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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산악회 계획은 '두부마을 → 상학봉 → 묘봉 → 관음봉 → 문장대 → 천왕봉 → 피앗재 → 형제봉 → 갈령 삼거리 → 갈령'의 23.4km 구간을 12시간 동안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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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俗離山]
높이: 1,058m
위치: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에 걸쳐 있는 속리산은 우리나라 대찰 가운데 하나인 법주사를 품고 있다.
정상인 천황봉(1,058m), 비로봉(1,032m), 문장대(1,033m), 관음봉(982m), 입석대 등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능선이 장쾌하다. 봉우리가 아홉 개 있는 산이라고 해서 신라시대 이전에는 구봉산이라고도 불렀다.
속리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한국 8경 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봄에는 산벚꽃, 여름에는 푸른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가을엔 만상홍엽의 단풍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지고, 겨울의 설경은 마치 묵향기 그윽한 한 폭의 동양화를 방불케 하는 등 4계절 경관이 모두 수려하다.
속리산은 법주사(사적 명승지4호), 문장대, 정2품 소나무(천연기념물 103호)로 대표된다. 법주사에는 팔상전, 쌍사자석등, 석연지의 국보와 사천왕 석등, 대웅전, 원통보전, 마애여래의상, 신법천문도병풍의 보물 등 문화재가 많다.
문장대는 해발 1,033m높이로 속리산의 한 봉우리이며, 문장대에 오르면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문장대는 바위가 하늘 높이 치솟아 흰 구름과 맞닿은 듯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일명 운장대라고도 한다. 문장대 안내판에는 문장대를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을 전하고 있다.
정2품 소나무는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수령 600여 년의 소나무로, 조선 세조 때, 임금님으로부터 정이품이란 벼슬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이 소나무는 마치 우산을 펼친 듯한 우아한 자태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
세조대왕(1464년)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대왕이 탄 연이 이 소나무에 걸릴까 염려해 '연 걸린다'라고 소리치자 소나무가지가 번쩍 들려 무사히 통과했다는 사연으로 '연걸이 나무'라고도 한다. 이러한 연유로 대왕은 이 나무에 정2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속리산은 산행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산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찾아와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곳 이어서인지 관광객들이 수시로 찾아든다. 속리산 단풍은 설악이나 내장산과 같이 화려하지 않고 은은하다.
1,033m높이의 문장대에 오르면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신선대 휴게소에서 주변 풍광으로 청법대 바위의 웅잠함에 감탄하게 된다.
신라 헌강왕 때 고운 최치원이 속리산에 와서 남긴 시가 유명하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사람은 도를 멀리하고/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
우암 송시열은 속리산 은폭동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양양하게 흐르는 것이 물인데/어찌하여 돌 속에서 울기만 하나/ 세상 사람들이 때 묻은 발 씻을까 두려워/자취 감추고 소리만 내네"
인기 명산[10위]
법주사, 문장대, 정2품 소나무 대표되는 속리산은 법주사 입구의 울창한 오리 숲, 기암괴석이 즐비한 수려한 경관에 단풍 또한 장관이다. 단풍이 절정인 10월에 많이 찾으며 봄에도 인기 있다. 법주사에는 여러 문화재가 많고. 복천암까지의 나들이 코스도 있어 사계절 인기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예로부터 산세가 수려하여 제2금강 또는 소금강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경관이 아름답고 망개나무, 미선나무 등 1,000여 종이 넘는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국립공원으로 지정(1970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법주사(法住寺), 문장대,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이품송(正二品松) 및 천연기념물 제207호인 망개나무가 유명하다. - 한국의 산하
이번 주말은 한 안내산악회를 따라 토요 무박으로 묘봉에서 갈령 삼거리까지 속리산행에 동행하기로 했다. 말인즉 안내산악회의 속리산 종주에 따라간다는 얘기다. 하지만, 과거라면 종주라는 것에 큰 의미를 뒀겠지만, 요즘은 그런 것에 둔감하고, 별 감흥도 없다. 특히 어렸을 때 무박 산행을 많이 해서인지, 무박 산행을 싫어하기까지 하는 상태라, 무시하는 게 정상이지만, 그 구간 중에 꼭 오르고 싶은 봉우리가 있어 신청했다. 특히 비탐 구간이라, 이런 기회가 아니면 탐방이 쉽지 않은 봉우리라 보자마자 신청했다. 그런데, 그 ‘보자마자’가 작년 그러니까 2022년 9월이다. 당시 그 산행 계획을 발견하고 신청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연기되더니, 이번 주말, 즉 2023년 7월 29일 토요일 심야에 출발해 7월 30일 새벽 2시경부터 종주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 사이 가격도 34,000원에서 39,000원으로 5,000원 올랐다. 취소했다가 다시 신청하면 가격이 오른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언제 출발할지 모를 산행을 위해 돈을 묶어 두라는 얘기다! 그런데, 원래 성원 미달로 취소면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니, 가격을 내려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연기한 날짜가 있으니, 기다리면 되나, 종주 전 구간 중 천왕봉에서 피앗재와 형제봉을 지나, 갈령 삼거리까지는 백두대간 연결을 위해 한번 갔으면, 다시 갈 이유가 없는 구간이다. 그런데, 마침 비슷한 시기에 같은 산악회에서 '구병산~속리산~관음봉~상학봉'의 충북알프스를 3구간으로 나눠 진행하는 충북알프스 종주도 공지했다. 그런데, 그 마지막 구간이 장각폭포에서 묘봉까지로 내가 원하는 구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해서 충북알프스 종주팀의 산행을 예의주시하다가, 3구간 공지가 날 즈음에 속리산 종주를 취소했으나, 알프스 종주팀도 비슷한 여러 가지 이유로 연기되더니, 2구간 산행이 해를 넘긴 2023년 9월 6일로 결정됐다. 그것도 가야 가는 거고. 어쨌든 2구간을 정상적으로 출발한다면, 2주 후인 9월 20일 마지막 3구간인 묘봉에서 장각폭포까지 달린다. 하지만, 현재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서는 마지막 3구간은 이번 주 속리산 종주로 대체할 가능성이 90% 이상으로 보인다. 고로 지금 안 가면 언제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른다.
