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는 안녕하더이다
간밤은 내가 속한 문학회에서 연말 총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장소가 서부권 도계동 갈비집인데 그곳으로 가려면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정한 시간보다 서너 시간 일찍 집을 나서 걸었다. 도중에 지귀상가에서는 5일장이 서는 날이라 추운 날씨 속에도 장터가 열렸다. 늦은 오후 파장 풍경을 둘러보고 가끔 들렸던 주점을 찾아 고등어구이로 맑은 술을 잔에 채워 비웠다.
이후 차도와 나란한 보도를 따라 걸어 모임 장소로 가 안면이 익은 회원들을 만나 환담과 식사를 했다. 식후 집행부에서는 한 해를 보낸 살림살이 보고와 기념사진을 남겼다. 귀로에 장유에 사는 회원의 차에 방향이 같은 네 분이 동승해 집 근처 예전 도시자 관사 정원수에 송년을 앞두고 밝힌 오색 불빛을 감상하고 인근 찻집으로 들어 차를 들며 그간 궁금했던 안부를 나누었다.
날이 밝아온 십이월 셋째 토요일이다. 며칠째 한파가 닥쳐 전국이 영하권으로 꽁꽁 얼어붙어 우리 지역도 마찬가지였지만 미리 정해둔 일정은 열차로 강변 어디쯤 나가 트레킹을 하고 올 생각이었다. 점심 도시락이 든 배낭을 둘러메고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에서 창원대학 앞을 지났다. 도청 뒷길을 따라 창원중앙역에서 순천을 출발해 부전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화포 습지와 뒷기미의 차창 밖 풍경은 근래 몇 차례 지나가 봐 낯이 익었다. 나는 봄이나 여름에는 산을 누비며 산나물을 채집하거나 영지버섯을 따느라 근교로 산책을 나설 겨를이 적었다. 계절이 바뀐 가을과 겨울에는 강가나 바닷가를 즐겨 찾는다. 일전에도 수산에서 명례까지 강둑을 따라 걸었고 북면에서 창녕함안보를 건너 칠서로 가면서 남지 철교 근처까지 트레킹을 했더랬다.
열차는 삼랑진과 원동을 거쳐 강변 따라 더 미끄러져 물금에서 내렸다. 역을 나와 황산 육교를 건너니 둔치 강변은 드넓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양산은 옛 이름이 삽량인데 지금도 문화 행사 등에서는 삽량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강변 공원의 이름을 ‘황산’으로 붙여진 데는 그만한 연유가 있다. 그것은 신라 하대 최치원이 오봉산에 올라 ‘황산강 임경대’를 읊은 데서 유래한다.
오봉산은 물금 신도시를 병풍처럼 에워싼 다섯 개 봉우리로 된 산이다. 다섯 봉우리 가운데 낙동강을 굽어보기 좋은 자리인 서쪽 산기슭이 임경대로 1100년 전 최치원이 그곳에 올라 낙동강이 흘러오는 물굽이를 바라보고 읊은 시가 지금도 회자 된다. 그 당시 물금 언저리 낙동강은 황산강으로 불렸던지 제목이 ‘황산강 임경대’였다. 거울을 마주하듯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 데다.
4대강 사업으로 생겨난 자전거길과 별개인 산책길을 따라 걸으니 겨울의 서정을 느낄 수 있었다. 된서리가 내렸음에도 일부 갯버들은 푸른 잎을 달고 있었다. 물억새와 갈대는 점차 색이 바래 야위어졌다. 지천이 흘러온 샛강에는 북녘에서 날아온 쇠물닭들이 먹이 활동에 열중이었다. 황산공원 산책길에서 물길 따라 호포를 항해 내려갔다. 김해 대동으로 건너는 옛 나루터도 나왔다.
부산과 경계를 이룬 곳은 지하철 2호선 호포역이었다. 낙동강 물길이 방향을 틀어 다대포로 빠져나가기 전 잠시 숨을 고르는 지점이 호포였다. 거침없이 흘러온 강물은 속도가 느려지고 잔잔해져 호수 호(湖) 자가 붙여졌다. 영축산이 품은 통도사 여러 암자로부터 시작한 양산천은 황산 생태공원과 호포 강나루 공원 사이에서 낙동강에 합류했다. 습지에는 고니들이 평화로이 지냈다.
새로 뚫린 부산 외곽 고속도로는 대동에서 강심에 가로놓인 다리를 건너 금정산 터널로 들어 기장으로 향했다. 강가의 볕 바른 쉼터에서 도시락을 비우면서 강폭은 넓어지고 유속은 느려진 물길을 바라봤다. 경부선 철길과 지하철 선로가 나란히 지났다. 점심 식후 산책로를 따라 걸어 구포를 앞둔 화명역에서 창원으로 복귀하는 열차를 탔더니 삼랑진에서 방향을 틀어 철교를 건넜다. 2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