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티가는 길’을 다시 묻다 : 한여름 한티가는 길(2)

[carpediem]

  연화임도는 신나무골에서 북쪽 조양공원(묘원)까지 약 8km의 임도를 일컫는다. 그런데 실제 행정구역상 지도를 확인해 보면 신나무골을 출발해서 콘크리이트 임도 길을 따라 올라가게 되면 콘크리이트 길이 끝나고 흙길이 시작되는 지점이 거의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에서 달서리로 넘어가는 경계지점이 되어 그 이후로는 행정구역상 달서리의 임도 길을 걷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은 길 왼편의 봉우리(장원봉, 약 300m)를 중심으로 한 산줄기가 연화리 경계를 따라 계속 이어져 있어 이 봉우리 아래를 따라 걷는 만큼 편의상 연화임도라고 부르고 있는 듯.

  연화임도도 처음에는 이 일대 산의 산림 관리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인위적 길의 모습으로 사라지고 어느 듯 제법 호젓한 숲길로 변화되었다. 좁은 오솔길 대신 다소 넓은 폭을 지닌 임도지만 산 중턱의 오른쪽을 따라가며 길 옆으로는 참나무, 아카시, 오동나무, 소나무 등을 비롯한 다양한 큰 수목들이 하늘로 뻗고 그 가지들이 옆으로 뻗어 큰 그늘을 만들고, 그 아래에는 나무 주위로 다양한 종의 풀들이 자라나서 그야말로 사계절 내내 다양한 수풀들을 색깔별로 만나며 넉넉한 숲길을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신나무골에서 전망쉼터까지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한티가는 길'의 연화임도는 초중간부의 약간의 오르막을 제외하고는 거의 평지 숲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 주어 걷기에 편안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그러므로 걷는 가운데 스스로 시간을 음미하며 마음 내키는 대로 조절해가며 걸어갈 수 있다.

  연화 임도 속에서는 때로는 나만의 생각에 잠기기도 하며 주위 수풀들을 만나며 나의 감각을 새롭게 열기도 한다. 흙길에 접어들면서 습관적으로 주머니 속 묵주를 꺼내어 기도하면서 걷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나 이어폰을 가져와서 길을 따라 나만의 멜로디를 들으며 걷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외에는 대부분 온전한 침묵 속에 홀로 길 을 걷는다. 혼자 천천히 임도를 따라 걸어가며 길 위에서 무심코 지나가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를 듣기도 하고 나무와 수풀을 바라보며 꽃 하나에 감탄하거나 나무가 그려내는 전체의 모습에 나만의 느낌을 그리며 서로 교감을 나눈다. 그리고 때로는 나의 내면에서 밖으로 미처 드러내어 놓지 못했던 여러 생각들을 꺼집어 내어놓고 골똘히 생각하며 걸어가기도 한다. 그러므로 연화임도를 걸을 때는 첫 시작에서부터 끝자락 갈림길에 이를 때까지의 한 시간 남짓한 길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과 작은 기쁨들이 늘 있었다. 

20여분 걸은 후 잠시 연화임도를 벗어나 작은 오르막 길을 따라 임도를 벗어나 오르는 지점에 2구간의 첫 안내석(전망쉼터 3km 전)이 있다. 안내석이 자라난 여름 수풀 속에 묻혀져 있어 이들을 뜯어내어 안내석을 보다 잘 보이게 할까 하다가 주위의 안내 리본 시그널이 충분하게 매달려 있는 듯 해서 원래의 그 모습 그대로 두기로 했다. 

송전탑 옆을 따라 올라가게 되는 다소 급한 오르막 소나무 숲길을 거쳐 다시 임도와 만나기 위해 올라야 하는 마지막 나무계단.

나무 계단을 거의 올라설 무렵 지점에서 시선 높이와 비슷하게 연화임도를 바라보다. 이제 40분 정도를 온전하게 즐기기 시작하는 지점. 물 한모금 마시며 연화임도에서만 느끼는 걷는 즐거움의 설레임이 이 곳에서 시작된다.  

