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가던 길에
한밤중 깬 십이월 둘째 수요일이다. 전날 다녀온 강변 트레킹 족적을 글로 남겨 놓고 책을 몇 줄 읽었다. 날이 밝아오길 기다려도 동지가 가까워진 때라 더디기만 했다. 예보대로 바깥 날씨는 빙점 아래로 내려가 차가울지라도 아침 식후 산책 걸음을 강행했다. 배낭에는 보온도시락 대신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을 챙겨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로 향해 창원대학 앞을 지났다.
도서관 열람실은 개방 시간이 일러 아침나절은 산책과 산행으로 시간을 보내다 오후에 들릴 참이다. 사실 올봄 정년을 맞아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서 나름대로 정한 생활 수칙에서 비가 오는 날은 도서관을 찾을 거라 마음을 정했더랬다. 그런데 올해는 봄부터 가뭄이 심했고 여름 장마도 짧게 끝나 가을이 다 가도록 비다운 비가 적었다. 그리하여 도서관을 찾은 횟수가 적었던 편이다.
추운 날씨였지만 외동반림로에서 퇴촌삼거리로 향했다. 늦게 물들었던 메타스퀘이아 가로수는 낙엽이 거의 져 앙상한 가지를 하늘 높이 펼쳐 솟구쳤다. 겨울철 가로수의 기능은 무성한 녹음이 아닌 도시 미관을 위함일진대 미끈한 외양으로도 제 몫을 다하는 듯했다. 퇴촌교를 건너 창원대학 앞에서 도청 뒷길을 따라 창원중앙역으로 올라가 철길 굴다리를 지나 용추계곡으로 들어섰다.
계곡 들머리 용추정에 이르니 두 아낙이 이른 시간 산책을 마치고 나왔다. 아카시나무를 비롯해 높이 자란 낙엽 활엽수들은 나목이 된 채 겨울 추위를 맨몸으로 버티는 엄동의 계절이었다. 숲속 어디선가 나뭇가지에 붙어 남아 있을 열매를 찾아 먹이로 삼을 산새들만이 재잘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이 줄어든 계곡의 웅덩이는 영하의 날씨이지만 첫추위라 그런지 얼음장은 아니었다.
집을 나서면서 털모자를 눌러쓰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꼈더랬다. 마스크에 두꺼운 잠바까지 입었으니 추위를 타지 않았는데 손마디는 시려와 날씨가 춥긴 추운 듯했다. 발걸음을 서둘지 않고 천천히 떼에 골짜기를 오르니 진례산성 너머로부터 솟는 아침 햇살이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왔다. 우곡사 갈림길 쉼터에 앉아 몇 지기들에게 겨울 골짜기 풍경 사진을 날려 보냈다.
진례산성 성내 포곡정으로 향하지 않고 가파른 갈지자 등산로를 따라 용추고개로 올랐다. 고갯마루에서 우곡사를 향해 내려가니 비탈길에는 단독 산행을 나선 여성이 올라왔다. 북사면 응달에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었는데 모두 옹글고 비틀어져 헬스로 단련된 근육질 남성의 몸매를 보는 듯했다. 키 높이가 낮게 자란 소사나무는 분재용 재목으로 인기가 많은 까닭을 알 만도 했다.
우곡사 주차장 약수터에는 샘물을 받는 이들이 빈 물통에 물을 담아 트렁크에 채워 실었다. 법당으로 오르는 층계 곁의 은행나무가 펼친 나뭇가지는 부챗살처럼 보였다. 수령이 얼마 되는지 가늠조차 어려운 고목은 둥치가 비어 그 둘레에서 움이 돋아 수세 좋게 가지를 뻗쳐 자랐다. 법당에는 아침나절 화장터에서 갓 옮겨 왔을 어느 영가의 혼을 위무하는 숙연한 제의가 진행되었다.
법당 아래 콸콸 솟는 샘물을 받아 마셨더니 깊은 땅속 지하수처럼 차가움이 덜 했다. 약수터에서 되돌아서서 노티고개로 가는 산등선을 바라보고 층계를 내려 우곡저수지로 나가니 최근 우곡사 둘레길을 조성하던 공사가 마무리 단계였다. 자여마을로 나가 오래전 근무지 한 동료와 연락이 닿아 점심을 함께 들면서 안부를 나누고 큰형님이 펴낸 문집과 문학 동아리 동인지를 건넸다.
점심 식후 동료와 헤어져 7번 마을버스를 타고 소답동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갈아타 백화점에 가 신발을 한 켤레 샀다. 그동안 신을 일이 드문 구두가 많이 낡아 바꿔야 할 때였다. 시청광장을 돌아 용지호수 어울림도서관에 들려 대출 도서를 반납하고 서가의 책을 펼쳐 시간을 한동안 보냈다. 어울림도서관엔 열람자가 한 명도 없어 내 개인 서재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22.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