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인 힐만의 집으로 갔다. 우편함을 지나자 사도에서 내려오는 스포츠 카의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차를 피하게 만든 좁은 곳에 차를 세우자 딕 레안드로도 차를 세웠다.
그는 차에 앉아서 내가 자동차 경주 중간에 그의 차를 세운 것처럼 기분 나쁘게 나를 쳐다보았다. 차에서 나와 그의 차 곁으로 걸어가 차 문을 두드렸다.
"좋은 차요."
"고마워요."
"다른 차도 있어요?"
"이 차 한 대 뿐이요. 그런데 톰을 찾았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에요?"
"아직 찾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톰은 현재 자유로와요."
"좋은 소리군요." 그이 표정에서는 별로 좋아하는 기색이 없었다. "잘 들어요. 스키퍼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힐만부인은 그가 어제 밤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그랬어요. 그는 내 얼굴에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라도 있는 듯 쳐다보았다.
"난 그 사람을 걱정하지 않아요. 자기 혼자서도 잘 돌아다닐 테니까."
"그렇겠죠. 그래도 당신이 알 수도 있으니까. 할 말이 있어서요."
"무슨 말인데요?"
"그와 나 사이의 개인적인 일이에요."
나도 좋지 않게 말했다. "당신과 힐만씨는 둘 만 아는 비밀을 많이 가지고 있죠?"
"그럴 수도 있지요. 힐만씨가 나에게 조언을 해 주는 편이죠. 좋은 충고를 많이 들었어요."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젊은이는 공포와 적대감을 마구 쏟아내었다. 그는 갔고 나는 집으로 차를 몰았다. 엘레인은 만나보고 싶었고 엘레인은 집으로 들어오게 했다.
엘레인은 전에 보았을 때보다는 나아 보였다. 그녀는 정장으로 빼 입고 있었다. 상어가죽으로 맞춤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에는 풀죽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나에게 미소조차 지었다.
"아처씨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래요."
"좋은 소식이라고요?" 좋은 소식이라고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톰이 살아있지요. 바스티안 경위가 말해 주었어요. 자세히 말해 주실 수 있지요."
손님 접대용 방을 샹들리에 밑을 지나가지 않도록 빙 돌아서 지나가서는 거실로 갔다. 그녀는 밝아지게 보이도록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보통 이 방을 대기실이라고 불러요. 치과의사의 대기실 같은 느낌이 들지만 기다릴 필요는 없지요? 안 그래요." 그녀의 목소리는 긴장을 감추기 위해서 끝이 조금 꼬여들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좋아요. 당신 말을 더 기다리기가 힘들군요. 당신도 그렇겠죠. 며칠도안 너무 힘들어서."
"그랬겠지요. 안됐어요."
"괜찮아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셨을 테니까. 장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여기 앉으셔서 나머지 말들을 해주세요."
그녀 옆에 앉았다. "해야 할 말이 별로 많지도 않고 또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우선 톰은 살아있고, 자유롭다는 말부터 해야겠지요. 아마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것 같은데요. 바르셀로나 호텔에서부터 추적했어요. 그 호텔은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있고 톰은 그 곳에 숨어 있었어요. 어제 밤 10시 경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것은 확실해요. 오늘 오후에 그 곳에 가 보았지만 찾지는 못했어요."
"남편이 같이 이 소식을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남편도 조금 걱정돼요. 어제 저녁 때 여기를 나갔는데 밤새 돌아오지 않았어요." 남편이 없는 것이 이상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편도 톰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거예요."
"누구에게 들었을까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나갈 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럴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죠."
"나를 어둠에서 구해주는 말을 하지 않았을 이유가 뭘까요?"
"저가 어찌 알겠습니까?"
"말하는 것을 잊어버렸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요. 남편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밤새도록 톰을 찾아다녔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수잔나 드루와 아침을 먹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나는 수잔나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흘렸다. 그 이름에 대한 준비 없이 그녀의 반응을 보고싶었기 때문이었다. 엘레인의 약간 붉은 얼굴은 창백해졌다. "오 하느님, 아직도 만나고 있는 모양이죠. 아들이 없어진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직도 만나고 있다니?"
"그들은 지난 20년간 연인관계였어요." 그녀는 내뱉듯이 말했다. "그는 나에게 지난 일이 였다고 맹세했는데. 그리고는 자기 곁에 있어달라고 빌었고, 다시는 그녀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자기의 명예를 걸고 맹세했는데. 명예가 없는 사람이라니까." 나에게 눈을 치켜 떴다. "내 남편은 명예가 없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보이지 않던데요."
