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지 휘청휘청~ 우쭐우쭐~ 바다 위를 걸어간다 - 동시조 쪽배 12호
휘청휘청~ 우쭐우쭐~ 바다 위를 걸어간다 ( 동시조 쪽배 12호. 리잼 / 2022. 9. 8 / 12,000원) |
쪽배 동인 소개
박경용
아동문학가.
1958년 ≪동아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동시집 『어른에겐 어려운 시』
시조집 『적寂』, 시조선집 『도약』
시집 『침류집』, 시선집 『소리로 와서』
동요시선집 『귤 한 개』
동시선집 『새끼손가락』, 『바다랑 나랑 갯마을이랑』, 『박경용 동시선집』
동시조집 『별 총총 초가집 총총』, 『샛강마을 숲동네』, 『낯선 까닭』, 『호호 후후 불어주면』, 『음악둘레 내 둘레』
평론집 『무풍지대의 돌개바람』 등을 펴냄. 세종아동문학상 ㆍ 대한민국문학상 ㆍ 열린아동문학상 ㆍ 한국동시조문학대상 수상.
진복희
시조시인. 아동문학가.
1947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1968년 ≪시조문학≫을 통해 등단. 지은 책으로 동시조집 ≪햇살 잔치≫, ≪별표 아빠≫, 시조집 ≪불빛≫ 등이 있다. 가람시조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 수상.
신현배
시조시인. 아동문학가.
1982년 《소년》에 동시 추천 완료.
198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조 당선.
동시집 『거미줄』『매미가 벗어 놓은 여름』 등 출간.
창주문학상ㆍ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등 수상.
김용희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같은 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 1982년 『아동문학평론』을 통해 평론 활동을 시작.
아동문학평론집 『동심의 숲에서 길 찾기』, 『디지털 시대의 아동문학』 등과 동시조집 『실눈을 살짝 뜨고』, 『김용희 동시선집』, 동시 이야기집 『짧은 동시 긴 생각1』 등을 출간.
방정환문학상, 경희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이재철아동문학평론상 수상.
현재 계간 『아동문학평론』 편집주간.
□ 엮고 나서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바다 생각에 젖게 하는 것들」,
이 운명적 만남이 끼친 ‘바다 동시조’ 시편들
<쪽배>가 항해 30주년을 맞았다.
그 오랫동안 사공의 면면이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동시조를 향한 ‘순수한 열정과 치열한 자세’만은 초지일관해 왔다. 이는 <쪽배>를 출범시킨 송라 박경용 선생의 소명 의식에 뿌리내린 한결같은 집념의 결과였음을 숨길 수 없다.
그 기념호라 할 이번의 이 『휘청휘청~ 우쭐우쭐~ 바다 위를 걸어간다』는 오로지 ‘바다’ 시(詩)로만 묶었는데 이 또한 송라 선생의 평소 지론과 무관하지 않다.
송라 선생은 반도(半島)땅인 우리나라에서, 더군다나 근대문학 태동과 근대 동시의 효시인 「해에게서 소년에게」(《소년》1908)가 ‘바다 시’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해양 문학이 빈곤한 사실을 늘 개탄해 마지않으셨다. 한데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는 일은 송라 선생이 본격적으로 쓴 첫 동시조도 다름 아닌 ‘바다 시’였다는 점이다.
1968년, 이론과 실제를 겸한 「동시조 이야기」를 《가톨릭 소년》(3~5월호)에 연재할 때 그 첫 회분에 본보기 작품으로 단형시조를 선보였는데 그 처녀 실험작이 바로 「바다 생각에 젖게 하는 것들-소라, 조약돌, 산호」인 것이다.
그 이후 발간된 시집 ․ 동시집 ․ 동시조집 곳곳에 산재해 있던 ‘바다 시’ 중에서 동시 및 동시조만 추려내 엮은 뜻깊은 바다 동시집(총 70편)이 2008년에 간행된 『바다랑 나랑 갯마을이랑』(청개구리)이었다.(이 시집은 조두현 ․ 김효안 두 시인이 선생의 시력 50년을 기려서 헌정한 시집이라 각별한 관심을 끌었었다.)