  이 지점부터의 연화 임도에서는 오르막 또는 내리막의 긴장감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걷는 걸음의 긴장된 마음을 다소 풀어놓고 속마음을 낮추고 보다 단순하게 만들어 걸어갈 수 있다. 자연스럽게 걷는 무심한 걸음 속에 나만의 그 날 분위기에 따라, 그 시간의 느낌에 따라 그 때의 느낌에 맞추어 숲길을 걷는다.    

걸어가는 가운데 멀리 조망을 허락하는 곳에서 일자형의 산자락과 함께 그 오른쪽으로 45도 경사선 아래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듯 익숙한 3구간의 칠곡군 지천면과 동명면을 경계짓는 건령산과 그 아래의 어림짐작으로 가늠해보는 칠부 능선 상의 작은 차마고도길, 그리고 오른쪽 산마루금 경사선 아래의 여부재. 

자박자박~~ 걷는 가운데 연화임도의 걷는 소리와 함께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둔탁함이 불편하게 잠시 계속 전해져 온다. 그동안 차량과 자전거들이 다녀가는 탓에 길 중심으로 길 가장자리 사이로 움푹 파여진 상태로 되어 칠곡군에서 1년여 전에 이 곳에 작은 분쇄 자갈을 깔았다. 그런데 깔린 자갈들이 제법 큰 것들이어서 걷는 이들을 다소 불편하게 만든다.  

길 속에서 온전히 혼자 걷기를 불편하게 하는 크고 모난 자갈들. 때로는 자갈이라기보다는 모난 돌맹이에 가깝다. 운동화를 신고온 이들이 걸을 때는 발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둔탁한 감으로 인해 제법 불편해 하고, 개인적으로 조용히 홀로 걸을 때도 자갈을 밟으며 계속 자박자박거리는 소리에  다소 거북해진다. 한 때 호미와 모종삽을 들고와서 큰 자갈을 골라낼까도 생각했지만, 크고 모난 돌들도 어느 날 이 돌들도 누군가를 위해 편안하게 될 존재들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 단념했다. 인위적으로 이 곳에 뿌려졌지만 이들도 자연적으로 먼훗날 작아지거나 흙에 묻혀져야만 하는 돌맹이들이었다. 

누리장 나무. 약간의 누린내가 난다고 해서 누린내 나무로도 불리는데 여름철의 꽃과 함께 가을에 맺는 열매는 예쁘기 그지 없다.  

이제 온전한 연화임도로 다시 돌아왔다. 그동안 발바닥이 다소 불편한 감은 있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편안하게 걸어왔다. 늘 넉넉한 품을 지닌 숲길이기에 이 곳에서는 늘 아무 생각없이 무심코 편안하게 걷는다.

그런데 이 곳에서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았다. 별 생각없이 혼자 정신줄을 공상과 침묵, 때로는 작은 발걸음에 나를 내어놓고 걷는 가운데 1백미터 남짓 지점 앞에 어미 멧돼지 한 마리와 어린 새끼 멧돼지 두 마리가 길 가장에서 땅을 파서 나무뿌리인가를 열심히 먹고 있는 모습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멧돼지는 아직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 어떻게 해야 하나? 긴장감도 분명 있었고.... 멧돼지를 요즘 여러 산속 숲길 주변에서 서로 의식하며 교행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본인의 가는 길 바로 앞에서 직접 마주치기는 무척 오랫만이었다. 순간적으로 스틱으로 자갈돌을 치며 약간의 소리를 작게 내었다. 어미 멧돼지가 순간적으로 나를 뒤돌아 보고.... 본인 역시 긴장~ 결코 짧지 않은 1,2초가 흘렀을까? 어미 멧돼지는 아기 멧돼지를 데리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듯이 가는 길 앞쪽으로 막 달리다가 바로 오른쪽 산 아래로 내려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서로 놀라고 당황스러워 한 듯..... 안심하면서도 웬지 미안했다. 이 곳에 사는 이들에게 지나가는 한 나그네가 이 곳의 주인행세를 했으니.... 올해 들어 어느 산에서나 뱀, 꿩, 고리니, 멧돼지의 개체수가 적지 않게 불어나 있는 것을 흔치 않게 확인한다.   