"남자에게는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여자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저도 그런 일에 대해서는 좀 알죠. 결혼해서 25년간을 같이 살았으니까. 저에게 믿을 수 있도록 행동하지 않았어요. 사실 그가 사업을 시작하는데 쓴 돈은 저의 돈이었어요. 더구나 취미나 심지어는" 그녀의 목소리는 급격히 싫어하는 표정이 나타났다. "여자를 사귀는데 필요한 돈도 제 돈을 썼어요."
그녀는 그 말을 감추기라도 하듯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데. 내 같지 않은 말을 하다니. 이런 말은 뉴잉글랜드의 전통을 벗어나는데. 저의 아빠도 엄마에게 비슷한 경험을 하게 했어요. 엄마는 저에게 조용히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어요. 랄프를 빼면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에요."
"충분한 이야기를 해주시지 않았어요. 이야기를 바꾸어 보기로 해요."
"당신 생각에는 이 번 사건이 이 일과 관련이 있다고 보나요?" 그녀는 손가락을 펴서 팔을 뻗었다.
"아마 그럴 거예요. 제 생각에는 그렇기 때문에 당신 남편과 드루 양이 오늘 아침에 만났다고 생각해요. 당신 남편이 화요일 오후에 드루 양에게 전화를 걸었을 거예요."
"그랬어요. 생각이 나요. 바에서 전화를 걸었고 내가 들어가자 갑자기 전화를 끊었어요. 그래도 몇 마디를 들었는데 둘이서 완전히 비밀로 하자는 말을 들었어요. 아마 그 때 드루 양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일 거예요."
말투가 너무 강경했으므로 나는 좀 움추러들였다. 고통스럽고 이상한 대화였다. 그렇지만 자세히 알아야 했다. 다른 사람의 친밀성(간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들 사이도 친밀성이 생겼다.
"그 여자가 전화를 걸게 했을지도 몰라요. 그 여자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바스티안 경위에게 말했어요. 그래서 바스티안 경위가 당신 남편에게 물어보았는지도 모르거든요."
"그랬을 지도 모르겠어요. 남편은 바스티안 경위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알고 있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밝히는 것이 제 직업이 아닙니까."
"그리고 당신의 열정도?"
"예, 제 열정과 강박관념까지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은 정말 알기가 힘들어요."
"그렇지만 전화한 것까지도 알 정도면. 당신은 여기에 있지도 않았고, 남편이 말을 해 주었을 리가 만무한데."
"전화가 왔을 때 드루 양과 같이 있었어요. 전화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전화를 받은 후 드루 양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어요."
"그랬을 테죠." 내 얼굴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은 부드러웠다. 손을 뻗쳐 내 팔을 잡았다. "그 여자 당신 친구예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래요."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어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려운 대답이네요."
"저도 어려워요. 그 여자가 당신 남편을 아직도 사랑한다면 당신에게는 큰 문제가 되겠지요.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무엇을 감추려고 할까요?"
"과거의 어떤 것을." 그게 모두 과거의 것이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수잔나, 아침에 그녀가 다른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아직도 나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오늘 아침에야 알았다. "깊이 생각해 보시면 이 모든 것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이 말은 그녀에게 한 동시에 나에게도 한 말이었다.
"다른 목적이 있다고 해도 남편이 딴 여자와 만난다는 사실이 가슴이 아프군요. 전혀 의미가 없는 고통이라도 견디기 어려워요. 톰에게도 마찬가지로 고통이 되겠지요." 그녀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은 채 말을 마쳤다. 그리고는 손으로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렀다.
"힐만 부인, 간단히 말해 당신 말은 어떤 사건이 2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마 전쟁이 끝날 때 쯤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예, 1945년 봄에 일어났어요. 저는 브렌트우드에서 혼자 살았고, 하긴 돌보는 여자는 있었지만, 그 때 그 남자를 만났어요. 듣기로는 순양함의 장교라고 했는데 나중에 선장이 되었지요." 그 말을 할 때에는 버림받은 자부심이 나타났고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의 그녀를 지탱시켜주고 있는 것처럼, 조심스럽지 않으면 깨어질 것처럼.
"1945년 1월인가 2월인가에 남편의 배는 가미가제의 습격을 받아 손상을 입었어요. 그래서 산디에고에 수리 차 들어왔어요. 남편은 몇 일간 휴가를 얻어 당연히 저를 찾아왔지요. 물론 보고싶었던 생각을 하면 오래 있지는 않았어요.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어요. 그 때 남편은 몇 일을 수잔나와 함께 있었어요."