다들 비슷한 생각인지, 매번 속리산 종주 신청자는 28인승 버스 두 대를 채우고 대기자까지 있다가, 나와 같은 이유로 산행 일주일 전 취소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성원 미달로 연기된 적이 몇 번 있다, 그리고 산방 기간에 걸려 연기되기도 하고. 어쨌든 충북알프스 종주나, 속리산 종주나 해를 넘기며 연기되고, 인솔 대장도 미정이다가, 산행 5일 전에 결정되는 상황이다. 익숙한 신청자들이 이번에도 연기되면 기회가 없을 거라는 위기를 느꼈는지, 취소가 있기는 하나 성원을 채워 예정대로 진행한다. 다만, 취소자가 20명에 가까워 28인승 버스 두 대에서 40인승 버스 한 대로 변경됐다. 그건 그렇고, 인솔 대장이 결정되지 않아, 취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인솔 대장이 결정된 걸 확인한 순간 그에게 '체력이 좋지 않아, 장각폭포로 탈출할 건데, 픽업이 가능한지?' 문자를 보냈다. 돌아온 답은 '공지에는 없으나, 최대한 노력하겠다!'다. 그 답을 받고 바로 포인트로 결제했다. 'No'라고 했으면 산행을 취소하고 다른 수단을 찾을 예정이었다. 대중교통이 되겠지만.
예정대로 장각폭포로 탈출하게 되면, 계획 거리인 23.4km보다 6km가량 짧은 17.4km를 달리는 산행이라,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당일 산행으로 가능한 수준의 거리나, 이번 산행의 주요 목표인 비탐 구간 때문에 무박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해서 산행 준비는 최소한으로 한다. 아침으로 김밥을 준비하고, 점심은 장각폭포로 하산하면, 아랫마을에서, 갈령으로 하산하면 휴게소가 있다는데, 요즘 국도변 휴게소가 다 문을 닫는 분위기라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 고로, 여러 이유로 장각폭포 코스로 하산해야 한다. 다만, 금요일 현재, 속리산이 폭우 후유증으로 곳곳이 통제 상황이라, 일요일 정상 개방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하지만, 날씨가 이 상태를 유지하면, 일요일은 전면 개방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다행히 출발 하루 전 속리산 국립공원에서 우리가 진행하는 코스는 정상적으로 개방해 산행에 문제는 없다. 다만, 출발일 새벽에 옆자리를 신청한 등산객 덕분에 며칠 전 세웠던 계획이 틀어졌다. 온갖 눈치를 보며 확보한 자린데, 출발 직전에 신청자가 있을 거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해서 등산 준비도 다시 해야 한다. 옆자리가 비어, 이동 중에는 거기에 배낭을 두고, 산행 중에는 불필요한 짐을 두려고 했는데,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라. 아예 준비하는 과정부터 다시 해야 해, 예정에 없던 번거로움 생겼다. 그리고 산행 당일 산악날씨에 의하면, 기온은 22도에서 24도 사이나, 종일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바람도 강하지 않아, 산행에는 최악의 날씨가 될 확률이 높다. 가뜩이나 속리산 능선은 강한 햇살을 피할 그늘이 많지 않다. 물론 조망이야 좋겠지만, 속리산 한두 번 가는 것도 아니고. 날씨 또한 계곡이 있는 장각폭포로 하산하라고 강요한다.
2 - 1
늦은 저녁을 먹은 후 22시 40분경 준비해 둔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서, 마을버스로 불광역으로 가, 24시간 김밥집에 들러, 김밥 한 줄 샀다. 그리고 역으로 들어가 23시 1분 열차로 등산객의 성지 양재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양재역으로 향하는 게 무언가 생소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7월 8일 충주 신선봉 산행 이후 3주 만에 안내산악회를 이용한 산행이다. 본격적인 코로나 이후 매주 한두 번은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산에 다녔는데, 의외다. 그게 폭우로 산행 취소되는 일이 많아 발생한 일이다. 그렇다고 산에 가지 않은 게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해 폭우 속 괴산 선유동 계곡 트레킹, 연천 소요산, 관악산, 인제 매봉산 등에 올랐다.
책에 푹 빠져 있으니, 목적지 한 역, 전이라고, 패드가 알려줘, 보던 책을 접고, 하차 준비를 했다. 그리고 양재역에 도착해 내리기는 했는데, 너무 일찍 도착했다. 불광역에서 23시 10분 열차를 타면, 23시 50분 도착이라, 시간 낭비가 없다. 하지만 그 전 차인 23시 1분 차를 탄 덕이다. 그렇다고 역 구내에서 할 일도 없고 해서 바로 국립외교원 앞으로 갔다. 오늘 24시 국립외교원에서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는 총 4대라 그런지, 이미 외교원 앞에는 많은 등산객으로 붐비고 있다. 오랜만에 과거 지정석이었던 서초구청 주차장 석축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도착하는 등산객을 구경했다. 그렇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예정보다 이른 23시 56분에 첫차가 도착해 버스 앞창의 LED를 유심히 보니, '속리산 종주'다. 아니, 우리 차가 첫차로 도착한다고? 역사에 남을 일이다!
미리 분리해 둔, 버스 안에서 갈아 신을 등산화가 든 파우치와 배낭을 들고 버스로 가, 배낭을 짐칸에 넣고, 차에 탔다. 그리고 내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자, 차가 바로 출발한다. 물론 예정보다 몇 분 빠르다. 말을 잘 듣는 승객들이다. 어쨌든 바로 잠을 청했으나,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다. 목적지인 두부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잤다기보다는 비몽사몽 상태였다. 와중에 어딘지 모를 휴게소에서 휴식이 끝나고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이번 산행의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한다. 코스야 다 아는 거고, 주의 사항은 지난 미시령~진부령 연결 산행 때[산행기]와 같다. 같은 인솔 대장이 당연한가? 다만, 중요한 마감 시각은 3시 도착을 전제로, 산악회 계획에는 없는 장각폭포 탈출자를 위한 버스는 13시에 갈령으로 출발하고, 갈령에서는 15시에 서울로 출발하니, 시간을 지키라고 신신당부한다. 장각폭포 탈출할 테니, 픽업해 달라는 내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다시 버스 실내등이 들어와 정신을 차리자, 들머리 도착 10분 전으로 2시 10분경이다. 다시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산행 준비를 하란다. 해서 아큐아슈즈를 벗고, 양말을 신은 후 암릉 전용 등산화를 신었다. 그동안 인솔 대장이 애초 3시 도착을 전제로 마감 시각을 공지했고, 도착이 2시가 20분경이라, 마감 시각도 변경해야 하나, 그대로 13시와 15시로 하겠다고 했다. 물론 그 전에 모두 도착하면, 마감보다 일찍 출발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2시 19분에 버스가 운흥리 두부 마을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아큐아슈즈를 넣은 후 둘러메고, 등산 앱을 기동해 현 위치의 높이를 확인했다.
