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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지덕정신의 한 중심: 겸손의 세 가지 표현: 성실하고 신중하며 검소하다
의경오씨문화전승
2024년 07월 20일 22:13
그림
1. 겸손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왕위는 권력(폭력과 강제력 포함), 부(돈과 미녀 포함), 지위, 영광을 의미하며 가장 많은 최고의 생명자원을 장악했음을 의미한다. 청나라 사학자 황종희(黃宗羲)의 『원군(原君)』은 왕위에 오른 사람의 막중한 책임과 노무를 지적하고 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위를 추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람들은 오조 태백이 왕위를 세 번 양보했다고 하지만, 태백이 왕위를 세 번 양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선조들도 있다. 심오회 자료실에서 각지의 오씨 족보를 뒤지던 중 오씨 족보 한 권의 서문에 오태백이 왕세자의 자리를 삼양했다고 명시돼 있었다. 본인은 이 오씨 족보의 서문의 저자가 오태백의 행위를 진지하고 객관적이며 정확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자료를 보면, 주나라에서는 오태백이 왕위에 오른 적이 없어 왕위를 양보할 수 없었고, 오태백이 왕세자 자리를 내준 것은 확실하며, 자신은 태자를 맡지 않고 세자 자리를 버리고 둘째 동생 중옹과 함께 형만지구(현재의 대별산지구)에 와서 문신을 단발하고 자호구오(自號口句)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오태백은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즉, 오태백은 형만의 땅에서 오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고 나라를 세워 국군이 되어 왕위에 올랐다.
공자는 오태백에 대해 "삼이양천하무득(三以让天下無得)이라 한다"고 칭찬했다. 공자의 총명함은 오태백이 '왕위를 내줄 것인가' '왕세자 자리를 내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교묘하게 피한 채 오태백이 천하를 내줄 것인가 하는 점만 드러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공자가 오태백을 칭찬할 때는 춘추 오나라의 국력이 가장 강했던 때인데, 이때 오나라는 그 명성이 자자하여 화하에 떨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가 극단적인 언어 어휘로 오태백을 극찬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춘추 오나라 왕실이 오태백을 선조로 모시는 것을 공자가 알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때 오나라가 약하고 외지고 모욕적인 소국이었다면 공자가 이렇게 극찬했을지 의문이다.
사람들, 특히 오씨(吳氏)족이 공자에 대해 '지덕의야'라고 극찬할 때 간과해서는 안 될 두 가지다.
물론 오태백의 일생을 보면 오태백은 단순히 '삼이양천하(三以让天下)'가 아니라 '자호구오(自號句吳)'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면모를 갖고 있다. 역경건괘(易經乾卦)의 말처럼 천행건(天行健)이니 군자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이다.
오태백의 삼이양천하는 역경곤괘(易經坤卦)처럼 지세는 곤하고 군자는 후덕으로 물건을 싣는다. 그러나 공자가 오태백의 '천행건(天行健)'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천행건, 군자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개척진취는 지세곤, 군자는 후덕재물(厚德在物)과 같은 위대함, 같은 덕행과 도행(道行)이기 때문이다. 역경에 이르기를 대도는 간결하고 곤은 간능하다.
공자가 오태백의 '천행건(天行健)'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천행건(天行健)'의 무덕무도(無德無道)가 아니라 '천행건(天行健)'의 면은 여전히 덕이 있고, 다만 동주 때 예붕락악(禮崩樂坏)한 상황에서 공자가 오태백의 '지세곤(地勢坤)'의 면은 오태백의 겸손한 정신과 겸양을 극구 추앙한 것은 분명하다.
공자는 오태백의 '삼이천하(三以天下)'의 '지세곤(地勢坤)'의 면모를 지덕(知德), 즉 태백의 지덕정신, 그 중심에는 겸손(谦逊)이 있었다. 이제 오씨족은 태백정신과 지덕문화를 꽃피우자, 즉 겸손의 정신을 꽃피우자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태백의 지덕한 겸손정신을 고양할 수 있을까. 오만하고 발호적인 태도로 태백의 덕을 기리는 겸손정신이 아니라 태백의 덕을 기리는 겸손정신이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본인을 비롯한 일부 오씨 종친들은 태백 중옹과 오씨 선조의 공적을 선전할 때 종종 교만한 기색을 드러내며 걸핏하면 소 제일 왕 같은 말을 쓰곤 하는데, 이는 명백히 겸손한 태도가 아니며 태백의 지덕한 겸손정신을 진정으로 고양할 수 없는 태백의 정신이 아니라 오히려 거만한 정신을 고양하는 것이다. 따라서 태백정신과 오씨문화를 선양하는 데 있어 일부 종친은 본인의 진지한 반성과 시정 노력이 필요하며, 오씨 선조의 업적을 홍보할 때 부족한 점과 쉽지 않은 점을 지적하고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두 친구 사이의 대화를 한 번에 듣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한 사람이 그의 오씨 친구를 조롱하면서, 너희 오문화는 무식하게 들린다, 너희는 무식하다. 겸손한 정신으로 태백지덕의 겸손한 문화를 알릴 수 없었던 오 씨족에게는 오 문화가 넓고 깊다거나, 세가 제일이다거나, 삼양왕이다거나 하는 따위의 말에 반발할 법도 한데, 그 오 씨는 우리는 무식하니 더 열심히 문화를 배우자며 싱긋 웃었다. 이렇게 겸손함을 보이면서 조롱을 풀었다. 겸손정신과 지덕문화는 겸손한 태도로만 고양될 수 있다! 약간의 오만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 오씨 족보의 서문에는 오태백이 왕세자의 자리를 물려준 것이 바로 겸손한 태백의 지덕정신을 고취한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오씨 선조들의 역할론에서 보이는 겸손한 태도는 우리 오씨 후손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역경에 보면 겸괘 6효가 모두 길하니 이는 천도이고, 반대로 오만하면 필연적으로 불길한 것이 천도다.
