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야담.이항복.허준
점쟁이
조선시대 선조 19년(1586)에
일어난 사건인데, 진사 관직을
가지고 있던 외암 김훈의 집에
사단이 생겼다.
그 집 가축과 하인들이 잇달아
죽었고 그의 노모는 뭔가에
홀린 듯 망녕이 났고 그의 아들
여물은 갑자기 열병으로 쓰러져 일어나지를 못했다.
수많은 의원들이
그를 살폈으나
고개만 흔들고 돌아갔다.
결국 김훈은 사대부의 의를
깨고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
신막점을 불렀고 신막점은
한참 점을 치더니만 심각한
소리로 얘기했다.
"이집에 손말명
(원한 맺혀 죽은 처녀귀신)이
붙었습니다.."
"무엇이? 그럼 귀신이..
쫓아 낼 방법은 있는가?"
김훈의 질문에 점쟁이는
쉬이 말을 못했다가 재차 묻자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소인의 재주가
미천하여 이 귀신을
쫓아낼 방법이 없나이다..
대신 쫓아
내줄 사람은 아나이다"
점쟁이의 말에
김훈이 반색하며 물었다..
"누군가 그게..?"
"이조정랑 중 백사라는 호를
쓰시는 분을 데려오면 됩니다"
"백사라면
이항복 대감이 아닌가
그분이 무슨 힘으로
귀신을 막을 수 있는가"
"그 분이라면 능히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원귀가
나설 모양이니 어서
그 분에게 연락을 하소서"
ㅡ김준근의 '기생 검무추고'ㅡ
김훈은 반신반의 했지만
사람을 시켜 이조정랑을 불렀고
잠시 후 저녁노을 무렵 백사
이항복이 도착했다.
김훈은 자초지정을 설명했고
이야기를 들은 이항복은
태연하게 점쟁이에게 물었다
"그럼 내가 어떻하면 되겠는가?"
"영감은 원귀가 된
의선대군의 원한을
달래줘서 잡귀를 다스리는
인을 받았지 않습니까,
웬만한 귀는 영감에게 접근
조차 못할 것이니 여기서
이집 자제분을 지켜주소서"
점쟁이의 말을 들은 항복은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정갈히
한채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유시(대략 10시경)가 되자
갑자기 바람이 불었고 미쳐
누워있던 김훈의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쉰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 갈갈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들..
오늘이야 말로
이 집안의 놈들 씨를 말려주마"
그렇게 외치며 봉두난발을
한 채 김훈의 어머니가 걸어왔다.
집안의 장정들이 노파의 몸을
붙들었으나 노파는 장정들을
물리치고는 안방으로 들어왔다.
"흐흐흐..
오늘 이 날을 기다렸다..
네놈들 씨를 말려주마"
노파가 무서운 형상으로
들어오자 담이 약한 사람들은
기절을 하고 다른 사람들도
엎드린 채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러다 노파가
김여물의 곁으로 가는 순간
이항복을 보자 뒷걸음질을 쳤다.
"네놈은 뭐하는 놈이냐..
어서 비켜라"
노파가 무서운 형상으로
고함을 질렀으나 이항복은
태연했고 그러자 노파는
벽에 걸린 장검을 뽑아들어
이항복에게 휘둘렀다.
"비키지 않으면
이걸로 네놈을 베겠다.."
그러나 이항복은
물러나지 않고 제망매가를
불렀고 그러자 노파는 괴로운듯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네 이놈
오늘은 내 그냥 가지만
내일 네놈들을 요분질 해주마"
귀신이 물러나자 노파는
입에서 피를 토한 채 쓰러졌다.
악몽의 밤이 지난 후 이항복은
김훈과 점쟁이를 불렀다.
"내 재주가 마땅치 못하여
원귀를 완전히 잡지 못했네..
자네는 무슨 도리가 없겠는가?"
이항복의 대답에
점쟁이는
한참 점을 치다 물었다.
"이 원귀는
보통 원귀와는 다릅니다..
상당히 덕을 쌓은 귀이온데
무슨일로 원으로 바뀌었나이다."
"아니 그 귀가 우리 집안하고
무슨 원한이 맺혀 이런단 말인가.. 설명 좀해보게"
"그건 이집의 사위가
잘 알고 있을 듯 합니다"
ㅡ신윤복~쌍검대무ㅡ
점쟁이의 말을 듣자
모여 있던 집안 사람 중
사위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점쟁이 에게 외쳤다..
"그럴리가 없사옵니다..
그 귀신은 분명히.."
"무슨말인지 상세히 말해보게"
김훈의 역정에
사위가 한 말은 이러했다.
1년 전 과거길에 오른 사위는
비가 오자 산속의 사당으로
들어갔다..
초를 붙이고 보니
사당은 깨끗했고 벽엔
미인도가 그려 있었고
그에 반한 사위가
미인도에 손을 댄 순간
말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마음에 드시옵니까?"
"누..누구요?"
사위는 소스라치게 놀랬다
"놀라지 마옵소서
소녀 잡귀이긴 하나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귀신의 정감 어린 말에
사위는 안심하고는 귀신과
얘기를 하고 자신은 3번째
과거를 보러가는데 이번에도
떨어지면 부모님이랑
약혼자에게 면목이 없을거라고
넋두리 하듯 얘기했다.
"그럼 소녀가
도와드리겠나이다.
제 초상화를 가져가소서..
대신 제부탁을 한 가지
들어 주셔야 합니다"
"그야 여부가 있겠소.."
