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년 사이 학교 안팎에서는 독서며 논술이라는 말이 마치 화두처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나라의 교육 정책과 대학의 선발 기준이 서로 늘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주고 있고, 또 이 둘의 변화에 따라 학교 현장과 사교육 시장까지 덩달아 민감하게 움직이다 보니, 이 땅의 학부모와 아이들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런 세태에 태연해지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우리 회원이면 누구나 어린이 책을 읽습니다. 우리 회원이면 또 누구나 아이들에게 우리가 읽는 어린이 책을 읽어줍니다. 내 아이이든 이웃 아이이든 말이지요. 우리는 어린이 책을 읽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을 가꾸려 애씁니다. 또한 이 어린이 책이 우리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과 삶을 가꾸어줄 것을 믿고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줍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그것도 책 한 권이라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면서 덤으로 얻어 갖는 선물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처음부터, '이 책을 읽어서 무엇을 얻어야지, 또는 내가 어떻게 되어야지.' 하고 벼르고 바랐다면 과연 이 선물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현재 우리 아이들이 놓인 교육 현실은 어떻습니까? 책을 어떻게 봅니까? 책읽기를 어떻게 이해합니까? 책은 학습 능력을 높이는 좋은 도구이며, 책읽기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방편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해서 주는 책은 또 하나의 교과서일 뿐이고, 이렇게 해서 하는 책 읽기는 공부의 연장일 뿐입니다. 여기에는 아이들도, 아이들의 삶도 설 자리가 없습니다. 오직 교육 목표와 교육 효과만이 가치있고 중요하게 생각될 뿐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책 읽어주기 활동과 학교 현장과 다른 단체에서 하고 있는 독서 교육(독서 지도)이 어떻게 다른지, 얼마나 다른지를 2006년 전국 시도 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독서교육 계획을 살펴보면서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2006년 현재 전국 시도 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독서교육은 학교 도서관 활성화 계획과 발맞추어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학교 도서관 활성화 계획이란 2002년에 교육인적자원개발회의에서 심의·확정한 「학교도서관 활성화 종합방안」5개년(‘03~’07) 계획을 말합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도서관 시설 확충에 이미 ‘2003년에서 ’2005년 동안 총 1,800억원의 예산을 투자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육인적자원부는 올해 다시 총 730억원을 투자하여 1,462개 학교도서관을 신설 또는 리모델링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전국 교육청에서 내놓은 독서교육 활성화 계획의 큰 흐름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도서관 활용 수업을 적극 권장하고, 도서관 시설을 활용한(전남교육청의 경우 수업시수 5% 이상 활용 권장) 독서 교육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육과정과 연계한 독서지도와 교과별 독서지도 매뉴얼을 개발하고 보급한다고 합니다.
전국 시도 교육청에서 내놓은 독서교육계획 가운데 몇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서울-*학력 증진을 위한 교과별 독서지도 매뉴얼 개발·보급
*학교 도서관 활성화를 위한 지속적 지원(학교 도서관 설치 및 리모델링 지원, 디지털 자료실 설치 지원, 학교 도서관 운영 지원)
*독서300운동(학습 독서와 연계한 「1주 1권 책읽기 운동」전개 교과별, 단원별 관련 도서 선정·확충, 도서관(실)을 이용하는 교수·학습 전개 및 과제 부여, 주제 중심의 독서와 주제 토론 학습 전개)
*학교도서관 리모델링
경북-*교육 과정과 연계한 독서 지도, 학교 도서관의「종합 학습 정보실」
*권장 도서 500권 확보 및 읽기 지도
* 자율 평가 인증 : 월별 우수 학생 표창
*학교도서관 리모델링
충북-*교수·학습을 도와주는 학교도서관 운영
전북-*교육과정과 연계한 독서교육
