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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차 개방으로 단계적 확대
2차 개방은 1999년 9월10일로 영화, 비디오의 개방 기준이 되는 공인 국제영화제 수상작을 70개로 확대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는 제외했다. 일본인 가수의 콘서트도 처음으로 허가했다. 2000석 이하의 실내공연장에서 이루는 대중가요 공연도 허가했다.
3차 개방은 2000년 6월27일로 연극, 영화에 대해 성인용을 제외하고 전면 허락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도 국제영화제 수상작의 경우 상영할 수 있었다. 음악 CD(일본어 가창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조건), 게임소프트웨어, 텔레비전 방송(스포츠, 다큐멘터리, 보도 프로그램) 등도 수입과 판매를 허락했다. 대중가요 공연은 전면 개방했다.
일본 문화의 급속한 개방으로 일본 영화 상영은 2000년에 24편으로 늘어났다. '러브레터'는 67만명, '춤추는 대수사선'은 29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이웃집 토토로'와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도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2001년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으로 일본 문화 개방은 일시 주춤했다. 민간단체나 자치단체들도 일본과의 문화 교류를 일시 중단했다. 문화와 외교가 연동해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정부는 2001년 7월12일, 교과서 왜곡에 대한 항의로 일본 대중문화 추가개방에 대한 무기 중단을 발표했다. 그러다 2002년 말 한일 공동 월드컵 축구 대회 등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양국 국민간 상호 신뢰 관계가 회복하고 추가 개방에 대한 분위기가 조성했다.
정부는 2003년 6월7일 한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내며 '일본 대중문화 개방 확대'를 표명하고 4차 개방 계획안을 마련했다.
4차 개방은 2003년 9월16일 시작했다. 영화, 음반, 게임 분야를 완전 개방했다. 방송과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보완 조치를 마련해 개방 범위를 조율한 뒤 2004년 1월1일 함께 개방했다.
문화산업 육성으로 우려 완화
김대중 정부는 일본 문화개방과 함께 적극적으로 국내 문화산업 육성 정책을 구사했다. 1999년에는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제정해 '문화산업진흥기금'을 마련했다. 그에 따라 게임종합지원센터, 문화산업지원센터 등을 설립해 문화인재를 양성했다.
'쉬리', '공동경비구역JSA', '친구' 등 우수한 영화를 만든 것은 그 덕택이기도 했다. 일본 영화를 다수 수입했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러브레터' 등을 제외하면 관객을 많이 끌지 않았다. 그렇게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한 한국인의 우려와 경계는 점점 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