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병매(182) 흉몽 8
“그러면 어떻게 할려고 그래?”
“되는 대로 되겠죠 뭐”
“되는대로 되다니?”
그러자 이병아는,
“저... 큰 형님한테 생각난 김에 한 가지 부탁을 드려야겠어요”
하고 말머리를 돌린다.
“무슨 부탁?”
“다름이 아니라, 아무래도 내가 시원찮을 것 같애요”
“시원찮을 것 같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양세걸 영감이 데려갈 것 같다는 말이죠”
“어머나, 왜 그런!”
“같이 살자는 말은 저승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뜻이 아니고 뭐겠어요”
“이 사람아, 그런 소리 말어. 그게 말이라고 해?
꿈을 가지고서 무슨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오월랑은 진심으로 꾸짖듯이 말한다.
“좌우간 말이에요 큰형님에게 수춘이를 부탁 드리겠어요.
만약 내가 어떻게 되거든 그 애를 큰 형님이 보살펴 주세요.
시집갈 나이도 됐으니 적당한데 출가를 시켜도 좋고,
그렇지 않으면 큰형님의 몸종으로 데리고 있어도 좋고요.
아무데나 팔아버리지는 말아달라는 거죠.
나무랄 데가 없는 아이거든요.
내가 칠팔년을 데리고 있어 봤는데 마음씨도 그만이고,
성질도 온순해서 정말 괜찮은 아이더라구요.
난 눈을 감더라도 달리 걱정해야할 피붙이라곤 없지만, 다만 수춘이가 마음에 걸리는군요. 큰형님, 내 부탁을 들어주시는 거죠?”
“이 사람아, 무슨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응?”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니까요. 마지막 부탁이에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구. 그래야 건강이 회복되지,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몸만 더 빠진다구”
“엉뚱한 생각이 아니라니까 그러네요. 내 일은 내가 안단 말이에요”
오월랑은 말문이 막힌다.
몽유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약보다도 무당을 찾아가 치성을 드려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 말을 해주러 찾아왔는데, 엉뚱하게 마치 이병아의 유언을 듣는 것처럼 되어서 몹시 곤혹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이병아는 누워서 지껄이는데도 피곤한 듯 퀭한 두 눈을 힘없이 감는다.
“여보게, 난 가네. 좌우간 알았으니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말고, 몸조리나 잘하라구”
애매모호한 말을 던지듯이 하고는 오월랑은 성큼 의자에서 일어나 방을 나선다.
이병아는 가만히 오월랑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 더는 입을 열지 않는다.
그날 밤 이병아는 일찍 잠이 들려고 애를 써 보았다.
일찍이 잠이 들면 어젯밤 꿈에 말했듯이 양세걸 영감이 바로 찾아와서 오래오래 같이 있어줄 거 같아서였다.
꿈속의 만남이지만, 영감이 은근히 기다려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은 쉬 오지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서 이병아는 일어나 주방에 가서 술을 몇 잔 마셨다.
그리고 돌아와 침상에 누워 있으니 곧 혼혼하게 취기가 오르면서 눈두덩이 찌뿌듯하게 무거워졌다.
잠시 후 그녀는 스르르 잠의 수렁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술기운 탓인지 코까지 살살 골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가만가만 흔들어 깨우는 듯해서 이병아는 눈을 떴다.
“오늘밤은 일찍 잠들었군. 잘했어”
양세걸이 싱그레 웃는 얼굴로 내려다보며 서있었다.
“오셨군요. 당신이 오셨는데 내가 일어나야죠”
하면서 이병아는 이불을 들추고 부스스 몸을 일으킨다.
그녀는 오늘밤도 꿈을 꾸면서 실제로 그렇게 일어나 앉고 있었다. 이병아가 일어나 앉자,
양세걸은 자기도 침상 한쪽 가에 그녀를 마주보고 걸터앉는다.
“의자를 갖다놓고 앉으시라구요. 내가 갖다드릴까요?”
“아니야, 여기가 좋아. 잠시 앉아 얘기를 하고나서...허허허...”
양세걸은 공연히 히들히들 싱겁게 웃는다.
그 웃음의 뜻을 이병아는 알아차리고서 살짝 고개를 떨군다.
“생각해 봤어?”
양세걸이 불쑥 묻는다.
이병아는 얼른 고개를 든다.
그리고 무슨 질문인가 싶은 듯 되묻는다.
“뭘 말이에요?”
“어젯밤에 내가 말했잖아. 벌써 잊어버렸단 말이야?”
