 말은 맹자가 양주를 비판 하면서 ‘위아(爲我)란 표현으로 처음 사용했다. 맹자는 양주가 “위아(爲我)를 채택했다.”라고 하면서 맹자 진심장구상(盡心章句上)편에서 양주을 비판한다.
[맹자 진심장구상편]
孟子曰 楊子取爲我 拔一毛而利天下 不爲也
맹자왈 양자취위아 발일모이리천하 불위야
“양주는 자기몸에 있는 털 한 올을 뽑아서 세상이 평화로워 지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겠다.” 아주 극단적인 이기주의 자라고 말을 해도 맞는 말이다. 그러면서 양주을 비판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楊氏爲我 是無君也
양씨위아 시무군야
“양주가 말하는 위아설(爲我說)에는 ‘무군야(無君也), 군주가 없기 때문이다.” 라고 비판 한다. 군주가 없기 때문이란 말은 군주가 주도권을 가지는 체계가 없다는 표현이다. 양주는 ‘위아주의(爲我主義)’를 주장할 때는 항상 털 한올과 천하를 대비시켜 이야기 했다. 열자(列子)라는 책 양주편에는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열자 양주]
人人有損一毫 人人不利天下 天下治矣
인인유손일호 인인부리천하 천하치의
“사람들마다 모두 자기 몸에 있는 털 한올을 뽑으려 하지 않고, 사람마다 모두 천하를 이롭게 하려고 하지 않으면 천하가 다스려 진다.” 사람들이 모두 위하기 때문에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양주의 설명에 금자라는 사람이 질문을 한다.
금자 : 당신이 털 한 올을 뽑으면 천하가 이롭게 된고 했는데 진짜 그렇게 됩니까?
양자 : …(어이없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린다.) 이때 양주의 제자 맹손야가 나서 양자에게 묻는다.
맹손 : 스승님 “털 한올이 진짜 털 한 올이 아니지요?”
양자 : 맞다. 털 한 올로 어떻게 천하를 이롭게 하겠느냐.
맹손 : 털 한 올이란 것은 사람의 몸을 말하는 것입니까?
양자 : 그래, 그렇다.
여기에서 털 한 올이 상징하는 것은 자신의 몸, 신체를 이야기 하고 있다. 양주가 털 한 올을 신체와 천하로 대비 시킨것으로 짐작이된다. 양주는 신체는 만질수 있고, 천하는 개념을 갖고 있어 신체와 천하를 대비 시켰다. 양주가 생각할 때 천하라는 것은 구체적인 실제 존재물이 아니라 하나의 이념의 구조물이고, 이념을 실현 시키는 하나의 조직이었다. 그런데 신체는 이념의 조직이 아니라는 것이다. 양주는 개념에는 실제가 없고, 개념에는 실제가 없다. 개념은 조작된 것이고, 만들어진 것이다. 라고 주장을 했다.
윤리적 책임자가 되자
통치(統治)는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실제 현실을 세계로 반영해야 된다. 그런데 정치라는 것이 천하를 위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구체적인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이념을 반영시켜 실현하려고 한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많이 보이고 있다. 실제와 이념의 괴리가 정치 혼란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념이 실제를 지배하려고 하는 것, 실제가 이념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이 실제를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 정치 현실에서 가장 큰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도덕경 12장]
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귀이신위천하 약가기천하 애이신위천하 약가탁천하
貴귀할귀以써이身몸신爲할위天하늘천下아래하, 若같을약可옳을가奇기이기天하늘천下아래하, 愛사랑애 以써이 身몸신 爲할위 天하늘천 下아래하, 若같을약可옳을가託부탁탁天하늘천下아래하
“자신의 몸을 천하만큼이나 귀하게 여긴다면 천하를 줄 수 있고, 자신의 몸을 천하만큼 아낀다면 천하를 맡길 수가 있다.” 노자는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천하를 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은 어떠한가? 이 한몸 불살라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치겠다는 정치인, 보기 어렵다. 노자는 천하를 위한다는 사람은 구체적 실제로부터 유기(有機)된 사람이라고 보았다. 천하는 개념의 구조물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에게는 천하를 맡을수 없다고 말한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함석헌선생의 사상을 가지고 이야기해 보자. 우리나라는 서양에서 들어온 철학에 대해 잘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함선헌(1901~1989)선생과 같은 사상가를 철학자의 범주에 포함시키기 주저한다. 그러나 함석헌 선생의 사상은 서양 철학의 논리와 구조가 조금 다를수 도 있지만 한국적 토양에서 우리가 이런 독특한 사상가를 같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함석헌(咸錫憲 1901~1989)
기독교 문필가, 민중운동가 1985년 두 차례 걸쳐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
우리나라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학생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학생운동의 영웅을 만들어 냈고, 그 영웅들이 구체적인 현실정치에 수혈되었다. 학생운동을 통해서 정권을 바꾸고, 정권의 안정에 영향까지 주었다. 이렇게 정권을 흔들 정도의 큰 영향을 줄 때 학생들은 정의와 도덕으로 무장했다.
