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만 안젤로 신부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창세기 37,3-4.12-13ㄷ.17ㄹ-28 마태오 21,33-43.45-46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는 21-23장에서 수난 전 예수님의 예루살렘 활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21,1-11 참조) 뒤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과의
논쟁이 다시 시작됩니다(21,23-27 참조).
이 논쟁은 22장까지 이어지는데, 예수님과 반대자 사이에 점차 높아 가는
갈등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포도밭은 이스라엘, 소작인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아들은 예수님,
주인은 하느님 아버지를 가리킵니다.
포도밭 소작인에 관한 비유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의미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모함하였으며, 정치적 상황으로 빌미를 만들어 예수님을 돌아가시게 하였습니다.
둘째 의미는, 하느님의 초월적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적대자들의 시기와
모함을 받아 누명을 쓰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셔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시편 118(117)편 22-23절을 인용하여
예고하였듯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비유 이야기를 통하여 거부와 회복, 죽음과 부활이라는
그리스도론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서는 ‘일상적 현실’을 파괴합니다.
소작인들은 주인에게 주어야 할 소출이 있었으나 그것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주인이 보낸
종과 주인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파괴된 현실은 지금 우리의 상황을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날카롭게 경고하셨듯이,
오늘날 누군가 ‘일상적 현실’을 부정하고 거부하려고 한다면
그도 그 경고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일상적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요?
수원교구 정진만 안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