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케익의 기적"
미국 빈민가에 사는 한 젊은 부부가 생활고를 벗어나기 위해 죽도록 노력했지만 허사였습니다.
남자는 영화 배우를 꿈꾸며 살았는데 그들의 삶에서 그것은 거리가 먼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일을 해야만 했는데 영화관 안내원, 피자 배달부, 청소부, 단역 배우, 보디가드, 심지어는 성인물 배우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늘 생활고에 허덕이는 생활은 그들의 삶에 족쇠처럼 따라 다녔습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 되어서는 안된다고 여겨 무언가 큰 결심을 해야만 했습니다.
남자는 12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12 번이나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기에 그의 어린 시절 생활은 어둠의 연속이었고, 불행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삶은 마치 암흑의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1975 년 남자의 서른 번째 생일 날, 그의 부인은 가지고 있는 마지막 돈 1.15 달러로 아주 빈약한 케익을 사왔고, 그들은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후 아내는 촛불을 끄기 전 진지하게 남편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 남자는 비통한 표정으로 "제발 이 지긋 지긋한 가난한 생활이 끝나게 해주십시오..." 라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남자는 우연히 TV 에서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Cassius Marcellus Clay; 1942~2016)와 척 웨프너(Chuck Wepner; 1939~ )의 권투 시합을 보았습니다.
그 시합은 한 마디로 처절한 경기였지만 관중들은 약자가 끝까지 시합을 해내는 모습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 시합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는 곧 바로 망설임 없이 반나절 만에 시나리오 하나를 완성시켰고, 그 시나리오를 들고 용감하게 영화사를 찾아가 자기가 쓴 대본으로 영화를 찍자고 제의했지만 번번히 거절 당했습니다.
그것도 어처구니가 없이 자기를 주연으로 써 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열심히 여러 영화사를 찾아 다녔는데 정말 우여곡절 끝에 한 영화사에서 우연히 100 만 달라를 투자하기로 하고 수익은 2/10 밖에 줄 수 없다고 했는데 각본료는 고작 2 만 달러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의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화를 찍겠다는 일념에 너무 기쁜 나머지 흥행 따윈 아랑곳 하지 않고 계약했습니다.
그의 영화는 불과 28 일 만에 초 스피드로 만들어 졌고, 제작 장소는 장소 사용비가 많이 드는 허리우드가 아닌 비용이 들지 않는 뉴욕에서 촬영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일입니까?
영화는 개봉 당일부터 관중들이 줄에 줄을 이었고, 영화는 한 마디로 완전 흥행 초 대박이었습니다.
마지막 끝 장면에서 권투 시합을 끝낸 주인공이 붓고, 피가 흐르는 얼굴로 그의 사랑하는 여인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모든 관중이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록키(Rocky; 1976)』인데 이 영화는 처음 수익만 5.600 만 달러이나 됐고, 총 수익은 1 억 달러나 되었습니다.
그 이후 총 5 편의 록키 시리즈가 모두 흥행에 성공하여 그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획득했습니다.
그는 배우 보다는 시나리오 작가로서 더 익숙했는데 그것이 그에게 더 큰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어떤 인터뷰에서 성공 비결을 묻는 그에게 주인공 '실베스타 스텔론(Sylvester Stallone, Michael Sylvester Gardenzio Stallone; 1946~ )'은
"성공이란 실패를 이겨내고자 하는 노력이 절정에 이른 상태를 말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그의 서른 번째 생일 날, 1.15 달러 짜리 케잌 앞에서 간절하게 소원을 빌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이 한 편의 기적 같은 현실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희망을 버리고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일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