이것도 사적으로 알 수 있다. 삼국시대 관우가 동오의 손권에게 아들딸 사돈 얘기를 꺼내자 관우는 개딸이 어찌 범과 어울릴 수 있겠느냐고 거만하게 말해 손권을 개라고 욕하는 격이 됐다. 관우가 왜 손권을 그렇게 거만하게 대하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손권은 2대에 속하며 앉아서 지위와 명성을 누리는 사람이고, 관우는 자기 분투로 지위와 명성을 얻은 사람이고, 손권은 평생 한 번도 칼로 사람을 베지 않았을 것이다. 관우는 수많은 장수 병사들의 머리를 베었기 때문에 손권을 얕잡아 보았다. 그러나 오만한 자의 최후는 비참했고, 관우는 결국 손권의 부하에게 목을 베게 된다. 실제로 관우가 손권을 개라고 욕했을 때 관우도 유비를 욕한 셈인데, 유비가 손권의 여동생을 얻었기 때문에 관우가 오만하게 "견녀가 어찌 범과 어울릴 수 있겠느냐"고 했을 때 유비가 개의 여동생을 얻었다고 했을 때, 유비가 관우의 눈에도 개가 되었으니, 유비가 듣고 기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관우 자신이 개와 '도원삼결의'를 맺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관우의 오만함은 결국 자신을 욕한 것이다.
대소사를 막론하고 어린아이부터 군국까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만함을 드러내면 말 한마디, 심지어 어린아이에게도 원한과 균열, 심지어는 분열과 엄청난 분열을 일으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역사상 논쟁의 여지가 있는 요순우의 선양사건을 제외하고, 실제로 왕위에 오른 후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난 것은 전국시대 연나라의 38번째 왕인 연왕희 哙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왕의 행동으로 인해 연나라가 멸망할 뻔했기 때문에 칭찬받지 못했습니다. 연왕희 哙는 연나라 승상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연나라 승상은 희씨 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어서 연나라의 성 왕실의 반발을 샀고, 결국 제나라가 개입하여 희 哙는 난병으로 죽었다. 나라와 백성을 해치는 이런 결과를 후세 사람들은 무도라고 부른다. )
2.성실,신중,절약에 관하여
겸손한 사람, 겸손한 정신을 고양하는 사람은 당연히 성실한 사람입니다. 남을 속이는 사람, 일반적으로 거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한데, 사기당한 사람은 존경할 가치가 없고 능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런 거만한 태도는 겸손의 정신과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사기를 당했을 때 느끼는 굴욕도 사기꾼의 오만함을 부추긴다. 정말 겸손한 사람은 성실하게 대하고 성실하게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을 속이는 사람의 중요한 특징은 역사를 은폐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물고기처럼 7초의 기억만 있기를 바란다, 이런 사람이 행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우민정책이다, 이런 사악한 행위는 결국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만년 동안 악명을 남기게 된다.
사람들은 하늘은 땅만 못하고 땅은 인화만 못하다고 말한다. 이 '인화'는 인심을 얻고 인심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인심을 얻는 직접적인 방법은 신용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기를 쳐서 얻은 결과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더라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고, 적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고, 인심을 얻을 수 없고, 인심을 얻을 수 없고, 조화를 이룰 수 없다.
대소사를 막론하고, 어린아이부터 군국까지 성실히 대해야 하며, 여기서 이익을 아까워하는 생각은 금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정직한 행동은 민족 간 불화와 원한을 낳고, 민족 간에는 분열과 민족 세력의 전반적인 약화를 낳습니다.
옛사람들은 역사를 거울로 삼는다고 했다. 정직하지 못해 인생과 사업에 실패하는 일이 적지 않다.
진나라 말기에 항우는 먼저 회계태수 은통과 함께 봉기하기로 약속했지만, 일이 임박하자 항우는 은통을 죽이고 단독으로 봉기했는데, 이는 신용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그 후, 모두 함양에 먼저 들어간 사람이 왕이라고 약속했는데, 결국 유방이 먼저 함양에 들어갔고, 항우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성실하지 않아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으로 이어졌고, 항우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성실하지 않은 자의 최후는 종종 이렇습니다, 비록 한때는 화려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