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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마태오) - 주님 저는 당신 앞에 늘 이기적인 모습인 줄 알면서도 라자로처럼 당신을 증거 하지도 못하고 마리아처럼 당신의 아픔을 함께할 용기도 없습니다. 저는 누군가 당신 때문에 나를 욕이라도 할라치면 대항하기보다 숨기에 급급한 그런 어리석은 자입니다. 늘 관중의 맨 뒤쪽에서만 당신의 그 아픔을 바라보며 가슴 안에서만 함께 아파하는 저는 그런 어리석고 교활한 자입니다. 알게 모르게 당신은 내 살아온 삶에 지금껏 무탈하게 지나올 수 있도록 개입해 주셨을 터인데 저는 이득이 보이는 것에만 마음을 돌리고 눈을 돌리고 그런 저는 당신 앞에 인면수심 후안무치한 인간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저의 죄와 잘못은 보시지 않으시고 언제나 제가 위급해 부를 땐 응답해 주셨습니다. 주님 당신의 수난 때에 성당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 앞에 설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주님 저의 하느님, 그래도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멘.
- 당신의 말씀은 늘 제 자신을 부끄럽게 합니다. 마치 지금 제 곁에 있는 것처럼 저는 당신께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지금 제 곁에 있는 것처럼’이란 내 말 자체가 이미 당신을 모른다한 베드로와 다를 바가 없겠지요. 항상 언제나 우리와 유형무형의 존재로 함께 있겠다하셨던 그 말씀을 저는 잃어버렸습니다. 주님 유다가 주님을 팔아넘긴 것처럼 저도 수없이 주님을 팔았고 수없이 배반했습니다. 그러고도 이리 뻔뻔하게 당신의 말씀으로 고픈 배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은 유다일까요, 베드로일까요, 아니면 되살아난 당신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당신의 상처에 손가락을 쑤셔 넣은 토마스일까요. 주님 당신은 왜 이런 저를 당신 곁으로 부르셨습니까? 위험에 처한 사람이 있다면 서슴없이 당신의 모습으로 뛰어들지만 그 위기에 나의 위기가 더해진다면 저는 당신의 모습을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당신이 밉고 내가 밉습니다. 내가 당신을 울리고 웃기듯 주님 또한 제게 그런 존재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많이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 제가 짊어진 죄의 무게는 오직 당신만이 덜어주실 수 있습니다. 저의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저의 아버지! 아멘.
- 아버지... 저를 육으로 낳아주신 아버지께서는 봄날 이맘때 즈음에 돌아가셨습니다.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저는 앞질러 아버지 앞에 갔었습니다. 저는 일곱 살에 아버지께 장기를 배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늙으셨고 저는 성장하여 아버지께서는 어렸던 저의 모습이 되었고 저는 오히려 아버지의 늠름함을 빼박았습니다. 여름날 시골에 들러 마루에 앉아 아버지와 장기를 두었습니다. 판판히 제가 이겼습니다. 한판에 천 원짜리 내기 장기였습니다. 저는 집에 들러 어머니 몫, 아버지 몫의 용돈을 이미 드렸으니 부모님께서 몇 천원 잃어도 주머니가 두둑하시니 마음이 든든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그 생각이 나면서 깊은 후회를 하였습니다. 그때 장기를 져 주었어야 했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슬퍼서가 아니라 막심한 후회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내막을 모르는 친인척들은 저러다 관속에 같이 들어가겠다고 걱정했습니다. 왜 그때 져드리지 못했는지, 그때 져드렸더라면 아버지께서는 자신감으로 힘이 나서 더 오래 사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1994년 봄에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울었습니다. 주님의 죽음 앞에서 유다도 깊이 후회를 했을 것입니다. 그놈의 돈, 은전 서른 닢, 그게 뭐라고. 저도 유다도 똑같겠지요. 그래도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를 버리지 않으실 분이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우리아버지께서도 제가 그 몇 천원이 탐나서 이긴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계시겠지요. 많이 보고 싶습니다. 이제 50이 된 아들. 참으로 못났지만 많이 보고 싶습니다.
- 세례를 받기위해 10년을 넘게 기다렸습니다. 집안이 불교를 믿었기에 그 벽을 넘기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99년에 이곳 대구에 들어왔습니다. 형이 확정되고 기결이 된 다음 맨 처음 걸음한 곳이 마태오 공소였습니다. 당시에는 공소였습니다. 실형을 받고 앞이 캄캄했으며 심적으로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당에 발을 딛는 순간 뭔지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편지를 했습니다. 이제는 절 놓아 달라고, 성당에 다니게 해달라고, 하느님 아니면 안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주님 만난 지 12년 만에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갈망했던 주님만이 ‘내 어린 양이구나.’를 알아보실 인호를 받게도 되었습니다. 그때는 성경, 성경관련 서적 모두 저의 양식이었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는 견진도 받았습니다. 내 깊은 내면에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기름의 표지도 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은총으로 지금까지 내 형사적인 수많은 죄 속에도 저는 보호를 받았지만 주님께 받는 구원의 은총만큼 반대의 길을 저는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향하여 걷는 길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견딜 수 없는 죄책감에 레지오서기로서 합당히 않은 것 같아서 레지오 활동도 포기하고 탈퇴를 했습니다. 죄스러움의 눈물, 감당하지 못함의 눈물, 나만 편하고자 도망치는 내 모습의 서러움. 주님 그런 저를 주님 당신께서는 언제나 바라보고 계시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요즘은 도통 밤잠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호산나! 호산나! 저의 주님. 아멘.