"바르셀로나 호텔에서?"
"그녀가 말해 주었어요?"
"정확히는 아니고요." 수잔나는 해롤드 할리가 찍은 캐롤의 사진을 내게 주었다. 사진의 뒷면에는 바르셀로나 호텔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이지 당신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그녀는 착한 여자예요."
"그녀에 대한 칭찬은 듣고 싶지 않군요. 어쨌든 그녀 때문에 고통을 많이 받았는데."
"미안해요. 그렇지만 그 때 그녀는 20살이었다는 것을 생각합시다."
"지금은 40정도 되었겠군요. 그녀가 그 때 20살이라는 사실이 문제를 어렵게 만들었어요. 저도 그 때 20대였고, 남편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잇다는 사실을 아는 아내의 심정을 생각해 보셨어요? 근육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알 수 잇을 것 같아요?"
그녀는 당시의 고통을 다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뒤에 불이라도 있는 것처럼 밝고 말라있었다. 생각할 수 있는 좋은 말이라고는 다음 말 밖에 없었다.
"그래도 당신을 떠나지는 않았잖아요."
"아뇨, 되돌아왔어요. 남편이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었어요. 남편의 관심을 끈 것은 저가 가지고 있는 돈이었어요. 남편은 전쟁 후 엔지니어링 사업을 할 생각이었어요. 남편은 여자관계에 대해 솔직한 편이었고, 제 버릇 개 주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물론 그 사람은 내게 잘 대해준 것처럼 생각할거예요. 남편은 자식이 없는 부부를..." 그녀의 손은 급히 입을 막았다.
나는 급히 말을 잇게 했다. "그렇지만 당신들에게는 톰이 있잖아요."
"톰은 나중에 왔어요. 우리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게."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남편을 고치기에는 너무 늦게. 그는 비극적이고,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불쌍해 보이지는 않아요." 그녀의 손은 야윈 가슴 근처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남편과 톰 사이의 문제는 뭐예요?"
"거짓말." 그녀의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거짓말?"
"이왕 나온 김에 말씀드릴게요. 언젠가는 알게 되실 것이니. 그리고 이 것은 중요해요. 심리적으로 매우 중요해요."
"톰을 입양하셨어요?"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이제 공개가 되겠죠. 할 수 없죠. 지금까지라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하겠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물론 톰도 모르고요. 로스앤젤레스에서 남편이 제대하자마자 입양했고 곧 바로 우리는 여기로 이사했어요."
"그렇지만 톰은 남편을 닮았잖아요?"
"그래서 남편이 그 아이를 입양한 거예요. 그는 자만심이 강한 남자예요. 그는 우리 사이에 아기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해요. 사실 불임의 원인은 남편에게 있어요.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남편이 처음부터 자기를 닮은 아이를 고집했는가에 대한 설명이 될 거예요. 더구나 남편은 아들 욕심이 매우 강했어요. 제 생각에는 지금 남편은 톰을 자기의 분신으로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톰에게 자기가 낳지 않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죠?"
"당연하죠. 저도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어요. 남편이 그렇게 하게 놓아둘 것 같아요?"
"입양한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방법일까요?"
"저는 남편에게 처음부터 말을 하자고 했어요. 남편이 아들에게 정직하지 않았거나 아들이 남편에게 정직하지 않게 될 수밖에 없죠. 그러니 가정 한 가운데 거짓말이 들어 있을 수 밖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고, 카페트를 바라보고 있는 눈은 끝없는 심연을 보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니 보세요. 결과가 이 꼴이지 뭡니까. 톰은 못된 아이가 되어버렸고, 가정은 파탄이 났어요. 이 모든 비극이 다 그기서 일어난 일이에요."
"비극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요. 톰은 살아있고 곧 집으로 올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옛날의 화목한 가정으로는 갈 수 없을 거예요."
"세 분이서 하기에 달렸죠. 이 보다 더 나쁜 상황에서도 좋아지는 것을 보았는 걸요. 그렇지만 가족 모두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죠. 라구나 페르디다 같은 곳은 전혀 도움이 안돼요. 단순히 톰에게만 아니라."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아들을 그 곳에 보내고는 매우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남편이 지난 몇 년간 왜 그런 불합리한 행동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제 생각으로는 미드웨이 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편의 군대는 그 전쟁에서 대량학살을 당했어요. 당연히 지휘관인 남편은 자신을 모질게 질책했고, 그 때의 느낌은 자식 열 명을 잃은 것 같았을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 시절 이후 계속해서 저에게 편지를 보내요. 자유롭고, 솔직하게, 인간대 인간으로서. 남편은 몇 번이나 우리들이 자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신랄하게 써 보냈어요. 한번도 말을 한 적은 없지만 그 때 죽은 병사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가 자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자마자 톰을 입양하기로 했어요." 그녀의 손은 무릎 위에 있었는데 도무지 뜨개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떨고 있었다.
