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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독우(平原督郵)
평원지방의 독우라는 뜻으로, 평원지방 자사(군수, 태수)의 보좌관(독우)이라 말로, 맛없는 술 또는 탁주의 은어를 일컫는 말이다.
平 : 평평할 평(干/2)
原 : 들 원(厂/8)
督 : 살펴볼 독(目/8)
郵 : 역참 우(阝/8)
출전 : 세설신어(世說新語) 술해(術解)
이 성어는 진(晉)나라 말기의 세력가인 환온(桓溫)의 부하의 일화에서 연유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환공에게는 술을 잘 감별하는 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술이 생기면 매번 그로 하여금 먼저 맛을 보게 했다.
桓公有主簿善別酒, 有酒輒令先嘗.
그는 좋은 술을 청주종사라 하고, 나쁜 술을 평원독우라 했다. 청주에는 제군이 있고 평원에는 격현이 있다.
好者謂, 青州從事.
惡者謂, 平原督郵.
青州有齊郡, 平原有鬲縣.
종사(從事)란 '제(臍; 배꼽)까지 도달했음을 말하고, 독우란 '격(鬲; 횡경막)' 위에 머물러 있음을 말한다'는 일화가 있다.
從事言到臍, 督郵言在鬲上住.
(世說新語/術解)
청주종사는 제군에 거주하고, 평원독우는 격현에 거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또한 '제군(齊郡)’의 '제(齊)'와 배꼽이라는 뜻의 '제(臍)'가 같은 발음이고,
'격현(鬲縣)'의 '격(鬲)'과 횡경막이라는 뜻의 '격(膈)'이 같은 발음임을 이용한 우스갯 소리로 좋은 술은 배꼽까지 내려가고 나쁜 술은 횡경막에 걸려서 더 이상 안 내려간다는 뜻이다.
평원독우(平原督郵)
나쁜 술, 평원 지역의 격현(횡격막)에 걸리는 술
술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윤활유가 되면서도 각종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주량이 천차만별인 만큼 호불호(好不好)도 극명하게 갈린다.
술은 일시적 자살이라거나 ‘술은 번뇌의 아버지요, 더러운 것의 어미’라 한 근심파가 있는가하면 모든 약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백약지장(百藥之長), 걱정을 없애는 데는 그 이상이 없다며 소우자 막약주(銷憂者 莫若酒)라고 한 찬양파도 숱하다.
중국 육조(六朝)의 도연명(陶淵明)이 읊었던 망우물(忘憂物)도 시름을 잊게 해 준다는 의미다.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더라도 좋은 술이 있는가하면 나쁜 술도 있기 마련이다.
평원(平原) 지역의 태수 보좌관인 독우(督郵)가 나쁜 술을 말한다는데 유래의 유래를 알아야 뜻이 겨우 통할 정도로 어렵다.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유의경(劉義慶)이 쓴 ‘세설신어(世說新語)’가 출처인데 내용을 보자.
진(晉)나라 세력가인 환온(桓溫)에겐 술맛을 감별하는데 능한 부하가 있었다. 술이 생길 때마다 감별을 부탁했는데 표현이 독특했다. "좋은 술이면 청주의 종사(好者謂靑州從事), 나쁜 술이면 평원의 독우(惡者謂平原督郵)"라 했다.
청주지역에 제군(齊郡)이 있고 평원에는 격현(鬲縣)이 있는데 각각 배꼽 제(臍)와 횡격막(橫隔膜)을 가리켰다. 좋은 술은 배꼽까지 내려가고 나쁜 술은 횡격막에 걸려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렇게 빙빙 돌려 말했다.
이렇게 어려운 은유의 표현이 우리의 고전에는 의외로 많이 등장한다.
고려 때 술을 가까이했던 문장가 이규보(李奎報)는 백주시(白酒詩)에서 막걸리를 읊는다. "체하여 가슴 속이 막히는 듯, 독우가 나쁜 것을 이제 알겠네(滯在胷隔間 始覺督郵鄙)."
임춘(林椿)의 가전체소설 ‘국순전(麴醇傳)’에는 벼슬 이름으로 나온다.
또 조선 시조의 대가 윤선도(尹善道)는 좋은 풍광을 보면 술이 없어도 가슴이 시원하다는 표현에 썼다. "좋은 술의 힘을 빌릴 것도 없이, 나그네 가슴 가득한 시름이 씻기네(不待靑州從事力 能鏖客子滿腔愁)."
술은 그 자체로 술일뿐인데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것은 정도를 넘기는 데서 온다. 술이 술을 부르니 자신이 이기지 못할 정도로 마시게 되고 나중에는 못할 짓이 없는 취중무천자(醉中無天子), ‘술 먹은 개’가 따로 없다.
제 건강만 해치면 어쩔 수 없지만 주변에 해를 끼치고 음주운전으로 생명까지 빼앗는다. 술을 마실 때 항상 명심해야 할 말이 법화경(法華經)에 나온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
국순전(麴醇傳) / 임춘(林椿)
국순전(麴醇傳) 가전체(假傳醴)의 설화로, 술을 의인화(擬人化)한 작품으로 술로 인한 음탕 끝에 패망한 것을 보여줌으로써 계세(戒世) 징인(懲人)을 의도하고 있다. 중국 위진(魏陳) 시대를 무대로 하고 있다.
국순(麴醇 누룩술)의 자(字)는 자후(子厚흐뭇)이니, 그 조상은 농서(隴西) 사람이다. 90대 조(祖) 모(牟; 보리)가 후직(后稷; 중국 주나라의 시조)을 도와 뭇 백성들을 먹여 공이 있었으니, '시경'에 이른바, '내게 밀 보리를 주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모(牟)가 처음 숨어 살며 벼슬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밭을 갈아야 먹으리라'고 하며 전묘(田畝)에서 살았다.
