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렇게 살아가리라
노을이 내 얼굴을 만지는 걸 보며 생각한다
아름다운 것은 단명해서 헤어질 때 드릴 인사말을
나는 미처 예비하지 못했다
다만 오전이 데리고 온 하늘의 일들과
저녁이 감춰 둔 땅 위의 이름을
가슴속에 담아 두는 일은 잊지 않았다
은수저 부딪는 소리로 잘 가라 말해도
노을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멀리서 온 별이 서운할까 봐
창문을 닫는 것조차 미안해한다
아픈 사람이 조금씩 나으라고
이슬약봉지를 들고 어둠이 찾아온다
저녁이라는 말은 사람에게서 배운 말이다
나는 사람에게서 배운 말로
사람 사랑하는 시를 쓴다
-『세계일보/詩의 뜨락』2024.06.08. -
〈이기철 시인〉
△ 1943년 거창 출생.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청산행’,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유리의 나날’, ‘영원 아래서 잠시’ 등 발표. 김수영문학상, 박목월문학상, 후광문학상 등 다수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