정의와 도덕으로 무장한 학생들이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한국 사회에 도덕과 정의의 양이 증가했을까? 그런 학생들을 통해서 한국 사회가 많이 진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혁명은 완수되지 못했다. 함석헌 선생은 이런 문제에 대해 혁명가들이 혁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자기는 혁명되지 않고, 혁명이라는 이념을 강하게 실천한 것 뿐이다. 여기에 이런 물음을 던질수 있다. 당신은 혁명을 했는가? 아니면 혁명이라는 학습된 이념을 실천했는가? 그래서 함석헌 선생은 자기가 혁명되지 않는 혁명을 성공할 수 없다고 봤다.
우리가 사회 민주화를 위해서는 목숨을 내 놓을수 있지만 집안에서 민주화를 이룬다는 것은 어려운일이다. 또 가난한 나라에 가서 굳은 일 마다하지 않고 한달, 두달 봉사할 수 는 있지만 자기 부모님이 대소변 하루 이틀 받아 내기는 어려운일이다. 영웅은 일상에서 좌절하고 실폐한다. 그러나 거대한 것에서는 성공을 이룬다. 거대한 것은 이념의 구조물이기 때문에 성공한다. 인간의 인격과 동력이 발동하는 곳은 구체적인 일상에서 나타난다.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해서는 책도 한 열권 쓸수는 있지만 가정안에서 자유와 평화는 힘들다. 우리는 모든것을 착각하고 있다. 자유와 평화같은 큰 이념들은 바로 자기의 삶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양주나 노자의 ‘위아주의(爲我主義)’ 라는 것은 진정한 덕성, 힘, 자유, 활동, 몸에 있다는 것이다. 보편셰계에 있는 것이 허구라는 것을 인지 해라는 것이다.
자기를 관리하고 보는 사람이 진짜 힘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를 천하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천하를 가질 자격이있고, 자기를 천하 만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천하를 맡을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를 관리하는데 실폐한 사람에게는 절대 천하를 맡길수 없다. 그래서 윤리적 행위자가 중요한 것이다. 보편적인 이념, 가치체계로 삶을 지배하려고 하지 마라. 삶은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자기의 몸 안에 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은 천하와 대립 되거나, 천하를 초월하려고 속세를 떠나는 자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천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이 세계를 진정한 행복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력에 집중해서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자기들로 구성된 사회가 행복 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한국 사회를 위해 무슨 일을 한다거나,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한다고 위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의 삶을 영위할 때 한국 사회가 위해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한국 사회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할 깨는 자기의 욕망이 거세되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자기의 욕망이 거세(去勢) 되면 자기의 독립적인 충동이 발생하지 않고,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창의적일 수도 없다. 자신에게 집중해서 윤리에 책임자가 될 때 비로서 윤리적인 사회를 말들 수 있다.
자기 윤리에 책임자가 되었을때 뇌물을 거부할 수 있다. 자기가 자기가 아니고 어느 당의 책임자나, 파벌의 책임자라면 자기가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당이나, 파벌의 일원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뇌물을 거부할 수 없다.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것이 취약한 사회에서는 자기가 윤리적 책임자가 아니기 때문에 부폐가 만연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자기가 뇌물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 많은 사회 규정들이 윤리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의 주인일 때 비로서 자기의 존엄성에 대하여 진정으로 가치있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윤리에 능동적 주체로 성장하게 된다.
도가의 이상적 사회
노자는 집단이 만든 이념으로 개인을 통합하면 사회가 약해지고, 자발적 개인들이 집단을 만드는 것이 더 강한 사회라고 보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Top-Down 방식이 아니라 Down-Top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및에서 부터 힘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및에서 부터 나오는 정치 환경은 어떤 상태에서 이루어지는가? 그것을 노자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이라고 표현했다. 정치환경을 작게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도덕경 80장]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사인부결승이용지,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낙기속 인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노사불상왕내
小國寡民 소국과민
小작을소, 國나라국, 寡적을과, 民백성민
“나라를 작게하고 백성의 수를 적게하라.” 이 말은 중앙집권관료체제가 아니라 지방분권체계로 나라의 단위를 작게 하라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는 철기가 발명되고 산업에 투입되면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이분 구도가 깨지면서 혼란이 시작됬다. 나리의 형태는 나라 규모가 작고, 갯수가 많은 상태에서 규모는 크고 개수는 적은 상태로 이동한다. 그런데 이것이 한 번 안정기에 접어 들었을 때가 전국칠웅(전국시대에 중국의 패권을 놓고 다툰 7대 강국)이고, 이것이 마지막으로 하나로 작아졌을 때가 진시왕의 통일이다. 그래서 나라의 규모를 크게할 것인가, 작게할 것인가 하는 것이 당시 중국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논쟁 가운데 하나였다.
