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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신세계」 향수 30리....*
그리고 카페프란스
카페·프란스 / 정지용
※ P/S : 1902년생인 정지용은 1923년부터 시를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지면에 발표되기로는 이 시가 그의 첫 작품이다. <향수>라는 향토색 짙은 서정시가 워낙 또렷이 우리들 뇌리에 각인되어 이와 같은 모던한 시는 얼른 정지용과의 이미지 연결이 쉽지 않다. 일본 동지사대학 유학시절에 쓴 초기 시이고 영문학도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생경한 외국어 등에서 그의 지나칠 정도의 이국적 취향이 느껴진다.
'루바쉬카’는 러시아 남성들이 즐겨 입는 블라우스풍의 윗옷이며, ‘보헤미안’은 집시 혹은 사회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방랑적이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페이브먼트’는 교과서 어느 수필에서도 나오지만 포장된 신작로를 말하며 ‘패롤’은 앵무새, ‘울금향’은 튤립, '장명등’은 처마 끝이나 마당에 세워놓은 등을 말한다. 프랑스풍 카페에서부터 이국종 강아지까지 모더니즘의 특징을 온통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저 모더니즘의 ‘폼’만 잡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일제 치하 지식인의 무기력한 고뇌가 주조로 깔려 있다. 자조와 이방인의 부적응, 그리고 망국민의 설움이 고루 배어있는데 ‘이국종 강아지’에게 ‘내 발을 빨아다오’라는 마지막의 거듭 외침은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자학적인 심상의 표출인가. 백수의 비딱한 농간인가. 아무튼 우리 현대 시사에서 그만큼 뛰어난 언어감각으로 지적 서정시를 다채롭게 구사한 이도 없을 것이다. [ 옮긴 시평 ]
그의 호적(음력) 생일인 5월15일에 즈음하여 고향인 옥천 생가와 문학관 일대에서는 매년 ‘지용제(5월13~15일)’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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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문학기행이 끝나고 차량을 회수하던중 아까 안내받은 향수30리 문학공원이 궁금해 방향을 돌렸다. 에궁 따로 행동을 부디 용서하시길 ....*
카페는 굳게 닫혀있어, 상상으로 그 카페를 연상할 밖에.. 지용님의 '카페프란스'는 '향수'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문득 '멋진 신세계'라는 타이틀이 어떤 의미로 붙여진 이름일까에 골똘해진다. 이곳 장계유원지였던 과거의 영역과 지금 시와 문학과 예술이 꿈틀대는 흐름을 생각했을까? 아님 정지용님의 '카페프란스'가 가진 속의미와 올더스헉슬리의 소설 '멋진신세계'가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를 각자의 인식에 따라 달리 해석하듯이 '카페프란스'와의 유기적인 연결의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에 빠져 미쳐 깨닫지 못하던 더위가 문을 열자 와락 덤벼든다. 모두를 익혀 버리고 말겠다는 각오인지 이글대는 태양을 피해 카페프란스의 그늘로 돌아서자 낯선 공간이 맞이한다. 리사이클동물원이라...
시도의 신선함에 비해 관리는 폐허수준이다. 이것도 컨셉트일까?
모든 상황에는 빛과 그림자가 따른다. 동물원을 가꾸기 위해 동원되는 동물들의 행복은 논외가 되고, 인간 위주의 삶을 추구하다 보면 기울어지는 대상들의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다. 얼마전 드라마에서 머리를 띵하게 강타하던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다.'라는 훈계에 '그럼 일찍 일어난 벌레는?' 하며 반문하던 ... 후~~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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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단스쿨
시를 요리하다 상상공방 / 모단스쿨 아! 시를 요리하면 그 맛이 얼마나 감미로울까..
산책나온 연인 뒤를 겸연쩍게 멀찍이 떨어져서 계단으로 내려서며 오매불망 대청호에 가파르게 솟아오른 산줄기가 보인다.
아직도 도도한 햇살에 또렷한 그림자를 드리운 벤치마다 읊조리는 한구절의 시. 당신이 완벽한 시에 대한 문외한이라도 한줄은 읽어야만 지날 수 있는 주최측의 세뇌 전법이다.