어느 듯 조양공원으로 가는 연화임도에서 벗어나 오른쪽(동쪽)의 달서리 923번 도로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바로 5분 거리의 지척에 전망쉼터(스템프함)이 있어서 내내 이 곳에서는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이 곳에서 쉴까, 아니면 전망쉼터에서 쉴까? 라고.... 여럿이 연화임도를 걸어오게 되면 이 곳에서 쉬게 되고, 홀로 걷게 되면 대부분 전망쉼터에서 쉬게 되는 듯.

달서리 마을 방향, 오른쪽(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또 다른 느낌을 가져다 주는 오솔길. 임도의 넉넉함 대신 오솔길 숲길로 들어서면서 마치 스스로는 또 다시 한 번 더 정제된 숲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전망쉼터에 이르기 직전, 가는 길 왼편(북쪽)으로 멀리 칠곡 황학산과 백운산, 그리고 그 뒤편으로 유학산 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이 곳의 산군 일대는 한국전쟁때 낙동강 방어선을 두고 북한군과 국군, 미군간의 다부동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졌던 곳이었다.

전망쉼터(달서리). 이 곳에 한티가는 길을 걷는 이들을 위해  최근 그늘막이 설치 되었다. 전망쉼터에서는 동쪽과 남쪽 방향으로의 조망이 허락되어 있다. 

동쪽 방향. 가장 뒤로 일자로 서 있는 건령산(3구간 금락정 및 작은 차마고도 길이 있는 산)과 오른쪽의 여부재를 한 눈에 바라보는 것은 전망쉼터에서 첫번째 즐길 거리가 된다.

전망쉼터 그늘막 아래에 앉아서 물 한모금 마시며 정면 남쪽으로 시선을 옮겨보다. 산자락 사이로 난 길은 지천면 면소재지로 나가는 길. 그늘막 아래에 앉아 한참을 쉬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한꺼번에 밀려들기도 했다.

전망쉼터에서 댓골지로 내려가는 길. 온전한 산길의 모습이 이 곳에 있다. 누군가와 동행하게 되면 산길을 걷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늘 가파른 경사로 인해 조심스럽게 걸어내려가기를 당부하기도 한다. 반대방향에서 올라오는 이들은 이 길이 제법 오르막이 되어서 힘들다는 얘기를 하기도 하는 곳. 길 주변에는 고사리류와 둥글레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근육질처럼 생긴 서어나무 한 그루가 선듯 눈에 들어왔다. 극상림(Climax)의 대표적인 나무로 알려져 서어나무를 바라보게 되면 늘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또한 다른 나무들과 달리 나무 줄기가 인간의 몸통같은 질감과 매끈한 느낌을 가져다 주어 유심히 바라보는 나만의 습관이 있다.  

연화임도 산 자락으로부터 거의 내려왔다. 거의 내려선 지점에는 산에는 내려온 물을 담는 댓골지가 작은 고갯길 아래에 있다.

댓골지에 내려서니 이 곳도 지난 한 달사이에 흙길 대신 콘크리이트 길로 포장되어 있었다. 바로 앞의 넓은 곳은 낚시꾼들이 버려놓은 쓰레기와 비온 후에는 길이 질퍽질퍽해지고 잡풀들이 우후죽순처럼 막 자라나 있는 곳이었는데 어느 듯 콘크리이트 길로 바뀌어져 청결해졌다. 그러나 흙길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뭔가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 여름의 댓골지. 제법 더운 여름 한낮이어서 그런 지 낚시를 하는 이들은 전혀 없었다. 덕분에 댓골지 산 아래에 내려오는 물이 들어오는 지점까지 내려가 댓골지 전체를 바라보았다. 수생식물의 대명사 마름이 연못의 반 이상을 덮고 있다.  

댓골지에서 달서리 마을로 내려가는 길 주변에 의외로 철지난 멍석딸기꽃이 새롭게 피어 있었다. 

징검다리로 넘어가는 논두렁 가장자리에서 메꽃을 발견하다. 연분홍색의 자연색이어서 늘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을 끌어낸다.