“...”
“내가 당신하고 같이 살고 싶다고 말했잖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말이야”
그러자 이병아는 약간 곤혹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같이 살고 싶지만 난 지금 남편이 있는 몸이란 말이에요”
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왜 어젯밤에 화장을 하고 그랬지?”
“그거야 오래간만에 당신을 단둘이서 만났으니까 곱게 보일려고 그랬죠”
“곱게 보이고 싶은 건 결국 내 뜻을 따르겠다는 거 아니고 뭐야. 난 어젯밤에 그렇게 생각했었다구”
“따르고 싶어도 따를 수 없는 게 내 처지란 말이에요”
“그건 말이 안돼. 당신은 서문경이를 아직도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미 그는 당신을 버렸다구. 알겠어? 아내라고 생각하질 않고,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다 그거야”
“아니예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 아기 관가가 죽었기 때문에 속이 상해서 나한테까지 심술을 부리고 있는 거라구요. 멀지 않아서 다시 나를 좋아하게 될거예요. 틀림 없어요”
“이 어리석은 사람아. 그저께 밤에 당해보지 않았느냐 말이야.
그처럼 사정없이 손찌검을 한 놈한테 아직도 미련을 가지고 있다니...
설령 당신이 뭘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럴 수는 없을 터인데, 자기가 남의 금은보화를 거의 다 축내놓고서 적반하장으로 당신을 그처럼 때리다니, 그게 사람이냐 말이야. 내가 보기엔 그놈 아주 몹쓸 불한당 같은 인간이더라구”
이병아는 뭐라고 할말이 없는 듯 다소곳이 듣고만 있다.
양세걸은 수염을 한번 쓰다듬어 내리고는 약간 열기를 더하여 지껄여 댄다.
“그런 인간말종를 아직도 남편이라고 기대를 가지고 있는 당신이 가엾지 뭐야. 난 도저히 그냥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다구. 당신을 그자한테서 빼앗아 도로 내가 치지해야겠어.
원래 임자는 내가 아닌가 말이야. 안 그래?”
“대답을 해보라구”
“히히히···”
이병아는 대답 대신 나직한 소리로 재미있다는 듯이 킬킬 웃는다.
“앙큼하게 웃기는···”
양세걸은 그만 침상으로 가볍게 뛰어올라 이병아를 불끈 끌어안아 버린다.
“어머, 영감”
“요 귀여운 것”
양세걸은 대번에 코를 그녀의 이마에 가져간다.
반사적으로 그녀는 고개를 떨군다.
그래서 영감의 코가 그녀의 검은 머리털 속에 묻힌다.
양세걸은 옛날 이병아를 애첩으로 데리고 살 때부터 포옹을 하면 먼저 코로 애무를 시작하는 묘한 버릇이 있었다.
여자의 냄새를 유달리 좋아하는 듯 이마로부터 시작해서 볼로, 턱으로, 그리고 목줄기까지 코로 살결을 문지르면서 내려가는 것이다.
옷을 벗긴 다음에도 그녀의 몸뚱어리를 코로 애무해대기 일쑤였다. 영감의 꾸들구들한 코가 머리털 냄새를 즐기는 듯 휘저어대자,
“히히히···”
이병아는 간지러움을 느끼며 절로 웃음이 나온다.
양세걸은 코로 이병아의 얼굴을 애무해댄 다음 가만히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약간 열기를 머금은 그런 목소리로 말한다.
“당신은 여전히 부드럽고 향기롭다구. 옛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어”
이병아는 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마주 속삭인다.
“영감 역시 옛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네요. 지금도 여전히 코로 애무를 즐기시는군요”
“어때? 싫지 않지?”
“예”
“자, 그럼 옷을 벗지”
“그래도 될까요?”
“안될게 뭐 있어?”
“남편이 있는 몸인데···”
“또 그런 소리를 하는군. 그 인간은 이미 당신 남편이 아니리니까 그러네. 당신 임자는 나란 말이야, 나. 알겠어?”
“···”
“어서 벗어. 안 벗으면 나 화낸다구”
그러자 이병아는 정색을 하고서 묻는다.
“여보, 영감, 한 가지만 물어보겠어요”
“뭔데? 물어보라구”
“영감이 나더러 다시 같이 살자고 하셨는데, 어디서 산다는 거예요? 영감은 돌아가셨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같이 살죠?”