2 - 2
등산 앱 기준 두부마을 해발 고도는 314m, 오차를 고려하면 300m가 채 안 된다. 이번 산행의 최고봉인 문장대는 1,054m, 물론 천왕봉이 1,057.7m로 4m가량 더 높지만, 이미 천국을 예약한 상태라, ‘문장대를 갈까?’하는 상황에 왕복해야 하는 천왕봉에 갈 일은 없다. 그리고 이번 산행의 주요 목표인 관음봉이 983m다. 관음봉 기준 표고차가 690m 정도다. 높이만 보면, 동네 뒷산 북한산보다 낮다. 올려야 할 높이를 확인하고, 앞선 종주꾼의 뒤를 따라 2시 20분 첫 번째 주요 봉우리인 3.9km 거리의 상학봉을 향해 출발했다. 2시 26분 3.6km 거리의 이정표를 통과하자, 아랫배가 슬슬 아파진다. 휴게소에서 해결할까 하다가 잠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미뤘던 거다. 해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민폐가 되지 않을 만한 장소를 발견해, 가까이에서 따라오던 일행을 보낸 다음. 그리로 들어가 일을 봤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 낭패를 볼뻔했다.
당연히 땅을 파고, 랜턴을 끄고 일을 보는 동안 후미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일이 끝난 후 파낸 흙으로 제대로 묻은 후 다시 등산로로 나온 게 2시 42분경이다. 그동안 선두그룹에서 꼴찌로 위치 이동이 있었는데, 앞선 일행의 불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벌어졌다. 아직은 평지나 다름없어, 다들 빠르다. 어쨌든 페이스를 유지하며, 상학봉을 향해 갔는데, 아직 3시도 되지 않은 새벽에 보이는 게 있을 리 없고, 일행마저 없으니, 길을 잃지 않게 조심하며 계속 앞으로 갈 뿐이다. 두부마을에서 상학봉, 묘봉, 북가치까지는 2021년 메이데이에 진행과 우중 산행을 했던 코스[산행기]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벽이라 더욱! 그렇게 길을 재촉해 2시 54분에 '상학봉 2.2km'의 이정표를 통과하고, 3시 8분에 능선에 올라섰다. 오른쪽은 매봉으로 향하는데, 금줄로 막았다. 늘 궁금했던 왜? 매봉이 있는 활목고개에서 시작하지 않는지 확인하는 순간이다.
상학봉까지 남은 거리는 1.9km다. 그리고 본격적인 암릉의 시작이다. 상학봉을 향해 가며, 뒤에 쳐진 여성 등산객을 추월했는데, 길을 잘 모른다. 잘 모른다기보다는 길을 찾는 눈이 없다. 이번 산행의 코스에 관해 알고 신청했는지 궁금해지는 등산객이다. 어두워서 그럴 수도 있으니, 뒤에서 따라가며, 길을 가르쳐주다가, 이러다간 낙오할 거 같아 어쩔 수 없이 추월해 가자, 이번에는 부부다. 남편은 경험이 많은 산꾼이고 여성이 힘들어해 천천히 가고 있다. 그들도 추월해 3시 28분 이번 산행의 첫 번째 전망대인 암봉에 올라 기록을 남겼다. 그래봐야 저 아래 마을이지만. 그런데, 정말 속도가 안 난다. 지난 산행 때는 꽤 빨리 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 산행은 많이 늦어, 3시 35분 '상학봉 1.3km' 이정표를 통과했다. 출발지인 운흥리까지는 2.4km. 1시간 15분 동안 2.4km를 온 거다. 아니, 정상을 향해 가며, 이 속도는 빠른가? 어두워서 빠른지 늦은지 감이 없다.
다시 길을 재촉해 몇 사람을 추월하며, 이정표에서 13분가량 가니, 묘비다. '加平李公麟容之墓'로 기억이 난다. 2021년에도 묘는 어디 가고 세운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비석만 있나? 궁금해했던 묘비라, 뇌리에 박혔다. 당시 기억으로는 이 묘에서 정상이 멀지 않았다. 역시 기억대로, 비에서 5분 정도 올라가자, 등산 앱이 상학봉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줘, 비록 보이는 건 없으나, 그 순간부터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갔으나, 정상석, 정상 표지 무엇도 없다. 어디가 정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상이라 생각되는 곳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상학봉 0.7km'다. 0.07km, 즉 70m의 오기라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니다. 지난 2021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당황했던 게 떠올랐다. 그럼, 상학봉이 쌍봉인가? 뭐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 글을 쓰며, 등산 앱의 메시지를 보니, 상학봉이 아니라 상모봉이다. 당연히 국립공원 지도에는 없다!
상모봉을 지난 후로는 등산로가 거의 갑판 계단이다. 지난 산행 때도 이와 관련해 불평했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빙빙 돌기도 하고, 오르내리기도 하는 계단으로 가다 보니, 등산 앱이 상학봉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이번에는 맞아,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가, 4시 22분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노년의 산꾼 네 명이 이정표를 정상 표지라 여기고. 인증을 찍고 있다. 인증을 남기기는 애매한 위치에 이정표가 있고, 굳이 남기고 싶지도 않아. 기둥에 상학봉 명패가 붙은 이정표 사진만 찍고 길을 재촉하는데, 이정표 되로 정상석이 보인다. 2021년과 완전히 같은 상황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어쨌든 정상석도 사진으로 남기고, 그들을 추월해 다음 목표인 묘봉으로 향했다.
상학봉을 떠나 7분가량 가자, 또 등산 앱이 묘봉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줘, 역시 동영상을 찍으며 갔는데, 이번에는 그나마 정상석이 있으나, 묘봉이 아니라 '암릉'이다. 봉우리 이름이 암릉! 이 또한 지난 산행 때와 완전히 똑같은 실수로 '암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다! 당연히 국립공원 지도에는 없는 봉이나, 보은군에서 정상석을 세웠다. 묘봉까지 남은 거리는 0.7km. 그리고 보니, 상모봉이나, 암릉이나, 주 봉우리에서 700m 거리로 같다. 쌍봉이 맞나? 암릉의 고개를 넘자, 저 앞 바위 봉우리 정상에 앞선 일행의 불빛이 빛나고 있다. 묘봉이다. 그런데, 700m 수준을 넘어 보인다. 이정표가 틀렸다고 안 갈 것도 아니라, 서둘러 묘봉으로 향하니, 4시 49분경 묘봉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역시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알람이 울리며, 메시지가 팝업되는 바람에 동영상 촬영이 자동 중단됐다. 뭐가 방해했는지 보니, 만보기다! '(주)비글'님! 나는 만 보에 관심이 없다고요!
다시 동영상을 찍으며 암릉을 올라, 4시 55분 묘봉에 도착했다. 정상석은 지난 산행과 변함이 없으나, 당시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위험한 암봉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워서 그런가? 어쨌든 정상석을 기록으로 남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정상 너럭바위에는 대여섯의 일행이 이른 아침을 먹거나, 주변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정상 스캔이 끝나고, 밝아오는 여명 속에서 지나온 상학봉과 그 아래 마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삼각대를 이용해 묘봉의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고, 정상석이 있는 반대편으로 갔다. 이후 가야 할 능선의 모습 또한 기록으로 남겼다. 사진의 중앙 제일 뒤가 문장대다. 바로 그 앞이 이번 산행의 목표인 관음봉이라 생각된다.
