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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다나매니아를 눈으로 즐감하다가, 첫글을 남깁니다...~
아래글은 산행기는 아니고, 그래도 산행기 성격이 있어서 '우리들의 산행'란에 올려봅니다.
등산뺏지들을 기억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등산 뺏지를 모자에 꼽거나 하는 등 상당히 유행했는데,
아래는 한꺼번에 컬렉팅한 뺏지들이 두서없는 게 아니라,
1976년 가을에 설악산 권역을 여행(당시로보자면 산행)을 한 궤적을 보여주더군요.
그 궤적을 한번 재미로 따라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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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백명산, 2백명산 등의 타이틀이 있어서 산을 찾을 때에도 따르는 기준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네들의 뺏지 컬렉션에는 그 어떤 흐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사실 주말에 오를 산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그 어떤 전범이 전혀 없습니다.
지금도 말이죠.
그런데 - 정말 보기 어려운 케이스인데 - 놀랍게도(=고맙게도) 이 뺏지들은 당시 어떤 특징들을 보여 줍니다.
설악산을 중심으로, 그 당시 표현으로 하자면, '관동'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 한번의 여행에서 구입한 걸로 보여집니다.
당시 유행했던 등산/관광 스타일을 염두에 두고서 곧바로 이 분의 궤적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결론을 미리 말씀하자면......
ㅁ 집에서 관광버스로 출발하여 1박 2일, 또는 2박 3일 관동/설악산권 여행이었습니다.
ㅁ 숙소는 1박 2일이라면 낙산사, 2박3일이라면 설악동/낙산사 였습니다.
ㅁ 이 이전에 설악산을 찾은 경험이 있고, 그때 권금성에 대해 실망을 적지않게 했었더랬습니다.
ㅁ 그리고 그는 불교신자가 아닌 걸로 보입니다.
당시 설악산과 관동 여행 문화에 있어서는....
ㅁ 당시까지만 해도 외설악/내설악은 따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ㅁ 당시까지만 해도 설악산 대청봉은 must climb가 아니었습니다.
ㅁ 당시까지만 해도 오대산은 국가대표급 산행지,관광지가 아니었습니다.
ㅁ 하나마나한 이야기이지만 속초의 횟집은 커녕 맛집이라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아래에는 뺏지를 통해 이를 하나씩 풀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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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또는 77년) 가을이라고 시기를 추정하게 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오죽헌 기념이라는 받침돌에 '율곡선생 유적정화기념비'라는 뺏지가 있습니다.
오죽헌 정화는 1955년에 시작하여 1956년 5월에 이루어졌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현충사을 시발로 하여 세종대왕릉 정비가 뒤따르고, 이어 이율곡의 오죽헌을 정화하면서,
박 대통령은 자기가 꿈꾸던 통치 이념과 관광산업으로서 '성군'과 '문무' 양쪽의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오죽헌 개업식 당일의 풍경- 박정희 대통령의 위상-은 이렇습니다.
단풍이라는 표현이 있네요. 이로써 그분이 찾은 때가 가을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뺏지에 단풍이라고 적혀 있는 것은 70년대 초반에서 중반에까지 흔히 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그때도 단풍구경을 위해 산을 제일 많이 찾았던 걸 반영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가을에 찾았기에 일부러 이 뺏지를 샀을 거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뺏지 가운데 등장하는 장소는 비룡폭포입니다. 단정하고 장중하여 인기가 높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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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가 설악산에서 걸은 동선은 어떠했을까를 볼까요.......
이 두 개는 어렵지 않게 보이는 스타일입니다.
에델바이스와 '사랑의 꽃'이라는 꽃말은 당시 많은 분들에게 어필했습니다.
설악산 대청봉이군요.
그러나 둘 다 대청봉에 올랐다는 뜻은 아닙니다.
당시만 해도 이미 뺏지들은 팔릴 수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건 팔았습니다.
예를 들어 외설악쪽인 설악동에서는 외설악쪽 명소의 뺏지들을 어디서건 팔았습니다.
그러나 동선이 동떨어져 있는 오색약수쪽이나 내설악쪽 백담사 등은 팔지 않았던 걸로 추정됩니다.
