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KBS의 ‘가요무대’를 보고 있던 외손자 吳政錫(만 8세, 초등 2학년)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이 짜증 나. 詩로 X폼 잡지 마! 가요무대에선 노래를 불러야지, 왜 詩를 읽어!”
출연자가, 추석날을 맞아 부모를 그리워하는 詩를 흐느끼듯 읊는 것을 보다 못해서 고함을 지른 것이다. 곁에 있던 아내가 “야, 정석아 무슨 그런 말을 해. 저 사람들 봐,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잖아. 부모님한테 효도하자는 건데 왜 신경질을 내?”라고 해도 정석이는 굽히지 않았다.
“저 사람(시 낭독자) 부모님이 정말 죽었어? 살아 있는데도 거짓말 하는 것 아냐?”
詩에 감동하여 눈물짓는 가요무대 노인 방청객과 신경질을 내는 어린이 사이에 소통이 필요한 건가?
외손자를 편들려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한국 방송 프로가 家庭事(가정사)를 많이 다루다가 보니 효도나 가족 사랑을 유달리 강조하고 가끔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는, 택시를 타고 가면서 할 수 없이 들어야 하는 부부끼리의 사랑 고백이다. 진행자가 남편과 부인을 전화로 연결시켜놓고 “서로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해보세요”라고 한다. 그런 이야기는 두 사람끼리 안 들리게 해야 할 터인데 왜 라디오로 전국에 생중계 되는 가운데 하나마나한 사랑 고백을 하는지 듣고 있기가 거북하다.
부모와 자식, 夫婦 사이의 사랑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그걸 저렇게 굳이 강조하고 자랑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아는 한 기업인의 어머니는 남편이 전쟁 중 납북되어간 뒤 守節(수절)하면서 여러 자녀들을 잘 키웠고, 자신은 근 100살까지 長壽하였다. 좋은 소문이 나서 정부에서 상을 주려고 하니 親知(친지)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면서 거절하더라고 한다.
“나는 내 자식을 키운다고 다른 사람들을 돕지 못한 사람이야. 자식 사랑은 아메바도 한다.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내가 가족사랑은 그만큼 원초적이므로 당연한 것이고 자랑꺼리가 아니라고 강변한다면 “쌍팔년도 생각을 하네”라는 식의 집중 공격을 받을 것이다. 너무나 많은 영화와 드라마와 記事가 가족간의 사랑과 희생을 주제로 삼으니 그런 반발심이 생기는 것이다. 孝만큼 중요한 忠은 왜 그런 소재가 안 되는 것인가.孝를 소재로 하는 분량의 10분의 1이라도 忠이 소재가 되어야 균형이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효는 私的(사적)인 도덕이고, 忠(충)은 公的(공적)인 것이다. 忠은 국민과 국가, 敵과 我, 상관과 부하, 戰友愛, 애국심 같은 보다 넓은 영역에서 작동하는 가치관이다.
조선조의 통치이데올로기인 주자학적 가치관은 효를 忠보다 우선시켰다. 義兵將이 抗日 전투를 하다가 父母喪을 당하면 3년상을 치르기 위하여 전선을 이탈,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지금 기준으론 公私 구분이 안 되는 행위이지만 당시의 가치관으론 옳은 행동이었다.
애국심과 비슷한 개념의 忠은 임금이나 국가를 중심으로 놓는 가치관이다. 임금과 국가(또는 국민)는 공동체를 가리킨다. 가족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公私가 충돌할 때 公을 택하는 게 옳다면 忠孝가 충돌할 때는 忠을 선택하는 게 옳다.
언론이 軍內 사고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가운데 이런 제목이나 기사문이 자주 등장하였다.
“저런 군대에 내 아들을 보내야 하나?”
자식사랑을 국가에 대한 의무보다 우선시키는 가치관의 반영이다. 한국인은 ‘저런 군대’라도 아들을 입대시켜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거부하고 싶으면 한국에서 탈퇴, 國籍(국적)을 바꾸어야 한다.