현재 시각 5시 1분 여명이 밝아와, 랜턴의 도움이 없어도 갈 수 있을 거 같아, 일단 랜턴을 끄고, 600m 아래의 북가치로 향했다. 그런데, 나의 착각이다. 개활지에서는 사물이 보여 랜턴 불빛이 없어도 문제가 없으나, 숲으로 들어서니 보이는 게 없어, 다시 랜턴에 의지해 내려가 5시 16분경 북가치에 도착했다. 두부마을부터 여기까지는 2021년 메이데이에 왔던 구간이다. 혹시 밝은 날의 이 구간 모습이 궁금한 친구는 지난 산행기를 참고하기 바람! 이정표는 삼거리로 표기하고 있으나, 정확히는 사거리다. 직진 방향이 문장대 가는 길이나, 막은 상태라, 이정표에서 제거한 것뿐이다. 물론 지금까지와는 다른 거친 등산로도 있다. 이정표를 지나자, '입산 통제 안내'가 서 있다. 통제 이유는 북가치에서 문장대까지 2.9km가 암릉이라 위험해서! 2.9km에 불과하면 넉넉잡고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 문장대에 7시경이면 도착이다. 장각폭포는 10시! 그럼, 1시까지 3시간 동안 뭐하지?
북가치가 해발 754m의 고개라, 문장대 아니, 관음봉까지 229m를 올려야 해, 과히 높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기온이 높고 습도도 높아, 산행 시작과 동시에 땀도 나오기 시작해 이미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와중에 시간이 더 지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면 남는 3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장각폭포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땀을 삐질 거리며 북가치, 다음 봉우리에 도착하니, 전망대가 있어, 거기서 아직은 어두운 건너의 산세를 기록으로 남겼다. 올해 1월 19일 올랐던 백악산이다[산행기]. 당연히 당시 백악산에서 조망한 속리산도 이 구간이다! 위로 조금 더 가자, 눈앞에 암릉이 펼쳐진다. 어느 게 관음봉인지는 더 올라가 봐야 알 수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 숲 밖으로 튀어 나간 전망대가 보여 그 위에 올라, 백악산 능선과 관음봉 능선 사이의 운무에 싸인 마을을 기록으로 남겼다.
암봉을 우회하는 등산로가 나타나면 무시하고 암봉을 넘으려고 했으나, 반대편의 상황을 알 수 없어, 이번에는 앞선 산꾼의 지시인 리본에 철저히 따르기로 했다. 해서, 우회하는 등산로에 리본이 있으면, 오르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우회했다. 이후 반대편에 도착해 뒤를 돌아보면, 거의 직벽으로 지시를 따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잘 보면 못 내려올 것도 없다. 하지만 단독 산행이나, 다름없고, 가야 할 길이 멀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몇 개의 무명의 암봉을 넘어 관음봉으로 가는데, 길목에 앉아 쉬고 있는 등산객 둘이 있다. 의도한 건 아니나 그들의 대화의 주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거다. 어쨌든 좌우를 둘러보며 그들을 지나치려고 보니, 오른쪽으로 떠오르는 해가 보인다. 당연히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 가장 좋은 위치인, 앉아 있는 산꾼 뒤로 가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중 서 있던 산꾼이 사진 찍는 방향을 보더니, '일출'이라고 외친다. 그러자, 앉아서 쉬고 있는 노년의 산꾼이 '그래서,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거야!' 한다.
두 개그맨을 뒤로하고 10분가량 가자, 저 앞으로 절경의 암봉이 나타났다. 관음봉은 아닌 거 같고, 어쨌든 길목에 있으니, 올라야 할 봉우리다. 물론 그것도 기록으로 남기고 가, 6시 11분경 그 아래에 도착했다. 그런데, 암봉은 직벽이라 오를 수 없어, 그 암봉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있다. 그리고 우회해 100여 미터를 가자, 암릉 밑에 리본이 있다. 말인즉 암릉을 올라가야 하는데, 밧줄 따위는 없다. 그렇다고 우회로도 없어, 암릉을 기어오르니, 저 위로 노란 리본이 계속 이어지나, 등산로는 낙엽이 잔뜩 쌓인 너덜 계곡이라 진행이 쉽지 않다. 간혹 나타나는 흙바닥은 미끄럽다. 힘겹게 위로 가자, 전망대다! 당연히 그 위로 올라가 앞을 보니, 정상에 해가 걸린 능선이다. 제일 뒤가 문장대다. 그 앞이 관음봉으로 보이고, 그럼 해가 걸린 봉우리는 무명?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하니, 이 봉우리 아래가 ‘속사치’다. 그리고 다음이 관음봉인데, 지도로 보면 그 앞에 작은 봉우리가 있다. 초행의 고개인 속사치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동영상을 찍으며, 내려갔다. 그리고 주의 깊게 좌우를 살폈는데, 고개 좌우에 금줄을 설치했고, 그 앞에는 '출입 통제 안내'가 서 있다. 그럼, 직진은 해도 되는 건가? 6시 38분 고개를 지나, 바로 앞에 있는 낮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자, 등산로는 봉우리 정상을 우회한다. 속사치, 직전 암봉을 넘느라, 체력 소모가 심해 배도 매우 고파, 어딘가에서 김밥을 먹고 가려고 적당한 장소를 찾으며, 고개로 내려가니, 여기서 올라가면 관음봉이다. 고로 아침을 해결하고 가야 해, 주위를 둘러보니, 우회한 등산로 옆으로 큰 바위가 있어, 그 위로 올라갔다. 약간 경사졌으나,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은 후 땀에 전 윗도리를 벗어 나뭇가지에 걸치고 어제 심야에 산 김밥을 꺼내 아침을 먹었다. 덤으로 몇 달째 가지고만 다닌 오렌지도.
단독 산행에서 김밥을 먹자고 자리에 앉은 건 몇 년 만인 거 같다. 어쨌든 그렇게 김밥을 먹으며 아래를 보니, 산꾼은 다들 비슷한지, 아래 고개에 도착하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침을 먹거나 휴식을 취한다. 좋은 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도 체력 낭비라 생각하는 분위기다. 김밥과 오렌지로 아침을 먹고, 두 번째 물통을 깨끗이 비운 후, 복장을 재정비하고 바위에서 내려와 고개로 갔다. 남은 물통은 하나지만, 문장대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물이 있다는 게 기억나, 물 걱정은 하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에는 신선대까지만 가도 된다. 물론 산장이 영업한다는 전제하에! 본격적으로 관음봉을 향해 가끔 네발로 기기도 하며 오르자, 등산 앱이 관음봉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그 시각이 7시 28분으로 묘봉에서 세운 계획대로라면, 문장대에서 노닥거린 후 신선대로 향할 시간이다. 꿈이 컸다. 어쨌든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가는데, 암릉이 심상치 않다. 와중에 병목까지, 해서 중간중간 전망대에서 동영상 촬영을 중단하고 주변의 절경을 기록으로 남겼다.