使有什佰之器而不用 사유십백지기이불용
使부릴사,有있을유, 什열사람습, 佰백인백, 之갈지, 器그릇기, 而어조사이, 不아니불, 用쓸용
“쓸모있는 많은 물건들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게하고”
使民重死而不遠徙 사민중사이불원사
使부릴사,民백성민, 重무게중, 死죽을사, 而어조사이, 不아니불, 遠멀원, 徙옮길사
“백성이 죽음을 중히 생각하여 멀리 가지 않도록 한다.”
이념성이 강하거나 보편적 이념에 매몰되면 매몰 될수록 생, 사를 가볍게 여긴다. 그래서 노자는 보편적 이념으로 생, 사를 가벼이 여기는 사회 스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바라 봤고, 생과 사를 중히 여기는 사회 시스템으로 가자고 했다. 생과 사를 중히 여기는 것은 자신을 중히 여기는 것이다.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雖비록수有있을유舟배주輿수레여, 無없을무所바소乘탈승之갈지, 雖비록수有있을유甲첫째갑兵군사병, 無없을무所바소陣줄진之갈지
“배와 수레가 있더라도 탈 일이 없고, 군대가 있어도 펼칠 일이 없게해라”
使人復結繩而用之 사인부결승이용지
使부릴사,人사람인, 復회복부,結맺을결, 繩줄승, 而어조사이, 用쓸용, 之갈지
“백성들로 하여금 결승문자를 회복해서 사용하게 해라.” 결승문자(結繩文字)는 새끼줄을 꼬아 매듭을 지어 사용했던 중국의 고대문자로, 글자문자가 사용되기 이전까지 사용 되었다. 결승문자는 새기줄을 묶을때 사람의 감정, 상황등에 의해 모양이 각각 달라서 표준화 되지 못했고, 대신 글자문자가 표준화 되었다. 중국이 거대국가 체계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표준화와 보편화로 가는 문제가 큰 이슈 였다. 표준화와 보편화로 간다는 것은 이념화로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결승문자(結繩文字)로 회복해서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甘其食, 美其服 감기식, 미기복
甘달감, 其그기, 食먹을식 美예쁠미, 其그기, 服옷복
“그 음식을 맛있어 하고, 그 옷을 곱다고 여겨라”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하고, 입고 있는 옷이 예쁘다고 여겨라, 는 말이다. 우리가 손님을 접대할 때 된장찌게로 접대하는 것보다 고급 레스토랑가서 와인까지 곁드려야 접대를 잘 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의 삶이 밖으로 퍼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간판중에 한글 간판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외국어 간판들이 즐비하다. 자기들이 써놓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간판을 지어 놓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이름은 원래 자기 꿈과 이상이 들어간다. 자기가 없고 비정상이다.
우리의 꿈과 이상은 멀리 있고, 우리의 기준은 밖에 있다. 한국은 아직까지도 독립된 기준으로 자기를 볼 수 없다. 그것은 거리에 나가 보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이것이 문제라는 것도 모르는 단계로 퇴화한 것이다. 이게 사는 꼴인가? 자기 삶의 양식이 자기로 부터 나오지 않는 삶,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이 자기로 부터 나오지 않는 삶, 자기 나라 운영하는 방식이 자기로 부터 나오지 않는 삶, 이게 정상일까? 정상이 아니다.
그래서 노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니가 먹는 것이 맛있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입맛이 없을때는 다른 것도 먹어라.”
미기복(美其服), 너의 복장을 아름답게 생각해라. 우리의 것을 찾이면서 옛날 조선시대에 옷만 입는게 우리것이 아니다. 우리의 것에 집중해서 입었을때 우리 것이 진화한다. 우리 것에 집중하지 못하니까 진화할 토양 자체가 없는 것이다.
