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300조원의 가치로 추정되는 북한의 광물 채굴권을 보장받는 대신 1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는 쌍방울그룹과 북측의 경협합의서의 실체가 확인됐다.
이 문건의 맥락을 둘러싸고 검찰과 이화영 측의 치열한 해석 논쟁이 법정과 검찰 조사실에서 계속되고 있다.
10일 언론사가 입수한 경제협력 합의서는 지난 2019년 5월12일 중국 단둥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와 박명철 민경련 부회장 사이에 체결된 것이다.
이 합의의 목적은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들의 정신에 입각해 남북 상호 간 긴밀한 경제협력 사업을 통해 민족 경제의 균등하고 획기적인 발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해외 도피생활 중 태국에서 체포된 쌍방울 그룹의 실소유주 김성태 전 회장이 지난 1월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압송되고 있다.
합의서에는 쌍방울그룹은 ▶지하자원 개발 협력사업 ▶관광지 및 도시개발사업 ▶물류유통사업 ▶자연에네르기 조성사업 ▶철도건설관련사업 ▶농축수산 협력사업 등 6개 사업권을 민경련으로부터 부여받는다고 명시했다. 해당 사업권의 효력은 50년으로 정했다.
이 자리에선 쌍방울그룹 계열사 3곳과 민경련 산하의 기업 4곳이 각각 1 대 1로 6개 사업을 위임 받아 진행한다는 개별 합의서에 대한 서명도 이뤄졌다.
가장 덩어리가 큰 지하자원은 나노스와 명지총회사가 위임 받았는데, 여기에는 북한 지역의 희토류 등 지하자원 광물 채굴 가치가 2300억달러(304조1750억원) 이상이고, 이중 희토류가 1000억달러, 2차 전지성분(니켈, 코발트, 망간, 텅스텐, 리튬)이 300억달러, 금·은 200억달러, 흑연 300억달러, 몰리브덴 200억달러, 무연탄 300억달러 등이라고 표시돼 있다.
관광지 및 도시 개발과 물류, 농축수산 협력사업은 쌍방울이 각각 개선총회사, 해운총회사, 광명총회사와 합의서를 작성했다. 신의주 특별개발구(국제경제지대)에 990만㎡ 이상 등 5곳을 개발대상지로 특정했다. 물류유통 사업엔 육상·항공·해상·화물보관장(터미널) 등 국제무역을 위한 각종 운송사업이 포함됐고, 농축수산 협력사업은 자금 융·투자 사업과 북측 농축수산물의 반출사업으로 정의했다.
광림의 자연에네르기 조성사업과 철도건설 관련 사업의 파트너는 각각 삼천리총회사, 명지총회사였다. 이중 철도건설 관련 사업은 남북 당국 사이의 협력 결과에 따라 진행하자는 약정을 맺었다.
“쌍방울 독자 관심사”vs“이화영 믿었다”
이 합의서의 성격에 대해 검찰과 이화영 측은 정반대로 해석중이다. 검찰은 이 합의가 유력 대선주자였던 이재명의 후광 때문에 가능했고 ‘800만달러 α’는 그 대가로 쌍방울그룹이 경기도 차원의 스마트팜 사업비와 이재명의 방북 비용을 대납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이화영 측은 “이 계약이 쌍방울그룹이 독자적으로 대북사업을 전개해왔다는 증거이고 ‘800만달러 α’는 사업권 획득을 위한 계약금”이라고 주장한다. 이재명이 이 사건과 관련해 기소되면 필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는 쟁점이다.
이화영 측은 “경기도가 주기로 했던 돈을 쌍방울이 대신 줘야 대납인데, 경기도는 북한과 달러를 주기로 약정한 사실이 없다”며 “희토류 등 광물 채굴권 사업의 이행보증금 명목으로 500만달러를 책정한 나노스 투자유치(IR) 자료 등도 쌍방울이 자체적인 필요에 따라 대북 송금을 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수원지검 형사6부)은 이화영이 직접 김성태에게 경기도 대신 북측에 거액의 달러 제공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복수의 진술을 확보해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김성태의 측근인 A씨는 이날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이화영이 스마트팜 비용 대납이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지만 ‘쌍방울 중국 지린성 훈춘공장에 남는 재고를 팔아 달러를 북측에 주면 안 되겠느냐’고 김성태에게 제안했다”며 “북한 김성혜 조선 아태위 실장이 경기도가 스마트팜 지원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이 송금의 직접 계기인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A씨는 김성혜가 김성태와 이화영을 만난 자리(2018년 11월28일 중국 선양 능라도식당)에서 “이화영은 거짓말쟁이다. 공화국에 큰 실수를 했다”고 말한 것을 되짚은 것이다.
이에 “우리 형을 함부로 말 하지 말라”며 흥분했던 김성태가 분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500만달러 제공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실제 송금 직전에 이뤄진 김성혜와의 두 번째 만남(2018년 12월29일 중국 단둥 고려식당)에서 김성태가 “내가 주는 돈이 경기도가 주는 돈”이라고 말했다는 진술도 확보한 상태다.
스마트팜 대납 비용 500만달러가 2018년 12월 쌍방울이 북측에 건넨 ‘북남협력사업제안서’에는 협동농장 지원(300만~500만달러) 명목으로 담겼다는 게 검찰의 추론이다.
“1억달러는 대북제재 해제 후 사업 개시 대가”
광물채굴 상세 합의서 9조에 등장하는 “민경련은 6개 사업권에 대해 쌍방울그룹에 최우선 특혜를 보장한다는 의무를 가지고, 쌍방울그룹은 모든 사업권의 대가로 미화 1억달러(현재 환율 1323억5000만원)를 지급한다”는 대목도 검찰과 이화영 측의 해석 싸움이 치열한 전선이다.
이화영 측은 “‘1억달러 지급 약정’은 경기도와 별개로 쌍방울그룹이 기업 차원에서 북측과 접촉해 경제협력을 도모한 중요한 증거”라며 “800만 달러는 그 중 일부인 계약금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쌍방울 임직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이 조항을 유엔 대북제재가 해제되면 사업을 개시할 때 전달하기로 한 조건부 금액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스마트팜 대납이나 방북비용과는 성격이 다른 약정”(검찰 관계자)이라는 것이다.
쌍방울 대북송금 과정에 관여했던 한 대북사업자는 “달러 없이는 북측 인사들과의 접촉 자체가 쉽지 않은 게 대북사업의 현실”이라며 “쌍방울그룹은 경기도를 배경 삼아 숙원이던 대북사업권을 선점하려던 것이고, 대북 사업에 예산이나 기금 동원이 원활치 않았던 경기도 역시 민간의 달러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