다시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가, 7시 36분경 정상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정상 아래다. 말인즉 정상이라 생각한 곳에 거대한 바위가 있고 그 위에 정상석이 있는 게 보인다. 처음 그걸 보고,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저 위에다가 정상석을 설치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여성 산꾼이 올라가기는 했으나 내려오지 못해 쩔쩔매고 있고, 일행으로 보이는 조금 어려 보이는 여성이 사진을 찍으며, 내려오는 방법을 가르쳐주지만, 겁에 질려 떨고만 있다.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가,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바로 위로 올라가, 먼저 문장대로 이어지는 암릉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후 정상석도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위에 있던 처자가 '아저씨 살려주세요!' 한다. 해서 내려가게 해줄 테니, 인증이나 찍어달라고 협상했다.
이후 구체적으로 손과 발의 위치를 시범으로 보여 주며 밑으로 내려보내자, 생명의 은인이라며 고마워한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던 처자에게 핸드폰을 넘겨주고 인증을 남겼다. 정상에서 모든 걸 끝내고 걸어서 내려오자, 생명의 은인이라고 불렀던 처자가 인증을 찍은 처자에게 저 모습을 찍으라고 난리다. 저기를 걸어서 내려오는 사람은 아저씨가 유일할 거라며, 덕분에 내려오는 모습도 기록으로 남겼다. 와중에 그 처자가 바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등산화라 생각했는지, 어디 제품인지 묻는데, 사진을 찍던 처자가, '5.10'이라고, 바로 나온다. 그러자, 그 처자도 '아, 5.10!' 하는 거로 봐선 암릉도 많이 했던 친구들이다. 등산화의 무늬만 보고 지금은 아디다스에 합병돼 없는 제품을 바로 아는 것에 놀라, 나도 '잘, 아십니다!'라고 감탄의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그 사이 정상 아래에는 우리 일행 서너 명이 늘어 그 모든 걸 지켜봤다. 그리고 누구도 위로 올라갈 생각을 안 한다. 그런데, 다음 목표인 문장대로 향하는 길이 보이지 않아, 우리 일행 중 한 산꾼이 그 처자에게 다른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물었다. 원래 아래로 내려가는 밧줄이 있었는데, 그게 없어졌다며, 왔던 길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렇게 몇 마디 얘기를 나눠보고 이 처자들 또한 우리 일행이라는 걸 알았다. 버스에서 본 기억이 없는데? 어쨌든 그들과 몇 마디 얘기를 더 나누고, 문장대로 가기 위해 왔던 길로 관음봉에서 내려가, 정상을 우회하는 등산로로 가자, 밤치에서 문장대에 이르는 능선과 거의 판박이 능선이 나타난다. 그 암릉을 즐기며 앞서서 가는데, 바닥에 뭐가 기어가 자세히 보니 어린 뱀이다. 그런데 이놈이 도망가는 게 아니라, 얇은 가지를 타고 나무 위로 올라간다. 광합성 하러 나왔다가, 인간 따위는 무시하고 나무로 올라가기로 한 거 같다.
뒤에서 따라오는 일행이 대략 15~6명으로, 그중 걱정이 되는 건 대학생으로 보이는 커플과 큰일을 보고 난 후 처음 추월했던 여성, 그리고 부부다. 그런데, 그 부부가 그 여성에 관해 묻는다. 그 부부에 앞서갔는데, 그 여성을 봤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다. 나도 뒤에서 따라가며 길을 알려주기도 해, 어느 정도 아는데, 누구를 추월할 수 있는 산꾼이 아니다. 그 부부를 추월할 수 있었던 게 신기할 정도로, 그만큼 부부 중 아내가 이 산행을 힘들어한다는 방증이다. 어쨌든 뒤에 쳐진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애초 나처럼 장각폭포가 목표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마냥 지체할 수도 없어, 일행에게 9시까지는 문장대에 도착해야 1시까지 장각폭포에 갈 수 있다고 주위를 환기했다. 그러자 부부는 화북으로 내려가 택시를 타겠다는 반응이다. '9시까지 문장대'는 일행에게 주의를 주기 위함도 있으나, 스스로 각성하려는 게 더 큰 목적이다.
점점 가까워지는 문장대를 바라보며 낮은 암봉을 넘어 전진하자, 등산 앱이 문장대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그 시각이 8시 45분이다. 등산 앱이 정확하면, 50m만 가면 정상이다. 그런데 현 위치에서 그냥 봐도 최소 200m 이상은 가야 한다. 비록 사기일 망정 50m라니 기분은 좋다. 조금만 있으면 음지에서 탈출한다는 기쁜 마음으로 양지를 향해 가는데, 오른쪽 나무 기둥에 붙어 있는 딱따구리가 보여, 그걸 동영상을 찍었다. 물론 나무를 쪼는 모습을 담기 위함이나, 안에 벌레가 없는지 탐색만 하지 쪼지는 않는다. 해서 포기하고 문장대로 향하자, 계단이 반겨준다. 문장대까지 계단이다. 계단이 끝이 문장대! 그런데, 계단이 거의 쓰레기통이다. 술병부터 온갖 쓰레기가 다 있다. 와중에 태극기까지! 땅에 반 정도 파묻힌 태극기를 꺼내자, 아직 풀이 먹어 뻣뻣한 것이 버린? 강풍에 날아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거다. 해서 길목의 탐방센터에 가져다주려고 태극기를 들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위로 올라, 목표보다 8분 이른 8시 52분 문장대에 도착했다.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선 건 좋은데, 양지의 상징 뜨거운 햇살이 그래도 내려꽂혀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이런 환경이라면 음지가 더 좋다. 이런 날씨에 문장대에 올라간다는 건 미친 짓이고, 바로 앞에 두 개의 정상석이 있으니, 그걸 배경으로 인증이나 남기기로 했다. 먼저 작은 정상석은 버려져 더러워진 태극기를 들고, 다음 거대한 정상석은 그냥 인증을 남겼다. 물론 주변에 인기척이 전혀 없어, 삼각대를 이용했다. 음지에서 양지의 문장대로 올라설 때 주변에 등산객이 많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하긴 이 날씨에 제정신인 인간이 여기 오겠나! 인증을 남긴 후 아래로 내려가자, 그나마 대여섯의 등산객이 보인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미 물은 떨어졌고, 물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 능선 좌우 어느 쪽으로 내려가도 되나, 다시 올라오느라 그 물을 다 쓸 거 같아. 신선대로 가서 해결하기로 하고 바로 출발했다.