위에서 그 자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서를 내려 안거(安車)로 부르며, 군(郡), 현(縣)에 명하여 곳마다 후히 예물을 보내라 하고, 하신(下臣)을 시켜 친히 그 집에 나아가, 드디어 방아와 절구 사이에서 교분(交分)을 정하고 빛에 화(和)하며 티끌과 같이 하게 되니,
훈훈하게 찌는 기운이 점점 스며들어서 온자(醞藉)한 맛이 있으므로 기뻐서 말하기를, '나를 이루어 주는 자는 벗이라 하더니, 과연 그 말이 옳구나'고 하였다. 드디어 맑은 덕(德)으로써 알려지니, 위에서 그 집에 정문(旌門)을 표하였다.
임금을 좇아 원구(圓丘; 하늘을 제사하는 곳)에 제사한 공으로 중산후(中山侯)에 봉하니, 식읍(食邑) 일만호(一萬戶) 식실봉(食實封) 오천호(五千戶)요, 성(姓)을 국씨(麴氏)라 하였다.
5세손이 성왕(成王)을 도와 사직을 제 책임으로 삼아 태평하고 얼근한 성대(盛代)를 이루었고, 강왕(康王)이 위에 오르자 점차로 소대를 받아 금고(禁錮)에 처하여 고령(誥令; 금주령)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후세에 나타난 자가 없고, 다 민간에 숨어 살게 되었다.
위(魏)나라 초기에 이르러 순(醇)의 아비 주(酎소주)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서, 상서랑(尙書郞) 서막(徐邈)과 더불어 서로 친하여 그를 조정에 끌어 들여 말할 때마다 주가 입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마침 어떤 사람이 위에 아뢰기를, '막(邈)이 주(酎)와 함께 사사로이 사귀어 점점 난리의 계단을 양성합니다'고 하므로 위에서 노하여 막을 불러 힐문하니,
막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기를, '신이 주를 좇는 것은 그가 성인의 덕이 있기에 수시로 그 덕을 마시었습니다'고 하니 위에서 그를 책망하였고,
그 후에 진(晉)이 선(禪)을 받게 되자, 세상이 어지러울 줄을 알고 다시 벼슬할 뜻이 없어 유령(劉伶), 완적(阮籍; 죽림츨현)의 무리와 더불어 림(竹林)에 놀며 그 일생을 마쳤다.
순(醇)의 기국과 도량이 크고 깊어, 출렁대고 넘실거림이 만경의 물결과 같아 맑게 하여도 맑지 않고 뒤흔들어도 흐리지 않으며, 자못 기운을 사람에게 더해준다.
일찍이 섭법사(葉法師)에게 나아가 온종일 담론하였는데, 일좌(一座)가 모두 절도(絶倒)하게 되어, 드디어 유명하게 되어 호를 국처사(麴處士)라 하였는데, 공경, 대부, 신선, 방사(方士)들로 부터 머슴꾼, 목동, 오랑캐, 외국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향기로운 이름을 맛보는 자는 모두 그를 흠모하며,
성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순(醇)이 오지 아니하면 모두 다 추연(愀然)하여, 말하기를, '국처사(麴處士)가 없으면 즐겁지 않다'고 하니, 그가 시속에 사랑받음이 이와 같았다.
태위(太尉) 산도(山濤; 죽림칠현)가 감식(鑒識)이 있었는데, 일찍이 그를 말하기를, '어떤 늙은 할미가 요런 갸륵한 아이를 낳았는고. 그러나 천하의 창생(蒼生)을 그르칠 자는 이 놈일 것이다'고 하였다.
공부(公府)에서 불러 청주 종사(靑州從事)를 삼았으나, 격(鬲)의 위가 마땅한 벼슬자리가 아니므로 고쳐 평원독우(平原督郵; 도연명)를 시켰다.
얼마 뒤에 탄식하기를, '내가 쌀 닷 말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의 소아에게 향하지 않으리니, 마땅히 술 단지와 도마 사이에 서서 담론할 뿐이로다'고 하였다.
그때 관상을 잘 보는 자가 있었는데 그에게 말하기를, '그대 얼굴에 자줏빛이 떠있으니, 뒤에 반드시 귀하여 천종록(千鍾祿)을 누릴 것이다. 마땅히 좋은 대가를 기다려 팔라'고 하였다.
진후주(陣後主) 때에 양가(良家)의 아들로서 주객 원외랑(主客員外郞)을 받았는데, 위에서 그 기국을 보고 남달리 여겨 장차 크게 쓸 뜻이 있어, 금구(金甌; 쇠나 금으로 만든 사발)로 덮어 빼고 당장에 벼슬을 올려 광록대부 예빈경(光祿大夫禮賓卿)으로 삼고, 작(爵; 酌)을 올려 공(公)으로 하였다.
대개 군신의 회의에는 반드시 순(醇)을 시켜 짐작(斟酌)하게 하나, 그 진퇴와 수작이 조용히 뜻에 맞는지라, 위에서 깊이 받아들이고 이르기를, '경이야말로 이른바 곧음 그것이고, 오직 맑구나. 내 마음을 열어주고 내 마음을 질펀하게 하는 자로다'고 하였다.
순(醇)이 권세를 얻고 일을 맡게 되자, 어진이와 사귀고 손님을 접함이며, 늙은이를 봉양하여 술과 고기를 줌이며, 귀신에게 고사하고 종묘에 제사함을 모두 순(醇)이 주장하였다.