安其居 樂其俗 안기거 낙시속
安편안안, 其그기, 居살거 樂음악낙, 其그기, 俗풍속속
“그 거처를 편안해 하고, 그 풍속을 기꺼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이 있다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외국 여행이다. 안동에 한 번 안가 보고 외국 여행을 먼저 한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 여행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항상 좋은것, 이상적인 것, 기준은 다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안에도 더 좋고 아름다운 것들이 있는데 왜 우리 나름대로 기준을 만들고, 우리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만들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가?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인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노사불상왕내
隣이웃인,國나라국,相서로상,望바랄망 鷄닭계,犬개견,之갈지,聲소리성,相서로상,聞들을문 民백성민,老늙을노,死죽을사,往갈왕,來올래
“옆 나라끼리 서로 바라다보고 개 짖는 소리나 닭 우는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이 말은 ‘문을 걸어 닫고 자기들끼리 살아라.’ 라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무엇을 먼저 해야 되느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것에 먼저 집중하라는 말이다.
천하보다 나를, 천하보다 우리나라를, 보편 문화보다 내 문화를, 내 문화에서 나오는 것이 보편 문화다. 너의 윤리에서 나오는 것이 보편 윤리다. 니가 만든 가치가 보편 가치다는 것이다. 이미 너의 앞에 펼쳐저 있는 보편가치, 보편윤리는 이미 다 이념이다. 그것은 폭력이다.
노자는 계속 강조 하고 있다. 자기 잔신에게 집중하자. 자기로 돌아가자. 자기의 신체를 중시하게 생각하라. 그것은 다만 보편적 이념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명사 고유명사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로 존재하고 있다. 자기 신분이 노출되어 있어서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점잖다. 그런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익명성 뒤에 감추어져 있다. 그래서 도시에는 폭력이 많고, 염치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골에서 자기는 고유명사로 존재 하고 있고, 도시에서는 일반명사로 존재한다.
노자가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주장하는 이유는 사람이 익명적 존재, 일반명사의 일부로 존재하지 말고, 고유명사로서 존재하게 하라, 고유한 자기로 존재하는 존재감를 같도록 만들어라. 익명성 속에 존재하는 인간은, 보편적 이념속에 존재한는 인간은 자신이 고유한 자기만의 고유한 존재라는 의식을 갇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신이 고유한 자기 자신이라는 느낌을 같을 수 있는 상태로 정치적 조건을 만들어 주어라. 물론 사회 발전 단계, 조건에 따라서 어느 단계에서는 집단적 이념을 그 집단이 공통적으로 수행해야 성취를 하는 단계도 있다.
지금 현대는 모든 개별적 존재들이 자신의 자발적 자존감을 회복하지 않으면 살고 있다는 의식을 같지 못하는 단계로 이미 진입했다는 했다.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을 비판 할 때 ‘집도 없은 것이 차 부터 산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차가 없는데 집을 사나?’ 라고 생각한다. 차가 더 중요한 사람과 집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서로 생각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집도 없는 것이 차를 산다고 하는 세상에서, 차도 없는데 집을 산다고 하는 세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은 모두다 자신의 독립적 개별성을 확보 할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조직을 크게 운영하지 않고, 쪼개서 작게 운영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현대인들은 거대한 조직의 일부로 일을 하면 자신이 삶의 영위하고 있다는 자존감을 같지 못한다. 그래서 작은 조직속에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의 삶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느낄수가 있다.
지금 현대인에게 맞는 조직은 작은 조직이다. 그래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고, 구성원들이 작은 조직속에서 비로서 자기를 익명의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고유명사로 생각할 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 고유명사 속에서 자율적 행복을 누리는 존재로 만들어 내자. 이것이 노자의 ‘꿈’ 이었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할 때 우리는 보편적 이념의 수행자 인가? 아니면 자기 꿈의 실현자 인가? 우리가 바람직함을 수행하면서 살아갈까? 아니면 자기가 바라는 것을 수행하면서 살아갈까? 자기는 보편적 존재인가? 아니면 유일한 존재인가?
유일한 존재인 자신들은 적어도 자식들에게 만이라도 자신이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해 주어야 한다. 그것을 알게 해주면서 자신도 스스로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유일한 존재이고, 나는 내 윤리에 윤리적 행위에 고유한 입법자이다. 내 윤리적 삶은 나로 부터 나온다. 내 삶의 원동력은 내가 작동 시킨다. 나는 일반명사로 살다가 죽지않고, 고유명사로 살다가 죽겠다.’ 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고유명사로 살다 죽을 결심을 한 사람들의 총합이 사회을 역동적이고 건강하게 만든다. 이것이 노자의 주장이다.
