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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여유 있게 오세요. 전 포항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휴식 중, 근데 포항에 왜 그리 오고 싶어 하세요?’
포항 IC 2Km를 남겨두고 문자를 띄웠더니 후배로부터 온 문자입니다.
벌써 한 달 쯤 전입니다. 후배와 술한잔 걸치던 중 내달에 포항 울트라마라톤 간답니다.
죽도시장에서 먹었던 회가 생각나 얼결에 ‘그럼 나두 갈까?’했는데,
그 개최일이 지난 토요일(5월 11일)이었습니다.
말은 해놓았지만 며칠 전 ‘저 이번 토요일 포항 가요.’할 때까지만 해도 새까맣게 잊고 있던 것이었지요.
사실 토요일 아침 출근할 때까지도 좀 망설이면서
대충 카메라만 챙겨 들고 집을 나왔다 그냥 포항으로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오후 7시 출발인데 대략 4시쯤 만날 시간을 맞추려면 KTX밖엔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약할 수 있으면 내려가고 아니면 말지 했는데 좌석 여유분이 있습니다.
동대구에 내려 직통버스로 갈아타고 문자를 넣었더니 답신이라는 게 그 모양입니다.
‘그럼, 미리 알려나 주지~’
밤새워 달리는 울트라마라톤은 체력소모가 많아
칼로리가 많은 음식을 미리 먹고 출발하는데 짜장면 곱빼기가 최고랍니다.
근처를 둘러보니 중국집이 없어 돼지국밥집으로 들어갑니다.
‘여기 소머리 국밥과 돼지국밥 하나씩 주이소’하니 일일이 다시 끓여야 하니 그리는 못한답니다.
이거 어째 출발부터 수상쩍습니다. ‘각개’표입니다.
국밥이 나오고 주인과 얘기 몇 마디 나눠보니 사근사근한데 왜 그리 쌀쌀맞게 얘기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수상쩍은 설렁탕보다는 오히려 돼지국밥 국물이 구수하니 진솔합니다.
후배는 물어보지도 않고 소주 한 병 시킵니다. 안 먹으려고 했던 소주를 세잔만 하고
남은 것은 배낭에 넣고 집합장소인 포항 종합경기장으로 떠납니다.
이날 포항에는 울트라, 해변, 3종 철인경기 등 3가지 마라톤 대회가 하루 차이로 겹쳤고,
연등축제에 삼성과 기아 간의 야구로 들뜬 분위기입니다.
야구장 근처로 가니 경기장 맨 위까지 사람들로 들어차고 함성소리가 요란합니다.
이런 울트라마라톤을 뛰다보면 낯익은 얼굴도 만나게 됩니다. 풀코스는 풀코스끼리, 울트라는 울트라끼리.
대회를 알리는 현수막 아래 작은 현수막이 하나 더 걸려있습니다.
‘영원한 청년 김복근. 100Km 100회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따라 읽기도 숨이 차올라옵니다.
남들은 한번 달리기도 벅찬데 1백회를 달리다니!
그러고 보니 마라토너들은 하체뿐만 아니라 상체도 무척 좋습니다.
날씬한 몸매에 짝 달라붙는 런닝복 위로 근육이 울룩불룩.
접수하며 ‘각서’를 쓰고, 테이핑과 왁스를 바르며 준비합니다.
후배는 중도탈락의 유혹을 떨쳐 버리기 위해 핸드폰도 짐 속에 처박고 맡기는 결기를 보여줍니다.
저야 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참견하고 구경을 해야지요.
준비운동과 개회사와 이어
이번에 얼핏 70이 가까운 나이의 김복근 마라토너와 100회 완주하는 걸 기념하는 케이크 커팅,
여기엔 얼마 전에 100회 완주를 끝낸 여성 마라토너도 자리를 함께 합니다.
즐기면서 사고 없이 완주하시라는 격려에 “야~~~” 함성을 지르며 출발합니다.
코스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처음에는 형산강 다리에서 형산강 북쪽 뚝방을 따라 왕복 35Km정도로
영일만 북쪽 포항대학교 근방을 반환점으로 다시 되돌아 나오는 북쪽코스와,
이어서 형산강 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구룡포까지
거기에서 북쪽 해안선을 따라 호랑이 꼬리를 감돌며 다시 원점으로 복귀하는 남쪽 코스입니다.