위에서 일찍 밤에 잔치할 때도 오직 그와 궁인(宮人)만이 모실 수 있었고, 아무리 근신이라도 참예하지 못하였다.
이로부터 위에서 곤드레 만드레 취하여 정사를 폐하고, 순은 이에 제 입을 자갈 물려 말을 하지 못하므로 예법(禮法)의 선비들은 그를 미워함이 원수 같았으나, 위에서 매양 그를 보호하였다.
순은 또 돈을 거둬들여 재산 모으기를 좋아하니, 시론(時論)이 그를 더럽다 하였다. 위에서 묻기를, '경은 무슨 버릇이 있느냐?'고 하니,
대답하기를, '옛날에 두예(杜預)는 '좌전(左傳)'의 벽(癖)이 있었고, 왕제(王濟)는 말(馬)의 벽이 있었고, 신은 돈 벽이 있나이다'고 하니, 위에서 크게 웃고 사랑함이 더욱 깊었다.
일찍이 임금님 앞에 주대(奏對)할 때, 순이 본래 입에 냄새가 있으므로 위에서 싫어하여 말하기를, '경이 나이 늙어 기운이 말라 나의 씀을 감당치 못하는가'고 하였다.
순이 드디어 관(冠)을 벗고 사죄하기를, '신이 작(爵)을 받고 사양하지 않으면 마침내 망신할 염려가 있사오니, 제발 신을 사제(私第)에 돌려주시면 신은 족히 그 분수를 알겠나이다'고 하였다.
위에서 좌우에게 명하여 부축하여 나왔더니, 집에 돌아와 갑자기 병들어 하루 저녁에 죽었다.
아들은 없고, 족제(族弟) 청(淸)이 뒤에 당 나라에 벼슬하여 벼슬이 내공봉(內供奉)에 이르렀고, 자손이 다시 중국에 번성하였다.
사신(史臣)이 말하기를, '국씨(麴氏)의 조상이 백성에게 공이 있었고, 청백(淸白)을 자손에게 끼쳐 창(鬯)이 주(周) 나라에 있는 것과 같아 향기로운 덕이 하느님에게까지 이르렀으니, 가히 제 할아버지의 풍이 있다 하겠다.
순(醇)이 설병(挈甁 손에 쥐은 작은 병)의 지혜로 독 들창에서 일어나서 일찍 금구(金甌)의 선발에 뽑혀 술단지와 도마에 서서 담론하면서도 옳고 그름을 변론하지 못하고, 왕실이 미란(迷亂)하여 엎어져도 붙들지 못하여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거원(巨源; 중국 晉나라 때의 문인으로 산도山濤라고도 함)의 말이 족히 믿을 만한 것이 있도다'고 하였다.
국순전(麴醇傳)은 고려시대 문인 임춘(林椿)이 지은 가전 작품이다. 술을 의인화하여 지었는데 그의 유고집 '서하선생집(西河先生集)'에 수록되어 있고, '동문선'에도 실려 있다.
작자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생과 술의 관계를 문제삼고 있다. 즉, 인간이 술을 좋아하게 된 것과 때로는 술 때문에 타락하고 망신하는 형편을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인간과 술의 관계를 통해서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조명해본 것이다. 이 작품은 당시의 여러가지 국정의 문란과 병폐, 특히 벼슬아치들의 발호와 타락상을 증언하고 고발하려는 의도로 작자가 거듭 비분강개한 소아배들의 득세와 뛰어난 인물들이 오히려 소외되는 현실을 풍자,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선생전(麴先生傳) / 이규보(李奎報)
국성(麴聖: 맑은 술)의 자(字)는 중지(中之)이니, 주천(酒泉) 고을 사람이다. 어려서 서막(徐邈)에게 사랑을 받아, 막(邈)이 이름과 자를 지어 주었다.
국성의 자와 관향(貫鄕)
먼 조상은 본시 온(溫)땅 사람으로 항상 힘써 농사지어 자급(自給)하더니, 정(鄭)나라가 주(周)나라를 칠 때에 잡아 데려왔으므로, 그 자손이 혹 정나라에 널려 있기도 하다. 증조(曾祖)는 역사에 그 이름을 잃었고,
조부 모(牟)가 주천(酒泉)으로 이사하여 거기서 눌러 살아 드디어 주천고을 사람이 되었다. 아비 차(醝: 흰술)에 이르러 비로소 벼슬하여 평원독우(平原督郵)가 되고, 사농경(司農卿) 곡(穀)씨의 딸과 결혼하여 성(聖)을 낳았다.
국성의 출생과 집안 내력
성(聖)이 어려서부터 이미 깊숙한 국량(局量; 도량)이 있어, 손님이 아비를 보러 왔다가 눈여겨 보고 사랑스러워서 말하기를, '이 애의 마음과 그릇이 출렁출렁 넘실넘실 만경(萬頃)의 물결과 같아 맑혀도 맑지 않고, 뒤흔들어도 흐리지 않으니 그대 와 더불어 이야기함이 성(聖)과 즐겨함만 못하이'라 하였다.
자라나자 중산(中山) 유령(劉伶)과 심양(潯陽) 도잠(陶潛)과 더불어 벗이 되었다. 두 사람이 일찍이 말하기를, '하루만 이 친구를 보지 못하면 비루함과 인색함이 싹 돋는다'며 서로 만날 때마다 며칠이 가도 기쁨을 잊고 문득 마음에 취(醉)하고야 돌아왔다.
국성의 도량과 교우 관계
국성에 대한 작가의 감정이 표면에 드러난 단락
고을에서 조구연(糟丘椽)을 시켰으나 미처 나아가지 못하였고, 또 나라에서 청주종사(靑州從事)로 불러 공경(公卿)이 번갈아가며 천거하니, 위에서 명하여 조서(詔書)를 공거(公車)에서 기다리라 하였다.
