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억새 열병을 받으며
기상 전문가들도 대기 흐름을 1주일 전후까지는 예측 정확도가 높아도 열흘이나 한 달 넘게까지 내다봄이 불가능하다. 보름 전까지 연일 포근한 날씨여서 올겨울 추위는 과연 어떻게 닥쳐올지 가늠이 쉽지 않았다. 막상 겨울의 뚜껑이 열리니 기온은 곤두박질쳐 영하권 추위가 닥쳐 겨울다운 날씨를 보여준다. 수도권에서는 어제오늘 제법 되는 적설량을 기록한 십이월 셋째 목요일이다.
올겨울 들어 기온이 가장 낮게 내려간 영하권 날임에도 문학 동인들과 정한 트레킹은 일정 변경 없이 강행했다. 이웃 아파트단지 사는 회원 승용차에 진해에서 넘어온 분과 함께 팔룡동으로 이동해 남은 한 분을 마저 태웠다. 지기는 사소한 일상에서 뜻밖의 골절로 갑갑하게 보낸 병상 생활과 불편한 깁스는 엊그제 풀어도 한동안 물리치료를 비롯해 후속 통원 진료가 따른다고 했다.
동인 넷은 매달 한 차례 나서는 트레킹 행선지는 창원시 경계를 벗어난 낙동강 중하류 수산다리 건너 강변으로 정했다. 운전대를 잡은 회원도 같은 연령대인 만큼 중년 이후 척추에 탈이 와 정형외과 한방 침술로 진료실 문턱을 드나들어 뒷좌석에 편하게 앉은 나는 미안해도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나는 차를 소유하지도 않지만 운전대를 대신해 잡아 줄 수 없음이 못내 유감이었다.
일행이 탄 차는 굴현터널을 지나 북면에서 본포를 거쳐 김해 한림으로 뚫린 신설 도로를 따라 달렸다. 창원시민 식수원인 대산정수장을 지나 낙동강을 가로지른 제 1수산교를 건넜다. 30여 년 전 25호 국도에 신설 수산대교가 놓여 예전에 먼저 있던 낡고 좁은 다리는 제1 수산교로 이름 바뀌었다. 강 건너는 밀양시 하남읍 소재지로 근동에선 ‘수산’이라는 지명이 더 알려졌다.
하남읍 주민센터에서 강변으로 나가 아파트와 사학 재단 중등학교를 지나 강둑을 넘었다. 수산대교 아래 파크골프장 곁에 차를 세우고 강둑으로 올라 자전거길 따라 걸었다. 볼이 차갑긴 해도 삼랑진 천태산과 생림 무척산의 동녘에서 솟아오는 아침 해는 우리를 일광욕이라도 시켜줄 듯 해맑게 비쳐왔다. 둑길 왼쪽으로는 백산 들녘 비닐하우스단지고 오른쪽은 둔치와 강물이 흘렀다.
우리는 소실점이 보이는 아득한 자전거길을 따라 걸었다. 대평마을 회관을 지난 정자에서 각자 가져온 다과를 꺼내 놓고 한담을 나누었다. 제방의 배롱나무에 지난 봄날에 새끼를 치고 떠난 박새 둥지가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걸어온 길가의 벚나무 가로수에는 정교하게 지은 까치집이 보이기도 했다. 겨울이 되니 하늘에는 맹금류의 일종인 매들이 먹잇감을 찾아 선회 비행을 했다.
명례 오토캠핑장에 이르니 둑길은 야트막한 구릉으로 이어져 낙주재와 명례성당이 나왔다. 낙주재는 조선중기 인조반정 때 공을 세운 효령대군 후손 이번이 낙향에 은둔한 곳이었다. 낙동강의 물길이 아름다워 눌러살았던 자리는 전주 이씨 재실이었다. 그 곁은 조선 후기 천주교 전래 과정에 순교한 신석복 생가터에 새워진 명례성당으로 경남에서 신부가 재임했던 최초 성당이었다.
종무실을 겸한 안내소에는 한 교우의 서각전이 열려 영혼을 맑게 해준 글귀와 칼끝 솜씨를 잘 감상했다. 산마루로 올라 120여 년 전 순교자 생가터의 옛 성당과 신축한 미사 공간을 둘러봤다. 이후 점심때가 되어 들녘 마을 가운데 시골스러운 분위기가 나는 중국집으로 들어 짜장면과 짬뽕으로 점심 요기를 때웠다. 식후 들길을 걸어 강둑을 넘어 둔치에 길게 이어진 탐방로를 걸었다.
강 건너는 김해 한림 술뫼 생태공원에서 창원 대산 북부동 팽나무로 이어졌다. 오토캠핑장을 지나 색이 배래는 물억새와 갈대숲의 열병을 받으며 세 군데 원두막을 지나니 수산대교 근처 파크골프장에 이르렀다. 창원으로 복귀하면서 본포나루에서 유장하게 흐르는 강변 풍광을 한 번 더 감상하고 북면 달천계곡 들머리 식당에서 코다리찜으로 이른 저녁을 들며 한 해를 마무리 지었다. 22.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