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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기계가 쓴 글을 읽는다는 것
출처 국민일보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73730434&code=11171426&cp=nv
김현호
사진비평가
보스토크 프레스 대표
공허한 AI 글이 난무하지만
언젠가 AI와 함께 글을 쓰는
새로운 시대가 펼쳐질 수도
요즘은 읽는 일이 괴롭다. 눈이 가는 곳 어디에나 AI가 생성한 문장들이 보인다. 나이든 학자의 SNS에도, 신문 기사나 정부의 보도자료에도, 신간을 알리는 출판사의 소개글에도 AI의 ‘문체’가 역력하다.
얼마 전에는 어느 책의 소개글에서 ‘이 책의 문장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붙잡아 두기보다, 오히려 세계 속으로 흩어지며 독자를 그 장면 안으로 끌어들입니다’라는 구절을 보았다. 어지러움에 잠시 눈을 감았다 열어본 어느 뮤지션의 인터뷰에는 ‘이는 기술로 증명되는 천재성이 아니라, 감각과 통찰로 축적된 천재성에 가깝다’는 문장이 있었다. 도망갈 곳은 정말로 없는 걸까, 나는 중얼거리며 그 미끌미끌한 글자들을 읽었다.
지금까지 글을 읽고 쓰고 다듬는 일로 밥벌이를 해 왔는데도 나는 이 문장들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문장으로 세계를 붙잡는 일과 세계 속으로 흩어지는 일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음악에서 기술과 감각, 통찰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가? 글을 쓰는 이라면 이런 질문을 회피하기 어렵다. 어떻게든 대답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찜찜하다. 어쩌면 그런 질문들에 맞서는 일이야말로 글쓰기의 골격에 해당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AI가 생성해 주었을 이 단어들은 짐짓 서로 대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거대한 언어 말뭉치의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므로 글에 담긴 사유는 파열음을 내며 전진한다기보다 그저 옆으로 반 발짝씩 이동하며 서로 엉겨붙어 흐물거린다. 그런데도 그 외피는 지나치게 매끄럽고 문장은 술술 이어진다. 그러므로 공허하다.
딱히 슬퍼할 생각은 없다. 폐허에 앉아 기왓장으로 몸을 긁으며 거짓 울음소리를 내는 노인은 되고 싶지 않다. AI가 모든 것을 다 무너뜨렸으며, 원래 순수하고 진정성 넘치던 인간의 글쓰기가 타락했다는 성급한 결론에 투항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급격한 기술적 변곡점에서는 언제나 비슷한 푸념과 슬픔이 있어 왔다는 것을 나는 사진의 역사에서 배웠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사진은 화려하고 거대한 AI 이미지에 비하면 그저 무해하고 그리운 노스탤지어의 파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사진을 처음 접한 19세기 화가들은 경악하고 불안해했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손으로 그린 그림에 익숙한 이들에게 세계를 그저 기계적으로 베어낸 사진은 한없이 공허했으며, 심지어 일종의 종말론적 두려움을 주었다. 매체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19세기 말 타이프라이터의 발명으로 인해 글쓰기의 성격이 얼마나 급격히 변화했는지에 대해 썼다. 유려한 손글씨로 상징되는 비장애인 남성의 글쓰기가 지닌 개성과 필체는 누구나 자판을 눌러 배열할 수 있는 기호의 연쇄가 되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쓰는 기계(타자기)가 인간에게서 손의 본질적 지위를 빼앗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쩌면 인쇄된 책을 처음 본 전통 서예가들은 글쓴이의 수양이나 성정, 기운을 읽을 수 없는 활자를 조금은 공허하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AI가 글쓰기에서 무너뜨린 것은 무엇일까? 언젠가부터 신체에 불편함이 있거나 지식과 시간이 부족했던 이들이 AI를 활용해 쓴 글을 SNS에 올리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AI를 사용해 글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이 자서전을 쓰는 일을 돕는 활동가들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전의 글쓰기에 있었다고 상상되는 미덕을 아쉬워하며 쉽사리 절망할 기회를 찾는 대신 글쓰기란 과연 무엇인지, 비인간 행위자인 AI와 함께 읽고 쓴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다시 AI가 생성한 문장들을 읽는다. 신체가 없는 이들, 세계가 아니라 말뭉치로부터 언어를 배운 이들은 이렇게 쓰는구나. 지금은 비릿하고 공허하게 느껴지지만 역사가 되풀이된다면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글을 AI와 함께 쓰는 이들이 언젠가 도래할 것이다.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에서 타자기를 얻어 더욱 위험한 글을 썼던 니체처럼.