국성의 정계 진출
이윽고 불러 보시고 목송(目送)하며 말하기를, '저 군이 주천(酒泉)의 국생(麴生)인가. 짐(朕)이 향기로운 이름을 들은 지 오래였노라'고 하였다.
이보다 앞서 태사(太史)가 아뢰기를, '주기성(酒旗星)이 크게 빛을 낸다' 하더니, 얼마 안 되어 성(聖)이 이른지라 임금이 또한 이로써 더욱 기특히 여기었다.
임금이 국성을 기특히 여김
곧 주객 낭중(主客郎中) 벼슬을 시키고, 이윽고 국자좨주(國子祭酒)로 올리어 예의사(禮儀使)를 겸하니, 무릇 조회(朝會)의 잔치와 종조(宗祖)의 제사, 천식(薦食), 진작(進酌)의 예(禮)에 임금의 뜻에 맞지 않음이 없는지라,
위에서 기국(器局)이 둠직하다 하여 올려서 후설(喉舌)의 직에 두고, 우례(優禮)로 대접하여 매양 들어와 뵐 적에 교자(轎子)를 탄 채로 전(殿)에 오르라 명하며,
국선생(麴先生)이라 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으며, 임금의 마음이 불쾌함이 있어도 성(聖)이 들어와 뵈면 임금은 비로소 크게 웃으니, 무릇 사랑받음이 모두 이와 같았다.
성품이 온순하고 또한 얌전한 성은 임금과 가장 친근한 사이가 되어 조금도 기탄할 것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갈수록 귀하게 되었으며, 어느 노름이나 잔치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국성의 행동이 임금의 뜻에 맞아 많은 사랑을 받음
이렇게 되니 성의 아들인 혹(酷; 독할 혹), 폭(暴), 역(醳; 진한 술 역)이 아비의 총애를 받고 자못 방자하니(술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요소), 중서령 모영(毛穎; 붓)이 상소하여 탄핵하기를, '행신이 총애를 독차지함은 천하가 병통으로 여기는 바이온데, 이제 국성이 보잘 것 없는 존재로서 요행히 벼슬에 올라 위가 3품에 놓이고,
내심이 가혹하여 사람을 중상하기를 좋아하므로 만인이 외치고 소리 지르며 골머리를 앓고 마음 아파하오니(술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요소 나열; 탄핵 이유), 이는 나라의 병을 고치는 충신이 아니요, 실로 백성에게 독을 끼치는 적부입니다.
성의 세 아들이 아비의 총애를 믿고 횡행 방자하여 사람들이 다 괴로워 하니, 청컨대 폐하께서는 아울러 사사(賜死)하여 뭇사람의 입을 막으소서' 하니,
아들 혹 등이 그 날로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자살하였고, 성은 죄로 폐직되어 서인이 되고, 치이자(술항아리)도 역시 일찍이 성과 친했기 때문에 수레에서 떨어져 자살하였다.
일찍이 치이자가 익살로 임금의 사랑을 받아 서로 친한 벗이 되어 매양 임금이 출입할 때마다 속거에 몸을 의탁 하였는데, 치이자가 일찍이 곤하여 누워 있으므로 성이 희롱하여 말하기를, '자네 배가 비록 크나 속은 텅 비었으니, 무엇이 있는고?'하니,
대답하기를, '자네들 따위 수백은 담을 수 있네'라 하였으니, 서로 희학함이 이와 같았다.
성이 파면되자, 제 고을과 격 고을 사이에 뭇 도둑이 떼 지어 일어났다. 임금이 명하여 토벌하고자 하나 적당한 사람이 없어 다시 성을 발탁하여 원수로 삼으니, 성이 군사를 통솔함이 업하고 사졸과 더불어 고락을 같이하여 수성(愁城)에 물을 대어 한 번 싸움에 함락시키고 장락판을 쌓고 돌아오니, 임금이 공으로 상동후에 봉했다.
1년 뒤에 상소하여 물러나기를 빌기를, '신은 본시 옹유의 아들로 어려서 빈천하여 사람에게 이리저리 팔려 다니다가, 우연히 성주를 만나 성주께서 허심탄회하게 저를 후하게 받아 주시어 침닉(沈溺)에서 건져내어 하해 같은 넓은 도량으로 포용해 주심에도 불구하고 홍조에 누만 끼치고 국체에 도움을 주지 못하며,
앞서 삼가지 못한 탓으로 향리에 물러가 편안히 있을 때 비록 엷은 이슬이 거의 다하였으나 요행히 남은 물방울이 유지되어, 일월의 밝음을 기뻐하여 다시 벌레가 덮인 것을 열어 젖혔습니다. 또한 양이 차면 넘어지는 것은 물(物)의 떳떳한 이치입니다.
이제 신이 소갈병을 만나 목숨이 뜬 거품보다 굽박하니, 한 번 유음을 내리시어 물러가 여생을 보전하게 하소서'라 하였으나 임금은 윤허하지 않고 중사를 보내어 송계, 창포 등 약물을 가지고 그 집에 가서 병을 치료하게 하였다.
성이 여러 번 표를 올려 굳이 사직하니, 임금이 부득이 윤허하자 그는 마침내 고향에 돌아와 살다가 천명으로 세상을 마쳤다.
아우 현은 벼슬이 이천 석에 이르고, 아들 익, 두, 앙, 남 등은 도화즙을 마셔 신선술을 배웠고, 족자 추, 미, 엄은 다 적이 평씨에 속하였다.
