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17년 3월 12일[일요일]
산행시간 : 09:50~15:47[5시간57분] 이동[5시간5분] 정지[52분]
산소재지 : 전남 강진군 도암면 석문리
산행날씨 : 맑고 가스조금. 2도~16도정도로 약간더웠음.
산 행 자 : 의령산우회원 33명.
산행거리 : 10.82km[gps] 평균이동속도[2.13km/h]알파인퀘스트 기준
산행고도 : 최저[8m] 최고[422m] 지도[412.14m] 알파인퀘스트 기준
코스(시간):석문교(09:50)~구름다리(10:02)~용문사갈림(10:40)~중식(11:34~12:19)~
바람재(13:16)~깃대봉(14:08)~백련사(14:44)~다산초당(15:26)~귤동(15:47)
강진만덕산.gpx
오늘은 의령산우회 정기산행이고 만덕산은 미답산이고 가까이있는 뎍룡과주작은
여러번 갔었지만 다산초당이있는 만덕산은 한번도 찾지못했다.
다산의 얼이서려있고 고찰 백련사가있고해서 기대가되는 산이다. 석문산을 연계해서
타고 싶었지만 가우도 출렁다리도 가야하는 산우회일정관계로 석문산과 노적봉을
연결한 구름다리를 거쳐서 산행을 시작한다. 만덕산의 다산초당을 알아보자.
강진만 바다를 한눈에 굽어보기 좋은 곳이 만덕산이다. 높이 408.6m의 낮은 산이지만 능선에는 상당한 크기의 암석들이 많으며, 남쪽에는 사적 제107호인 다산선생의 초당과 백련사가 언덕 사이로 나란히 있다. 이곳에는 만덕산은 야생차가 많이 자생하여 다산이라고도 불리며,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호가 이곳 만덕산을 배경으로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선말기 당대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이다. 강진에 유배되어 18년 간 귀양생활 중, 8년 간을 강진읍 동문 밖에서 머물다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 곳에서 후진을 가르치고, 저술에 전념하여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완성했다. 정상 남쪽 골짜기의 백련사 주변에는 3ha에 걸쳐서 7,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특히 절 앞에 많다.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문공원으로 이동한다.
▲공원에서 올려다본 구름다리
도로 아래로 지나서 에돌아오르는 데크계단이 석문산쪽으로 나있다.
▲노적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석문산
▲초반 오름길은 30여분간 상당한 된비알이다.
▲용문사갈림 삼거리에서 바라본 용문사
▲석문산과 덕룡산을 바라본다.
▲무게중심이 안맞네
▲가우도를 댕겨보았는데 시계가 별로다.
▲점심시간을 근래산행중에 제일빨리 마친다.45분
▲아기자기한 암릉길도 있고
▲오늘 만난 봄아이 산자고
▲거시기를 닮은바위
▲봄처녀 진달래가
진달래는 바로옆에 덕룡,주작산이 바위와 어우려져 멋진곳인데
▲이름이 있을법한 바위인데
▲정상 깃대봉 옆에또 다른이름있다.
▲정상에서 단체증명
▲백련사 뜰에 배롱나무가멋지다.
▲대웅보전
특이하게 현판을 두개로 만들어서 걸아놨다.
만덕산(408m)에 있으므로 만덕사(萬德寺)라고도 한다. 사찰의 창건은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839년(문성왕 1)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하였다. 사찰의 이름은 만덕산 백련사라고 불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만덕사로 불렀다. 하지만 근래에 다시 이름을 고쳐 백련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 불교를 숭상하였기에 원묘국사 요세(了世) 스님에 의해 사찰의 교세는 확장되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 억불정책으로 승려들은 천시되었고 백련사는 퇴보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남해안 일대는 고려청자와 곡창지대로 약탈을 목적으로 자주 출몰하는 왜구들에 의해 점점 폐사될 지경으로 내몰렸고 사찰은 명맥만 겨우 유지하게 되었다. 1170년경 주지 원묘(圓妙)에 의해 중수되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중수는 조선 세종 때인 1426년 주지 행호(行乎) 스님이 2차 중수를 하면서 백련사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1430년부터 대대적인 불사작업이 시작되었고 효령대군의 도움이 컷다. 효령대군은 왕위를 동생(세종)에게 양보하고 전국을 유람하면서 강진땅 백련사에 들어 8년 동안 기거하였다. 효종 때 3차 중수를 하면서 탑과 사적비(事蹟碑)를 세웠다.
대웅전(大雄殿)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건물로, 각 추녀마다에 4개의 활주(活柱)를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으며, 전면 2개의 주두(柱頭)에는 용두(龍頭)로 장식되어 있는데, 단청(丹靑)이 잘되어 있는 다포(多包)집 건물이다.
이 밖에 시왕전(十王殿)·나한전(羅漢殿)·만경루(萬景樓)·칠성각(七星閣) 등의 건물이 있다. 절 앞에는 비자나무와 후박나무, 그리고 푸조나무와 함께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151) 등이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단층과 날아갈듯한 추녀
▲천불전 앞뜰의 매화
▲대단한 고목의 동백
▲만경루 앞뜰의 홍매
▲동백림
▲차밭
▲해월루
바다에 잠긴 달을 볼수있는곳인가?
▲천일각
이언덕에서 흑산도로 유배간 둘째형 약전을 그리던곳이라한다.
약용과 약전형제는 같은해 신유박해로 유배길에 올랐다.
셋째형 약종이 몸을던져 두형제를 사형에서 구해냈다.
▲연지석가산
▲다산초당
본래는 말그대로 초가건물이었는데 기와집으로 복원해놓았다.
▲현판은 추사 김정희 글씨
정약용은 지배권력의 공격속에 좌초된꿈을 학문으로 승화시킨다.
정약용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아무도 미워하지않는 자를 죽이지않는가?"
(이덕일의저서 "정약용과 그의형제들" 중에서)
▲정석 다산이 직접 새겼다고한다.
▲가우도 출렁다리
▲강진읍 시인 영랑생가
만덕산 산행후 가우도 출렁다리를 건너서 가우도를 돌아보고
강진읍으로 이동하여 영랑생가 입구에있는 돌담한정식집에서
뒷풀이를 하고 귀가를한다. 좋은산과 볼거리를 마련해주신
산우회 임원진 감사합니다. 그리고 함께하신 회원님들
수고 하셨습니다. 다음산행때도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