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rica Lonely Planet 2024 를 읽었다.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를 총괄해서 두껍지만 국가별 내용은 많지않다. 그런데 55개국에 추가된 빅폴이 소개되있어서 위키와 구글을 해봤지만 짐바브웨의 타운으로만 소개되있다. 론리가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음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제일 먼저 읽은 나라는 가나였다. 기지의 천국행 장례식에 대한 내용도 없다. 서아프리카에서는 나름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황열병과 말레리아로 부담이 된다. 비자가 필요한 것도 다른 아프리카국과 다르지 않다.
주변국인 코트아이보리, 부르키나파소, 토고, 그리고 베닌을 읽을 계획인데 전체 아프리카 소개에서 부르키나파소는 경제학콘서트에서 악명을 익히 들었던 카메룬보다 부패가 심하다니 참 우리는 난자복권에 당첨된 행운의 국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36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카이로에서 전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갈 수있다. 알렉산드리아는 홍해가 아닌 지중해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80 시나이반도만 가는 비자도 있는데 얼마나 저렴한지에 대한 언급은 없여 역시 예전 론리가 아니라는 확증을 가지게 된다. 97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세계 최대의 도서관으로 유명하다. 기원전 4세기에 건립되어 약 300년간 존재했던 도서관은 당대 지식의 중심으로 유클리드가 기하학을 창시했고 최초로 지구지름을 계산한 에라토스테네스도 여기를 근거지로 했다. 나중에 돈을 벌면 세계적인 석학들에게 연구실을 제공하는 도서관을 한국에 지어서 한국은 물론 세계에 기여하게 되면 좋겠다. 참고로 화재로 소실된 도서관을 대체하기위해 약 2천년후인 현재 도서관이 2002년에 지어졌다. 이에 비해 세계7대 불가사의중의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등대는 14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되기까지 존속되었다. 99
구체성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50국이 넘는 아프리카 여러나라를 소개하면서 짜임새도 없다. 알파벳순도 아니고 지역순도 아니어서 찾기가 어렵다. 내가 차례를 만든다면 북, 동, 서, 남부 아프리카로 섹션을 나누고 섹션내에서는 알파벳순으로 배치해서 더 쉽게 찾게 하겠다. 112 모로코는 대부분의 나라에 90일 무비자로 입국가능하다. 탄지어와 스페인간 페리도 한시간이면 도착하고 카사블랑카공항은 시내와 30분마다 다니는 기차가 있다. 택시는 좌석당 요금을 받으므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낙타를 타보는 경험도 가능하다. 139
튀니지의 교통은 효율적이다. 마르세이유에서 22시간 페리로 연결되고 이태리에서는 13시간이 걸린다. 비자도 대부분의 나라의 경우 90일까지 면제다. 비자와 같은 중요한 내용이 론리에 언급이 없어 놀랬다. 154 카메룬과 같이 온라인 비자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수도에서조차 영어는 물론 불어 구사자도 찾기 어려운 콩고공화국은 비자까지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그래도 방문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민주콩고공화국과는 앞에 민주만 더 붙어있는데 내륙이고 국호가 수상스러워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225
코트디부아르는 영국이 케이프타운에서 카이로를 연결하는 남북정책을 추진한 것에 반해 프랑스가 서아프리카에서 동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횡단정책을 추진하는 근거지였다. 인근 지역과 같이 서아프리카 프랑스령 식민지였고 주로 상아와 노예를 수출했기에 영어로는 아이보리 코스트로 불리웠다. 불어로 코트가 해안이고 이부아르가 상아를 뜻하므로 국명을 직역하면 상아의 해안이 된다. 1960년에 독립하여 한때는 농산물가격의 급등으로 경제성장률이 연7%내외에 달해 서아프리카에서는 물론 당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국민생산과 고층빌딩이 형성되어 선진국의 꿈에 부풀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화를 위해 수출한 자금은 물론 해외차관까지 얻어 투자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오히려 농산물의 주력인 카카오 가격이 하락하여 경제는 위축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전이 발생해서 북부의 무슬림지역과 남부 해안지역간의 전쟁이 지속되어 백만명 이상이 서측 라이베리아 국경을 넘어 도피하기도 했다. 평화를 회복하는 듯했지만 남부출신의 대통령은 선거에 패배하고도 취임연설을 해서 두명의 대통령이 다시 내전을 시작했고 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수출대금은 경제가 아닌 군비로 사용됨은 물론 서로 학살을 주고받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버핏도 스스로 난자복권에 당첨되었다고 이야기 했지만, 우리도 구석기시대나 현대 코트이부아르와 같은 곳 에서 태어났다면 맹수나 학살의 희생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대통령 탄핵에 대해 내란이 발생하지 않고 회복되고 있어 다시 한번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 부모세대는 한국전이라는 내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고아가 되고 미군을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의 군인들이 주는 물자를 참 고맙게 사용한 적이 있으니까. 226