사신(史臣)은 이렇게 평한다. '국씨는 대대로 농가 태생이며, 성은 순덕과 청재로 임금의 심복이 되어 국정을 돕고 임금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여 거의 태평을 이루었으니, 그 공이 성대하도다.
그 총애를 극도로 받음에 미쳐서는 거의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혔으니, 그 화가 비록 자손에 미쳤더라도 유감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만년에 분수에 족함을 알고 스스로 물러가 능히 천명으로 세상을 마쳤다. '역'에 이르기를 '기미를 보아 떠난다(見機而作; 순리를 알고 처신함)' 하였으니, 성이 거의 그에 가깝도다.'
(解)
위국충절의 사회적 교훈을 강조하는, 군자의 처신을 경계한 글이다. 임춘(林椿)의 국순전(麴醇傳)의 영향을 받았다. ‘
국순전(麴醇傳)이 풍자적인 표현임에 비해 권선적(勸善的)이며 교회적(敎誨的; 잘 가르치고 타일러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것)이다.
이규보(李奎報) 고려 시대 문인으로,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지헌(止軒), 1189년 사마시, 이듬해 문과에 급제, 걸출한 시호(詩豪)로서 호탕 활달한 시풍으로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감상을 적은 즉흥시로 유명했다. 시와 술, 거문고를 즐겨 삼혹호(三酷好) 선생이라 자칭했다. 저서로는 '동국이상국집', '백운소설' 등이 있다.
해설 및 감상
이 작품은 임춘의 '국순전'과 함께 술(누룩)을 의인화하여 위국충절을 교화한 가전 문학이다. '국선생전'은 '국순전'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으나, '국순전'이 향락만을 일삼는 요사한 벼슬아치를 풍자한 반면, '국선생전'은 위국충절의 대표적 인물을 등장시켜 사회적 교화를 강조하였다.
이 작품에 대한 작자 자신의 사평(史評)을 보면, '국씨는 본래 한미한 농가의 소생으로 기신하여 국사에 기여했으며, 제왕의 마음을 윤택하게 하여 태평성대를 이루는 데 공이 컸으나, 과분한 은총을 입고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혀 그 화가 자손에게까지 미쳤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원한도 없이 물러나 자성하였고, 만년에는 분수를 지킬 줄 알았으며 천수(天壽)로 세상을 마쳤다. ‘기미를 보아 이루어 나간다. 즉 순리를 알고 처신한다’라는 주역의 기록과 부합되는 바가 있지 않느냐?'고 하였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술을 의인화하여 그 인물을 '선생'이라 일컫고, '국성(麴聖)'이라고까지 칭찬했다. 국성의 공적은 막힌 것을 열어 주고, 경화된 것을 풀어 주는 데 있다고 본 데에서 작자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가전(假傳)은 고려 중엽부터 창작된 양식으로서, 사물을 역사적 인물처럼 의인화하여 그 가계(家系)와 생애 및 공과(功過)를 전기 형식으로 서술한 한문 문학 양식이다.
따라서 실전(實傳)에 상대되는 뜻으로 가전이라 하며, 의인 전기체라고도 한다. 가전 속의 사물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나름의 개성과 기질, 욕구를 가지고 희비와 성쇠를 겪으며 살아가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국선생전'은 임춘(林椿)의 '국순전(麴醇傳)'과 마찬가지로 술(누룩)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주제는 다르다.
'국순전'은 주인공인 국순이 세상에서 귀하게 대접받고, 방탕한 군주에게 크게 등용되었다가 나라를 어지럽혀서 내침을 당하고, 분한 나머지 병이 들어 죽는다는 내용이다.
'국선생전'의 국성은 일시적인 시련을 견딜 줄 알아서 성품이 어질고 덕과 충성이 지극한 긍정적 인물로 서술되었다.
'국선생전'을 통한 작자의 의도
이 작품은 안으로 무신의 난과 밖으로 몽고군의 침입에 희생된 고려 의종. 고종 연간의 난국에 처하여 분수를 망각한 인간성의 결함과 비정(非情)을 풍자한 계세징인의 목적으로 쓰인 작품이다.
이규보는 이 작품을 통해 술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덕과 패가망신의 인과 관계를 군신 사이의 관계로 옮겨 놓고, 그 성패를 비유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주인공 국성을 신하의 입장으로 설정하고 있음이 주목되는데, 이는 유생의 삶이란 근본적으로 신하로서 군왕을 보필하여 치국의 이상을 바르게 실현하는 데 있음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라 하겠다.
신하는 군왕으로부터 총애를 받게 되면 자칫 방자하여 신하의 도리를 잃게 되어, 한때 유위유능(有爲有能)한 존재에서 국가나 민생에 해를 끼치는 존재로 전락하기 쉽고, 마침내 자신의 몰락까지 자초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신하는 신하의 도리를 굳게 지켜 나감으로써 어진 신하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면서, 동시에 때를 보아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작자는 국성의 공적은 막힌 것을 열어 주고, 경화된 것을 풀어 주는 데 있다고 하여 스스로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국선생전'과 '국순전'과의 관계
이규보의 '국선생전'은 임춘의 '국순전'과 마찬가지로 술(누룩)을 의인화의 대상으로 하였지만 그 주제는 다르다.
'국순전'은 도량과 인품을 갖추고 있는 국순이 방탕한 군주에게 등용되었다가 세상을 어지럽히고는 은퇴해서 곧 죽었다는 내용으로, 정사를 돌보지 않는 군주까지 비판하면서 술로 인한 폐해를 드러낸 것이다.
