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 발음을 무척 조심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족구 경기하는 것을 전혀 본적이 없는 사람이 족구라는 낱말만 가지고
어떤 운동인가를 짐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된다. 발을 주로 쓰는 것은 확실하지만
세상에 어디 발을 쓰지 않는 운동이 있는가?
더구나 경기 규칙이 제법 복잡한 것을 이해하기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우선 감점제인지 가점제인지부터 심판의 자격 등 모르는 것 투성이일 것이다.
더구나 족구의 기원이라든가 그 발달 역사쯤 되면 전문가들도 아리송해질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매우 단순한 경기이다.
내방 바로 앞이 상설 족구장이다.
내 판단으로는 원래의 용도가 화물 하치장인 듯 한데 그간의 역사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드디어 족구장이 되어버렸다.
족구하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무척 즐거운 운동인 것은 틀림없다.
구경을 해보면 더욱 신기하다.
평소에 아주 조용하고 품위가 있던 사람이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돌변하여
다리를 번쩍 들고 상대방의 가슴을 향하여 공을 냅다 지르는 것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
더구나 경계석 위를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오르내릴 때쯤이면 신기하다 못해 갑자기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이 경기장을 이용하는 모임은 대단히 열성적이어서 비 오는 날 말고는 거의 거르는 일이 없다.
그리고 서로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애로가 많은 듯 하다.
상대가 나무를 뿌리 채 뽑지 않고는 공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수준이 아니면 점수를 얻을 수 없다고 한다.
나무를 번쩍 뽑아 재킨다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어떻든 바로 이 모임은 대단한 행운아들이다.
왜냐하면 늘 같은 경기장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딴 모임들처럼 유랑의 괴로움을 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어떤 모임들은 여성 응원 요원들을 이끌고 마치 집시처럼 유랑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으니,
오늘은 여기서 내일은 저기서 경기하고 있다.
모임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을 앞세우고 북이라도 울리면서 이동한다면 더욱 운치가 있겠지.
여기서 족구와 이동성에 관한 연구를 해본다면 이동성이야말로 족구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즉 웬만한 평지라면 정확한 규격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과 필요한 타협을 끝내면 즉시 사용할 수 있다.
특별한 시설물이 필요 없으니 더욱 이동성이 좋아진다.
또 다른 장점은 경기 인원수에 융통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대단히 편리하여 모임을 구성하는 데 약 3분 정도면 충분하다.
이와 같은 훌륭한 경기가 왜 올림픽 주종목으로 선정되지 못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앞으로 이를 깊이 있게 발전시켜 태권도처럼 우리가 종주국이 되는 날을 기대해보며,
정착성에서 오는 이 민족의 고질병들을 고도의 이동성을 가진 족구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고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