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수라바야를 떠난 해사58기 해군순항훈련함대는 기간 중 최장거리인 8박 9일간 2153NM(약 4000km)의 항해를 시작했다. 항해 동안 사관생도들은 전투배치·발광·기류·대잠전훈련 등 오전 5시45분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꽉 짜인 일과표에 따라 교육훈련을 받았고, 야간에는 거친 파도와 싸우며 견습 당직근무까지 수행하는 등 정예 해군장교가 되기 위한 반복 숙달훈련을 계속했다.
항해 8일째, 순항훈련함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모함 간의 첫 결전지였던 산호해(Coral Sea) 해전의 주전장인 토러스 해협을 지나고 있었다. 진주만 기습을 가능케 했고, 대잠전과 더불어 해전에서 대공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항공모함이 이곳 해상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생각하니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들이 거친 파도 속에 묻어오는 듯했다.
12월1일 오전 10시, 순항훈련함대는 산호초가 그림같이 펼쳐진 파푸아뉴기니의 수도 포트모르즈비 항에 입항했다. 항구에는 유창현 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과 현지 교민은 물론 이곳 주민들이 전통 민속춤을 추며 환영해 주었다.
16세기 초 포르투갈 항해사 게오르그 메네시스에 의해 최초로 발견된 파푸아뉴기니는 험한 산악과 6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국의 4배인 46만2840㎢의 면적에 인구 530만 명(2002년 통계)이 살고 있다. 이 나라는 연 평균기온이 21~35도의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후로 전 인구의 85% 이상이 원시적인 생활습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다수의 부족이 각기 다른 문화와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 국민통합을 이루기 어려우며, 치안상태가 극도로 불안하고 도로가 발달되지 않아 문명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공식행사 일정에 들어간 지휘부는 파푸아뉴기니 군사령관(페트로 이라우 중장)과 양국 해군 간 우호·협력 증진 방안에 대해 심도 깊은 의견을 교환했다. 또 군사령부 연병장에서 가진 친선공연에는 군장병과 현지 주민, 우리 교민 500여 명이 운집해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태권도 시범에 관심이 높았는데 태권도 교관으로 파푸아뉴기니 군장병들을 지도하고 있는 이준(46)사범은 “사관생도들의 태권도 수준이 상당하다”며 “태권도 교관으로서 오늘같이 가슴 뿌듯한 날은 처음이며 파푸아뉴기니 장병들이 많은 자극을 받았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순항훈련함대 의무참모를 비롯한 군의관 일행은 한국인 수녀가 원장으로 있는 카리타스 기술여자고등학교를 찾아 대민진료활동을 펼쳤다.
포트모르즈비에 있는 이 학교는 선교활동을 위해 이곳에 건너온 한국인 수녀들에 의해 1995년 설립됐으며 파푸아뉴기니 여자 중·고교생들에게 영어·과학·수학·사회학·기술 등을 가르치고 있었다.
진료를 받기 위해 오전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맨발의 원주민들은 경제여건상 아직까지 한 번도 병원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장병들은 최선을 다해 정성껏 진료해 주었다.
의무참모 조건영(군의31기)대위는 “한국제약협회에서 기증받은 의약품이 소량이고 순함사 의약품이 제한돼 있어 충분히 치료하지 못했지만 고마워하는 원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고 전역 후 국제의료봉사 활동을 계획할 때 이곳을 꼭 찾겠다”고 말했다.
대청함상에서 개최된 리셉션에는 파푸아뉴기니 군사령관을 비롯한 군 지휘부와 정부 기관장, 영국·프랑스·일본·호주 등 6개국 대사는 물론 교황청 대사, EU 대사 등 파푸아뉴기니에 주재하고 있는 VIP들이 대부분 참석했고 이곳 TV·신문에서도 열띤 취재를 벌이는 등 대성황을 이뤄 군함외교의 현장을 실감케 했다.
현지 대사관 직원과 수녀, 그리고 교민들이 흔드는 태극기를 뒤로한 채 산호해를 지나 호주 시드니로 향하는 갑판에서 파푸아뉴기니 방문 동안의 보람과 함께 단일민족·문화·언어를 사용하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축복받은 나라인지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해군만이 지닌 군함외교의 유용성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김희연 공보참모·해군중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