-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져 기뻐해야 하는가요? 아니면 주님의 죽음에 슬퍼해야 하는 것인가요? 언젠가 오래전에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가 있던 세상에 무슨 변화가 있을까? 내 빈자리가 잠시라도 허전하고 공허함을 누군가 느낀다면 그래도 죽은 내가 덜 섭섭할까? 내가 죽게 되면 누가 나의 죽음을 슬퍼할까?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은 과연 있을까? 나에게도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의 기억을 연례행사의 하나처럼 떠올립니다. 신정, 구정, 추석 기일... 그리고 이제는 내가 어느 아이의 아버지로 살면서 아버지의 역할에 내 아버지가 필요로 할 때입니다. 주님 당신도 제 육신의 아버지도 늘 제 가슴에 담겨있습니다. 제 삶에서 늘 함께하시는 아버지가 되어 주소서.
- 주님, 제가 당신이 친히 세우신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은 내가 당신께서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이신 줄 알고 찾았겠습니까? 당신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고 영원불멸하신 분이신줄 알고 있었겠습니까? 내가 처음 당신을 찾았을 그때에 저는 당신의 역사를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경건한 모습으로 당신께 제사 드리는 모습에 저분 비록 십자가에 매달리신 오래전의 분이지만 대단한 분이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세우신 교회 천주교 안에서는 교만이 없이 겸손하게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어릴 적 벗이자 동무인 친구 어머니, 벙어리에 가난했지만 7남매를 혼자서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한결같이 노점에서 감을 팔아 살아가시던 그리스도인의 모습, 그런 무수한 당신의 선한 어린양들의 모습이 저를 당신께 인도했습니다. 당신의 무덤이 빈 무덤이라야 당신이 저의 주님이시고 당신의 무덤에 당신이 누워 계시면 저의 주님이 아닌 것도 아닙니다. 어제 신문에 당신께서 친히 쓰셨다는 고대 문서 파피루스 조각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예수께서 결혼하셨고 아내가 있었다고 그들이 말했습니다. 설령 그렇다 하여도 여전히 당신은 저의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시며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제가 당신 안에 있어야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있고 당신이 제게 있으므로 제가 당당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 당신의 구구절절한 그 생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저의 주님으로 변함이 없는 제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 제가 못났을 때나 잘났을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당신의 은총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저의 아버지. 아멘.
- 내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세상입니다. 저 또한 예외 일수도 없습니다. 저는 가끔 예수님 공생활 때의 사람들은 참 행복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은총이 있었으니까요. 주님 아십니까? 이 시대는 과학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발달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학이라는 것이 당신을 발가벗기려고 연구에 연구를 더합니다. 그러나 더 웃긴 것은 그 과학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대단하신 우리 주님, 이 세상에 오실 때부터 하늘로 올라가신 지금까지도 세상을 당신의 이슈로 만드신 우리 주님. 제안에 주님의 대한 신앙심이 사라진다면 제게는 이 세상도 없을 것입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그 과학은 당신 안에 머물 뿐입니다. 당신이 그 옛날 무덤에서 부활하셨듯이 지금도 유형무형으로 우리 곁에 부활해 계심을 저는 믿습니다. 제가 당신 앞에서 뒷걸음 칠 때나 당신을 보고 눈을 감거나 당신 앞에서 등을 돌릴 때나 주님은 언제나 저를 바라보신다는 것, 그것을 제가 알기에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저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제가 알고 있으니까요. 이런 영악스런 지금도 저를 보고 웃고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아버지, 아멘.
김석태(바오로) - 오늘 복음 말씀을 필사를 하고 다섯 번을 더 읽고 묵상을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예수님은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시고 인간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셨습니다. 몇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예수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말씀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우리들과 나 자신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립니다. 부활이라는 단어와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저는 천천히 끝까지 갈 것입니다. 언젠가는 어머님과 예수님께서 저의 손도 잡아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정재덕(프란치스코) - 화창한 햇살과 함께 완연한 봄의 기운으로 세상은 따뜻한 기운이 돕니다. 화사한 벚꽃이 지니 개나리 진달래가 삭막하기만한 도시 화단에서 오고가는 이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참 좋은 계절입니다. 주님의 고난주일 사순시기 경건하게 보내고 예수부활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주님 부활의 은총에 감사드리며 기쁜 마음을 가져야하는데 뜻하지 않게 나라 전체가 뒤집히는 큰 사건이 생겼습니다. 배 사고로 인해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의 참사소식에 온 국민은 관심과 애도하는 마음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8일이 지났지만 신문 방송에서 온통 독점으로 들려주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 한사람이라도 살아 구조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에 주님의 사랑으로 그 아픔을 다독여 어루만져주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레지오도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구하는 기도와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전 국민 모두에게 크나 큰 아픔과 시련을 준 이번 사고로 크고 작은 우리나라 모든 시설과 국민들이 이용하는 모든 시설들의 안전을 위해 더 엄격하게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후진국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처방이 아닌 한발 앞선 시스템 체계를 도입하여 어떤 큰 사고가 생겨도 신속하게 대응해 체계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될 것입니다. 가끔 한 번씩 잊을만하면 터지는 안전 불감증 국민의식도 문제입니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라지만 국민의식은 그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큰 사고 때마다 우리나라는 한 번씩 왜 이럴까 한숨이 나옵니다. 안전 불감증을 고치고 또 고쳐 모두가 믿고 신뢰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도록 모두가 새롭게 나야할 것입니다. 한번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 부디 따뜻한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모두가 잠든 깊어가는 밤 시간에 작은 보안등 아래 누워서 글을 쓰노라니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옵니다. 나의 작은 마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초라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