비록 보이지는 않았지만
초상화가 마음에 들고
처지가 급해 귀신의 말을 들었다.
그러자 실제로 과거에 붙었고
장가도 들었다.
사위의 얘기를 다 들은
김훈이 노하여 외쳤다.
"이놈!
니놈이 귀신을 부린게구나"
"아니옵니다..
장인어른 저의 말을 들어주소서"
사위의 말에 김훈은
잠시 화를 다스리고는
계속 이야기를 하라고 시켰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처음엔
귀신의 말을 듣고 운수가 대통
할 수 있었는데 어느 날 귀신이
약조를 지키라고 했다고 말했다.
하여 무슨 부탁이냐고 하니까..
처남을 죽게 할 테니까
영혼 결혼식을 시켜달라고...
하지만 도저히 안될 말이라
박쥐 고기를 양념을 해서
귀신한테 먹이면 귀신이 피를
흘리며 사라지기에
죽었는줄 알았다고 했다.
ㅡ신윤복의 '노중상봉'ㅡ
사위의 말이 끝나자
점쟁이가 물었다..
"혹..
아직 초상화를 들고 있소.."
점쟁이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사위는
초상화를 내 놓았다..
"아직까지 귀신에 홀렸구려..
초상화를 보아한데
원래 원귀는 아닌 듯 합니다,
단 죽을 뻔 했던 원한때문에
악귀가 됐습니다.
원래 박쥐고기를 먹으면
귀신은 죽기 마련인데 누군가
귀신을 치료한 듯 합니다.."
"아니 누가 귀신을
치료할 수 있단 말이가?"
김훈의 질문에 점쟁이는
잠시 한숨을 쉬며 얘기했다..
"앞으로 수년 후
큰난리(임진왜란)가
일어날 때 조선을 위해
큰 역할을
할 사람들이 있사옵니다.
그 중 한명이라면
귀신을
치료할 수 있사옵니다.."
"그게 누군가?"
이항복이 묻자
점쟁이는 어렵게 말을 했다..
"이 얘기까지 하면
벌써 천기누설을 2번 하는거라
제 목숨을 보전치는 못할 것이니 제 자식들을 잘 보살펴 줄거라고 약조해 주시옵소서"
김훈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점쟁이는 두번 절하며
피를 토하며 얘기 했다.
"내의원 당사관
허준을 부르시옵소서"
ㅡ 허준~강서구 허준박물관ㅡ
쓰러진 점쟁이는
그대로 요절을 했다.
김훈은 점쟁이를 애석히
여기면서도 그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허준을 불렀고 허준이
당도하자 이항복이 혹시 귀신을
치료한 적 없냐고 묻자..
허준은 놀라며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허준이 휴가를 받아 잠시
밖에서 자고 있을 때 였는데
갑자기 서럽게 우는 듯한
소리가 들리자 허준이 의아해
문을 열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허준은 잠시 놀랐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게 누구냐.."
"놀라지 마옵소서
전 잡귀이온데
박쥐고기를 먹었나이다.
부디 소녀를 가엾이 여겨
절 치료해 주옵소서.."
"아니 내가 무슨 재주로
보이지도 않는
귀신을 치료한단 말이요?.."
"제가 벽에
제 모습을 그릴테니
실로 진맥을 하여주소서..
허의원님 밖에
못하는 일이옵니다.."
그리고,
붓이 허공에 떠서
벽에 뭘 그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한 미인의 초상화가 그려졌다.
허준은 놀랬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귀신의
초상화의 손목에 진맥을 대자
놀랍게도 숨술기가 느껴졌다.
그는 진맥을 따라 귀신의
몸에 감도는 나쁜 피를 뽑아내자
귀신은 감사 하다며 언젠가
답례를 하겠다고 하며 사라졌다.
ㅡ이항복ㅡ
자초지정을 들은
이항복이 허준에게
초상화를 건네주며 물었다..
"이것이 그 귀신의 모습인가?.."
초상화를 본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항복이 말했다..
"자네의 치료는
의원으로선 훌륭하나
사람의 도리로서 잘못됐네..
벌써 애꿎은
사람이 수 십명 죽어갔네..
이 귀신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주게나.."
이항복의 제의에 허준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유시가 되자
긴 봉두만발에 칼을 든 원귀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눈은 뒤집혀 지고 입에선
원한에 찬 괴성이 흘러나왔다..
"오늘이야 말로
네놈들 씨를 말려주마.."
귀신이 칼을 휘두르는 순간
허준이 소리쳤다..
"그만두게.."
"아니, 은인이 어떻게.."
"내 자네의 원한을
모르는게 아니나 이렇게
사람들을 죽인다고 해서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부디 원한을 잊은 채
좋은 곳으로 가게나.."
허준의 간곡한 부탁에
귀신은 어쩌지도
못하다가 칼을 놓았다.
"소녀가 아무리
미천한 원귀이지만 어찌
은인에게 칼을 들이대겠습니까...
소녀가 물러 날테니 6년후
여물님이 억울하게 죽거든
소녀와 짝을 지어 주소서."
귀신이
이 말을 하고
절을 하고 사라지자..
김훈은 몹시 언짢아서
퉁명스럽게 알았다고 했다.
ㅡ조영석~현이도ㅡ
그 후 5년 후 김여물은
의주목사로 있다가 서인
정철의 당 으로 몰려
파옥되었다가 1년 후 임진왜란
이 일어나자 신립의 부장으로
참전하였다가 죽음을 당하니
이항복이 그의 시신을 수습해서
그를 사모하던 귀신과 영혼
결혼식을 시켜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