‘라이언일병구하기’는 忠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나는 영화 ‘명량’의 작품성은 높게 평가하지 않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忠을 주제로 하여 성공한 영화였다. 이순신의 亂中日記를 읽으면 忠을 孝보다 우선시킨 사람임을 알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효도와 아들에 대한 사랑이 절절히 표현되어 있지만 그런 마음이 軍紀(군기)나 軍律(군율)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
李舜臣이 수사 대상이 된 것은 宣祖(선조)의 출전 명령을 거부한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한국군의 합참의장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작전명령을 거부한다면 수사를 받게 될 것이다. 이순신의 진면목은 감히 임금의 명령을 거부한 그 오기(또는 확신)에 있다. 이순신은 선조의 출전명령을 따른다면 水軍이 전멸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水軍을 지킬 것인가, 王命을 거부할 것인가? 이는 임금인가, 국가인가의 擇一(택일) 문제였을 것이다. 그는 국가(수군)의 이익을 임금보다 더 위에 놓았다. 이순신은 임금보다 국가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인가? 이 점에 대한 연구가 있었으면 한다.
三國史記에 유명한 대목이 있다.
원래 唐은 신라와 동맹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직후(660년) 餘勢(여세)를 몰아 신라를 치려고 했다. 신라 태종무열왕이 이를 알아차리고 신하들을 불러 대책을 의논했다. 多美公(다미공)이란 사람이 나와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 백성을 백제 사람으로 위장하여 도둑질을 하려는 것처럼 하면 唐의 사람들이 반드시 공격할 것입니다. 그때 더불어 싸우면 뜻을 얻을 수 있습니다.'
金庾信(김유신)이 '그 말도 취할 만하니 따르십시오'라고 했다. 태종무열왕은 내키지 않았다.
'당 나라 군사가 우리의 적을 멸해주었는데 도리어 함께 싸운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겠소.'
이에 金庾信이 말했다.
'개는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어찌 어려움을 당하여 자신을 구하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대왕께서는 허가해주십시오.'
金庾信이 한 말은 三國史記(삼국사기)에 '自救(자구)'로 표현되어 있다. 신라가 개 노릇까지 하면서 唐을 섬길 용의는 있다. 唐이 신라를 존중해주면(이것이 자주적 사대주의 정신이다). 그렇지만 唐이 크고 힘센 것만 믿고 신라의 자존심과 그 존재 자체를 무시한다면 신라는 당을 물어뜯어서라도 自救(자구)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야말로 신라와 같은 小國이 大國을 옆에 두고도 自尊(자존)을 지켜갈 수 있게 한 정신력의 핵심이다.
신라가 臨戰(임전)태세를 갖추자 蘇定方(소정방)의 唐軍은 백제 포로들만 데리고 귀환했다. 당시는 唐의 전성기 高宗(고종) 시대였다. 고종은 '어찌하여 신라마저 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蘇定方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신라는 그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그 신하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모시기를 父兄 섬기듯 하니 비록 작지만 도모할 수가 없었습니다.'
(新羅其君仁而愛民 其臣忠以事國 下之人事其上如父兄 雖小不可謨也)
이는 그대로 신라에 대한 세계 최강국의 최고 찬사이다. 仁愛忠事(인애충사), 즉 어짐, 사랑, 충성, 섬김, 이것이 신라의 公民(공민)윤리였다는 것이다. 이런 공덕심은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쓸모 있는 국가와 국민의 윤리이다. 국가와 지도층은 국민들을 어짐과 사랑으로 대하고, 공무원은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은 지도층을 따른다. 이것은 국민국가의 이상적인 국가-국민 관계이다.
특히 ‘其臣忠以事國’이라는 표현이 흥미롭다. 신하가 충성을 바치는 대상은 왕이 아니라 國으로 특정되어 있다. 신라 사람들은, 임금보다 국가(국민)를 더 위에 놓았던가? 만약 그렇다면 이는 국민국가 건설 과정에서나 발견되는 위대한 각성이다. 국가를 임금이나 대통령이나 정권보다 더 위에 놓는 것은 최고봉의 忠이다. 그런 국가 개념은 국민이나 헌법으로 代替(대체)될 수 있는 근대적 의식을 반영한다. 국민국가 국민의 충성 대상은 궁극적으로는 헌법이다.
“(효도 詩 낭송에 대하여) X폼 내지 말라”고 소리 지르는 외손자이지만 애국가 4절을 잘 부른다. 서울시 교육청이 시키는 대로 낮추어 부르지 않고 원래의 高音(고음)으로 씩씩하게 잘 부른다. 김유신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는데 아직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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