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용 의원님께.
의원님의 허락없이 글을 올립니다. 안성에 대한 좋은 자료라서 올립니다.
안성 사람이라면 알아두면 좋을 거라 생각하여 올립니다.
행여 의원님에게 누가 되었다면 삭제하겠습니다. 쪽지든 메일이든 연락주십시오.
기회는 준비된 사람이 잡는다
칠장사 어사 박문수 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
국회의원 김학용
조선 후기 암행어사는 왕의 특명을 받아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탐관오리를 처벌하던 관리인데,
암행어사 하면 떠오르는 이가 바로 박문수(朴文秀)다. 1691년 충청도 천안에서 태어난 박문수는 어릴 적부터 총명했다.
그러나 ‘글이 뛰어나다’라는 이름과 달리, 그의 출사는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25세에 응시한 첫 과거에 이어,
28세에 응시한 두 번째 과거에도 연달아 고배를 마셨던 것이다.
1723년 봄 32세가 된 박문수는 세 번째 과거길을 나선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신신당부하길 “한양 가는 길에 안성에 있는 칠장사 나한전 부처님이 영험하다 하니,
꼭 들러서 급제를 빌어라.” 라며, 공양할 유과까지 정성스레 챙겨주었다.
박문수는 한양길에 어머니 말씀대로 칠장사를 찾았다. 나한전에 유과를 공양하고
이번에는 꼭 급제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날 칠장사에서 늦은 밤까지 글을 읽다 잠이 든 박문수는 신기한 꿈을 꾸게 된다.
꿈에 나한전 부처가 홀연히 나타나 이르기를 “너의 정성이 참으로 갸륵하구나.
내가 이번 과거 시험에 나올 일곱 행을 불러 줄 터이니 잘 기억하여라.” 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곱 행을 연달아 불러준 나한부처는 “마지막 행은 네가 스스로 생각하여 써야 한다.”라고 말하며,
문수가 인사할 겨를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며칠 후 박문수는 한양에 도착했다.
드디어 과거 날, 시험이 치러지는 과장(科場)에서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시제가 내걸렸고,
내용을 확인한 박문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한부처가 꿈에서 가르쳐준 내용이 고스란히 나온 것이 아닌가?
나한부처가 일러준 대로 일곱 문장을 적어 내려갔으나, 나머지 한 문장이 남았다.
고심 끝에 마지막 문장을 지어 제출한 박문수는, 결국 병과 진사과에서 영예의 장원 급제를 차지하게 된다.
이 이야기가 바로 칠장사에서 보낸 하룻밤 꿈에서 얻은 시험 문제로 급제했다는
그 유명한 칠장사 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다.
이후 박문수는 영조 시절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경상도 등에서 어사로 맹활약했다.
홍수와 흉년으로 고통 받던 백성들을 보살폈으며, 군역의 폐단을 해결하기 위한 균역법을 제정하는 등 큰 업적을 남겼다.
물론, 몽중등과시는 사실(史實)이라기보다 민간전설에 가깝다.
극심한 기근과 탐관오리의 횡포로부터 자신들을 구제해 줄 목민관을 찾던 민초들의 열망이,
암행어사 박문수에 관한 숱한 전설들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혹자는 당당히 장원급제한 박문수가, 이 전설 때문에 행여 요행수의 덕을 본 것으로 오해받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과연 실제는 어땠을까?
누구나 학창 시절에 시험 보는 꿈을 꾼 적이 있을 것이다.
박문수도 세 번째 도전에서는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터이고.
급제를 향한 바람이 간절한 나머지 시험 문제가 꿈에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즉 꿈속에서 시험 문제를 봤을 만큼 박문수는 간절히 학업에 매진했다고 생각해봄 직하다.
설령 꿈에서 시험 문제를 미리 보았다 할지라도, 박문수는 급제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나한부처가 일곱 행을 알려주었다고는 하나, 박문수가 장원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적어낸 마지막 행 때문이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박문수는 해 저무는 들녘 풍경을 묘사한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나무 하는 떠꺼머리 총각이 풀피리를 불며 돌아간다’며 시구를 매듭짓는다.
이때 박문수는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피리’ 적(笛)이 아닌 ‘풀(풀피리)’ 적(苖)을 씀으로써,
시골의 운치를 살리는 동시에 품격을 높여 묘사했다. ‘풀’ 적을 적었기에 장원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마지막 문장은 화룡점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소 박문수가 시문을 익히는 데 소홀했다면,
이렇게 절묘한 명문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을까?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오직 준비된 사람만이 그 기회를 성공의 발판으로 만들 수 있다.
또한 열심히 준비했어도 원치 않게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를 애석해하고 비관하는 사이에, 다음의 기회가 저만치 지나가버릴지 모른다.
몽중등과시의 주인공 박문수는 두 차례 낙방을 딛고 절치부심하며 시문을 갈고닦았기에
자신의 명문장으로 당당히 장원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288년이 지난 지금도 안성의 칠장사 나한전은 입시를 앞둔 수험생 부모들로 북적인다.
또한 매년 가을 칠장사 앞마당에는 전국의 청소년들이 참석한 가운데 몽중등과시 백일장이 성대하게 열린다.
이번 주말 칠장사를 찾아가 몽중등과시 전설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청년 박문수를 찾아온 기막힌 행운이 아니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와
두 차례의 실패를 딛고 일어난 호연지기를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