김현호
사진비평가
보스토크 프레스 대표
빛명상
빛선생님의 『그림찻방』은 한국인이 쓴
탈무드와 같아
전영기
〈시사저널〉 편집인,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
정광호 빛명상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봄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대구 팔공산 빛터에서 뵈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그분을 `빛VIIT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빛VIIT선생님은 1990년대 다리가 불편한 한 정치인에게 지팡이를 짚지 않은 채 걸을 수 있도록 기적을 베풀었는데 그 정치인이 빛선생님한테 전달한 감사의 선물을 본 것이 그때였다. 나 자신이 빛선생님 앞에서 빛VIIT을 받을 때 형언키 어려운 충만함을 느낀 적이 많았고, 종종 빛VIIT이 통과한 흔적인 반짝이는 금가루를 내 얼굴과 옷 등에 발견하였다. 빛선생님은 2008년 어떤 유명 정치인의 목에다 빛VIIT을 보내 그의 쇳소리가 한때 청아하게 변한 장면을 내가 목격한 바가 있다.
기적의 행사자로서 빛VIIT선생님이 아니더라도 감사와 겸손,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 애국심 넘치는 생활 도인으로서 빛VIIT선생님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것대로 좋고 유쾌하다. 이번에 나온 『빛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은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삶의 기쁨을 노래한 책이다. 필자의 인생 멘토로서 빛VIIT선생님의 면모가 유감없이 나타나 있다. 어느 페이지를 열어봐도 따뜻한 말씀과 정겨운 수묵화가 앙상블을 이룬다. 보는 이가 저절로 미소를 띠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지금 아무렇게나 펼친 279쪽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 건」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자. "빛명상은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쉽다. 형식과 지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어떤 이론도 필요없다. 어린아이처럼 긍정적인 마음, 겸손과 감사의 마음만 함께 한다면 당신의 소원은 이미 이루어져 가고 있다." 그 옆 278쪽엔 어린아이가 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고 있는 가운데 윗목에 찻주전자가 김을 뿜으며 화로 위에서 끓는 그림이 그려졌다. 무심한 듯, 맑은 표정을 한 어린아이의 긍정적인 마음이 저절로 다가오지 않는가.
빛VIIT선생님은 소박하고 꾸밈이 없다. 나는 그분을 만나면서 한 번도 짜증나는 표정이나 언행을 본 적이 없다. 그런 그도 짜증이 날 때가 있나 보다. 빛VIIT선생님은 그럴 때 어떻게 자기를 다스릴까. 176쪽 「풀꽃차 예찬」을 보자.
"가끔 번뇌가 일어나고 짜증이 섞여 오면 고요히 눈을 감고 이 시를 더듬는다. 그러고는 뒷밭에 나가 풀꽃 한 두 송이 얻어와 보글보글 끓인 물을 약간 식혀 띄우면 절로 그 향에 취해 소박하고 그윽한 야생의 향음香音이 지나가면서 번뇌도 짜증도 삼켜버린다."
생활의 번뇌나 짜증 앞에서 빛VIIT선생님은 뒷밭과 풀꽃, 찻물과 향음, 야생을 찾아가는 것이다. 빛VIIT선생님이 더듬는다는 나옹선사의 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라하네"는 보통 사람이 흉내내기 어려운 경지이겠으나 야생 풀꽃차에 의지해 겸손과 감사를 반복하다 보면 부지불식간 큰바위 얼굴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야망이 꿈틀거린다. 빛선생님의 글이 갖는 설득력이요, 쉬움의 매력이요, 물 같은 자연스러움이 아닐 수 없다.