"힐만 부인,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저도 모르겠어요. 심리학자도 아니고요. 철학을 공부하기는 했지만. 남편은 아마 톰과 환상적 관계를 가진 것으로 생각하였는지 모르죠. 하느님이 자기가 잃은 부하 대신에 톰을 주신 것으로. 그렇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가 환상적으로만 유지될 수는 없을 것 아니에요. 톰과 남편 사이에 모든 환상적 관계는 종말을 고했어요."
"그리고 톰도 남편이 자기를 낳아 준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신경질적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톰이 알았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맞을 거예요." 프레드 틴달이 한 말을 생각하고는 말을 이었다. "부인, 톰을 라구나 페르디다에 보낸 일요일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그녀는 재빨리 말했다. "남편이 한 일이에요. 전 잘 몰라요."
"두 사람이 싸웠어요?"
"예, 남편이 매우 화를 내었어요."
"무엇에 대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남편은 절대로 그기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해요."
"톰이 매우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하였을까요?"
그녀는 고개만 저을 뿐 말을 하지 않았다.
"저는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이 어려움을 벗어나려고요. 이제 당신이 말 좀 해주세요. 바르셀로나 호텔에 톰이 숨어 있었다고요? 당신은 '숨었다'라고 했지요?
"예,"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니고?"
"잘 모르겠어요. 감금되었다고 생각할 만한 게 없는 것도 아니지만, 심리적 구속이지 육체적 구속은 아닌 것 같아요. 제 정신인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녀는 경멸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가르쳐 준 것은 모두 힘든 것이긴 하지만 이 것이 가장 힘들었는 모양이었다. "당신은 처음부터 톰이 인질범에게 자의로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지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 질문을 회피하지 말아요. 똑바른 대답을 듣고 싶어요." 입 주위에 웃음기가 배여 나왔다. "이 점은 양보할 수 없어요."
"좋아요. 제 생각에는 톰이 할리에게 스스로 갔다고 생각해요. 자동차 트렁크에 숨어서 바르셀로나 호텔로 들어갔어요. 아무도 총을 머리에 대고 그렇게 시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톰이 말해 줄 때까지는 알 수 없겠지요. 그렇지만 톰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고 있을 거예요. 톰이 돈을 받지 않은 것은 틀림없어요. 그는 지금 돈이 없어 쩔쩔매고 있어요."
"돈이 없는 줄 어떻게 알아요? 만나 보셨어요?"
"톰과 말을 한 사람에게 전해 들었어요. 톰이 돈이 필요하다고 했대요."
"어떤 면에서는 좋은 소식이네요."
"그렇게 생각해요."
가려고 하자 그녀가 말렸다. 그녀는 할 말이 더 있는 모양이었다.
"바르셀로나 호텔이라는 것이 해안가 고속도로 옆에 있는 낡고 큰 건물을 말하는 것이지요?"
"예, 얼마 전에 문을 닫았어요."
"그리고 톰이 그 곳에 있었다는 거죠?"
"그 호텔의 경비원이 사이퍼라는 사람인데 이 갈취사건에 연루되어 있어요. 아마 그 사람이 이 사건을 계획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최소한 계획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 것이 틀림없어요. 오늘 아침에 총에 맞아 죽었어요. 다른 범죄자인 할리는 어제 저녁 때 칼에 찔려서 죽었고요."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이해가 안되는 듯, 아니면 이런 끔찍한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도 같았다.
"참 이상하네요." 한숨과 같이 말이 나왔다.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중죄(重罪)를 저질렀고 그래서 중한 대가를 받았어요."
"비참한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당신도 그렇지만,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으로 나누어졌다는 것이 이상해서요."
"무슨 말씀이신지?"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뭔가 지저분한 것, 말하지는 않겠어요. 바르셀로나 호텔에서 내 아들이, 입양한 아들이지만, 범죄자들과 함께 있었지요." 어깨로 숨을 쉬면서 말을 계속했다. "바로 그 장소에서 남편이 수잔나와 바람을 피웠어요. 경비원, 총에 맞아 죽은 경비원 이름이 사이퍼라고 했나요?"
