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수술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20분 넘게 설명을 했건만,
여전히 환자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은 태어나서 한 번도 수술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두렵다며,
간단한 맹장수술이긴 하지만 잘못될 수도 있는 게 아니냐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밀려드는 짜증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던 나는 결국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수술을 받을 겁니까, 말 겁니까?"
나의 격한 반응에 환자는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 하고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한참 만에야 진료실로 들어선 환자는 사지로 끌려가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내게 수술을 받겠다고 했다.
나는 '어린애도 받는 수술을 가지고 유난을 떨기는…,
잠깐이면 끝나는 간단한 수술을 가지고.'라며 혼자 구시렁댔다.
진이 빠진 내가 잠시 숨을 돌리려는데
진동으로 맞춰둔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었다.
"내일 검사받기로 되어 있으시죠?
오전 9시 30분까지 심장내과 외래로 오시면 됩니다.
검사 당일 금식하시고요."
예약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던 나는 전화를 받고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심장 컴퓨터 단층촬영,,
중년 남성은 관상동맥이 좁아져 갑작스레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음을
어디서 들었는지, 아내가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검사를 예약해 둔 것이었다.
검사에 지장이 없음은 알고 있었지만, 저녁은 가볍게 먹어두기로 했다.
별 검사도 아니건만 막상 내일 검사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이런저런 걱정이 밀려드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뜬금없이 왼쪽 가슴께가 뻐근해 오기 시작했다.
전에 없던 증상이라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살짝 팔을 움직여 보았지만, 통증은 팔 운동과는 상관없이 계속됐다.
심장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슬그머니 걱정이 밀려들었다.
밤새 잠을 설쳤는지 머리가 찌뿌드드했다.
검사 당일 아침,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려는데
뜬금없이 베란다 창이 반쯤 열려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나는 창가로 다가가 열린 베란다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렸다.
힐끗 가스 밸브가 잠겼는지도 확인했다.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것들이 오늘따라 예민하게 보였다.
"창문은 왜? 환기도 시킬 겸 열어둔 건데."
아내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검사를 받다 이상이 발견되면
검사 당일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은 차마 꺼낼 수 없었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검사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옷장을 열자
푸른색 가운이 가지런히 개켜져 있었다.
내가 수술할 때 입는 여느 가운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유난히 짙은 시퍼런 색깔 하며
공장에서 갓 나온 듯 빳빳이 각이 세워진 모양새가 영 마음에 거슬렸다.
미적미적 가운을 걸친 나는 간호사를 따라 주사실로 들어갔다.
달랑 침대 하나와 컴퓨터 한 대가 고작인 협소한 공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침대에 누운 채 내맡긴 나의 오른쪽 팔뚝으로 굵은 바늘이 들어왔다.
따끔할 거라는 간호사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아프기만 했다.
시큰둥하게 바라보는 천장이 더없이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의사인 내게 병원이 이렇듯 낯설 줄이야,,
언제부턴가 온몸에 힘이 없고 정신이 희미한 게 마취제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오른 팔뚝에 링거 주사기가 꽂힌 채 나는 검사실 앞 대기실 의자에 가서 앉았다.
나보다 앞서 대기 중인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벗어진 고령의 노인으로 얼굴 전체가 퉁퉁 붓고
푸석푸석한 게 한눈에도 심장에 이상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노인과 나란히 앉아 검사를 기다리고 있자니,
검사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영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았다.
나는 부랴부랴 노인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렸다.
간호사는 저만치에서 등받이 의자에 팔을 기댄 채
무료한 듯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고작 5m 남짓 거리에 있는 그녀가
나와는 상관없는 낯선 세계에 앉아 있는 듯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둥그런 기계 장치 안에 누워 불안해 하는 내 고막으로
요란한 굉음이 쏟아져 들어오자 일시에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조영제가 투입되자마자 전신으로 뜨거운 기운이 퍼져 나갔다.
머리는 말할 것도 없고 항문까지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조영제 투입을 받아본 경험이 없었다면 필시 사고라도 난 줄 알고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왔으리라.
5분이란 시간이 그렇게 길 수도 있음에 나는 새삼 놀랐다.
검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대학병원을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낯익은 거리가 스쳐 지나갔다.
비로소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
중병을 앓다 퇴원하기라도 하는 환자처럼 창밖으로 지친 눈길을 던지는 것인데
유독 지워지지 않는 얼굴이 있었다.
어제 내게 맹장수술을 받았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유난을 떨던 여자 환자..
갑작스레 얼굴이 화끈거려 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그 환자의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을 것인지,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아니 부끄러웠다.
Merchi cherie(별이 빛나는 밤에 시그널), Frank Pource
첫댓글 입장 바꾸어 생각해보면 되는것을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역지사지...........
좋은글에 감사 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