<12강 EBS 최진석 교수의 현대 철학자 노자 >
13강 EBS 최진석 교수의 현대 철학자 노자
노자의 사상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운영이 되고, 적용이 되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는 철학적으로 보면 노자로 시작해 법가(法家)로 마무리가 된다. 이 말은 진시황의 통일로 춘추전국시대가 종합이 된다는 것이다.
법가(法家)
춘추전국시대에 부국강병과 왕권 강화를 위해 엄정한 법치를 주장한 제자백가의 한 종류로 진시황의 통치사상이다.
진시황 천하통일과 사상의 통일
진시황이 통일을 할 때 법가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법가라는 사상은 도가(道家)쪽보다 유가(儒家)쪽에 더 가깝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를 편찬할 때 유명한 철학가나 정치가들을 열전(列傳)편에 담았다. 그래서 유명한 중국 철학자들을 알기 위해서는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에 나온 사람인가, 나오지 안는 사람인가 본다. 나온 사람이라면 사기열전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를 보는 것이 도움을 준다. 우리가 노자를 공부할 때 먼저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본다. 당시 한(漢)나라 사람들은 노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 를 먼저 봄으로써 노자로 천천히 들어갈 수 있다. 사마천은 노자를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이라는 책 안에 배치 했다. 노자한비열전은 ‘노자신안열전(老子申韓列傳)’ 이라고도 한다.
노자신안열전(老子申韓列傳)
도가(道家) 사상의 대표적인 노자와 장자, 법가(法家)사상의 대표자인 신불해(申不害)와 한비자(韓非子)에 대한 기록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은 노자와 한비자를 기록한 것이고, 노장신한열전(老莊申韓列傳) 노자, 장자, 신불해, 한비자 이 네 사람을 기록한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를 쓰면서 도가 사상의 대표자인 노자와 장자, 법가 사상의 대표자인 신불해, 한비자를 한 편에 묶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도가 사상과 법가 사상은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이런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사마천 정도의 학식이 있는 사람만이 노자와 장자, 신불혜와 한비자 두 학파를 하나로 묶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마천의 모습이 게으름이나 나태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마천이 당시 얼마나 당시 철학적 흐름에 정통해 있었는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역사 발전은 지방분권 체제에서 중앙집권체제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이것이 춘추전국시대를 이해하는 한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와 노자는 최초의 철학자로써 인간을 신의 명령으로 부터 독립시키는 역활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신의 명령에서 독립시키는 사람들을 우리는 철학자라고 한다. 그래서 공자와 노자는 중국에서 최초의 철학자가 되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공자와 노자가 철학을 시작하기 이전에 중국을 지배했던 세계관은 천명(天命)이었다. 그리고 공자와 노자가 세운 철학적 세계관은 도(道)의 질서관 이었다. 천명(天命)에서 도(道)로 이동한다, 하면은 천명(天命)이 가지고 있던 특징을 도(道)가 가지고 있던 새로운 특징으로 바꾸어 내는 것이다. 천명(天命)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특징은 비위성, 임의성, 주관성이다. 그래서 새로운 도(道)의 질서는 비의성, 임의성, 주관성을 극복해서 투명성, 보편성, 객관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천명론을 극복해서 도의 질서를 건립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완수 한다는 점에서는 노자는 공자보다 훨씬 완벽하게 완수해 내고 있다. 도덕경 4장에서 공자는 道… 象帝之先(도…상제진선) 도는, 상제(하느님)보다 앞서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 안에서 하늘에 기도하는 일을 한다든가 하늘을 극복하지 못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노자는 분명하게 “내가 말하는 도는 신(상제)을 완벽히 극복해서 상제보다 우선한 것이다.” 라고 주장 한다. 그래서 천명론을 극복한다는 점에서는 공자보다 노자가 더 잘 완수했다.
노자는 소극과민(小國寡民)를 주장한다. 이것은 지방분권형 이라는 것이다. 당시 국가 형태가 지방분권형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현실 정치에서 주도권은 공자보다 노자에서 있었다. 그래서 사상계 흐름에서 정치적 영역에서 주도권은 여전히 노자가 가지고 있었다.
제(濟)나라는 전국칠웅(戰國七雄) 중에서 제일 잘나가는 국가였다. 그런 제(濟)나라에서 쿠테타가 일어났다. 제나라는 원래 강씨들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전상(田常)이라는 신하가 왕 간공(簡公)을 시해하고 쿠테타를 일으켰다. 쿠테타를 일으킨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통치권의 정당성 확보다. 그래서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 연구소를 세웠다. 이 때 부터 잡학(雜學)이라는 생긴다. 모든 학문을 썩어서 하나로 통일해야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제나라에 직문이라는 성문이 있었다. 그 성문 밖에다 직학학궁(稷下學宮)을 세우고, 전국 각지에 있는 학자들을 전부 모아서 잘먹이고 재우면서 융숭한 대접을 했다. 그런데 한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정치는 논하지 말고, 사상만 통일’ 하라는것 이었다. 그 때 사상의 흐름의 주도권은 노자 사상을 중심으로 다른 여러 사상을 합치는 것이었다. 그 때 황로학(潢老學)이라는 학풍이 형성된다.
