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락이 역전 홈런친 장면도 좀 인상적이긴 했지만 그것보다도 내게 더 인상깊게 다가온 장면은 블레이락 나오기전 그니까 에너하임의 개럿 앤더슨이 2루타를 치고 나갔을 때 나왔다.
이미 이전타석에서 단타와 홈런을 기록하고 있었던 그는, 자기 팀원 중에서 그 날 가장 좋은 활약을 보였던 터라, 보통의 선수들이 하듯 2루를 밟고 양손을 번쩍 치켜들고 환호는 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웃기는 할줄 알았다.
근데, 전혀 미동이 없는 표정, 그 표정만 보면 그가 2루타를 친 사람인지, 땅볼치고 1루로 열나게 뛰다가 간발의 차이로 아웃된 사람인지 도저히 구분이 갈수없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어디 배탈이라도 난 걸까...
아니다, 아니다....
2루타를 치고 웃지도 않는 것은 기쁘지 않기 때문이거나, 혹시 배탈등이 나서 기쁘지만 웃었다간 사고치기 딱 알맞은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할수 없었다든가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가 바로 대주자로 교체되는 것을 보곤 혹자는 배탈이 나서 그랬거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을런지 모르겠지만...
그가 전날 홈런더비 1위하고도 올스타 경기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할수 있었던 근본 동력은...
그는 언제나 평상심을 유지한다는 것, 바로 그것을 그의 표정에서 보여준 것일 뿐이다.
타고난 것인지 아님 꾸준한 자기훈련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람은 기쁨에 겨워하다가 방심하거나 노여움등등의 이유로 극도로 흥분한다든지 혹은 긴박한 순간에 지나치게 긴장해서 일을 그르치거나 하는 일을 거의 하지 않는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다.
모든 인간사, 부동심과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겠지만, 유독 승부세계에서 강렬한 빛을 발휘하는 것은 그 승부의 긴박감에 압도를 당하지 않음으로써 냉철한 상황판단과 적절한 행동은 물론이고 어떤 순간이든 자신이 가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수 있도록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때문일 것이다.
바둑지존 이창호의 바둑두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잘 알것이다. 불리하거나 유리하거나 언제나 변함없는 무표정.. 그냥 한번씩 꿈벅거리기만 하는 눈꺼풀의 움직임을 빼고 나면 도체 변화를 모르는 불상같은 덤덤함...
그런 부동심을 유지한 것이 그가 바둑황제의 자리에 오를수 있게 된 가장 큰 이유이듯이, 개럿 앤더슨이 홈런더비나 올스타전에서 최우수선수가 된다든지, 매년 기복없이 꾸준한 성적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부동심때문이라고 봐도 대과는 없으리라 본다.
우리 김병현선수도 그룹으로 묶는다면 이런 부동심 클럽에 속한다.
나는 그가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는 것도 보지 못했고, 박찬호나 심지어 메이저리그 1년차인 서재응마저 보여주었던 마운드에 내려가면서 영어로 하는 욕이 만들어내는 입모양이나 혹은 덕아웃에서의 화풀이등도 그에게선 한번도 구경할수 없었으니까...
있었다면 월드시리즈 우승후 동료들 그리고 그 가족들과 감격의 포옹을 나눌때 보여주었던 얼굴가득했던 환한 미소정도엿으니깐...
물론 감독이 올라올때 한번씩 티꺼운 표정을 내보이고, 마무리를 짓고 경기가 여하히 끝나 포수가 마운드로 종종거리며 뛰어와 그의 엉덩짝을 툭 쳐줄땐 어쩌다 가끔 한번씩 청순한 소년의 미소를 보여주기도 하므로 위에 예로 든 두사람보단 더 인간적인 부동심을 갖추고 있는것이라고 볼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모든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꿈이라고 하는 월드시리즈무대에서 두번이나 동점 홈런을 얻어맞으면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며 경기를 말아먹고 절체절명의 위기까지 떨어졌던 김병현...
월드시리즈에서의 실패가 선수생활의 실패로 이어졌던 대부분의 선수들과는 달리,
그러나 김병현은 지금도 마무리로 우뚝 서 있다.
그리고 그게 자신의 천생보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9회 마지막 승부에서 아무런 두려움 없이 마운드로 올라와서는 아주 덤덤하게 공을 뿌린다...
감독이 위험하다고 거르는게 어떨까 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치며 따르기는 커녕 인상까지 써가며 맞대결을 고집하는 그 공포의 부동심...
그게 왜 오동꾸나 개풀뜯어먹는 자만심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부동심에 속하는가 하면, 그에겐 본즈도, 소사도 그리고 델가도도 그냥 하나의 아웃카운트에 불과하기 때문이니까...
9회 3타자를 어떻게든 잡고 무사히 끝내자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서 은퇴할때까지 상대해야할 무수한 상대들중 몇명을 상대한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김병현이 처음부터 등장하는 그 순간부터 마치 낭떠러지에 서있는 어린아이를 보는 그런 위태로운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는 그 많은 팬들이, 행여있을 실투로 홈런이나 맞지 않을까 전전긍긍할때도,
정작 그는 마지막 아웃을 잡고 돌아서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티끌만한 안도의 표정은 커녕 가슴뿌듯한 성취의 느낌조차 하나 느낄수 없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하이파이브를 나누면서 그렇게 덤덤하게 덕아웃으로 사라진다..,
첫댓글 이상주의자시군요...
너무나 멋진 말씀. 너무나 멋진 병현.
좋은 글이네요. 추천 한방!
음 ^^멋지네요 잘봤어요
내가 갖고있지 못한 면 때문에.. 그런 평상심을 갖고 있는 병현님께 더욱 매료되는 듯..^^ 추풍낙엽님 글은 언제봐도 감동입니다..
눈물이 다 날꺼 같은...^^ 김병현도 멋지고.. 이런글을 남겨 주신 님께도 감사..^^
님의 글 참 좋군요... 공감을 통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뛰어난 글솜씨~ 좋아요~~~~ ^^
ㅋㅋㅋㅋㅋㅋ 행복하군여 ㅋㅋㅋ 아보인다 ......보스톤이 플레이오프경기 하고 있는 모습이 ㅋㅋ 미국으로 함 날라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