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3일 새벽 비주류인 전직 대통령이 벼랑 끝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어김없이 저녁은 오고 음악이 사라진 라디오에선 전직 대통령의 자살에 관한 뉴스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시인의 유서 같은 전직 대통령의 유서 한 줄이 혼자 먹는 밥처럼 쓸쓸하다. 비주류는 대통령이 돼도 비주류일 수밖에 없는 나라의 비주류인 내가, 자살한 대통령처럼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용기도 없는, 비루한 비주류인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소주병에 처박혀 흐느껴 울다가 산막 천장에서 슬픔을 갉아대는 쥐들에게 욕설이나 퍼붓는 것이다.
이렇게 끄적여 놓고 춘천으로 속초로 대관령으로 전화를 했다. 모여서 술이라도 마셔야 하지 않겠냐고, 시인들은 이미 취해 울고 있었다. 유서가 명문장이더라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보다는 문학을 했어야 했다고, 지방대학이라도 대학을 나왔어야 했다고 주절대다가 K시인이 우리들 방식으로 그의 49재를 지내자고 했다.
그의 오류는 정치엔 결벽이 상극이라는 사실을, 결벽은 예술가에게나 어울리는 비생산적인 성질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개인숭배를 싫어하는 시인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가진 인간에 대한 따스한 연민이다. 연민은 시인의 가장 큰 덕목이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이념의 궁극은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이다. 분배의 방법이 다를 뿐이다. 없는 놈이 있는 놈에게 계속 보태 줘야 하는,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천민자본주의의 끝은 공멸이다.
49재는 동해에 모여 하기로 했다. 그 날 모여 술을 마실 생각이다. 통기타 치며 상록수도 부르고, 밥 딜런도 부르고 만취해 회다지도 하며 굿판을 벌일 생각이다. 우리들 49재 의식의 끝은 티베트 사자의 서를 그에게 읽어주는 것이다.
“노무현 형 권력의 억압에 저항하겠습니다. 빛을 따라 가십시오. 환생하신다면 시인이 되십시오.”
시인
첫댓글 오늘 대한문 앞에서 , 하얀 대낮에 ... 어느 중년의 철학교수님을 우연히 만났다우 ...남들이 보건 말건 그분 가슴에 내머리 박고 통곡하고 말았다우 ...그분, 당황해 하시면서도 끝내 그분도 우셨다우 ..우린 거리에서 그렇게 목놓아 울어 댄다우 ....노대통령님을 이렇게 사랑했는지 예전엔 미쳐 몰랐다우 ... 우리가 노무현으로 살아 내십시다 ...악착같이 살아내서 저넘들 귀향 보냅시다 ... 이런댓글이 위로가 되실런지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