신선대 산장에서 막걸리 한잔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서둘러 그 방향으로 가는데, 등산 앱이 고지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줘 확인해 보니, 문수봉이다. 그리고 6분 후 청법대다. 아무리 햇살이 뜨겁고, 몇 번 지나간 능선이라 잘 안다고 해도 그냥 앞만 보고 가는 건 속리산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절경이 보이면 잠깐씩 멈춰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9시 29분, 주 능선에서 애타게 그리워했던 신선대 반경 50m 내라는 등산 앱의 메시지다. 이 앱을 쓴 후 어떠한 메시지든 그 음성을 듣고 기뻤던 순간을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쁨이다. 그런데, 50m가 너무 길다. 메시지가 나오고 3분을 가자, 신선대로 오르는 계단이 나타나고, 저 위로 산장이 보이다. 그나마 문을 열었는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 위에서 들리는 산꾼의 대화!
부족한 잠과 폭염에 머리가 어질어질 하나, 물이 있다는 희망에 힘을 내 계단을 올라, 산장에 도착해 주변 식탁을 둘러보니, 다 우리 일행이다. 대장과 두 명의 산꾼은 막걸리를 마시고 있고, 다른 테이블에는 홀로 우동인지 국수인지로 아침을, 또 다른 테이블에는 휴식하는 산꾼이다. 대장이 나를 보더니, 수고했다고 해, 뒤에 처진 사람이 많으니, 장각폭포 출발시간을 1시에서, 1시 30분으로 늦춰주면 안 되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갈령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안 된다고 단호하게 거절이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알아서 생존하니 걱정말란다. 하긴! 당장 내가 죽을 거 같은데 남 걱정할 상황이 아니라, 막걸리 작은 것과 감자전을 주문했다. 그리고 막걸리를 들고 테이블로 가는데, 대장이 엉덩이가 찢어져 속옷이 보인다고 해, 손으로 더듬어 보니, 손가락이 쑥 들어가, 관음봉에서 그랬다고 하자, 다들 수긍한다. 그런데, 관음봉에 오른 산꾼이 몇이 안 되는 분위기라, 대장과 같이 있던 산꾼이 핸드폰을 꺼내 인증 보여주며 자랑이다. 그리고 태극기에 관해 물어 여기까지 들고 온 과정을 얘기하고, 최소 나보다 23명이 앞서갔는데. 이걸 발견하지 못했냐고 되물었다.
감자전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는 동안, 대장 팀은 갈령으로 출발했고, 우동을 먹던 산꾼은 장각폭포로 탈출하겠다며 역시 출발했다. 그리고 조금 지난 10시 정각에 핸드폰이 요란한 경고음을 발해 확인해 보니, '폭염특보'다. 이미 산행에는 최악의 날씨가 될 거라는 걸 알고 왔으니, 놀라울 건 없으나, 그래도 경고 문자를 받으니, 기분이 싱숭생숭해, 주변의 경치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자, 대학생 커플 중 남자 친구만 다른 일행과 나타났다. 해서 여친은 어쨌냐고 물었더니, 화북에서 택시 타기로 하고 내려가며, 본인에게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니, 종주를 계속하라고 해 여기까지 오기는 했지만,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사이 나도 먹고 마실 걸 다 한 후라, 시원한 생수 500mL 한 통과 같이 계산 후 두 처자가 도착하는 걸 보고, 10시 15분경 산장을 떠났다.
신선대를 떠나, 10시 26분경 경업대 반경 50m 내라는 메시지를 들었고, 10시 29분 '천왕봉 1.5km' 이정표를 통과했다. 장각폭포 마감인 1시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남았다. 남은 거리는 7km 내외, 고로 시간은 충분하다. 그리고 10시 45분경 비로봉 반경 50m 내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그 메시지를 듣고, 5분 정도 가자, 저 앞으로 천왕봉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나, 다행인 건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는다는 거. 10시 56분경 천왕봉에서 0.9km, 즉 900m 거리의 통천문을 지나며 곰곰이 생각하니, 이산 저산 다니며 많은 통천문을 통과했지만, 하늘로 올라가는 제대로 된 통천문은 지리산 천왕봉 직전이 유일하고, 나머지는 그거 가로 굴에 불과하다. 뭐 이런 쓸데없는 기억을 더듬으며 천왕봉으로 향해 11시 4분 호식총에 도착했다. 과거 기억으로는 여기서 왼쪽으로 길이 있다. 해서 확인해 보니 길은 여전히 있지만, 정규 등산로가 아니라, 모험하지는 않기로 하고, 계속 직진했다. 길을 잃고 헤매도 좋은 날씨가 아니다!
11시 6분 법주사 갈림길에 도착해 이정표와 지도를 기록으로 남긴 후 경사도를 잠깐 확인했다. 그런데, 장각폭포 방향의 경사도에 관한 정보는 없다. 하긴 여기는 법주사 삼거리라 없는 게 당연하다. 삼거리에서 직진해 5분가량 가니 계단이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끝없이 올라간다. 물론 그 중간에서 헬기장으로 좌회전하지만. 이것도 기념이라,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가, 11시 12분 장각동 갈림길에 도착했다. 마을까지 남은 거리는 4km, 아는 것보다 짧다. 남은 시간 1시간 47분. 시간은 충분하나, 그것도 서둘러 내려갈 때 얘기고, 더 중요한 건 신선대 산장에서 들고 온 물이 떨어져 간다는 거. 고로 빨리 계곡에 도착해야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서둘러 헬기장으로 올라가, 바로 하산로를 찾아 장각동으로 향했다. 여기 고도가 1,000m 내외, 장각동이 두부마을과 비슷한 고도라면 내려가야 할 높이가 700m에 달해 쉽지 않은 하산이 예상된다.
장각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예상보다 기복이 심하지 않고, 경사도 완만한 잘 다듬어진 등산로라 내려가며, 의외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역시 입이 방정이라고 했던가! 500여 미터를 가자, 모든 게 변했다. 급경사에 거의 너덜 수준의 길이다. 땀에 흠뻑 젖은 등산복으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갈수록 갈증은 심해지는데, 하산로 상태는 최악이라, 점입가경이다. 어쨌든 사고가 나지 않게 긴장을 유지하며 내려가, 11시 47분경 저 아래 평지가 보인다. 거의 다 왔다. 당연히 신이 나서 내려가니, 헬기장이다. 지도에서 본 임시 헬기장! 고로 급경사 하산길이 끝났다는 게 아니다. 역시 예상대로 헬기장을 지나자 다시 지옥의 하산로다. 그래도 계곡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을 품고 내려가자. 언제부터인가, 물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해서 정확히 들었나, 궁금해 멈춰서 귀를 기울였다. 와중에 저 아래에는 이정표도 있다.