선생의 글이 너무 쉬워서 지나칠지 모르지만 빛선생님은 말 한 마디, 글 한 줄 언어의 귀중함을 누구보다 명징하게 인식하고 있다. 평생 나는 글쓰기로 밥을 먹고 살았지만 빛VIIT선생님처럼 언어의 위대함을 깨닫고 있는 사람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공기는 가치와 소중함을 평소 느끼기 어렵다가 결핍 상태가 되면 가장 먼저 찾는다. 이처럼 빛VIIT선생님의 말과 글도 바쁜 일상에서 가치를 잘 못 느낀다.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도 되는 것일까 하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읽게 되면 기적을 낳는 생명성이 느껴진다. 가령 빛VIIT선생님의 다음 글을 보자. "상냥한 한마디가 사랑을 주고 배려의 한마디가 향기를 남긴다. 무심한 한마디가 삶을 흔들기도 하고 용기를 주는 한마디가 전환점이 된다. 빛명상을 하며 언어를 가꾸어 간다."(268쪽 「향기로운 사람」중)
빛VIIT선생님이 책 전편을 통해 언어에 관해 얘기한 대목은 이 장이 유일할 것이다. 정광호 빛VIIT선생님은 언어를 의식하고 언어를 단련시켜 왔다. 그의 자연스러운 일상은 즉자적이라기보다 놀라울 정도로 의식을 집중하여 일구어낸다. 언어의 승리일지 모른다. 책엔 빛VIIT선생님이 명상을 하다 밤을 새우는 경우를 묘사한 부분이 여러 번 나온다. 무엇인가 보고 거기서 우주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새 끝을 찾아가는 명상 과정에서 선생은 얼마나 생각을 벼리고 언어를 조탁하겠는가.
참고 : 벼리다
1. 무디어진 연장의 날을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들다.
2. 마음이나 의지를 가다듬고 단련하여 강하게 하다.
『빛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은 개인이 쓴 탈무드와 같다. 탈무드는 유대인의 오늘을 있게 한 수천 년 유대 민족의 생활교육 지침서다. 은유와 교훈, 깨달음과 지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묻어난다.
『그림찻방』은 한번 쭉 보고 말 책이 아니다. 탈무드처럼 한 편 한 편 빼서 음미하면 좋을 것이다. 어머니가 자녀에게 잠자리에서 전해 주는 말로, 아버지가 밥상에서 가족에게 들려주는 말이 되어도 좋다. 학교의 교과서로, 도서관의 그림책으로, 친구들끼리 나눠보는 책으로도 좋다. 마음이 바쁘거나 시련에 빠지거나 허허로워진 생활인의 수양도서로도 안성맞춤이다.
이제는 선생의 말씀대로 편안한 자세로 앉아 심호흡을 서너 차례 깊게 하고 우주의 정보를 향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본다. 내가 가진 부富를 주위에 나눠주고, 나눠주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은밀하게 나눠야겠다는 다짐이 생겨난다. 내면의 에너지가 축적되고 더 큰 부가 이뤄질 것임이 예감된다. 빛VIIT선생님의 가르침이다. 이어서 책의 이런 구절도 떠오른다. 당장 내게 필요한 말이다.
"감사는 창조의 에너지이며 원망, 시기, 두려움, 원한, 불안···, 그 어떠한 상처도 소멸하고 행복에너지로 바꾸어주는 우주의 힘"이다. (193쪽 「토끼와의 대화」 중)
출처 : 甲辰年 그림찻방3
빛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3
2024년 6월 22일 초판 1쇄 P. 26-29
물음표 Epilogue
인류의 희망, ‘우주의 빛VIIT’
2005년 4월 3일, 인류와 지구 정화를 위한 백일 간의 빛VIIT명상을 마치던 날, 가톨릭 교회 최고 지도자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善終)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가톨릭교도들은 물론 전 세계의 많은 비교도인들도 또한 이 분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슬퍼하였는데 이는 분명 그 분에게 있어 종교의 틀을 넘어 무언가 우리 모두의 마음에 진솔하게 와 닿는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분이 1984년 5월 한국을 방문하였을 당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머리를 굽혀 땅에 친구(親口)하던 그 겸허한 모습을 기억한다. 또한 고정관념과 틀을 깨고 여러 새로운 시도를 통해 기존의 사고와 관념을 넘어선 무언가를 끊임없이 시도하였던 생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난 2000년 간, 특히 중세기에 들어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많은 부정과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함으로써 자신이 몸담고 있는 종교를 관조하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진리란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시던 모습에서 순수한 ‘빛VIIT’의 마음을 보았다.