반면에 '국선생전'의 국성은 도량이 크고 성품이 어질며 충성이 지극한 긍정적 인물로 서술되었다. 국성이 '국선생'이라 불린 점이라든가, 만년까지 제 본분을 지키고 화평한 삶을 누린 것이 이와 같은 인식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두 작품은 술의 내력, 성질, 효능 등을 사람의 개성, 기질, 욕구 등으로 의인화하는 수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나, 사건 구조와 인물형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 가운데서 술의 효능과 가치를 훨씬 긍정적으로 표현한 쪽은 물론 이규보의 '국선생전'이다.
'국순전'과 '국선생전'의 차이점
사건의 구조와 인물형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먼저 '국순전'은 요사하고 아부하는 정객을 꾸짖고 방탕한 군주를 풍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술로 인한 폐해 드러낸다.
다음으로 '국선생전'은 총애를 받다가 방종하여 물러나 반성하고 근신할 줄 아는 인간상으로 나중에 백의종군하는 충절의 대표적 인간상으로 사회적 교훈 드러낸다. 술의 효능과 가치를 훨씬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평원독우(平原督郵)와 청주종사(淸州酒從事)
평원독우의 '郵'를 '憂'로 바꾸면 '근심 없이 하는 벼슬'이란 뜻이며, '청주종사'의 '淸州'를 '淸酒'로 바꾸면 '술마시는 것을 일삼아 한다'의 뜻이 된다.
평원도 격현에 있으므로 '평원독우'란 '膈上(격상; 명치 위)'에 머물러 숨이 막히는 좋지 않은 술을 의미하며, '淸州(청주)'는 제군(齊郡)에 있으므로 '청주종사'는 '臍下(제하; 배꼽 아)'까지 시원하게 넘어가는 좋은 술을 의미한다.
(例)
이인로(李仁老) 취향(醉鄕)
醉鄕淳寂隔齊州
聞說陶劉始得遊
취향은 순박하고 고요해 가슴과 배꼽 지경에 있는데, 도연명(陶淵明)과 유령(劉伶)이 처음 거기 노닐었다네.
飮露吸風千萬戶
剪圭何日許封侯
취향은 이슬 마시고 바람 들이키는 천만 호가 되는 큰 고을인데, 언제 홀(笏)을 만들어 나를 그 취향의 제후로 봉해 주려는고.
진화(陳澕) 도잠녹주(陶潛漉酒)
督郵風味最高高
何用眞珠滴小槽
독우(막걸리)의 고상한 맛이 가장 높거늘, 무엇하러 진주 같은 술을 작은 체로 거르랴.
漉罷拂巾還自着
不妨衰鬢帶霜糟
술 거른 뒤 두건 털어 도로 머리에 쓰니, 늙은 머리에 흰 지게미 묻은들 무슨 상관일꼬.
술을 즐긴 도연명의 고사(故事)를 연상해 지은 작품이다. 술이 익었다 하면 언제 격식을 차려 술주자나 체로 술 거르기를 기다리랴, 머리에 쓴 갈건을 벗어 거꾸로 들고 밑술을 부어 짜서 마시니 격식을 벗어난 그 활달함이 지은이의 마음에 들었으리라.
독우(督郵)는 술의 은어(隱語)로서 탁주(濁酒)는 평원독우(平原督郵)라 하는데, 평원에 격현(鬲縣)이 있었다.
격(鬲)자는 격(膈)자와 통하는데, 탁주를 먹으면 흉격(胸膈)에까지 밖에는 내려가지 않는다는 뜻이요, 좋은 청주(淸酒)는 청주종사(靑州從事)라 하는데, 청주에는 제현(齊縣)이 있다.
제(齊)는 제(臍)와 통용하는 글자로서, 좋은 청주는 배꼽(臍)까지 내려간다는 뜻이라 한다. 독우(督郵)는 평원 지방의 관직 이름이요, 종사(從事)는 청주(靑州) 지방의 관직 이름이다.
▶️ 平(평평할 평, 다스릴 편)은 ❶상형문자로 물 위에 뜬 물풀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수면이 고르고 평평(平平)하다는 뜻이다. ❷지사문자로 平자는 '평평하다'나 '고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平자는 干(방패 간)자와 八(여덟 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平자는 '방패'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또 사물의 모습을 본뜬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平자는 악기 소리의 울림이 고르게 퍼져나간다는 뜻을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平자는 소리가 고르게 퍼져나간다는 의미에서 고르거나 평평하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고 후에 '안정되다'나 '화목하다'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그래서 平(평, 편)은 (1)일정한 명사(名詞) 앞에 붙이어 평범(平凡)한, 평평(平平)한의 뜻을 나타냄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평평하다, 바닥이 고르고 판판하다 ②고르다, 고르게 하다 ③정리되다, 가지런하게 되다 ④편안하다, 무사하다 ⑤평정하다 ⑥정하다, 제정하다 ⑦이루어지다 ⑧바르다 ⑨갖추어지다 ⑩사사로움이 없다 ⑪화목하다, 화친하다 ⑫쉽다, 손쉽다 ⑬표준(標準) ⑭들판, 평원(平原) ⑮산제(山祭: 산에 지내는 제사) ⑯보통(普通) 때, 평상시(平常時) ⑰보통, 보통의 수준 ⑱평성(平聲), 사성(四聲)의 하나 그리고 ⓐ다스리다, 관리하다(편) ⓑ나누다, 골고루 다스려지다(편)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평탄할 탄(坦), 편안할 녕(寧), 편안 강(康), 클 태(泰)이다. 