이 뺏지들은 설악동 기념풍상가에서나 아니면.....비선대 산장에서 구입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에 차차 적시하겠습니다.
어랏 설악산 흔들바위가 하나밖에 없군요.
흔들바위 뺏지는 엄청나게 많이(흔들바위 뺏지 컬렉션은...) 발행되었고,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로써 그는 흔들바위를 가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울산암 역시 두개 밖에 없습니다.
아래에서처럼 비선대나 금강굴의 뺏지 수를 염두에 두면, 울산암도 찾지 않고,
설악동에서 흔들바위와 울산암 뺏지를 한꺼번에 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선대 뺏지가 3개나 됩니다.
당시에도 비선대는 인기 있었지만, 비선대 뺏지는 그리 선호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류가 많지도 않습니다.
보다시피 같은 디자인을 금박, 은박 두개로 샀다는 것이 이런 걸 보여줍니다.
하여간 이렇게 비선대 뺏지가 3개나 있다는 것은 그가 비선대를 찾았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그다음 동선은......바로
비선대 뺏지가 3개나 됩니다.
당시에도 비선대는 인기 있었지만, 비선대 뺏지는 그리 선호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류가 많지도 않습니다.
보다시피 같은 디자인을 금박, 은박 두개로 샀다는 것이 이런 걸 보여줍니다.
하여간 이렇게 비선대 뺏지가 3개나 있다는 것은 그가 비선대를 찾았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그다음 동선은......바로
금강굴입니다.
금강굴 뺏지는 자그마치 5개나 됩니다.
전체 설악산 뺏지에서 평균적으로 금강굴이 차지하는 위상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금강굴 뺏지의 숫자는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좌측의 뺏지는 60년대 말, 70년대 초반의 것입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재고를 발견해서 샀음에 틀림 없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금강굴을 자그마치 다섯 개나 산 것은 그가 이 곳을 직접 찾았음을 강력하게 증거합니다.
그 다음 그의 행보는 어디였을까요?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양폭 뺏지가 두개나! 됩니다.
좌측은 60년대말, 70년대 초의 스타일로 보기 드뭅니다.
그렇다고 양폭을 갔다는 건 아닙니다.
양폭에 오르기 전에 있는 귀면암 뺏지가 없다는 것이 이를 반증합니다.
이 뺏지를 비선대 산장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 시간을 적지 않게 보냈을 것이고, 그 때 샀을 겁니다.
설악산에서 2박 3일을 보낼 경우에도 하루는 비선대-금강굴 코스,
다음날은 양폭이 아니라 울산바위나 또는 비룡폭포가 선호되었습니다.
비룡폭포 뺏지의 종류도 권금성이나 금강굴보다야 적지만, 그래도 어느 때고 몇종류가 비치되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두개 밖에 없다는 것은 비룡폭포를 직접 찾은 게 아니라, 설악동에서 구입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토왕폭 뺏지는 '몰라서이거나' 또는 '시간에 쫓겨' 찾지 못했습니다.
70년대 초반부터 이미 등산객/관광객들에게는 뺏지의 양에 대한 경쟁이 있어서,
한 곳을 찾아도 여러개를 사서 모자에 꽂거나 하면서 과시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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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외설악쪽의 명소인 권금성 뺏지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 양폭도 있는데 말이죠.
그는 권금성에 갔을까요 안갔을까요?
만약에 권금성에 케이블카로 갔다면 뺏지를 금강굴에서처럼 최소한 다섯개는 샀을 겁니다.
케이블카의 체험은 남다른 것이고,
권금성 뺏지는 금강굴보다 종류가 더 많다는 걸 염두에 두면 말이죠.
그러나 권금성 뺏지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이 뺏지모음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누락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권금성을 가지 않았음을 강력하게 반증합니다.
추측하건데, 그는 수학여행에서나 하여간 그 이전 설악산 등반을 할 때,
권금성 케이블카 체험에 있어서 실망(?)을 상당히 했지 않았을까요.
