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여자랑 잤다 (외 2편)
이우성
나는 감각을 내려놓고
기억 안할 거야
우리 집에선 파출부조차 하얀색을 입어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머리 위에 화산재 같은 사과가 있는
나는
많아
반했니
너도 사과 먹을래
나는 많다고
도착하고 떨어지고
사람들
나는 나에게서 나왔다 예전에 나는 나로 가득 차 있었다
입안에서 우성이를 몇 개 꺼내 흔든다
사람들은 어떤 우성이를 좋아하지
우성이는 어둠이라고 부르는 곳에 살았다
그때는 우성이가 다를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미남일 필요조차
그러나 가장 다양한 우성이는 우성이었다
공기의 모양을 추측하는 표정으로 사람들이 서 있다
우성이가 사실인지 어리둥절하다
우성이를 만진다
우성이가 자신과 똑같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나 우성이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나는 내가 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수십 수백만 개의 우성이가 떠오를 거라고 말했다
손끝이 말해줍니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증명사진을 만지며 걷습니다
뒤집히지 않았다면 이쯤이 어깨 여긴 머리
살짝 구겨도 봅니다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여전히 방긋
발은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습니다
사진관에 간 것만으로
다리든 그 비슷한 것이든 증명됩니다
내가 지금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는 건
우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일상에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걸을 때 가끔 머리는 어디에 가 있습니다
나는 마침 나도 모르는 사이 집에 다 왔습니다
이렇게 절반이 확인됐습니다만
정신없는 날에는
나머지 반이 잘 있다고 믿는 게 조금 불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웃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진은 필요합니다
—시집『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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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 1980년 서울 출생. 2009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 「무럭무럭 구덩이」가 당선되어 등단. 『GQ』 『DAZED AND CONFUSED』 를 거쳐 현재 『ARENA』의 피처 에디터. 시집『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