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달 가듯이…
-고교시절 국어선생님 사랑합니다 지금도 건강하신지 ㅠㅠ-
이조은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고교시절 고부강 국어 선생님을 뵐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박목월의 〈나그네〉입니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선생님께서 즐겨 들려주셨던 시들 중의 하나인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선생님의 수업시간은 늘 감동과 신명 바로 그것이었다. 왼손을 열중쉬어 하듯 허리 뒤에 붙이시고, 당당하고 패기가 넘쳐 보일 만큼 상반신을 살짝 젖혔다 폈다 하면서 너털웃음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시를 자주 들려주셨는데 감정을 넣어 전신으로 노래하던 시가 절정에 다다르면 학생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감동에 빠져들곤 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몇 번씩이나 폭소가 터져 나오게 하는 재미의 양념도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수업에 신바람을 불어넣는 선생님의 독특한 테크닉이요 스타일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진솔하고 명쾌하면서도 패기 있는 젊은 선생님의 국어 강의에 매료되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친 선생님께서는 나를 포함한 4명의 학생에게 방과 후 청소를 마치거든 귀가하지 말고 교실에서 대기하라는 분부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간 텅 빈 교실 창가 앞쪽에 자리잡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실에 들어오신 선생님께서는 ‘교육학 총서 (敎育學 叢書)’라는 전집류의 교육 전문도서를 내놓으시고는 이제부터 교육학 공부를 시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중등 준교사 자격 검정고시에 응시할 것을 권장하는 말씀을 들은 일이 있었던 터라 교실에서 기다리라고 한 이유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과목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우리는 당연히 국어과를 염두에 둔 것이라 짐작되었기 때문에 확인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어려운 시절 학생들의 진로를 먼저 걱정하고 계셨던 분이십니다. 사실, 선생님의 이 거대한 플랜(plan)은 얼마 못 가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의 끈기 부족으로 흐지부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질책도 없었지만, 학생들의 진로를 걱정하셨던 선생님의 애정 어린 배려를 저버린 우리들을 싱거운 녀석들이라 꾸짖었을 것입니다. 선생님 이제는 알아요. 선생님의 속 깊은 뜻을...
선생님께서는 무슨 일을 할 때나 권태와 실의에 빠진 학생들의 가슴을 자극하여 신바람을 일으키는 재주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학교 운동장의 언덕을 파헤치고 그 흙을 삼태기로 날라 운동장의 기울어진 곳을 메우는 작업이 며칠 계속되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 학생들은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지칠 줄 모르고 정말 신명나게 그 고된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모든 학생을 동시에 작업에 투입하지 않았습니다. 반 학생들을 2조로 나누어 한 조가 일하는 동안 다른 한 조는 반드시 쉬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으로 합리적이고 능률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쉬는 동안에도 교훈이 담긴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일하는 학생을 격려하는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쉬는 특정 학생을 화제에 올려 폭소를 터뜨리게 하고 때로는 일하는 조의 특정 학생을 화제로 하여 기운을 북돋아 주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일하는 학생들에게 신바람을 넣는 기법은 매우 다이내믹했습니다. 가끔은 작업하는 모습을 평가하고 열심히 일한 조에게는 쉬는 시간을 더 많이 주는 보상의 방법도 구사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재미를 붙이고 해내도록 이렇게 학생들에게 기운을 불어넣는 것이입니다. 학생들은 잠시도 나태해지거나 딴전을 피우는 일 없이 온 힘을 다하여 일하였습니다. 물론 학생들의 이런 노작(勞作)의 체험은 훗날에도 ‘일을 할 바에는 화끈하게 그리고 즐겁게’ 하는 성품으로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습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선생님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이 노래. 선생님께서는 이 노래를 들려주면서 저 건너 어디엔가 있을 듯한, 저녁놀이 붉게 타오르는 술 익는 마을로 권태와 실의에 빠진 학생들을 안내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암울한 삶 속에서도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물이 흘러가듯이 여유 있게 걸어가도록 꿈과 용기와 낭만을 불어넣어 주셨던 것입니다.
오직 제자 사랑으로 교직에 일생을 바치신 고부강 선생님!. 어쩌면 선생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향유해야 할, 붉게 타는 저녁놀 아래 술 익는 냄새 그윽한 마을을 그려보면서 강나루 건너에 있는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유유히 걸어오신 잊을 수 없는 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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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그렇게 해요
모래무지님
님꼐서는 이미
그렇게 살고 계십니다
저에게 신바람을 일으키고
용기를 주시고 있쟎아요
모래무지님꼐서
동그라미 다섯 쳐주시고
당근도 주셨쟎아요
동그라미 당근이
선생님 생각나게 하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