그러기에 단하나도 뺏지를 사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는 불교를 믿지 않는 분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외설악의 출발점으로서 신흥사 뺏지를 최소한 기념삼아 하나 정도는 샀을 텐데, 안보이는군요.
게다가 아래 6개나 되는 낙산사 뺏지에도 사찰이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오대산 (오대산 뺏지모음) 뺏지에도, 오대산의 얼굴인 월정사가 중심에 담겨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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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제 설악산을 빠져 나와서....낙산사를 향했습니다.
그는 낙산사 주변에서 하룻밤(또는 둘째 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 결과로 자그마치 6개의 뺏지를 구입했습니다.....
낙산사는....'일출'이라는 평생에 잊지못할 경험을 제공하는 뜻깊은 곳입니다..
오렌지빛, 그러니까 일출로 가득한 좌측의 뺏지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저멀리 설악(?) 침봉과 바다 끝가지 가득한 황금빛 속의 돛단배.....우리 모두의 로망입니다...
우측은 낙산사, 정확히 말하자면 의상대 일출을 잘 보여줍니다.
햇님은 웃고. 갈매기는 리처드 바크인양 하늘 높이 날으라 하고.....
햇님은 방실 웃고. 갈매기는 리처드 바크인양 하늘 높이 날으라 하고.....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당시 우리를 감동시킨 문구이죠...~~~
제가 고등학생이거나 연인이거나 하면 꼭 샀을 겁니다...^^
생뚱맞게 독수리가 로맨틱한 분위기를 깨지만,
당시 개발독재 시대에 사람들은 독수리를 '개척'으로 이해했습니다.
양쪽다 바다를 향해 뛰어드는 게 안타깝게도 팬티만 입은 남자이지만,
낙산사 뺏지를 비롯하여 대개의 해수욕장 뺏지에는 대개 투피스 또는 원피스의 여자 디자인이 훨씬 많습니다.
오른쪽 뺏지좀 보아요. 바다로 첨벙 할 때 튀는 물까지도 생생하게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좌측의 뺏지....한반도가 의상대를 감싸고, 단풍잎 두장..그 위엔 뭉게구름이 있네요.
신혼여행 컨셉입니다.
우측의 뺏지는 의상대를 레알하게 그려낸...그리 어렵지 않게 보이는 뺏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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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 일출을 보고 난 다음....그는 어디로 향했을까요?
바로 경포대입니다....
좌측 뺏지.느낌상 의상대 같은데요^^...우얏든둥 판화형식으로 보기 드물게 잘 만든 뺏지인 것 같습니다.
우측의 새는 처음 보는 새입니다. 청둥오리 같은데, 정확히는 뭘까요.....~~~
배의 키모양 도안은 산간 벽지의 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도안입니다.
마도로스'하면 뭔가 있어 보이는...해양국가를 꿈꾼 시절도 아닌데 말이죠....~
우측은 거북이처럼 보이는데,,,키입니다. 두개가 떨어져 나갔네요.....~
뺏지 가운데 흰 원으로 표현한 것은 나무로 만든 다이빙대입니다.
지금은 태국에서도 보기 어렵겠죠.
저 추억을 갖고 있는 분들은...정말 아름다운 시절^^에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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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들은 다시 버스에 올라 오죽헌에 갑니다.
불과 얼마전 정화를 하여, 조선의 대선비를 배출한 평범한 집을 '성지'로 만든 오죽헌을 찾게 됩니다.
오죽헌에 웬 용?
지금은 기억이 가물거리자만, 율곡 선생 태몽에 용이 등장하는 걸까요....~~~
컬렉션에 태극기만 딸랑 있는게 하나 등장합니다.
아마도 단언컨대, 오죽헌에서 팔았을 뺏지라고 봅니다. 설악산에서는 보기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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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을 '성지'로서, '관광지'로서 잠간 둘러본 다음 그들은 점심을 먹게 됩니다.
그리고 귀로길에 접어 드는데.....
그 과정에....오대산을 찾습니다.
그는 오대산에서 자그마치 다섯개의 뺏지를 삽니다.
그러나 이 뺏지 두개를 각각 두개씩이나 삽니다. 전례에 없던 일이죠.