황로학(潢老學)
노자 사상을 기반으로 묵가, 명가, 명가, 법가 등의 사상을 흡수한 청정무위(淸淨無蔿)의 정치사상
이 때 직학학궁(稷下學宮)에서는 중국에 있는 많은 철학자들이 전부 모여서 사상을 종합 통일하려는 사상운동이 일어났을때 주류의 중심학문은 노자 사상 이었다. 직하학궁안에 책임자를 좨주(祭酒)라고 했는데 순자(荀子)가 세 차례 역임 하게된다.
순자(荀子, BC 298?~238?)
중국 전국 시대 말기의 사상가로 직하학궁(稷下學宮)에서 세차례나 좨주(祭酒)를 지냈다.
순자(荀子)는 노자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서 이사(李斯)와 한비자(韓非子), 두 명의 제자들 배출한다. 특히 한비자(韓非子)는 진시황의 도와서 통일을 이루고, 법가(法家)사상을 집대성 한다. 한비자(韓非子)에 의해 집대성된 법가사상은 진시황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게 되고, 법가 사상을 근거로 해서 중국을 통일하게 된다.
한비자(韓非子, BC 280?~BC 233)
법가(法家)의 사상을 집대성한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정치 사상가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자기를 ‘시황(始皇)’ 이라고 했다. 이 말은 진나라의 최초의 황제라는 것인다. 진시황은 자신을 ‘왕’이나 ‘천자’라 하지 않고 ‘시황(始皇)이라고 했다. 진시황의 통일을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중앙집권체제 이다. 진시황 통일 이전 까지는 천자와 제후사이에서 나라와 나라의 연합으로 되어 있었는데, 통일 이후에 진시황은 진나라 전체를 군과 현으로 나눈다음 하나의 행정 단위로 묶었다. 그래고 군과 현을 다스리는 말단관리들까지 진시황 자신이 직접 임명했다.
진시황은 통일 이전의 왕들은 권력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왕으로 보였고, 그래서 “나는 그 이전의 왕들과 다르다. 행정 말단의 관리들 까지 내가 임명하겠다. 그래서 내가 비로서 진정으로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용어를 쓰지 말고 시황 이라고 해라.” 그렇게 해서 진시황으로 불리게된다.
진시황의 대표적인 정책들로 분서갱위(焚書坑儒), 도량형(度量衡), 수레바퀴 축의크기, 글자, 화폐 등이 있다. 진시황 통일 전까지 중국은 지방분권체제로 각 나라들은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다스리고 있었다. 지방분권형으로 나라를 쪼개서 다스리고 있을 때는 자기 고유의 특색이 필요했다. 그래서 수레바퀴 축의 크기도 따로 있었고, 문자도 따로 있었고, 이데올로기도 각 나라마다 따로 있었다.
진시황은 통일이후 학자들의 정치 비판을 막기위해 실용서적을 제외한 모든 사상 서적을 불태우고 유생(儒生)들을 생매장 시키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실시한다. 그리고 나서 하나의 법가(法家) 사상으로 통일시킨다. 진시황의 중앙집권체제는 통일 이전 귀족 세력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실시되었다.
진시황의 몰락과 한나라 건국
노자 사상에서 법가사상까지 이어지는 맥락이 순자(荀子)를 통해서 이사(李斯)와 한비자(韓非子)로 이어졌다. 철학의 흐름과 완성의 측면에서 봤을때 법가의 뿌리는 노자 였다. 그래서 노자와 한비자를 하나의 편으로 묶을수 있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전체 사상에서 중국인들이 해결해야될 가장 큰 문제는 천명론(天命論)을 극복하고 어떻게 도(道)의 질서를 확보 하는가 였다. 도(道)의 질서를 어떻게 투명한 질서, 보편적 질서, 객관적 질서로 확보하는 것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시대 문제 의식을 일관되게 한 번도 흐트러짐 없이 유지하고, 역사를 진행해 나가서 최종 결론은 천명의 극복이라는 노선에서 노자에서 순자를 거처 이사와 한비자에서 법(法)으로 귀결 되는것 이었다. 법(法)으로 귀결 되었다는 것은 중국 사람들이 철학을 시작한 다음에 해결해야될 문제를 붙잡고 늘어져서 만들어낸 최정 귀결이었다. 그 최종 귀결은 중국 사람들에게 법(法)이었고, 그 법(法)은 가장 투명한 것이고, 보편적인 것이고, 객관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 역사적 사명을 진시황이 통일을 통해서 완성 시켰다. 그 완성의 과정속에서 개혁을 진행하였고, 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속에서 개혁의 힘이 분산되어 BC 206년 진(秦)나라는 멸망하게된다.