그만큼 선생의 문학 세계에서 바다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큰 것이었다. 이 ‘바다 시’ 특집 30주년 기념호는 그래서 송라 선생의 시 정신이 투영된 결과물이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고 헤아려진다.
사실 <쪽배> 12호는 첫 동인지 『어린 달과 어울리러』(1997) 이후 2년마다 출간한 관례에 따라 2021년 가을에 펴냈어야 했다. 2018년 12월에 11호를 출간한 뒤 그 준비 중에 뜻하지 않은 코로나19 사태를 만나 모든 계획이 중단되고 말았다. 이에 동인들이 하나같이 생전 처음 겪는 낯선 ‘코로나 시대 풍속도’에 함몰되는 바람에 그 결실들만 따로 묶어 앤솔러지 『하늘빛 날갯짓으로 헤쳐 나온 나달이여』(2021)를 내면서 어쩔 수 없이 동인지 12호는 올 가을로 미루어졌던 것이다.
주제 중심의 특집으로 엮어진 예로는 이 12호가 11호의 ‘솔’ 특집, 곧 ‘소나무-솔밭-솔숲-솔벌’에 이은 두 번째 시도에 해당되는 셈이다.
수록된 동인 작품은 모두 68편이다. 2021년 4월에 ‘코로나 앤솔러지’를 묶어 낸 직후,그해 6월부터 이듬해인 올 6월까지 꼭 한 해 동안 송라 ․ 아주 ․ 신광 ․ 자하 등 동인 4인이 매진하여 거둔 수확이다.
동인들은 각각 한 부씩 차지했지만 송라 선생이 거둔 작품은 워낙 많아서 따로 1부와 6부로 나누었다. 5부는 명예 회원에게 할애했는데 아홉 분 시인의 20편이다.
11집 발간 이후 약 3년 반 동안 특별한 주제(코로나 시편, 바다 시)외의 일반 동시조 작품도 적잖이 거두었으나 사정상 다음 기회에 구제하기로 했다.
제호는 시원한 바다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는 진복희 동인의 「수평선」 종장에서 가져왔다.
우리 <쪽배>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여러 차례 참여해주신 김복태 화백님께서 이번에도 흔쾌히 표지화를 맡아 주셨다.
모쪼록 이 자그마한 동인지가 우리 문단 안팎에서 해양 문학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키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섣부른 욕심을 가져본다.
2022년 한여름 밤 김용희.
‘동시조<쪽배>동인’ 작품
박경용 「바다멍」 외 5편
바다멍
지금, 바다 앞이라면
난 그냥 멍하니 있을 걸?
하도 벅차〜 꿈만 같아〜
아무 생각, 느낌 없이
눈길만
수평선에 꽂은 채
멍 때리고 있을 걸!
바다바라기
‘바다바라기’라는 말,
생뚱맞기만 한가요?
‘개밥바라기’라는 좀 엉뚱한 말이 있긴 하지만요. 해바라기, 볕바라기, 먼산바라기……이지음은 ‘하늘바라기’라는 말까지 생겼잖아요? 그런 참이라 ‘바다바라기’도 아주 그럴싸한 말이 아닌가 싶네요.
더욱이
바다만 꿈꾸는 내겐
딱 맞는 말인 걸요!
‘간물’맛
할머니는 바닷물을
꼭 ‘간물’이라고 해요.
바닷물은 소금물,
소금이 곧 ‘간’이니
맹물에
반대되는 말로는
‘간물’이 제격이래요.
‘간물’맛에 할머니는
갯마을이 좋대요.
간간한 간맛이
배어 있는 동네엔
싱거운
맹물 따위는
발도 못 붙인다며…….
해루질
바다 밖에서 하는
그 별난 ‘개펄 물질’.
해루질 그 맛에
서해가 좋아졌다며
툭하면
물때에 맞추어
강화도 가는 할머니.
“동해가 그네 타기라면
서해는 소꿉놀이야!”
이젠 아깃자깃한 게
더 쏠쏠하다는 할머니.
기어코
‘동해의 딸’ 할머니를
무릎 꿇린 해루질.