*실천 중심의 독서교육 전개 : 독서 발표, 독서 토론, 다독상 시상 등, 교과별 평가시 독서실적 반영, 우량도서 선정과 독서의무제 실시
전남-*좋은 학교도서관 만들기」사업 추진 : 도서관 리모델링 100교(시설), 교육과정과 연계한 「좋은 책 읽기」 운동 추진(학습),
*학년별 필독도서 수료제 운영 : 초1~고1까지 학년별 60권 읽기(재학 중 10년간 600권 읽기)
*교육과정과 연계한 독서지도 : 과제 독서, 상황 중심 독서(과제, 공부)
제주-*독서·논술교육 환경 및 여건 조성(학교도서관 현대화 사업의 지속적 추진 - 학교도서관 활성화(리모델링, 장서확충) 사업)
*「제주 책 축제」개최-「독서의 달(10월)」기념 행사로 추진 - 학교 독서교육 활동 사례 및 독서기록장 전시(콘테스트 포함) - 독서 골든벨 퀴즈대회 - 전도 초등학생 동화구연대회 및 전도 중·고등학생 시낭송 대회 - 책 교환장터 운영 및 모교 책 보내기 운동 전개
*교육과정과 연계한 독서활동(교과별, 단원별 독서과제 부여(수행평가 반영 등) )
부산-*교육과정과 연계한 독서교육 강화(인문·사회영역 독서매뉴얼 개발·보급
*독서교육지원시스템과 연계한 수행평가 모델 개발·보급
),
*독서교육지원시스템 활용 강화(독서퀴즈 문제은행 추가 개발 : 400권(2,000문항), 초· 중·고용 300종
*학부모용 프로그램 개발·보급
*시스템 운영 효율화를 위한 찾아가는 연수 실시 : 100개교 교사 4,000명 , 학교도서관 리모델림 지원
대전-*도서관 자료를 활용하는 수행평가 활성화(교사, 교과협의회 등에서 수행평가 과제 선정시 도서관 활용을 통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과제 선정)
살펴본 대로, 전국 시도 교육청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어느 교육청이나 독서 교육을 하려는 목적은 다 똑같습니다. 학습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아이들이 한 책 읽기를 하나의 틀로 정리해서 이것을 대학 입시에 반영하겠다고 합니다.
학교 안에서 학교 도서관을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독서교육을 계획하고 있고, 교과와 연계해서 독서교육을 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언뜻 보면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독서교육은 결국 독서를 학습 능률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그 의미를 떨어뜨릴 게 뻔합니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공부이고 과제이며 평가가 될 것입니다. 학교가, 교육청이, 교육인적자원부가 아이들에게 독서교육을 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뜻과 목적을 두고 뭔가 대단히 깊은 의미를 싣고 싶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책과 아이들을 이해하는 관점이 참으로 얄팍하고 치졸하다는 느낌을 떨치기가 어렵습니다. 책 읽기로 교육적 효과만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는지, 책 읽기의 결과를 대학 입시에서의 선발 기준으로만 삼아야 했는지, 참으로 씁쓸하고 서글프기만 합니다.
우리는 책 읽기로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책을 그저 책으로서 읽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읽는 책이 재미있으니 읽고 책 읽기가 좋으니 그냥 읽습니다. 책을 읽는데 재미도 없고 즐겁지도 않는데, 억지로 읽지는 않습니다. 책 읽는 게 좋아서, 또 재미나서, 그리고 즐거워서 읽을 뿐입니다. 그러면서 차츰 이것 저것 아는 것도 많아지게 되고, 느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책을 읽는 처음에는 목적하지 않았지만, 생각도 앎도 깊어지고 넓어지고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내 안으로 두었던 눈길을 이웃과 바깥 세상으로 돌릴 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려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책 읽는 즐거움을 알기를 바래서이고, 또 아이들 스스로 책을 읽는 마음을 내도록 돕기 위해서이지요. 그리고 책을 즐겁게 읽고 진정으로 행복하게 되고, 그 안에서 차츰 차츰 느리더라도 온전히 지식도 생각도 마음도 키울 수 있기를 바라지요.
잘못된 독서교육이, 대학입시에서 수행평가를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생각하면 걱정이 많이 됩니다. 아마도 우리가 그 동안 온몸으로 막아온 독서이력철 문제가 또 다시 불거져 나오게 되겠지요. 또 그러다 보면 논술시장은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이게 되겠고요. 우리 회가 이런 흐름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함께 지혜를 모아 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