셀카놀이에 달아난 나의 얼굴..ㅎ
길을 따라 펼쳐진 시집.. 아직 건재한 햇살이지만 이미 시간은 저녁으로 향하고 흥얼거리는 콧노래까지 참으로 홋홋하다.
저 손은 움켜쥐려는 것일까 잡은것을 놓아 비우려는 것일까..
서서 읽는 시집
아득한 성자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 조 오 현 -
이길이 향수바람길에도 속하나 보다.
투명한 유리액자에 대청호를 담아 흰글씨로 새겨진 시
미루나무둥치가 짙은 그늘을 짓고 강은 흙빛으로 저녁을 그린다.
햇살 너 아직도 찬란하구나! 한 발짝 안 쪽엔 이끼 시퍼런데..
돌 속에 갇힌 시들이 노란 바탕에 꿈틀이며 살아난다.
세한도 가는 길 - 유 안 진 -
서리 덮인 기러기 죽지로
무릎까지 걷어 올렸던 강물이 정강이까지 흙물이 차올랐다.
진모래마을.. 지금은 물에 잠긴 긴 모랭이마을
인제도 해갈은 멀었는지 아직도 어지러운 손금같은 강 기슭
오월소식 ....오동나무 꽃으로 불밝힌 이곳 첫 여름이 그립지 아니한가? 정말 멋진 표현이다.
강을 돌아 다시 오른 곳에 자리한 모단가게
유리창(琉璃窓) 1 정지용
유리창 2
정지용
내어다 보니 아주 캄캄한 밤 어험스런 뜰앞 잣나무가 자꾸 커올라 간다. 돌아서서 자리로 갔다. 나는 목이 마르다. 또 가까이 가 유리를 입으로 쫏다. 아아 항아리에 든 금붕어처럼 갑갑하다. 별도 없다. 물도없다. 쉬파람 부는 밤. 소증기선(小蒸氣船)처럼 흔들리는 창(窓). 투명한 보랏빛 누뤼알 아, 이 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 나는 열이 오른다. 뺨은 차라리 연정(戀情))스레히 유리에 부빈다. 차디찬 입맞춤을 마신다. 쓰라리, 알연히, 그싯는 음향ㅡ 머언 꽃! 도회(都會)에는 고운 화재(火災)가 오른다.
수많은 꽃들 중에 유독 보랏빛 난장이 꽃 한포기
시인의 노래처럼 보랏빛 꽃 한송이 꺾어 들면 세상이 보랏빛이 될까? 길어진 그림자를 보니 적어도 마음이 조금 컸나보다.
★
♧ 소정리 풍경 멋진신세계를 나와 강을 따라 흐르는 길로 접어 들었다. 며칠 전 비오는 날의 풍경에 받은 감흥을 저녁빛으로 느끼고 싶다.
소정리를 나와 석호리표지판에 나도 모르게 방향을 잡는다. 한참을 따라 들어온 길에서 몇몇 별장을 지나 차를 세우고 바라본 풍경은 황홀하다.
연기가 피어 오르는 부분에 청풍정이 보인다.
소정리에서 건너편에 보이던 삼각봉우리들
비낀 햇살에 더욱 풍치가 아름다운 청풍정 낚시꾼들의 등살에 주변이 어지러운것이 안타깝다.
석호리 풍경을 눈으로만 좇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되돌아 나온다. 석호리마을 표지판을 따라가다 길에서 멈추어선 호반풍경
석호리 마을에 접어들기전 정자에서의 저녁호반
분명 네비양의 표시엔 자그마한 길이 있어 조붓한 자갈길을 따라 가다가 호젓함이 문뜩 겁으로 바뀐다. 저무는 시간과 끝을 알지 못하는 낯선 길에 되돌아 나온다.
★
기억
습기 먹은 눈, 주저 앉은 콧잔등, 두툼한 입술, 곱슬머리 나의 얼굴이구나
굵고 틈실한 종아리 혹사당한 발가락 불거진 발마디 나의 다리로구나
물 마를 날 없는 두 손 가끔씩 저려오는 팔꿈치 내가 기억하는 나의 팔이로구나
나의 존재가 나의 기억에 의존한다면 어느날 , 나의 기억이 나를 잊어버리면 나는 나를 어찌 알아볼까?
내가 나를 기억 못하면 나는 누구인가....
鄭 該 潾
[배경음악: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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