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여행 추억 / 김석수
지난 1월 오키나와에 다녀왔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난다. 나하 공항 근처에 노천 온천이 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물끄러미 본다. 어디선가 날아온 비행기가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멀리서 배가 들어오고 머리 위에 갈매기가 날고 있던 기억이 새롭다. 세월이 참 빠르다. 오키나와 자색 고구마와 채소를 섞어서 볶은 ‘참프루’ 요리가 떠오른다. 호텔에서 아침마다 먹던 ‘낫또’가 맛보고 싶다. 모노레일 전철을 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다리가 아프면 카페에서 아내와 함께 마셨던 맥주가 그립다.
홍콩에 아내와 함께 갔다. 20년 전에 가족이 함께 3년 동안 살던 곳이다. 도착한 다음 날 맨 처음 우리가 살던 집이 있는 ‘타이쿠싱’으로 갔다. 자주 다니던 ‘시티 플라자’와 놀이터가 있는 ‘쿼리베이 파크’는 예전과 같다. ‘시티 플라자’에서 예전에 즐겨 먹던 ‘딤섬’ 요리를 맛봤다. 주말이면 가끔 찾던 ‘파카산’도 올라갔다. 아이비시(IBC)에서 예전에 함께 교회에 다닌 사람도 만났다. 의사인 리바이와 그의 아내 비비안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예전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종일 ‘라마섬’과 '섹호 비치'를 산책했다.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들어가서 바다를 보면서 숲길을 걸었다. 이전에 왔던 곳이지만 다른 느낌이다. 길거리에서 만난 영국인과 이런저런 이야기했던 일이 떠오른다. 그는 홍콩 센트럴 호텔에서 와인 바를 운영한다. 포도주보다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한다. "국가보안법이 통과된 뒤로 젊은이와 기업인이 홍콩을 떠난다. 홍콩에서 살기가 어렵다.”라고 이야기했다. 한국국제학교 신 교장의 초청을 받아서 학교에 갔다. 내가 근무하던 때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교장실 비서, 유니스 노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녀는 나와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 내가 쓴 ≪홍콩의 교육과 국제학교≫가 교직원의 필독서라고 해서 놀랐다.
봄에는 상하이와 사오싱, 항저우, 취저우, 쑤저우, 시안에 다녀왔다. 20년 만에 그곳 방문은 처음이다. 비 선생은 푸등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와이탄에서 맛집으로 알려진 ‘상하이 회관’으로 아내와 나를 안내했다. 상하이 정통 요리를 맛봤다. 게 가루 비빔밥을 떠올리면 지금도 군침이 돈다. 상하이의 오 선생은 하루 휴가를 내고 상하이 5대 정원 중의 하나인 ‘구이원’을 구경시켜 주었다. 저녁에 가족과 함께한 식사는 잊을 수 없다.
사오싱의 주 선생과 항저우의 옹 선생도 고맙다. 주 선생은 사오싱 ‘유학생 협회 세미나’에 나를 초청했다. 그 협회는 사오싱 출신으로 영어권에서 유학한 사람으로 구성된 모임이다. 취저우에서 세미나 참석도 새로운 경험이다. 젊은이를 많이 만나 함께 어울릴 수 있어서 좋았다. 모두 내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뉴질랜드에서 공부했다는 그녀의 언니와 조카도 만나서 즐거웠다. 옹 선생은 사오싱에서 항저우까지 오는 승용차를 보내 주었다. 그는 서호 인근에 있는 민박집을 잡아 주고 저장대학교 근처 맛집에서 아내와 나를 대접했다. 조식으로 배달 음식을 시켜 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쑤저우의 구 선생은 역으로 마중하러 나왔다. 멋진 호텔을 예약해 주었다. 저녁에 그녀의 부모와 함께 식사했다. 토속 음식점으로 해산물 요리가 일품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공무원이고 어머니는 학교 사서로 일하고 있다. 외동딸인 그녀는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식사한 뒤 쑤저우 서호를 걸으면서 함께 이야기하고 야경을 구경했다. 시안의 정 선생은 남편과 함께 시안 북역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첫날 저녁에 ‘천하 제일면’ 식당에서 함께 먹었던 면 요리는 좋았다. 저녁 늦게까지 '따옌타 광장'을 함께 돌아다니면서 구경한 뒤 헤어졌다. 따렌에서 온 50대 부부는 화산에서 우리를 안내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맸을 것이다. 정저우의 고 선생은 시안 호텔과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관람권을 예약해 주었다. 그는 위쳇으로 내게 시안의 유적지와 맛집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여름에는 따렌과 선양, 칭다오에 갔다. 따렌은 비행장에서 시내까지 가까워서 좋다. 택시비가 5천 원뿐이 나오지 않았다. 수박이 싸서 날마다 사서 먹었다. ‘우호 광장’ 근처 호텔에서 묵었는데 아내는 가성비가 최고라며 만족했다. 고속 기차로 따렌에서 선양으로 갔다. 맹 선생이 보낸 김 교수가 역으로 마중 나왔다. 그는 선양 관광대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청나라 때 자금성인 ‘선양 고궁’과 최명희의 ≪혼불≫에 나오는 ‘서탑 거리’를 안내해 주었다. 칭다오에서는 ‘5.4광장’과 ‘중산 공원’, ‘잔교’를 둘러봤다.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해 주었던 맹 선생과 김 교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공항까지 가는 택시를 무료로 태워 주었던 싱가포르 청년도 생각난다. 금년에 여행하면서 여기저기 빚진 사람이 많다. 한 해를 보내면서 그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