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찬송가 268장 ( 구 202장 ) / 히브리서 3 : 7 - 19
● 다함께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268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히브리서 3장 7절 – 19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약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16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아멘!
오늘 본문 7절, 8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 우리가 잘 아는 잠언 4장 23절 말씀에서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외모와 육신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마음이 형편없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가정과 사회가 고통 받고 있음을 봅니다.
성경은 우리 영혼이 성숙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의 중요한 질병 하나를 고쳐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병입니다. 도대체 마음을 강퍅케 하는 병이 무엇일까요? '완고하다.' 는 단어는 '딱딱하다.' 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 2절에서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마음이 완고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하늘의 진리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마음이 완전히 굳어져 버립니다. 아무리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어도 마음이 무디어져 버린 것입니다.
죄에 대한 설교를 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애통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애통해져야 하는데, 무감각해져 나와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마음의 완고함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저들이 춤추지 아니하고 애곡하여도 울지 않는다.'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쁨이 무엇인지 슬픔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말씀이 나를 꾸짖고 질책할 때, 애통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려야 한데, 눈에 눈물이 말라버린 마음이 강팍해져 버립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우리 마음이 강팍해지면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난다고 말씀합니다. 먼저 12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마음이 강팍하게 되면, 구원은 받았지만 생명 되신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과 소망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전혀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마음속에 아무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떨어진 자가 되고 맙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결과는 11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로 하면, 구원받은 이후에 이 땅에서의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축복의 삶을 누리지 못함을 말합니다. 구원받고 교회에 나오지만, 이 땅에서의 삶에 전혀 감사와 감격과 기쁨이 없는 삶! 이것이 우리 마음이 완고하고 강퍅하게 될 때 생겨나는 무시무시한 결과입니다. 이건 불행한 삶입니다.
이렇게 완고하고 강팍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마음이 미혹될 때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여기서 '미혹된다.' 는 말은 방황하는 마음, 다스림이 없는 마음입니다. 내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는데,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환경에 따라 요동치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마음입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웃고, 나쁜 일이 생기면 낙심하고, 마음이 이리저리 방황하고 다스림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조금만 괴로움이 와도 원망하고, 낙심하고 짜증냅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조금만 어려움이 있으면, 사람들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일이 잘 될 때 즐거워하는 것, 누가 못합니까?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환경이 어려워지고, 내 목이 마르고, 하나님께서 어떤 뜻이 있어 잠시 환란을 줄 때에 그 교훈을 감사함으로 받기보다는 그저 원망하고 사람들과 싸웁니다. 하나님을 원망해 버립니다. 여러분 삶에 이런 현상들이 있다면, 여러분은 미혹된 마음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하여 이런 미혹된 마음을 갖게 되면, 언젠가 우리 마음은 완고하며 강퍅하여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이렇게 완고하고 강팍하게 되는 두 번째 원인은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불신하지 않았다면,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지 않고, 열하루 만에 가나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데스바네아에서 갈렙과 여호수아의 긍정적인 보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열 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런 불신의 대가는 너무나 컸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그곳을 헤매다가 다 죽었습니다. 불신이 뭡니까? 하나님 말씀대로가 아니라, 내 경험과 내 방법대로 사는 것이 불신입니다.
그리고 완고하고 강팍하게 되는 세 번째 원인은 죄의 유혹에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3절 말씀에 보면, 유혹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의 유혹에 계속해서 넘어짐으로 죄를 범하고 말았을 때, 우리의 마음은 강퍅하여 지게 됩니다.
■ 그러면 이러한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어떻게 치료할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잘못된 습관으로 인해 고민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둘째로, 말씀을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염려 근심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 밭을 가꾸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기도와 말씀으로, 성도들과 교제함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확실히 잡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처음에 굳게 잡아야 할 것은 믿는 도리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꽉 잡아야 할 믿는 도리의 소망이란 그리스도에게서 난 의입니다. 오직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은 것으로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이 의를 끝까지 견고히 붙잡아야 합니다. 다음에 우리가 견고히 잡아야 할 것은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란 분은 우리가 교회에 발을 들여놓는 시간부터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실 분이시기 때문에 그 이름을 붙잡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견고히 잡아야 할 것으로 부활의 권능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시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입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으로 속죄의 은혜를 받았고 그의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하늘의 새 생명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견고히 붙잡아야 합니다. 하늘의 부르심의 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의욕이 없습니다. 마음에 뜨거움이 없습니다. 이 소망을 견고히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오직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만을 견고히 붙잡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