정확히 들었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다. 역시 명품 귀다! 다시 하산해 이정표에 도착해 보니, 장각동까지 남은 거리는 1.6km다. 현재 시각은 11시 56분, 장각폭포 기준 마감까지는 1시간 4분이 남았다. 험한 하산길이 끝나가고, 여유도 어느 정도 있으니, 계곡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해서 오른쪽 계곡의 적당한 위치를 확인하며 내려가다가, 등산로 갑판 계단 옆이 그나마 접근이 쉬워 보여,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계곡으로 들어갔다. 먼저 적당한 바위에 주저앉아 배낭에서 아큐아슈즈를 꺼내 신고, 등산화와 양말은 준비한 비닐과 파우치로 잘 밀봉한 다음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물로 들어가 먼저, 생수통에 물을 받아 배가 터지도록 마신 후 들고 내려갈 물을 채워 한쪽에 뒀다. 이후 태극기를 씻었으나, 세재 없이는 깨끗이 씻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바위에 올려놓은 다음, 다른 산행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대략 6분 정도를 씻었다.
윗도리를 빨아 입고, 머리를 보호할 수건을 깨끗이 빤 후, 적당한 수분을 유지한 채 머리에 둘러쓰고, 계곡에서 나와 마지막 남은 오이 한 조각을 먹으며 장각동으로 향했다. 그런데, 마을로 가며 보니, 의외로 계곡에 알탕 하기 좋은 장소가 많았다. 등산로와 가깝다는 게 문제기는 하지만, 이 장각계곡 코스는 등산객이 많이 찾지 않아 크게 우려할 건 아니다. 생각보다 괜찮은 계곡을 감상하며 내려가, 12시 33분 '장각동 1.0km' 이정표를 통과했다. 마감까지 남은 시간이 27분이라 여유가 넘친다. 그래도 페이스를 유지하며 가, 12시 43분경 장각동에 도착했다. 그런데, 장각폭포에 관한 정보가 어디 없어, 폭포 소리가 들리나 집중하며 시멘트 포장 마을 도로를 따라 내려가, 45분경 '화북 지구 세부 안내도'에 도착해 폭포의 위치와 거리를 확인했다.
이런 낭패가 현 위치인 장각동에서 폭포까지 1.5~2km 정도의 거리다. 현재 시각 12시 45분, 달리면 마감인 1시까지 도착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폭염특보 아래서 뛴다는 건 자살 행위라, 최대한 빠른 속도로 폭포를 향해 갔다. 와중에 핸드폰 배터리의 남은 용량은 10% 이하라 언제 기능을 상실할지 모른다. 가끔 핸드폰으로 시간만 확인하며, 최대한 빨리 내려갔으나, 여전히 폭포 소리를 들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의 산세로 봤을 때 목적지인 주차장이 멀지 않아 보여, 마감 4분을 남겨두고 기사에게 전화해 5분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화북에 다녀올 테니, 삼거리까지 나와서 기다리란다. 응? 화북? 그럼, 화북으로 탈출한 일행을 데려온다는 건데! 예정에 없던 거다. 결과적인 얘기나 대장과 협의 없는 버스 기사의 독단적인 판단이다. 고로 내게는 그만큼 더 여유가 생겼으나, 그렇다고 방심할 수 없어 정신없이 아래로 내려가며 보니, 주차장은 만원이고, 삼거리 200여 미터 위의 장각폭포는 가족 단위 피서객으로 목욕탕이다. 핸드폰의 배터리가 언제 끝날지 몰라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그런 모습을 관찰하며 길을 재촉해 1시 10분경 삼거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거로 산행을 마감했다. 물론 배터리가 방전되기 전 삼거리에 도착했다고 기사에게 전화하는 걸 잊지 않았다.
3
버스 정류장에 앉아, 화북으로 중탈자를 실으러 간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간이 정류장이 완전히 찜통이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면 강력한 햇살에 머리에서 김이 날 지경이다. 해서 여기까지 오며 바짝 마른 수건을 적실만한 물이 흐르는 개울을 주변에서 찾았으나. 없다. 정확히는 농수로는 있으나, 그것마저 바짝 말랐다. 그저 버스가 빨리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거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핸드폰이 꺼진 상태라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으나, 기사와 통화 후 5~6분이 지나, 화북 방향에서 빨간 버스가 오는 게 보여, 기쁜 마음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 정차한 버스를 타며, 큰 차를 끌고 다니며 중탈자를 구원해 준 기사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자리로 가 바로 핸드폰 충전했다.
당연히 나만 타면 버스가 출발할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와 통화하기 전, 기사와 연락한 다른 승객을 기다린다. 그때야 차에 탈 때 기사가 다른 산꾼에 관해 물었던 까닭을 알았다. 당시에는 ‘나 외에는 없다.’고 답했다. 해서 기다리는 사람이 혹시 두 여성 산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니다. 일찍 하산해 상오리에서 한잔하고 있던 진정한 산꾼 다섯이다! 그들이 차에 탄 1시 18분경 버스는 갈령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그 가는 길이 내가 생각했던 터널이 아니다. 당연히 터널을 지나, 갈령 휴게소가 집결 장소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터널 위 구도로의 진짜 갈령이다. 인솔 대장이 휴게소에서 나올 때 갈령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의 뜻을 이제야 알았다. 갈령에서 기다리는 승객의 전화를 받기도 하며, 달린 버스는 1시 25분경 목적지 도착했다.
분위기 파악을 위해 시원한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갈령 표지석이 있고, 표지석 뒤로 쉼터가 있다. 그리고 그 조금 아래에 간이 화장실도. 대간 종주팀의 인솔 대장이 여기를 접속 지점으로 삼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도로는 아직 쓸만하나, 아래로 터널이 뚫려 대간꾼이 아니면 찾지 않는 고개다. 고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장소다. 그리고 산행의 목적인 속리산 종주를, 마감 두 시간 전에 종료한 종주꾼 예닐곱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종주꾼과는 처음 하는 산행이라, 그 특성을 몰랐는데, 대간꾼과 같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린다. 종주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고, 기관이 인증하는 대상이 아니면, 그냥 지나친다. 인솔 대장에게 장각폭포 마감 시간을 30분만 늦추자고 했을 때, 갈령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안 된다고 했는데, 맞다! 하긴, 그 대부분이 몇 년간 대장과 산행한 사람들이다. 나만 해도 여섯 번째다.
먼저 도착한 종주꾼들은 버스 짐칸에 있는 짐을 내려, 상을 차리거나, 짐칸에 싣고 온 물로 씻느라 부산스럽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계곡에 물이 없다고. 해서 아래로 내려가 보니, 계곡은 보이나, 바짝 말랐다. 그런데, 상류 방향에서 물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버스로 돌아가 핸드폰은 충전 중이라, 패드를 들고나와, 계곡으로 갔다. 귀가 정확했다. 상류로 조금 올라가자, 물이 흐른다. 적당한 장소를 선택해 아예 바위에 바람막이를 깔고 앉아, 발을 담그고, 패드로 책을 보며 20여 분간 신선놀음을 하고 있으니, 이상한 기운을 눈치챘는지, 여성 산꾼이 나타났다. 그때 마침 바지를 벗고 물속에 꿇어앉아 무릎을 식히던 중이라, 잠깐만 기다리고 한 후 바지를 입었다. 바지를 벗은 건, 신선대 산장에서 인솔 대장이 엉덩이 부분이 찢어졌다고 한 말을 확인하기 위함도 있다.
