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마나 오만하고 시건방진 발상인가?
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만은 편안하고 아름답고 화려한 '휴가'를 보낼 권리가 있을 줄 알았다.
나름대로 주말 맞벌이 부부로 혼자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 돌보면서 열심히 일했고 휴가준비도 철저히 했다. 유명한 관광지나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의 정보를 다운받아 출력해 두었고 3박 4일동안 먹을 과일과 음료수 맥주 등도 미리 이마트에서 장을 봐다가 깨끗이 씻고 닦아 커다란 아이스박스와 좀 작은 아이스박스(일일용)에 차곡차곡 넣어 두었으며 피서지에서 멋을 내고 입을 나풀나풀한 나뭇잎 무늬의 원피스와 거기에 어울릴 짧은 길이의 갈색니트도 마련해 두었었다. 물론 핑크색 샌들과 하얀 꽃이 달린 모자와 선글래스까지.
물론 가입한 카페나 칼럼에 여름휴가를 떠나니 당분간 '안녕히...'란 인사말, 아니 자랑도 빠뜨리지 않았다.
완벽한 준비였다고나 할까.
아니 너무 자랑을 많이 했다고나 할까.
7월 25일 금요일
드디어 출발을 앞둔 아침이다.
새벽부터 쏟아지기 시작하던 비는 급기야 천둥번개까지 동반한다.
'어쩌지? 내일 가자고 해? 아이고 참 나....미치겠군'
8시 30분에 출발하기로 했었는데 폭우를 핑계로 밍기적밍기적 거렸다.
"여보, 가지 말까? 비가 너무 많이 오네."
어김없이 발동하는 나의 변덕.
"그래도 한 번밖에 없는 여름휴간데 가야지. 좀 기다려 보자."
그렇게 하늘을 원망하며 기다리기를 두 시간.
다행히 비가 잦아들기 시작해 10시 20분에 집을 나섰다.
인동에 있는 여동생 사무실에 들려 디지털 카메라를 빌리고
중앙고속도로 가산 인터체인지를 향해 열심히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가는 도중 다행스럽게도 비는 멈추어 주었다.
예정보다 늦어진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평창휴게소까지 쉬지않고 달렸다.
화장실에 들려 화장을 고치고 손을 씻느라 화장품 가방을 선반에 얹어 놓았다.
손을 다 씻고 나오려고 선반을 보니 '아뿔사' 사라지고 없다.
가죽결이 살아있는 자그마한 손가방.
백화점에서 화장품 사고 사은품으로 받았으니 물론 가짜일텐데 보기엔 그럴싸하게 보이는 손가방을 누가 지갑으로 알고 가져갔나 보다.
머릿속이 텅~~~~
화장실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보는데 방향감각이 없어지는 느낌이다.
뭐 그리 대단한 것들이 들어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립스틱, 휴대용 파우다, 눈썹펜슬, 립브러쉬)
기초화장품과 다른 것들을 분리해서 담았으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지갑이 아닌 것을 알고 다시 돌려놓을까 싶어 잠시 기다렸다 다시 가봐도 없다.
하긴, 나라도 되돌려 놓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기분을 추스려 강릉으로 출발했다.
이미 엎어진 물, 어찌하랴!
곧잘 길을 헷갈리는 신랑!
결국은 강릉 인터체인지를 놓쳐버린다.
주문진을 지나 종점까지 가서 강릉 경포대 숙소로 향한다.
운전하느라 고생했으니 그냥 봐준다.
아이는 왜 신호등이 없는지, 왜 바로 되돌아가지 않는지 물어 쌌는다.
고속도로에 대한 개념이 아직 없나 보다.
설명을 해줘도.....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오후 4시 드디어 숙소인 강릉효산콘도에 도착했다.
간단한 짐을 챙겨 카운터에 체크인을 하고 키를 받아 방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기~~~인 복도를 지나 키를 집어 넣는다.
잘 안열린다.
짜증.
드디어 방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헬쓰장과 실내수영장까지 있다는 콘도의 객실이 어찌 이 모양~~~~~~~~~~~
짓고나서 한 번도 손을 보지 않은 장판(얼룩덜룩 곰보자국 등등)
모양으로만 있는 컴퓨터는 마우스 볼도 빠진채 연결도 제대로 안돼고 거실 한 켠에 세워져 있는 빨래건조대는 녹이 슬고...나사가 빠졌는지 제대로 세워지지도 않구 픽...쓰러지고, 침대는 다리 하나가 부러져 누워 뒤척일때마다 찌그덩 거리고 보온 밥솥은 찌든 때로 찐덕거리고 방바닥엔 먼지가 폴폴..........
'이럴 수 는 없다. 아무리 인터넷으로 성수기 예약을 했다고 해도 말이다. 돈이 얼만데....'
피곤에 지친 세 식구는 넋을 잃었다.
'어쩌지....이미 인터넷 신용카드 결제까지 마친 상태인데....'
"여보야, 오늘은 피곤한데... 그냥 잘까?"
