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회·허만정처럼… 부자 기운 받아볼까
[My town] '재계 거인들의 고향' 진주 승산마을
마을 담벼락 5㎞ 따라 걷다보면 LG·GS 창업주 등 생가 줄줄이
진주=김준호 기자
조선일보 기사 입력 2022.10.19. 04:05, 업데이트 2023.11.15. 11:17
지난 13일 오후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 산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시골 마을은 평일임에도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대구, 부산, 대전, 전남 목포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이들은 마을을 둘러보며 하나같이 “신기하다”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마을을 둘러싼 약 5㎞ 길이의 담벼락을 따라 한발 한발 떼다 보면 ‘LG창업주 구인회 생가’ ‘GS 창업주 허만정 생가’ 등이 줄지어 나타난다. 마을 곳곳에 자리한 고택(古宅)들은 국내 굴지의 기업을 일으킨 창업주들이 나고 자란 곳이다. 대구에서 부모와 함께 왔다는 홍영지(38)씨는 “워런 버핏이 산다는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전 세계 투자자와 여행객들이 좋은 기운을 받으러 가는데, 우리나라에도 그에 못지 않은 곳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곳은 예부터 만석꾼 부자가 많이 나 ‘진주는 몰라도 승산은 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부자마을로 통했다. 마을에 있는 옛 지수초등학교(현 K-기업가정신센터)는 수많은 기업인이 동문수학(同門修學)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경영학회는 2018년 “국내 대표기업 창업주들이 한 마을에서 배출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유산”이라며 진주시를 ‘대한민국 기업가정신 수도’로 선포했다. 조규일 진주시장은 “승산마을과 옛 지수초등학교를 기업가정신을 배우고 창업의 꿈을 키울 수 있는 경제교육의 요람이자 관광 콘텐츠로 육성할 방침”이라고 했다.
◇기업 창업주들 다녔던 지수초, K기업가정신센터로 변모
1921년 개교한 옛 지수초등학교는 학생수 감소로 2009년 폐교 후 10여 년간 방치되다가 지난 3월 ‘K-기업가정신센터’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K-기업가정신센터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과 진주시가 국·도·시비 등 약 60억원을 들여 조성한 미래 기업인 양성 및 창업 교육기관이다. 전시실, 교육장, 전문도서관과 체험센터로 이뤄져 있다. 개소 후 약 6개월간 580여 명의 기업인·예비 창업자·대학생들이 찾아 교육을 받았다.
시골마을 폐교가 국내 유일의 ‘K-기업가정신센터’로 탈바꿈한 것은 이 학교 출신 기업인들 때문이다. 진주시와 지수초에 따르면 LG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과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한때 이곳에서 함께 공부했다. 구 회장은 승산마을이 고향이고 이 회장은 승산마을 인근 의령군이 고향이다. 지수초에는 두 사람이 개교 때인 1921년 함께 심은 것으로 알려진 ‘부자소나무’도 있다.
산골의 작은 초등학교를 빛낸 재계 인물은 이들뿐만 아니다. 구철회(LG그룹 창업 고문), 허정구(삼양통상 명예회장), 허준구(GS건설 명예회장), 구자경(LG그룹 명예회장) 회장 등이 모두 지수초등학교 출신이다. 1980년대 초 당시 100대 기업 회장 중 30명이 지수초와 인근 승산마을 출신으로 알려지면서 “재계의 산실(産室)”로도 불렸다.
이충도 지수초등학교 총동문회 사무총장은 “경남을 대표하는 조선의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敬義)사상(내적 수양을 통해 마음을 바르게 하고, 배운 바를 과감하게 실천하는 정신)’이 오늘날 ‘자기성찰’ ‘개척정신’ ‘실천주의’ 등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기업인을 배출했다”며 “K-기업가정신센터를 통해 미래 기업인을 육성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업가정신 활용한 관광 테마 마을 추진
진주시는 승산마을과 옛 지수초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기업가정신 수도 구축’ 사업을 벌이고 있다. K-기업가정신센터 운영 등 1단계가 기업가정신 교육 확산이라면, 2단계는 이를 관광 산업에 접목해 사람을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추진한다. 이를 위해 진주시는 지난 2018년부터 승산마을을 관광 테마 마을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승산마을 내 기존 한옥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한옥 숙박시설과 체험시설을 지난 6월부터 운영 중이다. 방문객 편의를 위해 마을 입구에 주차장도 조성했다. 진주시는 올 연말까지 문화탐방로, 복합문화공간 조성, 스마트투어 프로그램 개발 등의 사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대한민국 기업가정신 국립역사관(가칭)’ 건립을 위한 준비 작업도 진행 중이다. 진주시는 최근 관련 용역을 발주하면서 사업 타당성 조사에 착수했다. 역사관은 진주 출신 기업가들은 물론 대한민국 산업화의 역사와 기업의 성장 과정 등이 담긴 소장품과 자료를 전시하고 기업가정신과 관련한 각종 연구 등을 하게 된다. 진주시는 역사관 건립에 예산 약 450억원 정도가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외식 진주시 일자리경제과장은 “‘대한민국 기업가정신 수도 진주’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기업가정신센터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지수면을 기업가정신 관광 테마 마을로 만들어 관광객들이 찾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진주=김준호 기자
구인회 생가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