여름 들녁은 초록으로 넘쳐나 있었다. 국민학교 여름 방학 때 할머니 집을 찾아간 시골에서 들녁의 논두렁 쉼터로 김매기와 농약을 뿌리는 머슴과 일꾼들을 위해 나가는 중참 중 누렇고 스펀지 같은 술빵 한 조각을 얻어 먹기 위해 할머니를 마냥 따라나섰던 기억이 마치 얼마되지 않은 듯 새록새록 떠올랐다.   

징검다리 부근도 여러 풀들이 성큼 크게 올라와 길 주위를 덮고 있었다.  

징검다리 주변의 물 위는 수생식물 마름이 대세였다.

며칠 전 큰 비가 내린 후여서 이 곳 이언천은 맑은 물 그 자체. 이 곳 이언천은 북쪽 칠곡 다부동에 있는 황학산에서 발원하여 남쪽 2km 아래에 있는 제법 큰 못인 지천지로 흘러가고 지천지 물은 남쪽으로 흘러가 금호강으로 이어진다.

바람이 불면 부들부들 ? 또 다른 수생식물, 부들도 올라와 있었다. 

923번 도로를 건너 신동성당 묘지 옆 팔각정으로 올라서다. 잠시 휴식. 한티가는 길에서도 팔각정을 전체적으로 세 곳이나 지나치게 되어 이번 기회에 팔각정 유래를 찾아보았다. <팔각정 : '팔괘'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팔괘는 자연계 기본 구성 요소인 하늘, 땅, 우레(여름날 번개 천둥치는 소리), 불, 지진, 바람, 물, 산을 의미한다. 그리고 옛사람들은 하늘은 동그랗고, 땅은 네모라고 생각하여 팔각의 형태가 하늘과 땅 사이의 중간 정도라고 가늠하여 산 정상부 자락에 많이 세워지게 되었다.>

양떼 목장으로 가는 숲길. 오르막길을 오르고 난 뒤 솔가리가 쌓인 길을 편안하게 걷는다.

사슴벌레를 발견하다. 카메라를 갖다대니 잠시 더듬이를 안쪽으로 접어넣고 꼼짝달싹 하지 않는다. 사슴벌레 바로 왼쪽 옆에는 왕개미?

양떼목장에 도착하고 스템프를 찍다. 철망 사이로 유산양 한마리가 길 위로 넘어와 있었다. 본인을 보고도 그냥 태연하게 무심하게 앉아 있었다. '어떻게 넘어왔지 ?'라고 나는 궁금해 했다.

양떼목장 쉼터에서 잠시 쉰 후 길을 나서니 철조망을 넘어 길밖으로 나와 있던 불량 유산양 한 마리는 본인이 다가가자 횡선으로 설치된 줄 사이(10cm 정도)로 몸을 집어 넣더니 쏙하며 빠져 들어가 바로 자기들 편쪽으로 사라진다. 감탄~ 여러번 밖으로 나와본 듯한 익숙한 솜씨였다. 유산양 아래의 풀밭에는 면양들이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다.

큰갓버섯. 독버섯? 여름 야생버섯은 위험 그 자체.

양떼목장 길을 따라 창평임도로 넘어가는 길은 수풀로 우거져 있다. 그 위로 칡꽃이 주렁주렁...

그 아래는 손가락 반마디 크기의 작은 버섯들과 떨어진 칡꽃잎 자락들이 깔려져 있었다.

귀한 산도라지꽃을 만났다. 산도라지나 더덕은 예전에는 산에서 쉽게 만나는 것들이었는데 요즘에는 더덕냄새가 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채취해가고 산도라지도 역시 목에 좋다는 명분으로 채취꾼들에 의해 거의 사라지고 없다. 산도라지라고 해서 누군가가 캐어내 지지 않기를......

예전에 없었던 나무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양떼목장 바깥의 창평임도로 넘어가기 직전의 야생동물 조심 구역. 작은 웅덩이가 있었지만 의외로 요즘 이 곳에는 멧돼지가 찾아온 흔적이 거의 없었다.