암릉에서 엉덩이 신공을 발휘하면 늘 입는 상처다. 지난주에 이미 과하게 상처 난 바지 한 벌을 버렸다. 재빨리 바지를 입고, 여성 산꾼에게 올라와도 된다고 하자, 그도 위에서 씻을 거니, 아래에서 올라가려는 사람을 차단해 달란다. 그러겠다고 하고, 계속 책을 보고 있는데, 산꾼이 나타나 물을 보더니, 말려도 듣지 않고 올라간다. 그러더니, 위에 몇 마디 한 후 더 높이 올라갔다가 조금 있으니, 내려오는데, 아예 옷을 입은 채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리고 다른 두 산꾼이 나타나고, 여성 산꾼이 버스로 돌아가는 걸 보고 난 후인 2시 7분경 자리에서 일어났다. 2시가 지났으니, 서서히 출발 준비를 해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갈령 표지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표지석의 뒷면을 기록으로 남기고, 버스에 타서 보니, 옆자리 여성 산꾼도 도착했다.
그런데, 관음봉에서 내 인증과 내려오는 모습을 찍어준 친구다. 예상치 못한 인연이다. 해서 어떻게 왔는지 물었다. 같은 방향으로 하산하는 건 알고 있었으나, 산악회 버스를 타지 못했으니, 궁금했다. 그 친구 말에 의하면 마을 주민의 차를 얻어 타고 갈령까지 왔다고. 역시 붙임성이 좋아야 한다. 나보고 살려달라고 했던 나이 많은 친구가 대단히 붙임성이 좋다. 그렇게 궁금증을 해결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어, 3시 직전에, 잠에서 깨어 보니, 인솔 대장이 바쁘게 인원을 파악하고 다닌다. 2시 52분 현재 4명이 도착하지 않았으나, 그중 한 명은 초반에 중탈해 버스로 올 일이 없다고 했으니, 3명이다. 그 한 명이 내가 큰일 보고 가장 먼저 추월한 여성이다. 3시면 나머지 사람 도착 여부와 상관없이 출발할 거 같은 분위긴데, 다행히 59분경 모두 도착해 3시 정각에 서울로 출발했다.
갈령을 출발한 버스는 문의 청남대 휴게소에 들렸으나, 뜨거운 햇살 아래 사진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아, 볼일을 보러 화장실로 갔는데, 남자 화장실도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다. 특히 남미 지역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게, 단체로 어디를 다녀오는 듯했다. 일단 볼일을 보고, 수건을 빨아 머리에 뒤집어쓴 후 식혜를 사러 편의점으로 갔으나, 없다. 해서 생수를 사서 그 자리에서 반을 마시고 버스로 돌아갔다. 버스가 다시 출발하고 잠이 들었다가 깨어 가끔 지도 앱으로 현재 위치를 확인하며 책을 보고 있는데, 창밖의 분위기가 이상해 유심히 살펴보니, 반대편 차선의 차량의 와이퍼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핸드폰에 경고음이 떠서 확인해 보니, 폭우경보다! 정확히 평택을 지나고 있다. 날씨 참!
폭우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는데, 화성을 지나자, 비가 내린 흔적도 없다. 일단 신갈에서 승객이 내리고, 이후 죽전, 5시 36분경 양재에 도착했다. 대장과 기사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내려,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양재역으로 가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구산역 도착 두 정류장 전에 마누라가 전화했다. '폭우가 내리고 있는데, 우산 있냐?'고, 어제 출발 전 챙길까 하다가 짐만 는다는 생각에 두고 왔다. 역 구내 편의점에서 사겠다는데, 우산 많다며, 도착하면 전화하라고 한다. 구산역에 도착해 웬만하면 그냥 집으로 가려고, 계단 아래에서 배낭에 매달린 모자를 쓰고, 배낭도 레인 커버를 씌운 후 한 계단씩 올라, 역 밖이 가까워질수록 이 상태로 그냥 갈 수준의 비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냥 가도 되나, 전화 안 했다고 시달릴 생각에 바로 전화했다.
당연히 아들을 보내겠다는 얘기를 들을 거로 생각했는데, 전화는 안 받고 계단 정상에서 마누라가 부른다. 물론 여분의 우산을 가지고. 의외의 상황에 놀라며 위로 올라가 우산을 받아 들고 ‘아들은 어디 갔냐?'고 물으니, 딸내미와 둘이 영화 보러 갔단다. 그렇게 둘이 집으로 가다가, 마누라를 먼저 보내고, 편의점에서 빨갱이 페트병 하나를 샀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따뜻한 소나기를 맞은 후 폭염과 폭우 속에도 무사히 귀가한 걸 감사하는 저녁을 겸해 하산주를 마시는 거로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던 속리산 관음봉 산행을 최종 마감했다.
천왕봉에서 갈령 삼거리까지 구간을 다시 달릴 이유가 없어, 안내산악회 계획과는 달리 천왕봉 직전 헬기장에서 장각폭포 코스로 하산해 '두부마을(운흥리) → 상모봉 → 상학봉 → 암릉 → 묘봉 → 북가치 → 속사치 → 관음봉 → 문장대 → 신선대 → 비로봉 → 헬기장 → 장각계곡 → 장각마을 → 장각폭포 → 상오리'의 19.2km(트랭글) 구간을 10시간 52분 동안 달렸다. 이동 9시 54분, 휴식 58분!
계획에는 없던 장각마을에서 상오리까지의 2.2km가 추가되면서 그만큼 거리와 시간이 늘었다. 결과적으로 낙오!
관음봉 구간, 즉 북가치에서 문장대까지의 구간을 통제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반대편인 밤치에서 문장대까지의 암릉 구간과 비슷하다. 둘 다 비탐! 고로 밤치에서 북가치까지가 속리산 최고의 바위 능선 구간이다. 고로 밤치에서 북가치까지 암릉 산행도 시도해 볼 만하다!
충북과 상주에서 폭염특보 문자를 보냈을 정도의 날씨라, 햇살이 내리쬐는 곳에서는 수건을 둘러쓰고, 가져간 물 세 통으로 부족해 신선대 산장에서 물 한 통과 막걸리를 추가했고, 장각계곡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물어 퍼 마시는 거였다. 이런 날씨에 산행을 강행한 산꾼과 안내산악회에 감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