빛VIIT을 통해 온 인류와 지구 전체의 정화를 위한 작은 시작을 다짐했던 그날, 지구를 거쳐 간 또 하나의 아름다운 마음을 되새기면서, 결국 종교라는 것도 참된 진리의 바다로 향하는 한 지류임을 느낀다. 즉 종교라는 것도 절대 진리라는 부모에게서 비롯된 작은 갈래이자, 다만 본래의 부모 마음이 무엇일지 추측한 것일 뿐이지 진짜 부모는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진리를 총괄하는 힘, 초월적인 에너지 이 ‘빛VIIT’은 삼라만상의 모든 에너지의 부모와 같기 때문에 마치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 듯 결국에는 순수한 빛VIIT의 마음으로 모여들게 되어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느 종교가 진짜이고 가짜임을 구분하기 전에 그 모든 구분과 분별을 초월하는 거대한 흐름에 한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사랑과 희생, 나눔과 자비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순수의 빛VIIT 그 자체이다. 우주의 ‘빛VIIT’은 모든 에너지의 차원을 뛰어넘는 무차원의 존재이다. 우주 대폭발 빅뱅 이전, 인간의 언어가 존재하기 이전에 스스로 존재하는,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본래의 순수함 그 자체이기 때문에 지구는 물론 우주 전체에 흐르고 있는 모든 에너지의 중심에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에너지로부터 부여 받아 나온 생명이다. 나는 그 빛VIIT 알갱이의 존재를 사람들의 눈에서 때로는 양 가슴 사이에서 본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기에 아직 물질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과학이 이 마음의 존재를 파악하거나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이것도 밝혀질 것이다. 마치 과거 틀림없는 ‘사실’ 이라고 믿어졌던 천동설이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결국 하나의 ‘오류’로 판명 되었듯이 언젠가는 과학을 통해서도 그 실체가 분명히 밝혀질 실재적 대상이 바로 ‘빛VIIT’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자손들이 살아가게 될 세상은 돈도 권력도 명에도 아닌, 바로 우리의 마음의 에너지, ‘빛VIIT’ 이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정화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 ‘정화’가 세상을 흔드는 싸움도, 엄청난 수의 희생이 뒤따르는 대재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류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여 한 사람 한사람의 마음이 바뀌어 지고 나아가 온 사회와 나라,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정화의 과정, 거대한 우주의 흐름을 회피하면 할수록 인류의 생존권은 더욱더 위험한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생존이 급박하게 느껴지면 질수록 우리 모두는 원래의 마음, 우주의 빛VIIT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구가 병들고 일그러지고, 화산, 지진, 폭발, 해일 원인모를 신종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들이 갑자기 당신을 찾아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으로 부터의 피난처는 다른 별나라도 수천 미터의 해저도시도 아니다. 우리 모두 본연의 순수한 마음 ‘빛VIIT’ 이라는 하나의 큰 원안에 마음을 모을 때만이 지구 또한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아 갈 것이며 더불어 우리와 우리들의 후손들 또한 정화된 지구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제 진정 내가 누구이며 인간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 그리고 삶이 주는 보람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한번쯤 깊이 생각해보자. 청명하고 맑은 하늘을 쳐다보고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다시 한 번 바라보자.
세상의 어둠이 자꾸만 커져가는 이때 이제는 사람들 속에 빛VIIT의 순수한 본성을 밝혀 다음 세상을 준비하라는 우주마음의 명이 나로 하여금 첫 빛VIIT 만남의 그 눈부신 순간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 소중한 우주의 ‘빛VIIT’을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게 된다.