*해루질; 썰물 때, 개펄에서 조개·게·낙지 따위를 잡는 일.
*물질; 바다 속으로 들어가 해산물을 캐는 일.
*물때; 아침저녁으로 밀물썰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때.
섬지킴이 갯바위
개펄에 넋이 팔려
눈에 띄지 않던 것이
해넘이 무렵이면
밀물을 타고 온 듯
그림자
길게 앞세우고
나타나는 갯바위들.
왕릉을 줄곧 지키는
꼿꼿한 석물들처럼
이 섬의 밤바다는
우리가 지키겠다며
까치놀
사열대를 향해
충성을 외칩니다.
해파리
떠돌이 해파리는
바다의 ‘유에프오’.
엄청난 비밀 덩어리
의문투성이 바다에
한 조각
궁금한 수수께끼,
‘유에프오’ 해파리!
김용희 「조가비」외 2편
조가비
싯누런 모래톱을
쉼 없이 닦는 파도.
누런 거품을
푸른 물로 헹궈내자
비로소
햇살에 반짝!
내보이는
하얀 이!
갯바위
뻘밭에 버려졌던
못난 바윗덩이가
물이 차면 금세
귀하신 몸이 되지요.
뭇사람
시선을 사로잡는
조각작품이 되지요.
잔물결이 찰랑찰랑
장난치며 말 걸어도
너울성 센 파도가
한판 붙자며 덮쳐도
묵묵히
돌부처인 양
아랑곳도 않지요.
한여름 해수욕장
몰려든 사람들로
물 반에 사람이 반.
시달리는 바다는
몸살을 앓는데도
철없는
파도는 마냥
어깨를 들썩들썩.
물장구를 치면서
함성을 내지르며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의 등쌀에
파도는
덩달아 신이 나서
들락날락 재잘재잘.
신현배 「파도 1」 외 2편
파도 1
바닷가를 거닐다가
핸드폰을 여는 엄마.
사진 찍히기에 익숙한
우리 집 스피츠처럼
파도가 엄마 앞으로
살랑살랑 기어와요.
파도 2
파도만한 수다쟁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잠시도 쉬지 않고
촐싹촐싹, 찰싹찰싹!
아무도 말꼬리 못 잡게
하얀 이빨 드러내며.
갯바위
날렵한 파도 손이
단숨에 지어 놓은 듯
집채만한 갯바위는
물새들의 아파트다.
한 지붕 여러 가족이
파도 소리 덮고 잔다.
깃털, 얼굴 제각각인
텃새랑 철새들이지만
날갯짓, 눈빛으로도
속맘 나누는 이웃들.
한바탕 수다를 떨면
파도보다 시끄럽다.
진복희 「수평선」 외 3편
수평선
수평선을 따라서
바닷가를 걷는다.
눈길일랑 나란히
수평 위에 올려놓고
줄 타듯
휘청휘청〜 우쭐우쭐〜
바다 위를 걸어간다.
물수제비
바다가
잔잔한 날엔
물수제비 뜨러 가자.
돌고래
자맥질하듯
탐방〜
탐방〜
물수제비〜〜
꿍쳐둔
속엣말까지
단숨에 날려 버리자.
개펄 술래
바다가
바닥을 치며
닫힌 가슴을 열었다.
꼬르륵〜 뽀글뽀글〜
간질이는 숨소리
수천 개
숨구멍 열고
개펄이 끓는 소리.
뻘밭에 몰려나온
아이들은 술래다.
꼬막 캐는 아이 곁에
곰실대는 농게〜 방게 〜
방울눈
굴리던 짱뚱어가
해바라기 하는 참에 .
갯바위섬
뭐라뭐라〜 뭐라고〜
가쁜 숨 토해놓고,
내 곁을 맴돌다가
달아나는 파도〜 파도〜
벼랑 끝
나 혼자 남겨진 듯
무섭기도 하다가…
언제는,
고래등 타고
난바다 넘나보고…
또 언제는,
물새 따라
끼룩끼룩 울어도 보고…
그러다
잠기는 노을에
한껏 설레어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