자세히 보니 지역별 알파벳순으로 소개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지역별로 나누는 것을 파트로 북/서/중/동/남 아프리카로 나눴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게다가 빅폴을 국가로 설정하고 있는 점은 더더욱 그렇다. 라이베리아는 19세기 중반에 세워진 아프리카의 첫 공화국이다. 미국식민협회에서 보낸 해방노예들이 세운 나라다. 서해안에 위치하여 다이아몬드 등 원자재 수출이 경제의 대부분이며 선박등록세금이 낮에 선박보유량은 세계1위이기도 하다. 20세기말에 일당독재가 쿠테타로 해산되고 원주민 출신의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피살되어 내전이 발생했다. 21세기초에 내전이 종식되고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당선되었지만 내륙에 있는 최빈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보다도 식량사정이 좋지않아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 과연 내고향으로 날 보내주를 부르던 노예는 여생이 행복했을까? 349
가나 서쪽의 코트디부아르는 내란으로 부터 회복되고 있고 동쪽의 토고와 그 옆의 베닌은 그리 위험해 보이지는 않지만 북쪽의 부키나파소는 납치위험이 있고 베닌옆의 나이지리아도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닌듯하다. 비자여부에 따라 다르지만 토고와 베닌은 가나를 방문한다면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토고의 수도인 로메의 56키로 해안에는 20여개의 피싱캠프가 있다. 새벽에 방문하여 동이틀때 밤새 쳐놓은 어망에서 고기를 잡는 모습과 이를 사서 시장에 내다파는 여인들을 볼 수있다. 오토바이택시 대신 세발자전거로 이동하면 더 운치가 있다. 448
콩코와 수단은 내전으로 두개로 쪼개져서 아직 방문할만하지 않고 중앙아도 마찬가지다. 지부티는 온라인비자가 가능하고 3일짜리가 저렴하니 기회가 된다면 방문하는 것도 좋을 듯하고 작은 나라기에 서쪽의 에티오피아와 북쪽의 에리트리아도 비자상황에 따라 추가할 수있을 듯하다. 521 에리트리아는 육로입국이 불허되고 항공입국은 평균 5주가 소요되는 비자를 받아야 가능하다. 게다가 수도외를 방문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니 가성비가 낮아 제외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533
르완다인종청소는 호텔르완다를 통해 간접경험을 했다. 형벌로서의 사형도 나쁜데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살하는 것은 자연원칙에도 위배된다. 아무리 벨지움지배시절 다수족을 통치하는데 협력했다고 해도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과거를 반성하는 사람도 죽이기보다 강제노동을 통해서라도 사회가 투자한 것은 확보해야 사회가 발전한다. 그냥 죽이면 비료로서나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물론 죽이고 죽이는 관계가 지속될 가능성까지 있다. 584
케냐의 마사이마라와 탄자니아의 킬레만자로는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다. 해발 5900미터에 이르니 베이스캠프로 만족해야 할듯한데 비용이 400불씩이나 한다니 더 가까운 곳으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참고로 남아공에 둘러쌓여있는 레소토에 있는 산이 해발 3800미터로 킬레만자로 남쪽에서는 제일 높다. 그 정도 높이라면 고산증을 염려하지않고 오를 수있을 듯한데 암벽등반이나 비용은 여전히 변수다. 590 보츠와나의 초베국립공원과 오카방카델타는 10년전에 방문했던 곳이다. 674
이책이 론니답지 못한 것은 구체적인 가격이 없는 것은 물론 대부분 나라에 대해 비자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닌 아프리카에서 비자는 중요한데 이런 필수적인 내용을 언급조차 하지않는 나라가 과반수가 넘는다. 그래서 독자의 많은 시간을 빼았는다. 크루즈 기항지이기에 관심있었던 마다가스가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724 아프리카는 인류가 발생한 곳이다. 이디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는 그 곳에서 발굴된 320만전에 살았던 루시의 모형이 전시되있다. 에덴은 이디오피아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그랬던 모양이다. 926
이집트의 피라밋이나 국명이 기인한 그레이트짐바브웨는 유럽의 성당이나 인도의 타지마할과 같이 후손에게 관광자원으로서의 유산을 남겼다는 점에서 선조들이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너무 고생을 했고 국력의 낭비가 심했는지는 쉽게 답하기 어렵다. 남기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면 호의적일 것이고 현실을 즐기자는 사람은 비판적일 것이다. 어쨌든 백성들이 자의로 했다면 부정할 필요는 없는데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 문제다. 당시는 민주주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