진나라가 왜 멸망 했을까? 모든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스템을 향해서 변화해야 되는데 이 변화의 과정속에서 개혁의 피로감이 개혁 동참자에게 먼저 가게 됬다. 모든 개혁의 실폐는 초기에 함께 참여했던 개혁 참여 참여자들이 개혁 과정속에서 나타나는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고 이반하면서 생긴다.
옛날 귀족 세력의 압박에서 벗어날까 싶어서 진시황에게 동참했던 농민들에게 피로감이 먼저 갔다. 이 때 진승(蔯勝)이라는 농민이 “왕우 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 라고 선언하고 농민 반란을 일으킨다. 그 농민반란으로 나라가 흔들렸을때 구 기득권 세력들이 함께 일아나게 되면서 진나라는 15년만에 몰락하게 된다.
진승(蔯勝)
진나라 말기의 농민 민란 지도자로 BC 209년 ‘진승.오광의 난’을 을으켜 진(秦)나라의 멸망을 초래한다.
진나라 멸망 당시에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라는 두 영웅이 등장한다. 항우는 귀족 출신으로 기존의 이론이나 통치 이데올로기에 밝았고, 유방은 천민 출신으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유방(劉邦, BC247?~BC195)
한(漢)나라의 1대 황제로 진나라말 군사를 일으켜 진왕으로 부터 항복을 받는다.
유방은 나라의 형태를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역사가 어떻게 객관적으로 움직이는가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전쟁에서 패하고, 항우도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다. 이 때 유방의 책사 장량(張良)이 제후세력을 배후에 두고 있는 장수들을 옛날 세력이다고 배척하지 말고, 포섭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유방은 ‘중국 천하를 제후국들과 함께 나눠 함께 한다.’ 라는 공천하(共天下)를 선포한다.
유방은 역사 발전 추세가 중앙집권체제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지방분권 세력들의 힘이 약화 되지 않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방은 ‘지방분권 세력을 품고 가야 되겠다.’ 하는 현실적 선택을 한다. 유방이 공천하를 선언하고 나서 한신등과 같은 장수들이 및으로 들어왔고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루게 된다.
유방은 통일을 이룬 후 역사 발전추세가 중앙집권관료형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방분권의 기득권 세력들의 힘을 품고 가지 않으면 않되겠다고는 생각으로 진나라의 군현제(郡縣制)와 다르게 군국제(郡國制)라는 새로운 통치체제를 만든다.
군국제(郡國制)는 주(周)나라의 봉국제(封國制)와 진(秦)나라의 군현제(郡縣制)를 병용하여 실시한 것으로, 수도에 가까운 지역은 군현을 두어 황제가 직접 다스리고, 먼 지역은 황족이나 공신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였다.
유방은 통일후 정권의 안정을 위해 어쩔수 없이 군국제(郡國制)를 시행 하였지만, 중앙집권체제인 군현제(郡縣制)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정권이 안정된 후 지방분권 세력인 한신, 회남왕, 주발 등을 제거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방을 도와 통일을 이룬 장량은 신변의 위험 느끼고 홀연히 가족들과 함께 ‘장가개’로 숨어들어 자손들을 번창 시키면서 살아갔다.
한나라의 멸망과 도가와 유가통합
유방의 통일 직후 진시황의 과도한 개혁정책으로 중앙의 재정이 고갈 상태에 있었다. 그래선 약법삼장(約法三章) ‘살인자는 사형시키고, 사람을 상해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친자는 벌한다.’ 라는 법률만 남겨두고 풀어준다. 이것을 청정무위(靑淨無爲)정책, 국가의 간섭을 줄이고 민간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대 시키는 정책을 시행한다.
유방은 중앙 제정이 고갈되어 민간을 장악할 수 없게 되자, 민간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시키는 ‘청정무의’ 정책을 시행하고, 전한의 7대 황제 한무제(漢武帝)때 까지 중앙의 안정적인 세수 확보를 위해 시행됐다.