"그래, 어차피 잠만 자고 나갈껀데....내가 방 닦아 줄께. 그냥 자자."
"그래, 일단 안내에 전화하고...."
그렇게 해서 안내에 다이얼을 돌렸다.
미주알 고주알 상황을 설명했더니 내일 체크아웃할 때 모조리 알아서 환불도 해주겠단다.
환불을 해준다니 다행이다. 그래도 한 번 더 확인을 하고....
바로 콘도를 빠져나와 온천물로 만들었다는 속초 워터피아로 향했다.
저녁 6시 30분!
거금 76,000원을 주고 입장권을 사고 전자코인 50,000원은 별도로 구입을 해서 손목에 차고 입장을 했다.
국민카드를 만들면 성인 한 명은 무료라고 하는데 나는 은근히 만들었으면 하는데...
깔끔떠는 신랑 됐단다.
'바보......메롱....'
어리둥절하다.
신발을 벗어서 신발락커에 넣고 열쇠를 받아 카운터에 가면 다시 수영장 락커키를 준다.
귀중품은 1,000원을 받고 보관이 되고...
지하로 내려가니 락커룸이다.
'우와~~~~~~대빵 크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 샤워하라는데 대체 샤워장은 어디야?'
휘둥그레 눈을 뜨고 샤워장 찾아서 딸아이랑 샤워하고 수영복 입구....어정쩡하게 수영장 입구를 찾아 나가니 신랑은 벌써 나와 팔짱을 끼고 떡하니 버티고 서서 구경(?)을 하고 있다.
'우와~~~~~~~~~~사람들 딥따 많군~~~~~~~~'
'음~~~~~~~~~~이제 내가 놀 곳이 여기란 말이지~~~~~~~ㅋㅋ'
워낙 물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오면서 있었던 헤프닝은 다아 잊어버렸다.
인공 파도타기는 정말 짜릿하다.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신랑은 잠깐 타보더니 얼른 구명조끼를 건넨다.
슬라이드도 한 번 타 보더니 타지 않는다.
아이 볼테니 재밌게 놀란다.
시커먼 밤하늘 쳐다보며 야외에서 수영도 하고 그러다가 피곤하다 싶으면 스파풀에서 몸을 녹인다. 온천물이라 더 없이 따스하고 부드럽다.
배가 고프면 핫바랑 코코아랑 사먹구.....밥도 사먹구....
'참, 편리한 세상이네. 문제는 돈이야...'
그렇게 한 참을 놀고나니 벌써 퇴장시간(밤11:00)이다.
기념촬영을 하고 차에 오르니 아이는 졸기 시작한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달려 숙소에 도착해서 자려고 하니 정말 찜찜하기 그지없다.
침대의 그 기분나쁜 소리.
깔끔하지 않은 이불....
까는 홑이불까지 챙겨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바닥에 이불을 펴고 어찌 어찌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채비를 해서 카운터로 갔다.
이러저러해서 나가려고 한다. 어제 안내로 문의전화도 끝냈다.
그런데 되돌아온 말이 가관이다.
죄송하지만 어제 전화를 받은 아가씨는 아르바이트생이고 지금 퇴근을 해서 없구 환불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상에나 이렇게 열받는 일이 있을 수 가 있나?
죄송하다면 다란 말인가?
예약한 곳에 전화하고 카운터 아저씨 둘과 설전을 벌이고 결국엔 50%의 환불을 받고 물러설 수 밖에~~~~~~~~~~!!!!!!!!!!!!!!
원래 인터넷 예약은 당일 취소하면 한 푼도 주지 않는다나?
이를 바득바득 갈며 콘도를 나서는데...빠글빠글한 차량들과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님 저들의 방은 우리와 다르단 말인가?
아님 저들은 우리랑 다른 요금을 낸다는 말인가?
그렇게 숙소를 나와 경포대주위를 한 바퀴 돈다.
어제부터 꽃마차를 타자고 조르던 아이를 위해 거금 15,000원을 들여 마차를 탔다.
"달그닥...달그닥....달그닥............"
아슬아슬하게 자가용을 비켜가며 해변을 달리는 꽃마차~~!!!
꽃마차가 조금이나마 우리의 기분을 전환시켜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첫댓글 멀리가지 않고도 이렇게 재미난 수필을 여름에 읽게 될 줄이야...제비꽃 님 우리가 다 들어주테니 콸콸 쏟아부우세요..그리고 짜증나고 즐거웠던 모든 추억들 가슴에 행복하게 꼭 간직하세요...
제비야~ 오랜만이네.. 오랜만에 보는 글도 잼있구.. 2편 기대할께... 나두 신랑하구 휴가 다녀왔는데.. 해남 땅끝마을 → 보성 녹차밭 → 부여 → 용인 친정까지... 3박 4일 나두 잼있었다우~~~ 참 우리 친정 용인으로 이사갔다.. 코앞에 살다가 먼곳으로 이사를 가서 나.. 외롭다~~~
제비꽃님 오랫만오. 글 재미있게 읽었다오. 2편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