저는 북쪽 코스인 형산강변을 따라 가면서 되돌아 나오는 후배와 마라토너들 사진을 박아주고
주목적인 젯밥에 충실하기로 일정을 잡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강 건너 포철을 보니 그 위용이 대단합니다.
포항은 포철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며 공장시설에는 색색의 조명이 켜지며 그것만으로도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송도해수욕장을 지나 동빈다리까지 가니 시간은 9시 반 정도 되었습니다.
‘인턴’이 아닌 자원봉사자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아직 되돌아 나온 주자가 없답니다.
‘예상보다 너무 느린데?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조그맣게 공원을 만들어 놓은 곳에서 20여분 기다리니 첫째 주자가 지나갑니다.
10번째까지는 띄엄띄엄 나타납니다.
젯밥에 신경 쓸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지난 번 강화에서는 30-40번째쯤 후배가 나타나더니... 50-60번째가 지나고
시간은 10시를 넘어 30분에 가깝도록 나타날 줄을 모릅니다.
갈등이 생깁니다. 사진을 찍느냐, 포기하고 제상을 기웃거리러 가느냐.
결국 선배라는 게 유혹을 못 이기고 의리도 없이 화들짝 죽도시장으로 달려갑니다.
시장도 파장이어서 문을 열고 있는 집이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문을 다 닫아 버릴까봐 제일 가까운 집으로 들어서니
바로 몇 년 전 집사람과 함께 들러 물회와 성게알밥을 먹던 집입니다.
‘나 혼잔데 밥 겸 술 겸 먹을라면 뭘로 먹으면 좋겠수?’
회덮밥을 하나 시키고 빨간 거 하나 달랬더니
이 동네 술인 ‘함께 하면 좋은 맛있는 참’, 빨간 도장 ‘참’이 찍힌 소주를 내옵니다.
밥은 반쯤 넣고 비벼서 안주 겸 밥 겸 먹으려니 매운탕 국물도 내줍니다.
혼자서 그럴듯한 안주를 먹기가 쉽지 않은데,
오늘 봐하니 이대로 가면 내일 대회를 마치고 들 음식이 뻔 할까봐 불안합니다.
포항까지 내려왔는데 서울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먹고 가야할 텐데 말이지요.
아줌마에게 ‘근처에 괜찮은 찜질방이 있느냐’ 물으니
‘가까운 데는 지은 지 오래 됐고 택시 타고 좀 가면 그 무슨 찜질방이라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백암 온천타운’으로 나옵니다.
‘이름 그럴 듯하네, 그래 거기로 정하지.’
거리가 1.6킬로니 그냥 구경이나 하며 걷기로 마음을 정합니다.
포항은 길들이 정방향과 45도 기울어진 격자가 서로 만나는 형태로 되어있어
5거리, 6거리가 많고 걸어가려면 곧바로 가질 못해 좀 불편합니다.
아무튼 겨우 찾은 ‘온천타운’이라는 곳은 조명도 변변히 없어 내가 제대로 찾아온 것인지 불안합니다.
장사가 안 되는지 편의시설 유지에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지만 ‘엄청’ 넓습니다.
탕에도 TV를 볼 수 있게 해놓고 사우나실에도 TV가 설치되어 있어 처음 개장했을 때는 소문 꽤나 났음직 합니다.
사람이 별로 없어 나야 코골아도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아 좋지만
그러다 폐업하면 나 홀로 여행객에게 쓸 만한 쉴 곳이 하나 줄어들 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20년도 더 된 얘기입니다만 혼자 여행을 갔다 어느 모텔로 들어가 계산을 하니
아줌마가 혼잣말처럼
‘외로워서 어쩔까나...’ 중얼거립니다.
“예?”,
‘아니 쓸쓸해서 어쩌나...’. 이런 된장!
그날 밤은 외로워서가 아니라 이불을 덮지 않고 자자니
허전해서 몇 번을 깼다 자다 하니 어느새 날이 밝습니다.
다시 아침햇살을 맞으며 종합운동장으로 가니 7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벌써 10여명이 들어왔습니다.
이미 들어 온 사람들은 샤워를 마치고 미역국밥, 떡, 두부김치에 막걸리를 곁들여 요기하느라 정신이 없고
햇볕이 따뜻하게 드는 벤치에는 누워서 잠을 청하는 사람도 눈에 보입니다.