"예, 오토 사이퍼 였어요."
"그 사람이 한 때는 호텔의 탐정으로 일을 했다고 했지요?"
"예, 탐정의 명예를 더럽히는 그런 탐정이었어요."
"사이퍼라는 사람 알아요. 한번 말한 적이 있는데 도저히 기억에서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어요. 그 사람은 속까지 부패한 사람이었어요. 1945년 봄에 부렌트우드에 있는 우리 집을 찾아온 적이 있어요. 그 사람이 남편과 수잔나의 일을 말해 주었어요."
"당연히 돈을 요구했겠지요?"
"그럼요. 돈을 주었어요. 200달라를 요구했지요. 그 때 나는 500달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500달러를 달라고 했더라도 주었을 거예요. 어쨌든 돈은 중요하지 않아요. 항상 그렇지만." 그녀가 돈이 많다는 것이 다시 생각났다.
"사이퍼가 한 말이 뭐예요?"
"내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그의 의무는 남편을 체포하는 것이라고. 지금은 그 것이 죄가 되는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범죄였어요. 지금도 그 법이 유지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감옥으로 가겠지요."
"그 사람은 감옥이라고 했어요. 남편이 감옥에 간다면 얼굴이 뭐가 되겠어요. 그 때 남편은 함장으로 승진하려고 할 때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별 것이 아닌데 당시에는 내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남편의 집안은 별 볼일이 없었어요. 시아버지는 조그만 가게를 가지고 있었어요. 남편은 친정 아버지의 눈에 들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요." 슬픈 지적인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아버지의 눈에 들 정도로 뭔가를 원했지요. 그런데 잘 되려는 판인데 재를 뿌릴 수는 없었어요."
"사이퍼와 만났을 때 했던 이야기예요?"
"그래요. 그 때의 심정을 말하는 것이에요. 사이퍼의 말을 듣고 고통과 충격을 받았지만 -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어요. - 남편이 좌절하는 것을 보고싶지는 않았어요. 지저분한 사람에게 더러운 돈을 주니 그 사람은 간통의 증거인 사진을 주었어요."
"다시 만난 적은 없었어요?"
"예."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군요."
"그 사람이 그러려고 해도 남편이 막았을 거예요. 그 때 남편에게 그 사람이 왔었다는 말을 했어요. 사진은 찟어버려서 보여줄 수 없었지만."
"남편이 어떻게 막았을까요?"
"두 번 다시 그러지 못하도록 두들겨 패서 겁을 주었을 거예요. 자세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요. 당시만 해도 전화가 잘 되지 않았잖아요. 나는 보스톤에 있는 친정으로 가 있어서 그 해 말까지 남편을 보지 못했어요. 남편의 군함이 보스톤에 입항하였을 때 우리는 다시 만났어요. 그 때 우리는 아이를 입양하기로 했어요."
자세히 듣고 있지 않았다. 사건이 너무 복잡하게 꼬여있었다. 랄프 힐만은 그 때부터 두 명의 갈취자를 모두 알고 있었다. 그는 마이크 할리의 상관이었고, 할리를 해군에서 내 쫓았다. 또 오토 사이퍼를 두들겨 팼다. 범죄자들은 계급과 폭력으로 한 번씩은 당했다.
엘레인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의기소침했다.
"사이퍼는 두 번 다시 우리의 생활에 끼여들지 않았고, 남편도 지저분한 일로 지저분한 호텔을 들락거리지 않았어요."
"남편에게 너무 화를 내지 마세요. 물론 남편이 잘못한 것은 틀림없어요. 그렇지만 우리 모두 잘못을 저지르지 않나요. 19년이나 20년 전에 남편이 한 짓이 이번 인질 사건의 핵심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 사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물론 남편에게 모든 잘못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이퍼를 예로 들어보면 사건과 관계된 것은 틀림없어요. 동업자인 마이크 할리는 남편을 알고 있고, 이를 갈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톰이, 에구 불쌍한 톰, 그 호텔에 있었지요? 운명의 장난인가요?"
"그럴 수도 있지만. 사이퍼나 할리에게는 그 호텔이 톰을 숨기기에 편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왜 톰이 그 놈들과 같이 있었어요? 그 놈들은 나쁜 놈들인데."
"젊은애들은 범죄자를 멋있게 보기도 하지 않아요?"