유방의 ‘청정무위’ 정책은 도가 사상의 정책으로 한나라 초기 민간에게 자율권을 주어 민간을 성장시키고 국가도 성장시켜 나갔다. 그러면서 민간과 국가사이에 힘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철과 소금의 전매권의 소유 문제로 갈등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한무제때 국가의 힘이 커지면서 민간을 관리형을로 변경하게된다.
한무제 이전까지 한나라는 도가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분권체제 였고, 한무제 이후 통치 이념이 유가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이 때 지방분권 세력은 힘이 약화되어 재야세력이 되었고, 유가 사상이 통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리고 한나라 말엽에 사회적 변화에 의해서 유가 사상이 통치 이데올로기로 역활을 할 수 없게 되자, 재야에 숨에 있던 지방분권 세력이었던 도교도들이 ‘홍건적의 난’을 일으겨, 중앙집권체제의 유가 사상이 힘이 약해지고, 지방분권세력인 도교도들에 의해 한나라는 붕괴하게 된다. 그리고 한나라의 부흥을 위해서 일어난 대표적인 영웅들로 유비, 조조, 손권 등이 등장하게 된다.
한나라가 멸망하고 도교도들이 등장 할 때 유비은 도교도들을 이용하거나 제거 할려고 했지만, 손권은 무조건 제거 할려고 했다. 그러나 조조는 새로 등장한 도교도들을 정상적인 납세자와 군인으로 포섭 할려고 노력했고, 세 사람중에서 세력을 가장 강하게 키울수 있었다.
조조는 지금은 유학이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새로 등장한 도교도 세력을 새로운 역사 발전 추세로 인정했다. 그래서 유방이 봉건제와 군현제로의 연합의 필요성을 느꼈듯이 새로 등장한 도교와 기존의 유학을 함께 연합해야 되겠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위(魏)나라의 건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중국 역사에서 최초로 도가와 유가의 통합해 ‘위진현학(魏晉玄學)’ 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 졌다. 위진현학은 위진 시대에 노자 사상을 중심으로 유가 이념과 조합하여 만든 사상으로 ‘자연’ 과 ‘명교(名敎)’를 회통하는 철학사상으로 왕필(王弼)에 의해 만들어졌다.
노자 사상은 춘추전국시대에 주도권을 같고 있었으나 중앙집권체제의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노자 사상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순자가 노자 사상을 바탕으로 법가(法家)를 탄생시켰다. 그래서 민간의 자율성이 필요한 시기에는 통치 사상으로 등장 했다가 중앙집권체제가 강화되면 약화되고 하면서 노자 사상은 춘추전시대부터 위진남북조시대 까지 중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통치 철학의 역활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중국 역사속에서 노자 사상은 반 이상의 역사 현실을 담당했다. 노자의 사상이 현실속에서 적용된다는 것은 주도권을 국가가 같지 않고 민간에게 주어서 민간의 자발성으로 국가를 이룬다는 것이었다. 민간의 자율성에서 기반하고 일어나는 자발적인 힘이 국가의 진정한 힘이 된다고 봤다.
[나의 생각] 그러나 민간에 주도권을 주는 것이 공공제의 성격이 강하고, 민간이 비도덕적, 비윤리적 이라면 이것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제도나 시스템이 완벽히 같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다수의 국민들이 피해를 받게되고, 국가도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 노자는 어떻게 바라봤을까?
유방와 항우 싸움에서, 항우는 제후국을 세우고 자기 머리속에 있는 통치 시스템을 적용할려고 했다. 그래서 항우는 세계를 봐야 하는대로 본 사람이었다. 유방은 세계를 보여지는 대로 보는 사람이었다. 유비와 조조의 싸움에서도 유비는 유학의 이데올로기를 고집했다. 그래서 세계를 봐야 하는대로 바라본 사람이었다. 조조는 세계를 보여지는대로 보고 현실적 결정을 한 사람 이었다.
노자가 현대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세계를 봐야하는 대로 보지 말고, 보여 지는대로 보라고 한 것이다. 보여지는 대로 볼 수 있는 힘을 같으려면 우리속에서 자신을 융해 시켜버리면 않되고, 나의 독립적 자발성을 확보해야 한다. 집단속에서 자발적 생명력이 사라지도록 방치하면 않된다. 그 힘이 보여진느 대로 볼 수 있는 힘을 같게 만들수 있다.
<13강 최진석 교수의 현대 철학자 노자>
최진석
서강 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강 대학교 졸업
북경대학 ‘성현영의 장자소 연구’ 철학박사 학위
하버드 객원 교수를 거쳐 현재 서강 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
저서로는 ‘장자철학’ 과 ‘노자신록’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