나와 함께 정문 곁에서 기다리던 중년여성은 행사요원인 줄 알았더니 가족이었습니다.
한분이 시야에 들어오니 기다리던 딸, 아들이 달려가 가족이 한데모여 결승점으로 들어옵니다.
아비가 하는 일이라면 사사건건 반대하는 집도 많은데 참 보기 좋습니다.
드디어 후배도 들어옵니다.
9시에서 9시 반 사이에 들어 올 거라던 후배는 예정시간보다 훨씬 일찍 들어 왔습니다.
대회 며칠 전에 발목이 부어 중도탈락을 우려했지만 괜찮았던 모양입니다.
13시간 25분. 평소보다 10분 단축한 기록입니다.
샤워하고 나오더니 발에 물집이 크게 잡힌 걸 이제야 알았다더군요.
100회 완주를 이루는 김복근 선수는 여러 사람들이 마중 나가
현수막을 두르고 환호성과 함께 결승점으로 들어옵니다.
대단합니다.
그런데 나이 드신 분들이 젊은 사람보다 더 일찍 들어 온 사람들이 많은 건 어쩐 일일까요?...........
‘야, 빨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죽도시장 가서 서울처럼 밋밋한 회나 해장국을 먹느니 북부시장으로 향합니다.
시장 규모는 죽도시장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입구에 있는 가게들 마다 ‘등 푸른 생선 물회’라고 써 붙인 게 마음에 듭니다.
생선전으로 가니 꽁치 땟깔 좀 보소. 마치 은갈치처럼 껍질에 상처 하나 없이 고와서
사정없이 파괴본능이 솟구쳐 오릅니다.
“아주머니 이거 얼만교?”,
“만원에 수무마리”,
“그걸 어떻게 다 먹어요? 그라지 말고 오징어 하나랑 가재미 하나씩 서꺼서 만원에 주소.”,
“오징어 한 마리만두 오처넌인데?”,
그러면서도 군소리 없이 물회거리로 잘게 썰어 물로 깨끗이 씻어서 소쿠리에 담아줍니다.
멍게도 한 봉다리 들고 초입에 있던 곰탕집으로 갑니다.
“이거 물회 좀 해주고 곰탕 한그럭에 막걸리 한통 주소.”.
무슨 고기인 줄 모를 허연 회만 달랑 넣고 가져오는 ‘기성’물회보다 근본을 알고 먹는 맞춤물회니 기대가 됩니다.
소라가 있었으면 더 좋은 건데...
이윽고 무채를 바닥에 깔고 사간 횟감과 그 위에 파, 참깨와 고추장, 다진 마늘을 넣은 물회가 나옵니다.
물을 넣고 비비니 입안에 침이 절로 고입니다.
후배는 울트라를 뛰고 나면 속이 뒤집힌다며 몸을 사립니다.
“야, 뜨끈한 국물 먹고 속 좀 풀어.” 그러면서도 막걸리는 세통을 비웁니다.
뒤 테이블에는 선글라스를 낀 젊은 처자 한분이 들어오더니
주저없이 꽁치물회 하나 시켜서 혼자서 소주를 맛있게 들이키고 있습니다.
‘머싯따~’
버스기사는 요령 좋게 덜 붐비는 고속도로를 타며 5시간 내로 정시에 서울로 도착합니다.
토할까봐 먹지 못했던 물회가 이제야 생각나는지 후배는 연신 아까운 물회, 물회 합니다.
집에 들어가 밥차려 달래기도 그렇고
근처 김치찌개집으로 들어가 커다란 양푼에 담겨 나오는 찌개를 들더니 이제야 살 것 같답니다.
이번 울트라마라톤은 그런대로 성과가 있었습니다.
후배의 기록이 그렇고 저야 포항에서 여행 중 먹을 만한 곳을 하나 찾았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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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왠 울트라 마라톤을 뛰시나...했더니 역쉬~~~
이 후배님 지난번에도 소개한 것 같은데 ....
매번 후배 팔아서 원장님은 식도락 즐기시네요
바로 그거지요.
양 다리 사이, 엉덩이 아래로 찍은 사진이 재밌네요
달리기보다는 먹거리가 훨 눈에 들어오니
나도 젯밥에 신경...ㅎ