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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기 4347년 개천절을 맞아 태백산 천제단에서 김남훈 초단(왼쪽)과 이 고장 출신기사 박창명 초단이 산상대국을 펼쳤다. 대국은 김남훈 초단이 260수 만에 백으로 불계승을 거뒀다.
하늘이 열린 날, 대한민국이 세세연년 역사를 시작한 날, 태백산 상상봉(上上峰) 천제단(天祭壇)에서 단기 4347년 개천절을 기념하는 산상대국이 열렸다. 2001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4년째 이어가고 있는 이 행사는 지난해 ‘양신(신민준-신진서 초단) 대결’에 이어 올해도 ‘초단 대결’로 펼쳤다. 올초 입단한 이 고장출신 박창명 초단(강릉 태생)이 특별히 초청되었고 맞상대로 입단동기인 김남훈 초단이 나섰다. 대국결과는 김남훈 초단이 260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두 기사는 올해 1월 일반인입단대회에서 나란히 입단한 프로동기다. 박창명 초단은 2004년 이강욱 8단(현재 베트남에서 바둑보급 중)이 입단한 이래 10년 만에 영동지역이 배출한 프로기사로, 최근 끝난 10기 한국물가정보배에서 입단 8개월 만에 결승에까지 올라 ‘초단돌풍’을 일으켰던 화제의 주인공이다. 김남훈 초단은 서른 살에 입단관문을 통과해 ‘17년 만에 30대 프로기사 탄생’을 성사시킨 의지의 기사로 이목을 끌었다.
입단 초년생인 이들에게 천제단대국은 가슴 벅찰 수밖에 없다. 그간 태백산 상상봉에는 걸출한 기사들이 올랐으며,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정말 태백산의 정기를 흠뻑 받아서인지 하나같이 산상대국 이후에는 눈에 띄는 성적을 냈다. 승부는 중요치 않다. 누구나 한번쯤 서고 싶어 하는 뜻 깊은 행사에 초청되었다는 자체가 영예로운 일이다.
(박창명 초단) “영광이다. 성적이 좋은 기사만 가는 곳이라 천제단 대국을 둘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역출신 기사라는 걸 후히 쳐준 듯하다. 한국물가정보배에서의 아쉬움을 많이들 말씀하고 위로해 주시는데 순전히 실력이 부족해 졌다. 결승2국을 둘 때는 1국 때보다 조급했다. 자신감을 갖는 계기는 됐다. 앞으로 더 성적을 내서 강릉지역 바둑후배들한테 본을 보일 수 있는 기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김남훈 초단) “주최측에서 영동지역 출신기사로 요즘 성적이 좋은 박창명 초단을 초청기사로 선정하면서 아마도 같은 입단연도 기사 중에서 한 명을 골랐던 것 같고, 덕분에 이런 영광스런 자리에 선 듯하다. 1회 대회 때부터 작년까지 태백에서 벌어지는 이 행사 아마추어 대회의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우승하면서 인연을 맺어왔는데 이런 점도 작용한 것 같다. 그간 천제단대국에 참가한 기사가 좋은 기를 받아 하나같이 성적 내는 것을 지켜보면서 참 멋지다고 생각했고 나도 언젠가 저 자리에 서고 싶다는 부러움이 평상시에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인지 오늘 매우 떨렸다. 승패를 떠나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과분한 배려로 초청기사로 대국할 수 있었지만 더 열심히 하라는 계기로 삼겠다.”
두 기사는 오전10시 태백청소년수련관에서 개회식을 마치고 천제단까지 산행해 대국했고, 김성룡 9단이 심판관을 맡았다. 김성룡 9단은 "10분에 30초 3회 초읽기로 두어진 이벤트 대국이었음에도 전혀 이벤트 대국 같지 않았다. 불계로 승부가 났지만 끝까지 두었다면 흑이 덤에 걸린 정도였을 것"이라고 짧게 평했다. 이 행사는 태백시바둑협회가 주관하고 태백시가 후원했다.
▼ 2014 천제단 산상대국 (백)김남훈 초단 (흑)박창명 초단 제한시간 10분, 30초 초읽기 3회. (결과) 260수 끝 백 불계승
▲ 산정의 기온은 항시 산하보다 앞서 간다. 10월초라지만 야외에서 펼치는 천제단 대국은 손이 시릴 정도로 쌀쌀해 제대로 대국이 이루어질까 하는 걱정을 불러일으켰는데, 올해는 상당히 따뜻했다.
