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BC 3∼BC 2세기에 걸쳐 일어난 로마와 카르타고의 3차례 전쟁. 포에니는 페니키아인의 후손인 카르타고인을 가리킨다. BC 3세기초 이탈리아반도에 세력을 확립한 로마는 신흥 귀족의 뛰어난 지도력, 시민병(市民兵)의 충만한 사기와 국가의식, 이탈리아반도 여러 나라와의 동맹체제 유지 등에 의하여 점차 지중해세계의 유력한 국가의 하나가 되었다.
내용 BC 3∼BC 2세기에 걸쳐 일어난 로마와 카르타고의 3차례 전쟁. 포에니는 페니키아인의 후손인 카르타고인을 가리킨다. BC 3세기초 이탈리아반도에 세력을 확립한 로마는 신흥 귀족의 뛰어난 지도력, 시민병(市民兵)의 충만한 사기와 국가의식, 이탈리아반도 여러 나라와의 동맹체제 유지 등에 의하여 점차 지중해세계의 유력한 국가의 하나가 되었다. 카르타고는 이미 BC 6세기 무렵부터 서지중해세계 최대 상업국·해군국으로 융성하였으며, 특히 시칠리아를 중심으로 그리스인과 오랫동안 대립해 왔다. 로마와 타렌툼(현재의 타란토)과의 전쟁 때 카르타고는 그리스인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BC 279년 로마와의 통상조약에 군사협정조항을 추가하였다. 이 무렵까지 우호적이었던 두 나라는 타렌툼과의 전쟁에서 이긴 로마가 남이탈리아의 그리스인 도시들을 지배하면서 그 이해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자, 두 세력의 접촉점인 시칠리아에서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1 제 1 차(BC 264∼BC 241) 시칠리아 북동부의 메시나가 카르타고와 동맹을 맺은 시라쿠사에게 공격받자, 그곳을 점령하고 있던 캄파니아 출신 용병대장 마베르티니가 로마에 구원을 요청한 것이 발단이 되어 일어났다. 로마 장군 A. 클라우디우스가 시칠리아에서 카르타고에 선전포고한 뒤, BC 263년 시라쿠사를 손에 넣고, BC 262년 시칠리아의 최대 군사 거점 아그리겐툼을 함락시켰다. 또한 해군력을 길러 BC 260년 밀레 해전, BC 256년 에크노무스 해전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아프리카로 원정하였으나 카르타고 용병대장 크산티포스에게 패하였다. 그뒤 로마군이 파노르무스를 공격하자 카르타고는 새로운 용병대장 하밀카르 바르카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BC 241년 에가테스의 해전에서 패하였다. 그 결과 로마는 시칠리아를 속주로 할양받고 3200탤런트의 배상금을 약속받았다. 또한 로마는 사르데냐·코르시를 점령하여 제 2 의 속주로 삼았다.
2 제 2 차(BC 218∼BC 201) 한니발전쟁이라고도 한다. 하밀카르 바르카스와 그의 아들 한니발은 에스파냐 경영에 힘쓰며 전쟁준비를 갖추어 로마동맹시 사군툼을 공격, 다시 로마와 전투에 들어갔다. BC 218년 대군을 거느린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북이탈리아에 침입하여 트레비아강·트라시메누스호(湖) 등 각지에서 로마군을 격파하였다. 특히 BC 216년 칸나전투에서 로마군을 포위·섬멸하였으나 이탈리아반도의 로마동맹시는 로마를 배반하지 않았다. 카르타고는 카푸아·타렌툼·시라쿠사와 동맹을 맺었지만, 로마의 게릴라전법으로 저지되어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BC 206년 이베리아반도를 평정한 대(大)스키피오가 인솔하는 로마군은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BC 202년 자마전투에서 한니발군을 격파하였다. 그 결과 카르타고는 해외 영토를 모두 잃고 1만 탤런트의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3 제 3 차(BC 149∼BC 146) 카르타고와 이웃나라 누미디아왕 마시니사와의 싸움에 로마가 개입하면서 일어났다. 제 2차포에니전쟁 말기 대스피노자를 도왔던 마시니사가 로마의 종속동맹국으로서 자주적 교전권이 없는 카르타고령을 잠식하려 하자 카르타고는 하는 수 없이 방어전을 폈다. 이에 로마는 강화조약 위반을 비난하며 군대를 보내 카르타고를 굴복시켰으나, 무장해제 및 시가 파괴를 요구함으로써 3년에 걸친 카르타고의 저항을 받게 되었다. BC 149년 로마군이 포위·공격하자 카르타고가 지리적 위치를 이용하여 저항하였으므로, 소(小)스키피오가 포위를 엄중히 하고 지구전을 펴 BC 146년 성 안으로 진입하였다. 카르타고는 원로원 명령에 따라 17일간 불태워져 폐허가 되었으며, 그곳에 로마는 속주(屬州) 아프리카를 건설하였다. 이 전쟁은 서지중해 전지역을 무대로 한 고대의 세계대전이었다. 또한 민족적 시련을 극복한 로마가 하나의 도시국가에서 지중해 전체를 지배 영역으로 한 세계제국으로 발전하는 전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