이 모든 일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부족하기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더 많은 빛VIIT의 일꾼들을 키워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와 검증을 마친 ‘빛VIIT 대안(代案)강좌’가 이제 세상 가운데 환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 대안 강좌들은 단순히 배워서 얻는 지식이 아닌 순수한 마음의 감각을 습득하고 지속적인 빛VIIT 에너지의 충전을 통해 이 지구를 아름다운 빛VIIT의 세상으로 열어갈 새로운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우리주변의 각종 유해파장(수맥 및 전자파)등으로부터 사람들을 차단, 보호하여 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유해파(전자파, 수맥)차단, 보호 관리사’, 우리나라 토종의 동식물을 보호하여 후세에 전하는 ‘토종보전 관리사’ 과정을 통하여 생명의 소중함을 익힘은 물론 온 나라와 세계 전체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일꾼을 배출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들은 단순한 개인의 능력의 신장이나 발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우주의 에너지 ‘빛VIIT’을 생활에서 직접 활용함으로써 보다 쉽고 적극적으로 빛의 세상을 평쳐나가는 방법이기에 새로운 빛VIIT의 세상에서 각광받는 전문 직업으로도 손색이 없어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또한 심신의 정화를 목적으로 하는 ‘빛VIIT명상센터’는 생활 속에서 편안하게 빛VIIT명상을 행함으로써 빛VIIT을 채울 수 있는 에너지 충전소 역할을 함과 동시에 볼거리와 먹거리가 더해져 생활의 여유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장소로 개발하여 국익에도 큰 도움이 되도록 할 예정이다. 그리고 현대 의·과학의 조화로운 접목을 통해 안전하고 효과적인 대체요법을 병행하는 ‘빛VIIT치유센터’는 전 생명을 살리는 근본의 에너지 우주의 빛VIIT을 통해 피폐된 육체와 정신을 보듬어 본래의 순수하고 맑은 상태로 되돌리는 정화센터의 역할을 하게끔 만들어 가고자 한다.
이처럼 지구상 어느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이 땅에 존재하는 무한의 에너지 ‘빛VIIT’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하는 것은 물론 우리 민족과 나라의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자원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빛VIIT에서 비롯된 생명의 빛VIIT 알갱이이기에 무언가 숙명적으로 해야 할 임무를 갖고 지구에 태어났다. 우물 안에서 자신이 최고라고 우기는 개구리의 일상을 지켜보듯이 어쩌면 우주의 마음은 이 모든 당신의 삶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겸허히 관조하고 되돌아보라. 마음에서 울리는 빛VIIT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진정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왜 살고 있는지, 지금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진정 당신이 영원히 소유 할 수 있는 것들인지.
또한 우주마음의 큰 프로그램 속에 진정한 당신의 배역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배역에 지금 충실히 임하고 있는지…….
이제 새롭게 정화될 지구를 위해 우리 모두가 ‘우주의 빛VIIT’을 통해 다시 한 번 힘과 열정을 모아 마음의 풍요와 행복한 세상을 열어가게 될 그 날을 그려본다. 그리고 만상이 잠든 이 밤에 반짝이는 별빛 한 아름을 빛VIIT향기 가득 실어 온 세상에 띄워 보낸다.
출처 물음표 2005/07/10 초판 2쇄 P. 248~253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빛향기 온세상에
보내주시는 학회장님 감사합니다.
온누리 방방곡곡 빛향기가
퍼져나가 행복한 세상 행복한 빛의
세상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물음표 그림찻방 등
귀한 빛책 속의 글을 올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자신을 관조하며 감사의
마음 담아 올립니다
귀한 빛말씀
마음에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장님의 그림찻방 말씀들은 한국인이
쓴 탈무드와 같다는 전영기 편집국장님의 말씀을 감사히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삶의 지침서와 같은 귀한 빛의 책, 그림찻방을 세상에 내어주신 우주마음님과 학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지구와 인류의 희망인 빛을 알리고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에서 울리는 빛viit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우주마음의 큰 프로그램 속에 진정한 당신의 배역은 무엇인지,
깨우침의 귀한 빛글, 제 자신을 관조하며 마음에 담습니다~
인류와 지구의 정화를 염원하시는 학회장님께 무한한 공경의 마음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정말 요즘은 AI가 쓴 글임을 곧장 느끼게 하는 글들 투성이입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직접 마음을 담은 그림찻방 글이 마음에 와 닿고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글 감사합니다.
글 뒤에 담긴 인간의 스토리가 있느냐없느냐가 인간이 쓴 글과 AI가 쓴 글의 차이가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빛책속의 귀한글 감사합니다^&^
겸허히 관조하고 되돌아보라.
마음에서 울리는 빛VIIT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귀한빛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