"톰은 그럴 애가 아니에요. 톰이 한 일에 대해 톰을 벌할 수는 없어요. 남편과 나는 어느 정도 사실을 말했어야 했어요. 톰은 감정적이고, 예술적이며, 내향적인 아이 에요. 남편은 톰이 자기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없었던 거예요. 그런 생각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톰의 성질을 바꾸려고 했어요. 그런데 톰의 성질이 바뀌지 않자 포기했을 거예요. 그래도 지금도 톰을 가슴깊이 사랑하고 있음은 틀림없어요."
"그렇지만 남편은 딕 레안드로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은 것 같은데요?"
그녀의 입 한쪽이 기우려졌다. 턱과 눈도 기우려졌다. 갑자기 나이가 들은 것 같았다. "관찰력이 대단하시네요."
"직업이 그렇잖아요. 더구나 레안드로는 그런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고 있어요. 조금 전에도 여기서 나오는 그 사람과 만났어요."
"그래요. 랄프가 좋아하죠. 딕도 랄프를 따르고요."
"무슨 관계죠. 아들 대신이에요?"
"그럴 수도 있죠. 딕의 부모는 몇 년 전에 파산했어요. 그 애 아버지는 도시로 돈을 벌려 나갔고, 그러니 그 애 엄마 혼자서 그 애를 보았죠. 그러다 보니 그 애는 아버지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고, 남편도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보니. 남편은 자기 일을 도와주고 후계자가 될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아들이 그 일을 해 주면 제일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남편이 다 할 수 없어요?"
"대부분은 남편이 다 하죠. 그런데 갑자기 손이 모자랄 때는 누군가가 사장 비슷한 일을 해야하지 않겠어요. 그런 일을 딕이 하죠."
"그럴 때도 있지요. 그런데 딕을 남편이 대학까지 공부시켰다고 하던데."
"그랬어요. 그렇지만 딕의 아버지가 랄프의 회사에서 근무하였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랄프는 한 번 맺은 사람은 끝까지 돌보아 주어요."
"딕도 그래요?"
"딕의 랄프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해요."
"가정해서 질문을 하나 할게요. 법원에서 말하듯이 선입관 없이 듣고 대답해주세요. 남편이 톰을 미더워하지 않으면 딕이 상속자가 될 수도 있나요?"
"정말 비현실적이네요."
"그래도 대답을 해 보세요."
"딕도 뭔가는 유산을 받게 될 거예요. 남편은 어쨌든 뭔가를 줄 거예요. 그렇지만 불쌍한 딕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마세요. 곱슬머리에 근육질이지만 이런 범죄를 저지를 만한 위인이 못돼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딕을 끼워 넣지 마세요. 딕은 우리가 이 사건을 당해서 불렀고, 지금도 딕에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딕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어요." 가려고 일어났다. "솔직히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은 머리가 명쾌하지 않아서, 혹시라도 알고 싶은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세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혹시 톰을 입양한 기관을 아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기관을 통해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했어요."
"변호사를 통해서 입니까? 아니면 의사를 통해서?"
"의사를 통해서요.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레바논에 있는 세다르 병원입니다. 우리가 병원비를 지불했고, 애 엄마에게도 약간 주었습니다.
"아기 엄마는 아세요?"
"가난한 여자였는데 문제에 휘말리기 싫어해서요. 사실 전 그 아이 엄마를 만난 적도 없어요.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항상 톰을 내가 낳은 아들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겠지요."
"그 애 부모가 누군지 꼭 알아야만 해요? 이 사건과 관련해서요."
"로스앤젤레스에 있다면 만나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톰이 그 곳에서 배회하는 것이 낳아준 엄마를 만나려고 그러는 것 같아서요. 의사 이름 혹시 적어놓지 않았어요?"
"남편이 가르쳐 줄 거예요."
"지금 만나기가 힘들어서."
"서재 책상에 혹시 있는지 보고 올게요."
서재로 같이 올라갔다. 그녀가 서랍을 뒤지고 있는 동안 벽에 걸린 사진을 또 보았다. 여러 명이 동시에 찍은 많은 사진은 힐만의 부하들이었을 것이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죽은 사람이 누구일까? 하고 생각하며 얼굴들을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요트 옆에서 있는 딕 레안드로를 찍은 사진을 보았다. 잘 생긴 건강한 얼굴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 지 모르지만. 슬쩍 그 사진을 떼어내어 주머니에 넣었다.
엘레인은 내가 사진 가진 것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마침내 이름을 찾았다.
"여기 있네요. 엘리자 와인트라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