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마 13:8)
예수님이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이 글을 읽지도 쓰지는 못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비유의 말씀으로 눈높이 교육을 했습니다. 암흑의 중세 시대를 지나며 교회가 성당의 아이콘 혹은 모자이크로 성경을 가르친 것에 비교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는 매우 유명한 말씀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나가서 씨를 뿌렸습니다. 씨는 각기 다른 네 가지 땅에 뿌려졌습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에, 흙이 얕은 돌밭에, 가시떨기가 자라는 땅에, 그리고 좋은 땅에. 각기 다른 땅에 떨어진 씨는 각기 다른 결과를 낳았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왔지만 뿌리가 없어서 말랐고, 가시떨기 속에 떨어진 씨는 가시가 자라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오직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말씀에서 씨를 천국 말씀(19절), 복음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네 가지 다른 땅은 우리의 마음이라 가르치셨습니다. 만인만색(萬人萬色)이라 각기 다른 사람들의 삶과 모양처럼 네 가지 땅은 각기 다른 우리의 마음입니다.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다른 모양의 사람에게 뿌려진 천국 말씀의 반응을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셨습니다.
새들이 와서 씨를 먹어 버린 길가는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기는 자(19절)입니다. 해가 돋은 후에 뿌리가 없어 발라버린 돌밭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지만 잠시 견디다가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 곧 넘어지는 자(20절)입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가 가시떨기 기운에 자라지 못한다는 것은 천국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20절)입니다. 마지막으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23절)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하고 있습니까? 만인만색이라 각기 다른 모양의 삶과 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두가 좋은 땅이기를 바라지만 길가, 돌밭과 같은 척박한 마음밭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좋은 땅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다른 모양의 땅을 변화시키고, 개간하려면 수고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시편 기자가 ‘울며 씨를 뿌리는 자가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시 126:6)’고 노래한 것처럼 길가를 갈아 엎고, 돌밭에 돌을 골라내고, 가시떨기를 헤치는 땀과 노력은 충분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천국 말씀의 결실이 쉽게 맺어질 수 있는 좋은 땅이 결코 아닙니다. 악인에게 쉽게 노출되어 있고, 돌이 가득차 있고, 가시떨기가 자라는 거칠고 황량한 땅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기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는 울며 씨를 뿌리며 땅을 일구는 땀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천국 말씀, 복음의 씨가 떨어져 풍성한 열매를 맺는 좋은 땅, 좋은 마음밭이 되기 위하여 수고하고 땀을 흘리는 믿음의 여정을 기도합니다.
천국 말씀의 씨가 뿌려진 좋은 땅에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삶 가운데 삶의 열매들이 맺혀있습니다. 2024년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지난 한 해 우리의 삶의 열매들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23)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의 여정을 걷는 삶 가운데 성령의 열매를 소망하고 기대하는 수고와 노력을 기대합니다.
2024년 어떤 한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시간이 지나고 있습니다. 개인적 행사뿐만 아니라 가정의 대소사, 심지어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 우리의 삶 가운데 천국말씀을 듣고 깨달았던 믿음의 여정을 다시 한번 돌아 봅시다. 천국 복음을 듣고 깨달고 맺은 성령의 열매를 확인해 봅시다. 2025년에도 다양한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는 믿음의 여정을 걷는 바다교회 가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