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스키코르사코프·러시아·작곡가
Nikolai Rimsky-Korsakov
Nikolai Rimsky-Korsakov, 1844~1908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악보를 펼치는 순간 숨이 탁 막혔습니다. “아니! 왜 이리 연습할 곳이 많지?” 오래 전 오케스트라 연습 시간에 [세헤라자데]의 악보를 처음 읽던 악몽 같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음반으로 즐겨 듣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명곡을 드디어 연주해볼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제1바이올린 파트 악보를 가득히 메운 시커먼 음표들에 질리고 말았습니다. 4악장에서 ‘왕벌의 비행’을 방불케 하는 빠른 32분 음표들을 뒤쫓던 숨 가쁜 순간을 간신히 넘기고 나니 문득 다른 단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다들 어려운 솔로와 빠른 악구들을 연주하느라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관현악곡은 한 마디로 ‘전 단원의 솔리스트화’를 지향하는 듯합니다. 그 화려하고 현란한 관현악 음향이 탄생하기까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쏟아 붓는 땀의 양은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빛나는 관현악곡들을 연주하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희생과 노력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음악은 그만큼 큰 기쁨과 보람을 전해주니까요.
독특하고 화려한 관현악법의 대가
러시아의 음악가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Andreevich Rimsky-Korsakov, 1844~1908)는 서양음악사상 가장 뛰어난 관현악법의 대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관현악법’ 즉 ‘오케스트레이션’이란 특정 선율에 오케스트라의 악기를 편성하는 방법인데,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오케스트라는 더욱 생기 넘치는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그의 작품 속에서 매우 독특하고 화려한 관현악법을 구사했을 뿐 아니라 관현악법의 원리에 대한 유명한 저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의 저서는 오늘날에도 작곡과 학생들의 참고문헌으로 널리 읽히며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영향력 있는 음악가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처음에는 아마추어 음악가로 그의 음악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본래 해군이었고 처음부터 음악을 직업으로 삼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물론 그는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일찍이 서유럽의 작곡가인 베토벤과 모차르트, 베르디의 음악을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소년 시절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해군사관학교에서 보내고 18세 때 학교를 졸업한 후 사관후보생으로서 세계를 항해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틈틈이 거의 독학으로 음악공부를 해왔던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작곡가 발라키레프의 권유에 따라 21세가 되던 1865년에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했습니다. 이 교향곡이 성공을 거두자 그는 본격적으로 전문 음악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고, 1871년에는 마침내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작곡과 관현악법 교수로 임명되어 작곡과 지휘, 그리고 음악교육에 힘썼습니다.
처음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전문 음악가로 길러지지 않은 탓일까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음악작품들은 관현악 기법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있습니다.
그는 관현악법에 대한 그의 저서에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그의 관현악법 저서에 “관현악법이란 창조될 뿐 가르쳐질 수는 없는 것이다”라 쓰기도 했는데,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그는 기존의 관습을 넘어선 상상력 풍부한 오케스트라 소리를 창조해내며 독자적인 관현악 세계를 펼쳐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연주에 있어 개방현(현을 손가락으로 누리지 않은 본래 조율된 그대로의 현)을 쓰는 것은 금기시되곤 하지만,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어느 음표에는 일부러 개방현을 사용하라는 표시를 해놓기도 했습니다. 개방현 특유의 튀는 소리로 화창한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죠. 뿐만 아니라 현악기의 하모닉스(손가락을 현의 특정 위치에 살짝 대고 연주하며 휘파람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연주법)이나 피치카토(현을 퉁겨 연주하는 주법)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곤 했습니다.
특히 [세헤라자데] 3악장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화음을 연주하거나 활을 튀어 오르듯 연주하며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는 부분은 인상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악기로도 타악기 같은 딱딱한 소리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관악기로 현악기 같은 서정적인 소리를 자유자재로 만들어냈으니 그는 진정 ‘소리의 마법사’라 할 만합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관현악법은 [세헤라자데]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살려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
The Flight of Bumble Bee, Op.57
L'Orchestre de la Suisse Romande /
Ernest Ansermet, Cond
The Flight of Bumble Bee,
'The Flight of Bumble Bee'
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