용례로는 어떤 가정 밑에서 많은 수나 같은 종류의 양의 중간의 값을 갖는 수를 평균(平均), 평온하고 화목함을 평화(平和), 평상시를 평소(平素), 뛰어난 점이 없이 보통임을 평범(平凡), 평상시의 소식을 평신(平信), 차별이 없이 동등한 등급을 평등(平等), 바닥이 평평한 땅을 평지(平地), 사람이 삶을 사는 내내의 동안을 평생(平生), 지표면이 평평한 넓은 들을 평야(平野), 무사히 잘 있음을 평안(平安), 벼슬이 없는 일반민을 평민(平民), 평평한 표면을 평면(平面), 평탄한 들판 평야를 평원(平原), 난리를 평온하게 진정시킴을 평정(平定), 까다롭지 않고 쉬움을 평이(平易), 어느 한 쪽에 기울이지 않고 공정함을 공평(公平), 마음에 들거나 차지 않아 못마땅히 여김을 불평(不平), 균형이 잡혀 있는 일을 형평(衡平), 대지의 평면을 지평(地平), 마음이 기쁘고 평안함을 화평(和平), 넓고 평평함을 편평(扁平),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평롱망촉(平隴望蜀), 깨끗하며 욕심이 없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평이담백(平易淡白), 엎드려 땅에 머리를 댄다는 뜻으로 공경하여 두려워하는 모습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평신저두(平身低頭), 고요한 땅에 바람과 물결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공연한 일을 만들어서 뜻밖에 분쟁을 일으키거나 사태를 어렵고 시끄럽게 만드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을 평지풍파(平地風波), 모래톱에 내려앉는 기러기라는 뜻으로 글씨를 예쁘게 잘 쓰는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 또는 아름다운 여인의 맵시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평사낙안(平沙落雁), 마음을 평온하고 순화롭게 함 또는 그런 마음으로 줄여서 평심이라고 하는 말을 평심서기(平心舒氣), 평지에 산이 우뚝 솟음으로 변변치 못한 집안에서 뛰어난 인물이 나옴을 비유하는 말을 평지돌출(平地突出), 심기를 조용하게 가져 잡념을 없앤다는 뜻으로 마음이 평온하고 걸리는 것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평기허심(平氣虛心), 뛰어난 점이 없이 보통을 일컫는 말을 평평범범(平平凡凡), 이른 새벽에 다른 사물과 접촉하기 전의 맑은 정신을 이르는 말을 평단지기(平旦之氣), 안온하며 아무것도 변한 일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평온무사(平穩無事) 등에 쓰인다.
▶️ 原(언덕 원/근원 원)은 ❶회의문자로 厡(원)이 본자(本字)이다. 민엄호(厂; 굴바위, 언덕)部와 泉(천; 물의 근원)의 합자(合字)이다. 계곡의 맑은 물이 흘러 나오는 수원(水原)의 뜻으로 나중에 들판의 뜻으로 쓰이게 되자 수원의 뜻으로는 源(원)이란 글자가 따로 만들어졌다. ❷상형문자로 原자는 '근원'이나 '근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原자는 厂(기슭 엄)자와 泉(샘 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泉자는 돌 틈 사이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 모습을 한자화한 것이다. 여기에 厂자가 결합한 原자는 물길이 시작되는 곳을 뜻했다. 그러나 지금의 原자는 물길의 시작점이 아닌 '근본'이나 '사물의 시초'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후에 水(물 수)자를 더한 源(근원 원)자를 따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만 실제 쓰임에서는 原자와 源자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原(원)은 (1)어떠한 명사(名詞) 앞에 쓰이어 본디 처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언덕 ②근원(根源), 근본(根本) ③저승 ④들, 벌판 ⑤문체(文體)의 한 가지 ⑥원래 ⑦거듭, 재차 ⑧근본(根本)을 추구하다 ⑨캐묻다, 찾다 ⑩의거(依據)하다, 기초(基礎)를 두다 ⑪기인(起因)하다 ⑫용서하다, 놓아 주다 ⑬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정성스럽다 ⑭거듭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언덕 구(丘), 언덕 판(坂), 언덕 구(坵), 언덕 파(坡), 언덕 강(堈), 언덕 안(岸), 언덕 강(崗), 언덕 애(崖), 언덕 구(邱), 언덕 판(阪), 언덕 릉(陵), 언덕 고(皐), 언덕 부(阜)이다. 용례로는 어떤 일의 근본이 되는 까닭을 원인(原因), 많은 경우에 적용되는 근본 법칙을 원칙(原則), 사물이 근거하여 성립하는 근본 법칙을 원리(原理), 제조하거나 가공하는 데 바탕인 재료가 되는 거리를 원료(原料),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재판을 청구한 사람을 원고(原告), 상품을 완성시킬 때까지 소비한 재화나 용역을 단위에 따라 계산한 가격을 원가(原價), 유정에서 퍼낸 그대로 정제하지 않은 석유를 원유(原油), 처음이나 시초로 본디대로 여서 진화 또는 발전하지 않음을 원시(原始), 본디대로의 상태 또는 이전의 모양을 원상(原狀), 제작물의 근본이 되는 거푸집 또는 본보기를 원형(原型), 변하기 전의 본디의 모양을 원형(原形), 물의 흐름의 근원이나 사물이 일어나는 근원을 원류(原流), 직물의 원료가 되는 실을 원사(原絲), 근본이 되는 이론 또는 그것을 기술한 것을 원론(原論), 회의에 부친 최초의 의안을 원안(原案), 본디의 저작 또는 제작을 원작(原作), 글자의 본디의 음을 원음(原音), 상당히 높은 높이를 가지면서 비교적 연속된 넓은 벌판을 가진 지역을 고원(高原), 풀이 난 들을 초원(草原), 시작되는 처음을 시원(始原), 평탄한 들판 평야를 평원(平原), 눈이 뒤덮여 있는 벌판을 설원(雪原), 넓은 들의 가운데를 중원(中原), 무서운 기세로 불이 타 가는 벌판을 요원(燎原), 실수하지 아니하도록 하는 방법을 일컫는 말을 원불실수(原不失手), 중원의 사슴이라는 뜻으로 천자의 자리 또는 천자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중원지록(中原之鹿), 작은 불씨가 퍼지면 넓은 들은 태운다는 뜻으로 작은 일이라도 처음에 그르치면 나중에 큰 일이 됨을 이르는 말을 성화요원(星火燎原),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는 벌판의 불길이라는 뜻으로 미처 막을 사이 없이 퍼지는 세력을 이르는 말을 요원지화(爎原之火), 일의 결말을 짓는 데 가장 가까운 원인을 일컫는 말을 결국원인(結局原因) 등에 쓰인다.
