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 당시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노영민 등 문재인 정부의 대북안보라인 수장들이 강제 북송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실무진 보고를 받고서도 이를 묵살한 채 신속한 북송 방침을 세워 실행한 과정과 배경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9일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이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청와대는 사건 발생 무렵 문재인이 모친상 중이었던 2019년 10월 30일 김정은이 보낸 조의문에 대해 감사하다는 취지의 친서를 보낼 방침이었다.
이 친서를 2019년 11월 4일 전후로 보낼 예정이었으나 탈북 어민들을 동해상에서 나포하게 되자 신속히 돌려보낼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검찰은 공소장에 “친서를 북한에 보내는 기회에 어민들을 나포해 북한에 송환함으로써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북한을 존중하고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기로 방침을 세웠다”고 적시했다.
또한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의 협상 결렬로 인해 급격히 냉각된 남북관계 개선이 절실했던 시기라고 검찰은 판단했다.
공소장에는 어민 나포 이틀 후인 2019년 11월 4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책회의에서 강제 북송 방침이 결정된 과정도 구체적으로 기재됐다.
당시 정의용이 문재인의 태국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일정을 수행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서 노영민이 대신 회의를 주재했다.
노영민은 정의룡으로부터 강제북송 방침 등에 대해 연락을 받은 뒤 이에 동의한 채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에서 ‘북송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노영민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추가 법리 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서훈이 실무진 반발에도 불구하고 각종 내부 보고서에서 북송 방침에 걸림돌이 될만한 불리한 표현을 빼라고 지시한 내용도 공소장에 여러차례 등장한다.
11월 1일 북한 선원들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하를 시도한 때부터 서훈은 김모 당시 국정원 3차장에게 법적으로 탈북민들을 북한에 돌려보낼 수 있는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지시를 전달받은 대공수사국 직원들은 ‘울릉도 동북방 해상 北 선원 나포시 신병 처리 검토’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서훈은 11월 3일 보고서 초안을 보고받으면서 “흉악범인데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되나”라고 언급했다.
서훈은 11월 4일에도 3차장에게 “지금 쟤들(북한 선원) 16명이나 죽인 애들이 귀순하고 싶어서 온 거겠냐, 지들 살려고 온 것이지. 우리는 북송하는 방향으로 조치 의견을 넣어가지고 보고서를 만들어줘”라고 지시했다.
이에 3차장이 “두 번이나 실무부서에서 반대했다. 대공수사국에 설득이 가능하겠느냐”고 묻자 서훈은 “그냥 해”라고 답했다.
이 같은 지시를 받은 3차장은 실무자들이 작성한 중앙합동정보조사 상황 보고서 중 ‘진술 검증과 거짓말탐지기 검사 등을 통해 진술 신빙성을 확인할 예정’이라는 추가 조사 계획을 삭제했다.
또 ‘탈북 어민들은 진정한 귀순으로 보기 어렵고 희대의 살인범으로 우리 정부가 보호해야 할 가치가 없다’는 등의 문구를 추가하도록 했다.
서훈은 11월 5일에도 ‘대공혐의점 희박’이라는 보고서 문구를 보고 “NSC에서 (북송이) 결정됐는데 대공혐의점 희박이 뭐야?”라며 이를 ‘대공혐의점 없음’으로 수정할 것을 지시했다. 보고서에선 ‘귀순 요청’이란 표현도 삭제됐다.
11월 5일에는 중앙합동정보조사팀장이 국정원 대공수사국 직원으로부터 “북송이 BH의 지침” “귀순이라는 용어가 있으면 곤란하다. 귀순이라는 용어는 없도록 해달라” 등의 말을 듣고 보고서를 수정했다.
이에 따라 ‘귀순 경로’는 ‘월선 경로’로, ‘귀순자 확인자료’는 ‘월선자 확인자료’로 고치고 , ‘귀순 의사 표명’ ‘거짓말탐지기 심리검사’ ‘탈북민 정착 지원 절차 진행할 수 있도록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신병 인계’ 등의 표현을 삭제했다.
검찰은 “귀순의사를 밝힌 북한이탈주민들을 북한으로 강제송환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탈북어민의 귀순 의사나 귀북 의사 유무와 상관없이 이들을 북송시키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