그 이유는 무얼까요?
당시만 해도 오대산은 국가명승지가 아니라 뺏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아쉬움에(?) 같은 걸 두개나 더 산거죠...
그리고 이 뺏지...
뺏지 하나에 많은 것을 담은.....
그는 이렇게 해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 기억은 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뺏지가 남아서 그 모든 것을 확인하고, 그래서 지금 다시 이렇게 새록새록 살려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뺏지가 사라지지 않는 대신, 이렇게 살아 남은 것은 무언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어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 할 말이라는 건, 그 시절 우리가 실제로 살아냈던 삶이 아닐까라는 것도.......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 그건 다름아닌 자기만의 추억이라는 것....
아무렇지도 예쁠 것도 없지만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돌이켜 보아 너무도 아쉽고 너무도 그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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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저 위대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에 나오는 시구라고 합니다.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시구의 출처는
''''''''''''
첫댓글 정감있고 예쁘네요. 저도 십여개있는데 ..
다나 매니아에 처음 글을 올리는데, 첫 댓글 감사드립니다..~~
뺏지 갖고 계시다니...궁금하네요^^
소중한 자료 잘 봤습니다. 유년시절만 해도 기념품가게에서 뱃지를 많이 팔았는데 이제는 이런 것도 시대적 유물(?)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잘 보셨다니 감사드려요~~
그러게요. 우리 주변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런게 어디 이것 뿐일까 싶습니다...ㅜㅜ
울산바위나 비룡폭표 앞에서 한국산악회 구조대에서 뱃지나 메달을 파는 것을 보았는데요.
지금 보니까 작품입니다. 사둘 것 그랬습니다. ㅎㅎ
지금도 권금성하고 울산바위 정상에서는 판다는 소문을 들은 것 같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건 어떤지 궁금한데 그곳을 찾을 기회가 안나네요...
앞으로도 뺏지나 메달 등을 한번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홈구장인 다나매니아에서 선배님을 뵈니까 더 반갑네요...~~~
이것 보니까 옛날 추억들이 생각나네요...
저도 뺏지들이 집에 좀 있습니다...
저도 꺼내 봐야겠네요....ㅎㅎ
글 잘 보고 갑니다...
뺏지가 추억을 되살려줄 작은 소품이 아닌가 싶네요...
대부분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사라지기 쉽상인데,
댁에 아직까지 갖고 계시다니...갖고 계시는게 뺏지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잘 읽어주시고 댓글 감사드립니다...~
잘 읽어 보았습니다. 뺏지, 스카프 등등 재미거리가 사라져가는게 아쉽네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런 소소한 재밋거리가 사라져 간게 아쉬울 뿐입니다.
산에서 내려와 기념품 가게를 들리는 코스가 사라진 것도 아쉽고요...
오랜만에보는뺏지네요
그렇죠?~
앞으로도 종종 올릴까 합니다.
좋은 추억꺼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린 갯수가 많으면
간만에 보는 아이템 입니다.
모자나 등산쪼끼에
참 대단하게 보이기도 했었죠.
토비아찌님..
댓글이 늦어져 죄송합니다...
뺏지 뿐 아니라 등산기념품 문화는 유럽 알프스에서도 점차로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만큼, 과거를 말하는 이런게 의미가 없지 않을거라 봅니다...~~~
짝짝짝-----멋진 리포트입니다 본인의추억일수도있겠구나 싶기도하구요---아님 뺏지만보고 상상으로 따라가본건가요 전자라면 소중한추억에 잔잔한감동이고 후자라도 셜록뺨치는 관찰력입니다---저도 흉내를내보면 선생님은 70대초반정도의나이 이시며 젊었을때는 관광버스를운영했었고 산행에도관록이있으시며 지금은 은퇴하시고 해외명산트레킹과갤러리를찿으시고 소시적에는레드컬한성향도보이시며 틀림없는 크리스챤이신것같습니다 ㅋㅋㅋ웃자고 올려봅니다 또다른것도 올려주심갑사ㅡㅡㅡ기분나쁘시면사과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