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을 까면서
십이월이 중순에 접어들어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다. 겨울철 한반도 기압 배치는 전형적으로 서고동저다. 시베리아 고기압 세력이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며 추위가 엄습해 왔다. 남녘지방도 며칠째 아침 기온이 빙점 아래로 겨울다운 추위를 실감한다. 중부와 수도권에서는 함박눈이 내려 생활에 불편을 겪는다는데 눈이 귀한 우리 지역에서는 낭만으로 다가옴은 사치인지도 모르겠다.
근래 연일 강변 트레킹을 나섰다. 겨울에는 해발 고도를 높여 가는 산행에서 오를 때보다 내려설 때가 더 조심스러웠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무릎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기를 바라서이다. 엊그제는 무릎이 일시 시큰해져 와 마금산 온천장을 찾아 온천수에 몸을 담갔더니 최면 효과인지 증세가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그날도 대중탕을 나와 곧장 강변을 대여섯 시간 걸었더랬다.
금요일은 아침부터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 머물며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냈다. 내가 집에서 별스레 도움이 되겠느냐마는 그래도 가끔은 쓸모가 있다. 지난 여름날 텃밭에서 키워 딴 고구마 잎줄기 껍질 벗기기는 내 몫이었다. 가을에 고향 형님댁이나 야산에서 주워온 밤톨을 까는 일도 내가 할 일이었다. 고구마 잎줄기는 나물이나 된장국을 끓여 먹었고 깐 밤은 밥을 지었다.
보름 전에는 아내가 삶아둔 무청 시래기도 내가 깠다. 우리 집에서 무청 시래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작년까지는 북면 지인 농장에서 협찬받기도 했는데 올해는 내가 텃밭을 가꾸어 직접 키운 무에서 무청을 마련했다. 그 양이 조금 적다 싶었는데 이웃 광쇠농장 친구가 보낸 시래기도 제법 되어 양이 늘었다. 무청 시래기는 삶은 뒤 줄기의 껍질을 까서 먹으면 식감이 부드럽다.
이번에 할 일은 마늘 까기였다. 우리 집은 아내가 수술 후 몸이 불편하고는 김장은 건너뛰고 김치는 외부 지원이나 홈쇼핑 구매로 해결한다. 그러함에도 해마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형님으로부터 얼마큼 마늘을 가져온다. 시중 시세에 따라 금을 쳐 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저 오기도 하는데 올해는 후자였다. 아마 올봄에 내가 편집을 마친 형님 문집 발간에 대한 배려인가 싶다.
경남에서 마늘 주산지는 남해와 창녕으로 알려졌지만 의령도 내세울 만하다. 고향 큰 형님은 벼농사나 고추밭 뒷그루로 마늘을 제법 심는다. 예전에는 양파 농사도 지었으나 힘이 달려 그만두었다. 마늘이나 양파 농사는 파종과 수확이 기계화가 어려워 일일이 사람 손길로 해결하기에 힘들었다. 예전에는 나도 일철이면 시골을 찾아 형님 일손을 거들었는데 근래는 찾아가질 못했다.
지난여름 고향에서 보내온 마늘은 베란다 시렁에 보관 중이다. 마늘은 바람이 통하는 곳이면 상온에서 예닐곱 달 정도는 온전하게 간수되었다. 특히 고향의 마늘은 산간 내륙형 품종이라 육질이 단단하고 저장성과 향이 좋았다. 나는 형님댁 마늘을 까거나 먹을 때면 고향의 흙내음과 육친의 정을 함께 느끼기도 한다. 그러니 내게 마늘까지는 가사 노동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아침 식후 산행이나 산책을 나선 대신 베란다에 둔 마늘을 거실 바닥으로 옮겨 마늘쪽을 쪼개서 껍질을 벗겨 갔다. 카트 칼로 잔뿌리가 붙은 부분을 먼저 자른 다음에 육질을 감싼 표피를 벗기기는 단순 작업이라도 오래 하면 손톱 밑이 아려 왔다. 위생장갑을 끼고 까면 아리기가 덜하긴 하지만 나는 예전 관행대로 맨손으로 까는 게 익숙해 인내심을 발휘 마늘 까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후 과정은 내 소관이 아니었다. 깐 마늘은 김장용이 아닌지라 아마 갈아서 작은 봉지에 나눠 담아 냉장고 냉동칸에 보관되지 않을까 싶다. 주방에서 찬을 마련할 때 시나브로 꺼내 조금씩 쓰일 테다. 고향에서 보내온 마늘을 까 냉장고로 들면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즈음이다. 깐 마늘이 갈아서 봉지마다 채워 다 먹고 재고가 바닥나면 해가 바뀌어 봄이 오고 여름이 다가왔다. 22.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