“그런 걱정은 안해도 돼.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알아서 하다뇨, 어떻게 하신다는 거죠? 그걸 알고 싶다구요”
“내가 당신을 데리고 가면 되잖아”
“데리고가다뇨, 어디로요?”
“나 있는 데로”
“저승으로요?”
“응”
“어머, 그럼 나도 죽으란 말이네요?”
이병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렇지, 죽어야지. 안 죽으면 나하고 같이 살 수가 없잖아. 허허허···”
양세걸은 재미있다는 듯이 껄껄 웃는다.
“싫어요. 난 죽기 싫다구요. 살 거예요. 살 거란 말이에요”
“누구 맘대로··· 당신 맘대로 될 것 같애?
어림도 없지. 자, 어서 옷이나 벗어”
“싫어요. 못 벗어요. 당신하고 안 살 거예요.
“허허허···”
양세걸은 여유있게 웃으면서 한손을 이병아의 목으로 가져가 휘감는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옷을 벗긴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병아는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온몸에서 맥이 탁 풀려버린 듯한 느낌이다.
곧 그녀는 홀랑 알몸이 되어 무너지듯 드러눕고 만다.
양세걸은 능글능글한 웃음을 띤 눈으로 이병아의 알몸을 위로부터 아래로 천천히 훑는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몸매도 옛날과 달라진 게 없군. 여전히 희고 늘씬해. 유방만 그전보다 눈에 띄게 풍만해졌어”
이병아는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사르르 두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다.
양세걸은 천천히 얼굴을 숙여 코를 그녀의 한쪽 유방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꾸틀꾸틀한 코끝으로 젖꼭지를 살살 애무한다.
“어머 어머, 아-”
그녀의 입에서 대번에 감미로운 교성이 흘러나온다.
몸뚱이도 절로 가늘게 떨린다.
코와 함께 그의 수염도 그녀의 우방 기슭을 슬슬 쓰다듬듯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코와 수염의 야릇한 애무가 그녀의 몸뚱어리를 위로부터 아래로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가자 나중에는 그만,
“어머, 나 몰라. 여보 여보···”
하고 그녀는 온통 아랫도리를 꿈틀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자 양세걸이 애무를 그치고서 묻는다.
“어때? 나하고 살 거야, 안 살 거야?”
“살 거예요. 살 거라구요. 정말이에요. 여보, 어서 어서···”
이병아는 살짝 실성을 한 사람처럼 냅다 애걸을 하듯 뇌까린다.
양세걸은 싱그레 웃으면서 일어선다.
그리고 훌훌 옷을 벗어 던진다.
순식간에 벌건 알몸이 된 그는 이병아의 희고 늘씬한 아랫도리를 활짝 열어젖히고 그 위로 무너진다.
곧 이병아는 끊어 오르는 듯한 교성을 내뱉기 시작한다.
조금 전의 코와 수염으로 하는 애무 때도 형용할 수 없는 야릇한 쾌감이 살결을 떨리게 하더니, 이번에는 온통 몸속 깊숙한 곳을 화끈화끈한 것이 휘저어대는 듯 입이 딱딱 벌어지고, 눈이 질끔 질끔 감긴다.
그리고 온몸을 전율 같은 것이 꿰뚫어 흐르는 듯 바르르 바르르 떨기까지 한다.
잠시 후 그녀는 냅다 비명을 지르듯 야릇한 교성을 마음껏 내지르며 꺽꺽 넘어갔다.
그리고 꿈이 깨었다.
비록 꿈 속의 일이기는 했지만, 그녀가 경험한 어떤 정사보다도 짙고 뜨거운 한판 황홀경(恍惚境)이었다.
그 뒤 사흘 동안 이병아는 희한하게도 밤으로 전혀 아무 꿈도 꾸질 않았다.
그러다가 나흘 째 되는 날 밤 꿈에 또 양세걸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웬 중년의 사내 하나와 같이 침실로 들어섰는데,
그 사내는 검정옷을 입고 있었다.
* 계속 183~~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추천 꾸 욱 했어요"^&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런, 양세걸이 검정옷 입은 저승사자와
같이 왔네요
그녀의 파란만장했었던 인생길도 끝인가 봐요
수춘이를 부탁하는 맘이 곱기두 하구요
추천은 꾸욱~
착한 병아가 드뎌 떠나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이병아도 저세상으로
가는건가요?
불쌍합니다
추천눌렀습니다
그럴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드디어
저승사자
가여운 이병아
아들과 전남편의 곁으로~
추천합니다
어서오십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