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신문사에 계신 분과 말씀을 나누다가 동네아이 캠패인을 하면 어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단 칼에 거절 ! "자기 아이는 자기가 키우자."
그게 아닌데
하여 혼자 동네아이 프로젝트를 실행합니다.
누구라도 마음이 움직이길 바라며
지나다 만나는 아이에게 칭찬 한 마디 건네시기를 바라는 마음 담았습니다.
그림협업- 제 친구 송재금작가가 뜻을 같이 해서 보태게 되었습니다. 아이패드에 그림.
동반비행/이미영
한낮의 열기는 저녁까지 식을 줄 모른다. 찔끔 내린 비 때문에 여름밤은 숨이 턱턱 막힌다. 밤새워 뒤척이다가 새벽녘에 부는 한 줄기 바람을 덮고 겨우 잠이 든다. 딱따구리가 머리를 콕콕 쪼아댄다면 이런 느낌일까. 활짝 열어젖힌 창문으로 굴착기 소리가 선공을 날린다. 뒤이어 아파트 전체가 흔들리는 진동에 결정타를 얻어맞고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여름이 시작되고 창문을 활짝 열고부터 소음과 진동은 매일 아침 거친 인사를 보낸다.
우리 아파트를 삼면으로 둘러싸고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부수고 실어 가고 다시 파고 파낸다. 전쟁터의 한가운데에 텐트를 치고 사는 것 같다. 봄에 건물 허물기가 시작될 때는 문을 꼭꼭 닫고 지냈더니 요란한 소리와 먼지의 공격은 유리창을 넘지 못하고 일단락되었다. 철거는 땅파기 작업의 예고편이라는 걸 몰랐다. 고층 아파트를 지으려니 지반을 끝도 없이 파기 시작한다. 한 달이 넘도록 굴착기는 암반을 뚫어서 거대한 지하 공간을 만들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입주자 회의를 열어 소음과 분진으로 생기는 피해를 보상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하여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것이 탄생했다. 대로변으로 난 아파트 외벽에 벌건 색으로 공사에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엘리베이터 안내판에는 소음이 날 때마다 기록하고 구청에 민원을 넣으라고 당부했다. 옆 동에 사는 친구는 벌써 몇 번이나 구청에 항의했다고 나를 부추긴다. 뒤통수에 둥지를 튼 딱따구리가 아침마다 머리를 쪼아댈 때 오늘은 나도 민원을 넣으리라 결심하지만 외출로 해결하고 만다.
이태 전에 인도에 사는 다람쥐가 곤히 자는 나무구멍을 쪼아대는 딱따구리를 내쫓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앙칼지게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치켜세운 다람쥐는 딱따구리가 줄행랑을 치도록 혼쭐을 냈다. 동물들 세계에서도 소음과 진동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닌 모양이다. 다람쥐는 나무에 기어올라 도토리를 먹고 딱따구리는 훨훨 날다가 나무를 쪼아 애벌레를 찾아 먹는다. 둘은 나무 동네에 사는 다른 종족이다. 딱따구리는 태생이 소란을 일으키는 민폐 조류인가.
겨우 청한 새벽잠을 거칠게 깨워도 종일 머리가 지끈거려도 쉽게 항의를 하러 나서지 못하는 까닭은 자꾸 아버지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내가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우리도 같은 원망에 시달렸다. 아버지가 삼 층 상가건물을 올리려고 터파기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옆집 아저씨는 험한 말을 퍼부었다.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고, 깊게 땅을 파다가 자기 집이 기울어질지도 모른다고 매일 구청에 찾아갔다. 말없이 지켜보던 뒷집도 따라서 불만을 쏟아냈다. 수박을 사 들고 찾아가고 허리를 숙이며 사정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위로금인지 합의금인지를 전달하자 불만은 금세 사그라졌다. 소음의 고통과 분진의 불편이 돈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남들보다 일찍 알게 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삼층집으로 들어간 뒤에도 옆집과는 이웃이 되지 못했다. 엄마는 이웃집으로 반상회를 가고 동네 분들은 우리 집으로 오기도 했지만, 옆집 아저씨와는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돈 봉투를 주고받은 사이는 이웃이 될 수 없는가 싶었다.
길 건너편에 새로 지은 아파트는 높게 둘러쳐진 담장이 외부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입주자들만 열 수 있는 철문은 항상 꽁꽁 닫혀있다. 예전에 제멋대로 드나들던 지름길에는 단단한 담장이 올라가고 방범 문으로 행인을 가로막는다. 공사로 생긴 불편을 돈으로 보상을 했으니 길을 열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인가 보다. 그 아파트 정원에 핀 하양, 분홍, 보라색 배롱나무 꽃이 어우러질 때 꽃그늘이 나를 유혹한다. 담장 너머로 구경하는 눈길마저도 남의 것을 탐하는 것 같아서 얼른 접어 들인다.
족제비를 등에 태우고 숲속을 날아가는 딱따구리 사진을 보았다. 딱따구리의 어깨에 앞발을 찰싹 올린 족제비는 목을 빼고 처음 보는 발아래 세상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태워주는 딱따구리는 부리를 살짝 벌리고 “어때, 재미있지?”라고 물었다. 족제비는 등을 쭉 펴고 “정말 신기해.”하고 감탄했다. 서로 다른 종족이 한 몸이 되어 날아가는 착한 비행이었다.
오순도순 함께 사는 것들은 무엇이라도 아름답다. 공중을 모르는 족제비가 딱따구리에게 업혀서 새로운 하늘을 구경하는 모습은 어여쁘다. 다람쥐에게 쫓겨나던 퍼덕거림과 족제비를 등에 태운 유유한 날개 짓이 같은 조류의 행동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족제비가 나무에 사는 애벌레를 모아 비행 요금을 지불했을 리도 없을 텐데 말이다. 딱따구리는 어울림을 아는 숲속 동물이다.
아파트 공사장 앞을 지나다가 얼마 전에 근처 새집으로 이사를 한 윗집 소년을 만났다. 동그란 눈이 예쁜 녀석을 큰 소리로 불렀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우리는 알아보았다. 꾸벅 인사를 하는 녀석은 여전히 귀여웠다. 천장이 흔들리도록 소란을 피울 때는 밉기도 했지만 볼 때마다 허리를 접어 인사를 하는 바람에 노여움을 품을 수가 없었다. “덥지?”, “예”, 그리고 “안녕”, 말 없는 꾸벅 인사로 헤어졌다. 멀어지는 윗집 소년의 신나는 발걸음을 오래 지켜보았다. ‘나도 너를 조금 키웠단다.’ 혼잣말로 미소 지었다.
우리 아파트 비상대책위원회가 바라는 대로 소음을 기록하고 민원을 제기하지 못할 것 같다. 아무 소용이 없더라도 혼자 소망을 가져보기로 한다. 천장을 들썩거리던 윗집 아이가 소년이 되어 내게 꾸벅 인사를 하던 흐뭇한 날을 오래 기억하기로 한다. 다람쥐에게 쫓겨나던 딱따구리는 지워버리고 족제비와의 아름다운 동반 비행을 새겨놓는다.
나도 함께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
첫댓글 이런 일은 도회지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이면 누구나, 언제나 겪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불협화음의 뒤에는 숨은 뜻이 있다는 것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