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가 봉화산에 올라
십이월 둘째 일요일이다. 이른 아침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 구산면 갯가로 가는 62번 버스를 타려고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로 마산역 정류소에서 내렸다. 주말이면 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변에 노점상이 여러 물건을 펼쳐 오가는 손님을 기다렸다. 감을 비롯한 제철 과일과 여러 가지 푸성귀가 보였다. 칡이나 ‘우슬’이라는 한약재가 되는 뿌리를 캐서 팔기도 했다.
역 광장에 다다라 번개시장 들머리에서 김밥을 마련했다. 집을 나서기 전 아침은 밀린 찬밥을 데워 먹어 도시락을 준비할 여건이 못 되었다. 야외로 나가면 현지 식당 사정이 여의치 못해 겨울이라도 도시락이나 김밥을 준비함은 당연했다. 역 광장 모퉁이에서 구산면 원전 갯가로 가는 버스를 타고 어시장과 댓거리를 거쳐 밤밭고개를 넘어 현동 아파트단지를 지나 수정을 향해 갔다.
수정은 구산면 소재지지만 한적한 시골이나 마찬가지다. 그곳에 있던 중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 폐교 직전 인근의 현동 아파트단지로 옮겨가 교명을 계속 잇게 되었다. 내가 타고 간 62번 농어촌버스는 백령고개를 넘지 않고 안녕마을을 돌아 합포만 연안을 따라 옥계로 향했다. 바다에는 홍합 양식장의 하얀 부표가 점점이 떠 있어 이채로웠다. 우리나라 양식 홍합 주산지가 수정이다.
나를 옥계에서 내려준 버스 기사는 차를 돌려 원전을 향해 갔다. 여러 척 어선이 정박한 포구에서 해안을 따라 난 길을 걸었다. 옥계는 합포만 바깥에서 규모가 제법 큰 어항으로 겨울이면 연근해에서 대구나 물메기를 많이 잡아 오는 듯했다. 전에는 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폐교되어 리모델링을 해서 마을 복지회관으로 사용했다. 독립가옥 횟집에서 산언덕으로 올라 숲으로 들었다.
희미한 등산로는 산행객이 다니질 않아 가시덤불을 헤집고 가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이번 가을 가랑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채 온전한 형체를 유지해 숫눈을 밟듯 내가 처음 밟고 지나는 듯했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적절하게 섞인 남녘 해안 특유의 산림이었다. 내가 오르는 산은 구산면 봉화산으로 몇 해 전 정상부 천주교 마산교구 가톨릭교육관에서 내려왔던 적이 있다.
봉화산은 같은 이름의 산이 전국 여러 곳에 산재한다. 마산회원구에도 봉화산이 있고 함안 여항에도 봉화산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가 봉하마을인데 묘역 뒤 봉화산 아래라고 봉하마을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산 높이 및 위치 정보’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같은 이름 산으로 봉화산이 가장 많다고 나왔다. 그다음 국사봉이고 옥녀봉과 매봉산과 남산이 차례로 뒤를 이었다.
내가 오르는 구산면 봉화산은 거제도 봉수를 받아 내륙으로 전하는 첫 번째 봉수대에 해당하지 싶다. 산행객이라고는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오솔길을 혼자 걸어 호젓해 좋았다. 경사가 완만한 야트막한 산마루를 따라가다가 나온 바위 더미에 앉으니 나뭇가지 사이로 난포마을 앞의 바다가 드러났다. 배낭의 김밥을 꺼내 비우고 고갯마루를 올라 비탈로 내려가 다시 오르막이 나왔다.
정상이 가까워지니 경사가 가팔라 등산로는 지그재그 갈지자를 그었다. 산마루에는 천주교 마산교구 연수관이 위치해 난포 안골에서 자동찻길이 뚫어져 승용차로도 오르는 봉화산이다. 주일을 맞아 미사가 있는지 주차장에는 여려 대 차량이 보였다. 정상에 서니 섬이 점점이 뜬 남녘 다도해가 훤히 드러났다. 지난날 내가 머물다 온 거제도도 빤히 보였고 바다는 윤슬로 눈이 부셨다.
전망이 탁 트인 정상에서 겨울 햇살을 받으면서 잠시 머물다가 하산은 아스팔트가 포장된 길을 따라 내려섰다. 도중에 한 무리 산행객을 만났는데 그들은 백령고개부터 산마루를 타고 온다고 했다. 안골로 내려가 난포까지 가서 원전마을 종점에서 오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신촌과 내포를 지나 아까 들렸던 옥계까지 갔다가 차를 되돌려 안녕 해안에서 수정을 거쳐 시내로 복귀했다. 22.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