매년 개천절을 맞아 태백산 상상봉(上上峰)에 있는 천제단(天祭壇)에서 펼치는 산상(山上)대국은 국태민안을 빌고 한국바둑의 발전을 기원하는 신성한 바둑의식과 같은 것이다. 해발 1,560.6 미터 산정에서 대국을 벌이는 것은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벤트다. 2001년 개천절에 서봉수 9단과 이세돌 3단(당시)이 천제단에 올라 역사적인 첫 대국을 둔 이래 이 산상대국은 산아래 당골에서 펼치는 배달(白山)바둑 한마당 축제와 더불어 이 고장 태백제의 상징적인 행사로 자리하고 있다.[사진제공: 태백시바둑협회]
역대 천제단 대국 출전기사와 결과 (앞쪽이 승자, 단은 당시 단)
2001년 이세돌 3단 vs 서봉수 9단 - 115수 끝, 흑 불계승 2003년 송태곤 5단 vs 박영훈 4단 - 275수 끝, 흑 3집반승 2004년 조한승 7단 vs 이강욱 초단 - 192수 끝, 백 불계승 2005년 원성진 6단 vs 박정상 5단 - 191수 끝, 흑 불계승 2006년 강동윤 5단 vs 고근태 5단 - 180수 끝, 백 불계승 2007년 이창호 9단 vs 최철한 9단 - 170수 끝, 백 불계승 2008년 유창혁 9단 vs 이창호 9단 - 263수 끝, 백 3집반승 2009년 송태곤 9단 vs 김지석 6단 - 191수 끝, 흑 불계승 2010년 허영호 7단 vs 한상훈 5단 - 169수 끝, 흑 불계승 2011년 이슬아 3단 vs 최정 초단 - 백 3집반승 2012년 안성준 4단 vs 백홍석 9단 - 119수 끝, 흑 불계승 2013년 신민준 초단 vs 신진서 초단 - 245수 끝, 흑 불계승 2014년 김남훈 초단 vs 박창명 초단 - 260수 끝, 백 불계승
태백산은 우리 겨레의 발상지인 백두산을 가장 닮은 영산(靈山)이라고 한다. 한반도의 중심에 자리하여 태백산맥과 백두대간(白頭大幹)이 갈라지는 지점에 우뚝 솟은 이 산은 북으로는 백두산, 남으로는 산맥이 해남반도 땅끝까지 이어져 있으며, 낙동강과 한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남과 북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같은 태백산에는 그 어느 산정에도 없는 천제단이 3개나 쌓여 있다.
천제단은 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된 겨레의 성스런 유적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보면 5세 단군인 구을(丘乙) 임금이 즉위 원년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지금의 태백산 정상에 천제단을 쌓게 하고 제사하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4,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배달나라를 연 단군 성조(聖祖)의 얼이 깃든 곳이다.
아래 사진은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태백산에 올라 천제단 대국을 벌인 기사들의 모습이다. 대국자의 단위는 당시의 단이다.
▲ 2001년 제1회 천제단 대국. 서봉수 9단-이세돌 3단의 대결에서 이세돌 3단(왼쪽)이 115수 만에 흑으로 불계승을 거뒀다.
▲ 제2회는 한해 건너뛰어 2003년에 열렸다. 박영훈 4단-송태곤 5단이 두어 275수 만에 송태곤 5단(왼쪽)이 흑 3집반을 이겼다.
▲ 2004년 제3회에는 조한승 7단과 이 지역(강릉)이 모처럼 배출한 프로기사 이강욱 초단이 마주앉았다. 192수 만에 조한승 7단(오른쪽)이 백 불계승.
▲ 2005년 제4회에 대국자로 나선 기사는 원성진 6단-박정상 5단. 원성진 6단(왼쪽)이 191수 만에 흑 불계승.
▲ 2006년 제5회 때 태백산에 오른 기사는 강동윤 5단과 고근태 5단이었다. 강동윤 5단(오른쪽)이 백 불계승.
▲ 2007년 제6회에는 이창호 9단과 최철한 9단이 산상대국을 벌였다. 이창호 9단(오른쪽)이 170수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 2008년 제7회에는 이창호 9단이 한번 더 출연해 모처럼 왕년의 라이벌 유창혁 9단과 마주앉았다. 유창혁 9단(오른쪽)이 263수 끝에 백으로 3집반을 이겼다.
▲ 2009년 제8회에는 송태곤 9단(왼쪽)이 2회 때에 이어 다시 한번 대국자로 나섰다. 신예강자로 떠오르는 김지석 6단을 맞아 선배의 매운맛을 보였다.
▲ 2010년 제9회 대국은 허영호 7단과 한상훈 5단. 허영호 7단(왼쪽)이 169수 만에 흑으로 불계승했다.
▲ 2011년 제10회는 좀 색달랐다. 대회 최초로 여자기사가 선정되어 천제단 산상대국을 벌였던 것.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의 모습이 따로없다. 이슬아 3단(왼쪽)과 최정 초단.
▲ 여자선녀들의 대결은 이슬아 3단이 최정 초단에게 백 3집반 승.
▲ 2012년 제11회 때는 안성준 4단과 백홍석 9단이 천제단에 올라 안성준 4단(왼쪽)이 119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 지난해에는 ‘한국바둑의 미래’로 잔뜩 기대하고 있는 쌍두마차 신민준 초단(왼쪽)과 신진서 초단이 도포를 입었다. ‘양신’의 대결은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받았는데, 신민준 초단이 245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