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읍 작은 영화관으로
올겨울 들어 두 번째 한파가 정점인 십이월 셋째 월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송태인과 최진학이 인류가 인정한 철학 고수들인 여덟 분의 글들을 문답식으로 풀어 정리한 ‘고전학교’를 읽었다. 소크라테스, 공자, 장자, 아리스토텔레스, 맹자, 아우구스티누스, 석가모니, 노자를 등장시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도록 했다. 삶의 한복판에서 마주한 인생 수업이었다.
날이 밝아온 아침 문학 동인들과 함께 근교 나들이를 나섰다. 시골 소읍의 작은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아바타 2’를 관람하기로 했다. 내가 사는 동네 이웃 지기의 차에 선배를 모셔 함께 이동했다. 하루 일정에서 점심 식사 장소가 여의치 못할 듯해 아파트단지 상가에서 충무김밥을 마련했다. 시내를 벗어나기 전 팔룡동을 지나면서 동행이 한 분 늘면서 운전대는 그분이 잡았다.
서로는 문학이란 이름에서 공통분모지만 분자값은 각기 다르다고 봐야 했다. 행선지를 함안 가야읍을 정했기에 남해고속도로를 달리지 않고 운전자가 익숙한 국도를 따라 내서에서 신당고개를 넘으니 함안이었다. 고려동을 지나 좌회전 신호를 받아 군립공원 입곡저수지로 들었다. 한겨울에 접어든 입곡지 가장자리로는 살얼음이 얼고 주변 산기슭 활엽수림은 나목이 되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넷은 저수지 둘레길을 가볍게 거니는 산책을 나섰다. 내보다 열 살이나 많은 선배는 무릎 관절이 불편하지만 계단이 없는 평탄한 길이라 보행에 무리가 없어 마음이 놓였다. 얼음이 얼지 않은 수면 한복판에는 깃이 새카만 가마우지와 푸른 빛의 청둥오리들이 보였다. 여름 철새로 남녘으로 내려가지 않은 왜가리 한 쌍이 부리를 마주해 나래를 펼쳐 춤을 추었다.
출렁다리를 건너지 않고 반환점 삼아 차를 세워둔 자리로 되돌아 와 차내에서 따뜻한 약차와 함께 준비한 충무김밥을 먹었다. 이동해 갈 영화관의 상영 시작이 점심때와 걸쳐져 러닝타임이 3시간이 넘어서였다. 이른 점심을 때우고 가야읍으로 향해서 예전 경전선 가야역이 있던 자리로 갔다. 경전선이 복선화되면서 가야역은 폐역 폐선이 되고 인근에 신설된 함안역으로 옮겨 갔다.
예전 가야역 자리는 공원으로 꾸며져 문화 여가 공간인 작은 영화관이 들어서 있었다. 동행한 문우는 이전에도 그곳에서 여러 차례 영화를 관람한 적이 있어 시골 소읍 영화관 사정을 훤히 알고 있었다. 영화 관람료는 도심 개봉관에 비해 반값도 아니었다. 평소 아침나절 상영 작품의 관객은 손에 꼽을 정도라던데 아바타는 명성과 인지도였던지 우리 넷을 포함해 여남은 명이 되었다.
물의 길은 스크린을 압도하는 특수효과 영상미와 가족과 환경에 대한 메시지로 공감하게 했다. 족장의 지위를 내려놓은 주인공이 숲을 떠나 물의 부족으로 옮겨 적응하는 긴 여정과 전투, 그리고 견뎌야 할 상처의 이야기였다. 후반부 대사 자막에서 ‘아버지는 지킨다. 그것이 존재 이유다.’는 나의 폐부를 찔렀고 ‘물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구절은 노장사상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관을 나오니 빙점 아래로 쌀쌀하던 날씨가 조금 누그러진 듯했다. 비취색처럼 푸른 하늘에 바람은 불지 않아 체감으로 느끼는 추위는 덜했다. 운전대를 잡은 지기는 차를 몰아 함안박물관으로 가서 평소 안면을 트고 지내는 문화해설사와 접선했다. 월요일은 박물관은 휴무라도 문화해설사는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말이산고분군으로 올라 봉긋한 능을 따라 걷다가 내려왔다.
일행은 말이산고분군에서 문화해설사와 헤어져 날이 저물기 전 창원으로 복귀했다. 각자 집으로 흩어지기 전 반송시장 칼국수 골목을 들어섰다. 가게는 노포들인데 상호 간판도 가림막도 없이 옹기종기 모인 허름한 칼국수 식당가였다. 넷은 목로주점과 같은 간이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맛국물을 우려 얇게 쓴 감자에 칼국수와 수제비를 떼서 끓여낸 ‘칼제비’를 시켜 저녁으로 먹었다. 22.12.19
첫댓글 l see you
모든 에너지는 잠시 빌린것이니
언젠가는 돌려줘야한다
가족은 요새다 ...
기억에 남은 명대사
물속나라를 잠시 다녀온듯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