다른 산으로 넘어가는 갈림길. 창평임도 직전에 바라보게 되는 위쪽 산마루는 여름철에도 싱그러운 풍경을 보여준다.

이 일대도 최근 옻나무들이 심어졌다. 봄이 되면 위쪽 산자락을 따라 봄나물 채취하러 오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올해는 새로운 식수와 함께 벌목 정리를 해서 그런 지 이 곳을 찾아오는 이들이 휠씬 적어진 듯.

더운 여름날. 찜통같은 날씨 속에 이제부터 시작되는 땡별 창평임도 오름길을 바라보다.

여름철 이 곳을 걸을 때면 요나서의 아주까리 나무를 생각하게 하는 나무. 개오동나무같기도 하고... 작년 누군가는 이를 잡목으로 여겨 나무 전체를 분질러 버렸다. 그러나 올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나무는 씩씩하게 올라와서 제법 큰 나무로 자라나 있었다. 

이 곳을 지나며 요나서의 아주까리 나무를 생각하다. 아주까리 나무가 시들어버리자 요나는 내리쬐는 햇볕에 기절할 지경이 되어 하느님께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 "화가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라고 푸념했다.

한여름 땡볕 길을 따라 묵묵하게 걷다. 역설적으로 여름철에 이 길은 특히 나에게 존재감이 크다. 굵은 땀방울을 흐르게 하고, 걸으며 앞을 바라보는 것이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게 할만큼 강한 자외선이 내려쬐지만, 더운 날씨 속에 나의 내면속의 고통과 불평을 꺼내어 발산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이 길에 있다. 또한 온전한 흙길 대신 자갈길이어서 더욱더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잠시 옆으로 시선을 돌려보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하는 길.... 양떼목장 안의 도로 위로 얼마전 걸어온 숲속 길을 그려보다. 왼편 산너머 지나온 연화임도 쪽 산들을 그려보기도 하며 잠시 숨 고르기.

땡볕 창평임도 변곡점에 세워진 정자 위로 올라가 난간에 걸터 앉았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빼앗기다. 한 달 전인가, 가실성당에서 출발해서 이 곳으로 넘어올 때 별 생각없이 360ml 생수 한 병만 달랑 들고 왔다가 더운 날씨에 갈증의 연속이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도 역시 별 생각없이 등산용 수통(1L) 한 개의 양만 가지고 왔지만 어느 듯 수통에는 단지 한 모금의 물만 남아 있었다. 물 한모금을 귀하게 여기며 조심스럽게 마셨다. 물이 만일 시장 상품으로 변해 버린다면..... 어떻게 보면 우리 사는 곳도 생수가 분명 상품으로 변화되어 있다.

정자에서 창평지와 그 너머 건령산 3구간 한티가는 길 일대를 그려보다. 창평지 위 쌀바위에 올라서고 왼쪽 산마루길을 따라 건령산 아래 금락정으로 넘어가는 길을 눈과 마음으로 그리다. 

숲길 대신 임도 길을 걸었다. 한 달 전, 산마루 길을 따라 걸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웬지 비록 한여름 오후였지만 땡볕임도 길을 걷고 싶었다.

나의 차림새와 비교해 보다. 모자에 고글을 쓰고 있고, 스틱도 들고 있고, 단지 다른 것은 등산 배낭 대신 간편 슬링빽을 매고 있었다. 

여름철의 창평임도 길은 숲길에 비해 오랫만에 걷는 편. 예전과 달리 큰 산불이 난 이 곳에 그동안 산림계획에 따라 심어진 나무들이 이제는 제대로 자리를 잡고 올라와 있었다. 5년 후 정도면 이 일대도 우거진 나무들로 인해 작은 숲로 변화될 것이 분명했다.  

창평지로 내려가는 임도로부터 벗어나는 갈림길. 예전과 달리 나무표지석 이외에 내려가는 길 입구는 주황/하늘색 시그널이 적지 않게 부착되어 있어 극락사로 내려서서 돌아오는 이들은 없을 듯 했다.

창평지에 내려서다. 2구간 돌아보는 길 스템프를 찍다. 창평지는 여전히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