▶️ 督(감독할 독)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눈 목(目=罒; 눈, 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잘, 충분의 뜻을 가진 叔(숙, 독)으로 이루어졌다. 잘 살펴 본다는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督자는 '살펴보다'나 '감독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督자는 叔(콩 숙)자와 目(눈 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叔자는 땅에 떨어진 콩을 줍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콩'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콩을 줍는 모습을 그린 叔자에 目자가 결합한 督자는 '세밀히 살피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콩이 잘 자라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핀다는 뜻이었다. 다만 지금의 督자는 무언가를 세심히 관찰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督(독)은 ①감독하다(監督--) ②살피다 ③살펴보다 ④세밀(細密)히 보다 ⑤거느리다 ⑥통솔하다(統率--) ⑦꾸짖다 ⑧재촉하다 ⑨권하다(勸--) ⑩우두머리 ⑪통솔(統率)하는 사람 ⑫가운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검사할 검(檢)이다. 용례로는 감독하며 격려함을 독려(督勵), 빨리 서둘러 하도록 재촉하는 것을 독촉(督促), 감독이나 경계하여 지켜 봄을 독시(督視), 몹시 재촉함이나 책망함을 독책(督責), 세납이나 요금 또는 빌려 준 돈이나 물건 따위를 독촉하여 거두어 들임을 독봉(督捧), 전투를 감독하고 격려함을 독전(督戰), 빨리 출두하여 현신하기를 독촉함을 독현(督現), 허물을 꾸짖음 또는 과실을 책망함을 독과(督過), 세금을 받치도록 독촉함을 독세(督稅), 일을 살피어 밝힘을 독찰(督察), 세금을 바치도록 독촉함을 독납(督納), 몹시 자주 독촉함을 독박(督迫), 감독하여 인솔함을 독솔(督率), 바로잡아 다스림을 독어(督御), 어떤 일이나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잘못이 없도록 보살펴 다잡는 것 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을 감독(監督), 집안을 상속할 맏아들의 신분을 가독(家督), 스스로 알게 된 것을 자독(自督), 검사하고 독려함을 검독(檢督), 독촉을 늦추어 줌을 완독(緩督), 별똥이 떨어지듯이 몹시 심하고 급하게 재촉함을 일컫는 말을 성화독촉(星火督促), 평원지방 자사의 독우 즉 보좌관이라는 뜻으로 맛없는 술 또는 탁주의 은어를 일컫는 말을 평원독우(平原督郵) 등에 쓰인다.
▶️ 郵(우편 우)는 ❶회의문자로 邮(우)는 통자(通字), 邮(우)는 간자(簡字)이다. 우부방(阝=邑; 마을)部와 垂(수; 邊境변경의 땅)의 합자(合字)이다. 나라의 요소요소에 역참을 두어 인마(人馬)의 계승(繼承)을 한 곳으로 역참(驛站)을 말한다. 허물의 뜻으로 쓰이는 것은 우(訧)를 빌어 쓴 것이다. ❷회의문자로 郵자는 '우편'이나 '역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郵자는 垂(드리울 수)자와 邑(고을 읍)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垂자는 풀잎이 드리워져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郵자는 垂자가 아닌 '변방'이라는 뜻의 陲(변방 수)자와 邑자가 결합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郵자는 성과 변방이 서로 문서를 전달하던 '역참'을 뜻했던 글자였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변방을 지키던 지역과 성내 관청이 주기적으로 정보를 교환했다. 주로 말을 달려 문서나 정보를 전달했었는데, 중간에 말을 갈아타는 곳을 郵라고 했다. 그러니 郵자는 변방을 뜻하는 陲자와 성안을 뜻하는 邑자가 결합하여 변방과 성을 연결한다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郵(우)는 ①우편(郵便) ②역참(驛站: 조선 시대의 여행 체계를 일컫는 말) ③역말(각 역참에 갖추어 둔 말) ④오두막집 ⑤허물(=尤) ⑥탓하다 ⑦지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편지나 소포 따위를 운송하는 국영 사업을 우편(郵便), 우편 요금을 표시하는 증표를 우표(郵票), 물건이나 편지 따위를 우편으로 보냄을 우송(郵送), 우편을 이용하는 편지를 우신(郵信), 역사를 이르는 말을 우루(郵樓), 우편으로 보내는 편지를 우서(郵書), 우편물의 운송과 우편 사무를 다루는 배를 우선(郵船), 우편으로 전함을 우전(郵傳), 허물을 드러냄을 저우(著郵), 우편물을 넣고 다니는 주머니를 우편낭(郵便囊), 두우라는 곳에서 죽인다는 뜻으로, 충신이 죄없이 죽음을 당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두우륙(杜郵戮), 평원지방 자사의 독우 즉 보좌관이라는 뜻으로 맛없는 술 또는 탁주의 은어를 일컫는 말을 평원독우(平原督郵)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